- g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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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안식일인 오늘은 행사가 많았다. 괜스레 심통도 많이 나는 날이었다. 머릿속에선 온갖 사단들이 불평 불만을 토로했다. 어느새 생각나는 단어들이 종교적이 돼 버렸다니 놀랍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목사님의 운전이었다. 첫 날 차를 타는 순간부터 오금이 저렸는데, 오늘은 도저히 못 참고, 교통사고 얘기를 운운하며 천천히 몰아 달라 사정을 했다. 뒷좌석에서 안전벨트도 단단히 하고서도 말이다. 정말 심장이 뛰고 사지가 움찔대는 바람에 차라리 잠을 청하자 해도 쉽지가 않다. 목사님도 변명을 하신다. 이 차가 워낙 전고가 높아 흔들린다는 둥, 오래되어 그런 다는 둥…… 목사님도 그 순간은 운전사일 뿐이었다.
예배를 아침에 일어나자 한번, 자리를 옮겨서 또 한번, 또 다시 어느 노인들이 모여 사신다는 복지원에서 한번 총 세 번을 하는데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전화라도 안 오나 싶은 생각이 들어 핸드폰을 괜스레 만지작거리다가 결국은 밖으로 나와버렸다. 복지원에서는 왜 그리 오줌냄새가 진동을 하던지 비위가 상해 더 견디기 힘들었다. 밖에 나와서 노인들을 좋아한다는 내 자신에 대해 다시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진정으로 노인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내 꿈인가? 그렇다면 어떤 노인들인가? 특정한 부류의 노인만을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적당히 능력 있고, 돈 있고, 여유 있는 노인만을 위해 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했던 ‘그린실버하우스’는 상당한 능력이 있고 고상한, 경제적으로도 중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티란 말인가? 다시 한번 잘 생각해야겠다. 내가 말 그대로 꿈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노인들에게서 나는 비릿한 냄새도 참지 못하는 나를 다시 되짚어 보게 된다.
8시가 넘어 진주 유등 축제를 꼭 봐야 한다 하시며 할머니와 나를 데리고 나가셨다. 감기 기운도 있는 것 같다 하시면서도 굳이 옷을 껴 입고 억척스레 차리는 할머니 모습이 영 맘에 들지 않아 속으론 별별 생각을 다했다. ‘난 저렇게 욕심 많고 말 많은 할머니는 안 될 거야. 난 정말 고상하고, 친근한 할머니가 돼야지.’ 이러면서 진주에 도착했다. 내 맘에 안 든다고 입을 쑥 내밀고 다니는 내 모습은 더 할 텐데, 이놈의 심술보는 언제나 떼버릴 수 있을는지 고민이다. 혹부리영감 도깨비를 만나면 떼어 갈까? 진주 남강에 갖가지 모양을 한 커다란 등을 만들어 띄워 놓고, 무대에서는 연신 음악이 흘러 나오며 무희들이 춤을 춰댔다. 가까이 가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진주 성에서 건너다 보았다. 길 양쪽으로 쭉 늘어선 천막 사이로 걷는데, 오뎅, 순대, 부침개에 소주를 먹는 모습이 부러웠다. 촌스러운 물건들과 의례 이런 축제 때면 빠지지 않는 인형을 주는 미니사격장, 호두과자, 울릉도 호박엿장수 등 구경하는 사람들과 장사치들로 논개가 왜장을 끌어 안고 자결했다는 촉석루가 북적댔다. 논개도 함께 넋을 놓고 구경하고 있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엔 피곤하기도 하고, 목사님의 운전이 무섭기도 해 잠을 자버렸다. 30분이 넘게 걸려 돌아오는 길은 참 멀게 느껴졌다.
2007-10-13 11:5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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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인 오늘은 행사가 많았다. 괜스레 심통도 많이 나는 날이었다. 머릿속에선 온갖 사단들이 불평 불만을 토로했다. 어느새 생각나는 단어들이 종교적이 돼 버렸다니 놀랍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목사님의 운전이었다. 첫 날 차를 타는 순간부터 오금이 저렸는데, 오늘은 도저히 못 참고, 교통사고 얘기를 운운하며 천천히 몰아 달라 사정을 했다. 뒷좌석에서 안전벨트도 단단히 하고서도 말이다. 정말 심장이 뛰고 사지가 움찔대는 바람에 차라리 잠을 청하자 해도 쉽지가 않다. 목사님도 변명을 하신다. 이 차가 워낙 전고가 높아 흔들린다는 둥, 오래되어 그런 다는 둥…… 목사님도 그 순간은 운전사일 뿐이었다.
예배를 아침에 일어나자 한번, 자리를 옮겨서 또 한번, 또 다시 어느 노인들이 모여 사신다는 복지원에서 한번 총 세 번을 하는데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전화라도 안 오나 싶은 생각이 들어 핸드폰을 괜스레 만지작거리다가 결국은 밖으로 나와버렸다. 복지원에서는 왜 그리 오줌냄새가 진동을 하던지 비위가 상해 더 견디기 힘들었다. 밖에 나와서 노인들을 좋아한다는 내 자신에 대해 다시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진정으로 노인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내 꿈인가? 그렇다면 어떤 노인들인가? 특정한 부류의 노인만을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적당히 능력 있고, 돈 있고, 여유 있는 노인만을 위해 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했던 ‘그린실버하우스’는 상당한 능력이 있고 고상한, 경제적으로도 중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티란 말인가? 다시 한번 잘 생각해야겠다. 내가 말 그대로 꿈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노인들에게서 나는 비릿한 냄새도 참지 못하는 나를 다시 되짚어 보게 된다.
8시가 넘어 진주 유등 축제를 꼭 봐야 한다 하시며 할머니와 나를 데리고 나가셨다. 감기 기운도 있는 것 같다 하시면서도 굳이 옷을 껴 입고 억척스레 차리는 할머니 모습이 영 맘에 들지 않아 속으론 별별 생각을 다했다. ‘난 저렇게 욕심 많고 말 많은 할머니는 안 될 거야. 난 정말 고상하고, 친근한 할머니가 돼야지.’ 이러면서 진주에 도착했다. 내 맘에 안 든다고 입을 쑥 내밀고 다니는 내 모습은 더 할 텐데, 이놈의 심술보는 언제나 떼버릴 수 있을는지 고민이다. 혹부리영감 도깨비를 만나면 떼어 갈까? 진주 남강에 갖가지 모양을 한 커다란 등을 만들어 띄워 놓고, 무대에서는 연신 음악이 흘러 나오며 무희들이 춤을 춰댔다. 가까이 가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진주 성에서 건너다 보았다. 길 양쪽으로 쭉 늘어선 천막 사이로 걷는데, 오뎅, 순대, 부침개에 소주를 먹는 모습이 부러웠다. 촌스러운 물건들과 의례 이런 축제 때면 빠지지 않는 인형을 주는 미니사격장, 호두과자, 울릉도 호박엿장수 등 구경하는 사람들과 장사치들로 논개가 왜장을 끌어 안고 자결했다는 촉석루가 북적댔다. 논개도 함께 넋을 놓고 구경하고 있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엔 피곤하기도 하고, 목사님의 운전이 무섭기도 해 잠을 자버렸다. 30분이 넘게 걸려 돌아오는 길은 참 멀게 느껴졌다.
2007-10-13 11:5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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