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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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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30일 13시 43분 등록

6~7년 전, 강연장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였다. 문이 닫히려던 찰나, 한 남자가 도착했다. 나는 '열림' 버튼을 눌렀다. 그가 들어섰고 '고맙다', '괜찮다'는 눈인사가 오고갔다. 그와 나는 같은 층에서 내렸다. '강연하는 회사의 직원인가 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좌우측 출입문을 한번씩 쳐다보면서 말을 걸었다. "김규식 대리님을 뵈려면 어디로 가면 될까요?" 그가 돌아섰다. "제가 김규식인데요, 어떻게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오늘 강연을 하러 온 연지원입니다." 그는 놀라는 눈치였다. "사진이랑 많이 다르네요. 제가 책표지에 실린 사진을 유심히 봤거든요." 의외의 답변이었다. 나와 꽤나 닮았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실었기 때문이다. "아, 그래요? 벌써 3~4년 전에 찍은 사진이라 그런가 봐요. 1층에서도 보셨고, 여기서도 보시는데 말이죠." 우리는 함께 소리내어 웃었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인데, 종종 그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언젠가 할머니가 내 앨범을 보시다가, 내가 앉은 쪽으로 사진 한 장을 불쑥 내미시곤 말씀하셨다. "나는 이 사진이 참 좋네. 듬직하게 잘 나왔다." 사진 속의 연지원은 얼굴의 옆 모습이 찍혔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살면서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었고, 사진 속의 각도에서 나를 쳐다 본 적도 없었다. 가만히 보니 누군가와 닮은 것 같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못 생겼다고 놀림 받는 녀석과 비슷해 보였다. '오! 할머니...'



'조 해리의 창'이 떠오른다. 조와 해리 두 교수가 창안한 2x2 매트릭스로 자기이해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던지는 개념이다. 타인은 A와 B를 보지만 C와 D는 보지 못한다. 자신은 A와 D는 보지만, B와 C는 보지 못한다. 네 개의 사분면을 모두 합치면 온전한 자아가 된다. 조와 해리는 공통으로 인식하는 A 영역을 늘릴수록 자신에게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B가 크면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고, C가 커질수록 외로워진다.


"자신을 길쭉한 8단 서랍장 같은 존재라고 표현하던 친구가 있었다. 각 서랍이 자기 삶의 한 가닥씩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서랍마다 온전한 자아의 각기 다른 일면들이 들어 있다고 했다. 서랍 하나는 외부에서는 볼 수 없게 잠겨 있고, 또 하나는 자신조차 볼 수 없게 잠겨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조차 보지 못하는 서랍에는 그의 무의식이 담겨 있을 터였다." 찰스 핸디가 『포트폴리오 인생』 에서 한 말이다.


(글을 쓸 당시 칠십 대였던) 핸디는 의문 하나를 제기한다. “나는 젊은 시절의 찰스 핸디와 다를 뿐만 아니라 장소에 따라, 함께하는 사람들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럴 경우 우리는 같은 사람인가, 아닌가?” 답변은 간단하다. 당연히 같은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주변 상황이 워낙 단조롭거나,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지 않을 사람일 게다.”


직장에서의 모습과 집 안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중인격자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대다수 성인들은 장소, 상황에서의 자기 불일치에서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이 정상이다. 다만, 자기이해를 원하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다. 여러 모습 중 마음에 드는 하나의 모습만을 ‘진정한 자기’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자기기만일 것이다. 이럴 때에 조 해리의 창이 유용한 시각을 제공한다.  


자신이 인식하는 영역과 타인이 인식하는 영역 모두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좀 더 온전한 자기이해에 이를 것이다. 한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영역을 발견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는 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할 것이다.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다. 나의 자의식에 할머니가 골랐던 사진과 김규식 대리가 느꼈던 인상을 더해야 함을 깨닫는다. 비단 사진과 인상 뿐이랴! 조해리 창을 온전하게 채워가기, 평생 즐길 재밌는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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