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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0일 00시 04분 등록

물건 하나가 들어옴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저 그랬던 거실에 훈훈함과 온기가 가득 들어찹니다.

크리스마스트리. 일반적 형태가 아닙니다. 눈사람의 외양. 코드를 꽂고 스위치를 작동시키면 하얀 눈과 함께 산타클로스를 태운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며 신나는 캐럴 송이 흘러나옵니다. 익숙한 경쾌한 멜로디. 올겨울 들어 처음 들어보는 것 같습니다.

“유치원에 설치해 놓았더니 아이들이 집에 가지도 앉고 그 앞에만 모여 있어.”

마늘님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나도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으니까요. 신기한 장난감을 만난 냥 마냥 그렇게 앉아 있다 보니 어느새 추억여행을 떠납니다.


겨울이란 계절은 어른들의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하는 반면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의 장으로 변하게 합니다. 눈사람 만들기, 썰매 타기, 눈싸움. 손과 발이 꽁꽁 얼고 하얀 입김에 볼이 새빨개지는데도 신나기만 합니다. 넉넉지 않았던 그때의 생활들. 높다란 교회의 십자가만은 환하게 불을 밝혔습니다. 평소에는 무겁게 닫혀있던 문. 그날이 되면 곳간의 곡식이 터지듯 은총의 세례가 쏟아집니다.

“승호야. 크리스마스 때 교회 나오면 선물이며 맛있는 것 준데.”

친구가 나를 유혹합니다. 입 안 가득 침이 고이지만 선뜻 내키지는 않습니다. 왠지 모를 두려움에 괜히 움츠려집니다. 하지만 군침이 담긴 말의 유혹은 어느새 높다란 문턱을 넘게 만들었습니다.

환호와 박수. 근사한 케이크와 흥겨운 노래 그리고 손에 쥐어준 새빨간 사과. 빛깔도 예쁜 녀석을 한입 베어 뭅니다. 아삭. 에덴동산에서 뱀이 이브를 유혹했던 맛이 이랬을까요. 환대의 자리와 아찔한 맛의 향연에 어린 소년은 눈앞이 어질합니다. 어느새 양손에는 풍성한 선물 보따리도 쥐어져 있습니다. 덕분에 그의 가슴은 두 근 반 세근 반입니다. 교회에 다니면 좋겠구나 라는 생각이 솔솔 파고듭니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무엇보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바깥세상과는 다른 여기에 오면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


새로운 물건에 대한 애착심이 강했습니다. 아까워서 금방 사용하지를 못합니다. 그렇게 아끼다가 해를 넘기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님이 모처럼 운동화를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나의 조름에 항복하신 모양입니다. 친구들이 부러워할만한 폼 나는 메이커 브랜드. 들뜬 마음에 잠자리 머리맡에 놓아두고 전시하다가 그날 처음 개시하였습니다. 자랑하고 싶어서. 기죽지 않기 위해서. 벼르다 신고 갔었는데 신발장에 넣어두었던 녀석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황망함. 눈앞이 아득하였습니다. 믿었던 대상에 대한 배신감이 밀려옵니다. 자정을 넘은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려서일까요. 잠시마나 황홀했었던 감정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찾아내라고 악다구니를 부립니다. 거룩하게 생각했던 이 장소에서 나의 신발을 누군가의 손에 의해 강탈당했습니다.

현관문을 나설 때 불어 닥친 매서운 겨울바람. 쓰디쓴 세상의 현실을 처음 맛보는 순간. 내발엔 떨어진 슬리퍼 하나가 신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요. 악담을 퍼붓습니다, 불이나 나버려라. 그런데 말이죠. 신이 나의 소원을 들으셨는지 얼마 후 교회에 진짜 불이 났습니다.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잔해더미만 남은 건물. 허참. 어떻게 이런 일이. 그 후유증인가요. 이후 산타할아버지는 저희 집을 찾아오지 않습니다. 굴뚝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착한 일을 하지 않아서인지.


그럼에도 따뜻하게 손에 쥐어진 사과 한입을 베어 물던 소년은 잊지 못합니다. 종탑 뎅그렁 울리던 종소리의 여운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되뇌입니다. 이곳에서만이 성탄의 기쁨이 아니길.

우리의 마음에 온정이

심장에 정의로움이

누구의 눈에도 억울한 눈물 맺히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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