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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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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4일 22시 17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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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 시가 넘어 숙소에 들어 온 탓이다. 잠자고 일어나 아침에  문을 열었을 때 깜짝 놀랐다. 밤새 다른 세상에 와 있었던 것이다. 겨우 일곱 시를 넘긴 시각인데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이며, 길가에 좌르륵 펼쳐진 노점상들... 겨우 문 하나를 통과했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에 도착한 듯한 착시가 놀라웠다.  여행은 공간이동의 마법이로군....


보름 예정으로 베트남에 와 있는데 두 번째인데도 오토바이 행렬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넓은 횡단보도에도 신호등이 없기 일쑤이고, 신호등이 있다해도 지키는 차량이 거의 없어서 각자 알아서 길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절대로 질주하는 오토바이 쪽을 쳐다봐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금방이라도  덮칠 듯 달려오는 오토바이 행렬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정신이 혼미해져 그 틈을 뚫고 길을 건넌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게 느껴져 하염없이 서 있게 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그냥 내가 갈 곳만 바라보며 천천히 건너가면 그들이 알아서 피해준다. 수십 대의 오토바이와 그보다 적은 수의 차량을 헤치며 길을 건너는 것만으로도 되게 큰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나라. 베트남인 것이다. 남녀노소 모두가 오토바이를 탄다. 시내버스가 있다는데 종일 하노이 시내를 쏘다녔어도 구경도 못했다. 거리의 주인은 오토바이다. 5년 전에 남부의 호치민, 달랏, 무이네를 돌아 보아서 낯선 풍경이 아닌데도 새삼 신기하다. 이들은 매연과 소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하면서 오토바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왜일까? 


혹시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언제 어디서나 내 맘대로 내 갈 곳으로 가야 하는, 급한 성격과 주도적인 민족성 때문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순하고 왜소한 이 민족이 게릴라전으로 세계 최대의 강대국 미국을 물리친 베트남전이 떠올라서다. 밤이 되니 빠르게 움직이는 오토바이 불빛이 더욱 재바르게 느껴진다. 막강한 최신무기를 퍼붓고도, 정글을 통째로 말라 죽이는 고엽제를 투하하고도 약소민족에게 손을 들어야 했던 미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 때나 아무 곳에나 출몰하는 '베트콩'이  얼마나 치떨리게 밉고도 두려웠을지, 나는 오토바이 행렬에서 이들의 민족성을 본다.


오토바이 다음으로 눈길을 빼앗는 것은 단연코 꽃이다. 5년 전에도 인상깊었고 지금도 인상적인 이들의 꽃사랑이 나는 좋다. 거리를 오가는 행상의 상당수가 꽃장수다. 꽃사랑이 일상화되어서 화훼산업도 발전해서인지  우리 것보다 살짝 갸름하면서 완벽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노란색 장미가 유독 아름답다. 백합이며 다른 꽃들도 고급스럽다. 시커멓고 조금은 남루한 이들의 행색과 돌연 화사한 꽃사랑의 언밸런스가 어리둥절하지만, 점수를 올려주게 된다.


간밤에 공항에서 택시타고 들어올 때도 우람한 가로수가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도 나무가 참 많네 싶더니  도시 전체에 수 백년은 되었음직한 가로수들이 볼만하다. 그 가로수 아래 노점의 주인은 쌀국수다. 진한 육수에 푸짐한 쌀국수가 1500원 선,  쇠고기가 많이 들어간 맛집 볶음면이라도 3000원, 사이공 맥주가 1000원,  갑자기 저렴해진 물가로 해서 부자가 된 기분에 카메라를 들이대니 활짝 웃어주는 여행자 가족의 싱그러운 웃음으로 마음이 마냥 풀어진다.



보름이라는 일정이 제법 길기는 해도 곧바로 끝날 것임을 알기에 여행 중에는 매시간 깨어 있게 된다. 낯선 풍광과 새로운 음식과 사람에 반응하느라 권태가 들어설 틈이 없다. 하노이에서 침대버스를 타고 ‘사파’엘 왔겠다,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이 곳에는 ‘흐몽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있다. 칼라풀한 두건을 쓰고, 독특한 복식을 자랑하지만 이들의 살림이 풍족할 리가 없다. “쇼핑?”을 외치며 관광객에게 따라붙는 흐몽족 가운데에는 어린애들도 있기 마련인데,  신발도 못 신은 어린애가 어린애를 업은 모습은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중에도 거리에서 배운 영어로 멋진 기념품점을 하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상점에 들어서는 순간 인사동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세련된 상품에 매료되고 말았다. 다른 가게의 물건들도 분명히 직접 짠 천연직물인 것을 알지만 조잡한 디자인 때문에 마음이 가지 않았다면, 약간의 디자인을 더함으로써 천연직물 플러스 수공예의 장점을 극대화한 그녀의 상품들은 제법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가 없었다. 다랭이논밖에 없는 산골 치고는 어마어마하게 큰 타운에서 가게주인인 흐몽족은 그녀 밖에 없는 것같았다. 인간승리!  말로만 듣던 용어가 가만히 가슴에 와 번질 때 갈수록 늘어나는 무기력에 쐐기가 박힌다.


요컨대 여행 중에는 그 어려운 것이 된다. 카르페 디엠! 이래저래 여행은, 보통사람이 맞이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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