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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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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6일 14시 56분 등록

인생의 책을 만나는 법

- 나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갖고 싶은 물건이 있다. 소유하고 싶은 물건의 발견은 인생살이의 평범한 일면인데, 이번엔 좀 특별하다. 몇 해 전부터 이것만큼은 꼭 가지고 싶었다. 그 물건이란 게 새삼스럽게도 '책'이다. 보통의 책은 아니다. 거듭 읽고, 깊이 읽어 "이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말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몇 권의 책을 갖고 싶다. '열 번 이상 읽은 책'도 한 권 정도는 소유하고 싶다.

 

소유에 대한 욕심이기보다는 독서 경험을 향한 열망인 셈이다. 평생을 사는 동안, 홀딱 반해서 빠져들게 된 책 한 권을 갖는 일! 고상한 삶의 모습 중 하나가 아닌가. 진정한 독서가로 거듭나는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사람들은 하루에 세 권쯤 책을 읽으면 독서가라고 말하나, 실은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 일본의 문학연구가 시노다 하지메의 말이다.

 

"무인도에 살아야 한다면, 가장 가져가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 신선한 물음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시시한 질문으로도 감동적인 답변을 창조한다. 『문학의 역사』를 쓴 존 서덜랜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을 고르겠다. 나는 이 책을 최소한 100번은 읽었을 것이다." 와! 무려 100번이다! ‘많이 읽되, 많은 책을 읽지 말라’는 격언을 실천하는 대표 모델로 삼고 싶은 그다. 어떤 이유로 100번이나 읽은 걸까?

 

"다시 읽기는 문학이 제공하는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다. 위대한 작품의 감동은 고갈되지 않으며, 사실 문학작품은 그런 불멸의 요소들로 인해 위대해진다. 아무리 여러 번, 자주 읽는다 해도,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는 법이다." 서덜랜드의 거듭 읽기는 문학을 향한다. 그는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문학과 아주 깊은 관계를 맺기 마련"이라고 했고, "문학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표현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절정에 다다른 인간의 정신"이라고도 했다. 백번이라도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문학비평가 모린 코리건도 문학 거듭 읽기의 즐거움과 의미를 경험한 인물이다. 그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50회 이상 읽고서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라는 책을 썼다. 서문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피츠제럴드를 사랑했고, 이 책을 쓰면서 더욱 사랑하게 됐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로 떠나는 개인적인 여행이다."

 

나는 거듭하여 읽은 책이 많지 않다.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은 책은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그리스인 조르바』다. 모두 세 번씩 읽었다. 두 번씩 읽은 책들은 그리스 비극과 플라톤의 대화편들 중 일부, 카프카의 단편들, 『포트폴리오 인생』 등 십 수 권에 불과하다. 네 번 이상 읽은 책은 한 권도 없다. 한 가지 주제에 깊이 천착하지 못하는 모습은 나의 콤플렉스다.

 

거듭하여 읽을 책이 꼭 문학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자신의 가슴을 치고 들어온 책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문학이다. 책이 내 인생의 벗이라면, 으뜸친구는 문학이다. 고통으로 신음할 때 나를 어루만져 주고, 최고의 인식을 선사하여 내가 삶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 으뜸친구와 더욱 친밀해지고 싶다. 이 친구를 읽을 때마다 인생의 속살을 맛보기 때문이다. 삶의 고통에 직면하면서도 조금씩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문학을 읽으면 즐거움과 인간이해를 동시에 얻는다. 문학에는 인간의 실존과 본질, 이상과 현실, 일탈과 일상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소설은 우리에게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오늘 아침 키위를 반으로 뚝 잘랐다. 초록색 과육이 단박에 드러났고 과즙이 송송 맺혔다. 훌륭한 문학도 비슷하게 기능한다. 삶의 일면을 잘라내어 실체와 진실을 선연하게 보여준다. 문학이 머문 자리마다 인식의 즐거움과 정서적인 풍요를 맛본다.

 

열 번 이상 읽은 문학 작품을 갖고 싶다는 말은 삶의 모습을 넓고, 깊게, 이해하고 싶다는 말이다. 현상을 걷어 본질을, 외양을 벗겨 속살을, 무지를 넘어 지성을 맛보고 싶다는 포부다. 나는 반복하여 읽게 될 후보작 열권을 책상 앞에 올려 두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오디세이아, 카프카의 변신, 데미안, 괴테와의 대화, 김영하의 단편 등이다. 발췌하여 읽은 『몽테뉴 수상록』을 제외하면 모두 한 두 번씩 읽었던 책들이다. 이들 중 내 인생의 책을 만날 수 있을까? 설레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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