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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연구
신영복(申榮福: 1941.08.23~2016.01.15) 잘 알려져 있듯이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수로 복역하다 20년 만에 출소했고, 출소 후에 아직까지도
스테디셀러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했다. 내가 신영복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됐던 것도 이 책 덕분이다. 그런데
어쩐지 ‘감옥’, ‘무기징역수’라는 이름 때문에 나는 부정적인 편견을 가졌었다. 아마도 노자가 말한
‘이름과
인식간의 관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권유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며,
나는 서문만 읽고도 내가 얼마나 심한 편견에 갖혀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에게 감옥은 그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죄값을 치르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과 사회에 대해서 근본 지점에서부터 깊은 반성과 성찰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 사회의 사유의 폭과 깊이를 한 차원 높였다는 평을 받은 30년
가까이 팔리는 스테디 셀러는 책으로 가득찬 서재나 도서관이 아니라 가장 통제된 감옥의 독방에서 제한된 집필 도구만으로 완성되었다. 그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은 경제학자였지만 출소 후 성공회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경제학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부 교수로써 중문학과 동양 고전 등도 가르쳤고, <나무야
나무야>(1996), <더불어 숲>(1998),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2004) 등
다양한 인문서적을 출간했으니 그의 인문, 한문, 사회학에
대한 이해의 경지가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저서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에서 그는 배움(이론)과 실천의 중요성에 대해서 여러 번에 걸쳐 강조했다. 특히 실천이
없는 사상의 허망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입니다. 단지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 사상의 존재 형식은 담론이 아니라 실천인 것입니다. 그리고 실천된
것은 검증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 담론의 구조가 아무리 논리적이라고 하더라도 인격으로서 육화된 것이
아니면 사상이라고 명명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 그러므로 사상의 최고 형태는 감성의 형태로 ‘가슴’에 갈무리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감성적 대응은 사명감이나 정의감 같은 이성적 대응과는 달리,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509P) 그의 삶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그의 책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그의 “배움을 실천”한 삶 때문이다. 2017년 1월 15일에
그가 희귀암으로 사망했을 때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었다. 사상이나 믿음은 다를지라도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삶의 진정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책을 내면서 6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면서 동시에 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짐이기 때문에 지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아직은 잘 이해가
안 된다. 책을 다 읽은 뒤에는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가 되길 바란다. 1. 서론 나와 동양고전과의 인연 16 감옥에서는, 특히 독방에 앉아서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감옥의
독방이 그런 공간입니다. 우선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유년
시절에서부터 내가 자라면서 받은 교육을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 사회가 지향했던 가치에 대해서 반성하게 됩니다. 감옥, 독방에서 그런 성찰이 가능했다는 것이 상상이
되질 않는다. 사실 저자는 감옥이 아니더라도 그런 성찰이 가능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독방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나 자신을 돌이켜보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17 말하자면 나의 사고와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식민지 의식을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성은 동시에
우리 시대에 대한 반성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국어사전 290쪽 화두(話頭)와 ‘오래된 미래 21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관점입니다.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는 말을 요즘처럼 실감하는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정말 인간은 발전하는 건지 회의가 드는 것도 요즘이 제일 심한 것 같다. 전에는
관심 없던 고전들을 읽으면서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역시 알아야 반성도 성찰도 가능하다. 23 존재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實體性)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 원리를 갖습니다. 그것은 자기 증식(自己增殖)을 운동 원리로 하는
자본 운동의 표현입니다. 근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의 운동 원리가 관철되는 체계입니다. 근대사회의 사회론(社會論)이란 이러한 존재론적
세계 인식을 전제한 다음 개별 존재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關係網)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에 ~ 배타적
독립성이나 개별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로 규정하는 것이 관계론적 구성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천지현황과 I am a dog 26 과학적 방법이나 첩경(捷徑)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우직하게 암기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확실한 성과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지요. 동의한다. 새로운 방법이나 요령으로 한 공부는 금방
잊어버리는 걸 많이 봤다.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 27 과거의 사상과 현대의
사상이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래는 오래된 과거라고 했습니다. 구본형 선생님의 책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왔었다. ‘미래는
오래된 과거’, 그래서 과거를 잘 알아야 하고 미래는 더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라고 했었나? 아무튼 미래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시점이 아니라는 건 공통된 의견인 것 같다. 28 무엇과 무엇의 차이를
비교하는 방식의 접근 방법을 나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 그러한 관점은 가장 본질적인 것, 핵심적인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물론 본질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만 그러한 경우보다는 그 형식에 있어서나 그 표현에 있어서의 차이, 즉 지엽적인
부분이 비교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 우리가 어떤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먼저 그것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최대한으로 수용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비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엄밀한 의미에서
대등한 비교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교나 차이는 원천적으로 비대칭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차이를 보려는 시각은 결국 한쪽을 부당하게 왜곡하는 것이 아닐 수 없으며, 기껏해야
지엽적인 것이나 표면에 국한된 것을 드러내는 것일 수밖에 없지요.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결국 차별화로
귀착되는 것이지요. 본질적인 것, 핵심적인 것을 통해서 이해를 해야 하는데, 두개 이상의 것을 공부할 때는 차이를 통해 접근할 때 이해가 더 쉽기 때문에 비교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 뒷부분에서도 비교가 많이 나오던데… 처음 시작은 비교로 하더라도
결국은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해하자. 29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수많은 관계 그리고 수많은 시공(時空)으로 열려 있는 관계가 바로 관계망(關係網)입니다. 고전 독법의 참여점 (Entry point) 30 서양 문화의 기본적 구도는 ~ 과학과 종교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고 기독교 신앙은 선(선)을 추구합니다. 과학 정신은 외부 세계를 탐구하고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종교적 신앙은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회의 갈등을 조정합니다. 서양 문명은 과학과 종교가 기능적으로
잘 조화된 구조이며 이처럼 조화된 구조가 바로 동아시아에 앞서 현대화를 실현한 저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서양 문명은 이 두 개의 축이 서로 모순되고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 결함이라는 것입니다. 서양 문화의 기본 구조와 장점과 단점을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하다니… 역시 저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아니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건가? 31 이러한 상황은 대단히
현실적인 문제 제기의 형태를 띠면서 동시에 서양 문명의 구조 자체의 모순과 불완전성에 대한 반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과학과 종교라는 이원적 구조와 모순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현대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패권 국가의 일방주의적 세계 전략은 이러한 모순을 더욱 첨예화하고 있습니다. ~ 패권주의적 세계 전략은 자기 증식 운동의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그러한 전략은 결국 위기를 심화할 뿐이라는
것이 모순이지요. 32 패권주의적 질주는 자기의
목표를 부단히 허물어버리는 모순 운동 그 자체라는 것이지요. ~ 서구 문명이 도덕적 근거를 비종교적인
인문주의(人文主義)에 두었더라면 그러한 모순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성이지요. 동양의 역사에는
과학과 종교의 모순이 없으며 동양 사회의 도덕적 구조는 기본적으로 인문주의적 가치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 관계 등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문주의적인 가치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삶을 존중하고 길을 소중히 하고 34 동양적 사고는 현실주의적이라고
합니다. ~ 저 혼자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뜻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모질게 해서는 안 되며(不忍人之心),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는 것(溫故知新)이 우리의 삶이란 뜻입니다. ~ 현실주의란 한마디로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진실입니다. 그동안 서양적 사고가 현실주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반대로
알고 있었던 건가? 이렇게 배웠던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배운건 지, 제대로 배워 놓고 잘못 기억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어떤
경우든 간에 이제라도 제대로 배워서 잘 기억해 보자. 36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현실이 곧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37 도는 길처럼 일상적인
경험의 축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진리란 일상적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고독한 사색에 의해 터득되는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란 이미 기성의 형태로 우리의 삶의 저편에 또는 높은 차원에 마치 밤하늘의 아득한 별처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사랑하고 관조하는 구도 속에 진리는 존재합니다. 이것은 매우 큰 차이입니다. 진리가 서양에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신학적 문제임에
반하여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도재이(道在邇), 즉 도는 가까운 우리의 일상 속에 있는 것입니다. 동양적 사고는 삶의 결과를
간추리고 정리한 경험 과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양 사상이 윤리적 수준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비종교적이며 과학과의 모순이 없습니다. 역시 이렇게 비교하니까 이해가 쉽다. 첫 단계의 비교는
신영복 교수님도 어쩔 수 없었던 듯. 비교를 통해 차이점을 알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동양 사상에 대해서
알아보겠지.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38 자연 이외의 어떠한 힘도
인정하지 않으며, 자연에 대하여 지시적 기능을 하는 어떠한 존재도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글자 그대로 자연(自然)이며 그런 점에서 최고의
질서입니다. 38 동양학에서 자연이란 자원(資源)이 아닐 뿐 아니라 인간의 바깥에 존재하는 대상(對象)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무궁한 시공으로 열려 있는 질서입니다. ~ 따라서 자연이란 공간과
시간의 통일, 유한과 무한의 통일체로서 최고, 최대의 개념을
구성합니다. ~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조화 통일되어 있으며, 모든
것은 생주이멸(生住移滅)의 순환 과정 속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 39 자연의 개념과 특히 자연을
생기의 장으로 이해하고 있는 동양적 체계에서 과잉 생산과 과잉 축적의 문제는 바로 생성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근대사회의 신념 체계인 자본주의의 성장 논리는 물론이고, 더욱 거슬러
올라가서 서구의 인본주의(人本主義) 자체가 반자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인간뿐만이 아니라 우주의 어떠한 지점도 결코 중심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한 때는 인간적인 것, 인간 중심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들어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본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두기까지도 오래 걸렸는데, 자연을 중심에
두는 것은 더 오래 걸릴 것이다. 너무 늦게 깨닫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40 생기의 장으로서의 자연
개념은 현실적인 삶에서 욕망의 절제로 나타납니다. ~ 동양 사상의 현실주의란 이러한 자연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인간과 인간 관계를 두루 포괄하는 사회적 내용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동양학에서는 자연을 ‘생기의 장’이라
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자연은 존재하고 있는 것 중의 최고(最高), 최량(最良)의 어떤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은 최고의 질서입니다. ‘인간’은 인간관계입니다 41 최고의 가치가 바로 사람과
관련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41 덕성(德性)이 곧 인성입니다. 인간이란 존재자체를 인간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지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인간입니다. 이 사회성이 바로 인성의 중심
내용이 되는 것이지요. 인성은 개인의 특성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사회성이 인성의
중심이란다. 여기서 사회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회성과는 다르게 쓰였을 것 같다. 본문을 읽다 보면 정확히 이해가 될 것 같다. 41 인(仁)은 기본적으로 인(人)+인(人), 즉 이인(二人)의 의미입니다. 즉 인간관계입니다. 인간을
인간(人間), 즉 인(人)과 인(人)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 동양적 구성 원리로서의 관계론에서는 ‘관계가 존재’ 입니다. ~ 동양적 인간주의는 이처럼 철저하게 관계론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 이것은 인성의 고양이 곧 사회성의 고양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눈에는 뭔가 말장난 같았지만 다시 천천히 읽어보면 이보다 명쾌하게 인(仁)과 인간(人間)을 정리할 수는 없겠다 싶다. 역시 저자의 내공의 힘이 보인다. 모순의 조화와 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