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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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이 될 때(1월 4째주)
11기 정승훈
▣ 저자 연구
폴 칼라니티 (Paul Kalanithi, 1977~2015)
2013년 폐암 판정을 받고 자신의 생을 돌아본 에세이 ‘숨결이 바람 될 때’를 남겨 국내외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 그리고 유방암 판정을 받은 뒤 2017년 삶의 마지막 기록인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는 책을 펴낸 니나 리그스. 세상에 남겨진 폴의 부인 루시(38)와 니나의 남편 존(41)이 새로운 만남을 시작했다.
3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 놀라운 인연은 지난해 2월 니나의 임종 직전에 시작됐다. 니나는 혼자 살아갈 남편을 걱정하며 “비슷한 일을 겪었던 칼라니티에게 연락해보라”는 유언을 남겼다. 2015년에 남편을 잃은 루시는 이듬해 니나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시한부 삶과 남편에 대한 사랑이 담긴 칼럼을 보고 연락했고, 이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니나가 세상을 떠난 지 이틀 후, 존은 유언을 따르기로 했다. 그는 루시에게 어떻게 하면 밤잠을 설치지 않을지, 어떻게 하면 미쳐 버리지 않을지 e메일로 조언을 구했다. 니나는 ‘추도사 작성에 집중하고 진정제를 섭취하라’는 답을 보냈다.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견뎌내기 위해 존은 e메일을 날마다 보냈고 루시는 점차 그의 새로운 생명줄이 돼줬다. 수백 통의 e메일을 주고받은 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 캘리포니아주에 살던 루시가 존이 살던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 근처로 출장을 가면서 첫 데이트가 성사된다. 루시는 “(첫 만남 때)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서로를 껴안았다”고 회상했다.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은 현재까지 사랑을 키워 가고 있다. 두 사람은 WP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하지만 떠나간 배우자들이 맺어준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출처 ; 동아일보 2018. 01. 04
저자 폴 칼라니티는 1977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고,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과 철학, 과학과 생물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그는 이 모든 학문의 교차점에 있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와 철학 과정을 이수한 뒤 예일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 의사의 길을 걸었다. 졸업 후에는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 병원으로 돌아와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며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고의 의사로 손꼽히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 받는 등 장밋빛 미래가 눈앞에 펼쳐질 무렵, 암이 찾아왔다. 환자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오던 서른여섯 살의 젊은 의사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의사이자 환자의 입장에서 죽음에 대한 독특한 철학을 보인 그는 힘든 투병 생활 중에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는 등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약 2년간의 투병 기간 동안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가(HOW LONG HAVE I GOT LEFT?)’, ‘떠나기 전에(BEFORE I GO)’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각각 [뉴욕타임스]와 [스탠퍼드메디슨]에 기고했고, 독자들의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5년 3월, 아내 루시와 딸 엘리자베스 아카디아 등 사랑하는 많은 사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종인(1954~ )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 성균관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 《전쟁터로 간 책들》 《신의 사람들》 《중세의 가을》 《호모 루덴스》 《평생독서계획》 《폴 존슨의 예수 평전》 《신의 용광로》 《게리》 《정상회담》 《촘스키, 사상의 향연》 《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 《고전 읽기의 즐거움》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성서의 역사》 《축복받은 집》 《만약에》 《영어의 탄생》 등이 있고, 편역서로 《로마제국 쇠망사》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 《살면서 마주한 고전》 《번역은 글쓰기다》 《전문번역가로 가는 길》 《지하철 헌화가》 등이 있다.
▣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추천의 글
습관적으로 속독을 하는 나는 이 책만은 도저히 빨리 읽을 수가 없었다. ... 시간을 아껴 좋은 작품만 골라 읽는 사려 깊은 분에게 나는 이 책을 조용히, 그러나 정성스럽게 추천한다.
- 마종기(시인, 의사)
암으로 투병중인 나에게 이 책은 각별한 위로와 용기, 지혜의 빛을 준다. ... 우리 모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피하지 않고 귀한 손님으로 예를 갖추어 겸손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는 젊은 의사의 이 간절한 고백록을 그냥 한 번 읽는 것만으로도, 슬프지만 아름다운 영혼의 학교에 입학한 듯한 감동에 먹먹한 행복을 느낀다.
이해인(수녀, 시인)
이해인 수녀님이 암 투병을 하셨구나. 몰랐다.
의사들은 정도의 경중이 있을 뿐 언제나 일정 부분 남의 삶과 죽음에 관여한다. ... 고도로 정제된 자연과학의 일부인 의학은 매우 특징적으로 인문학적인 특성을 가진다. 임상의학에서의 환자 치료는 과학이라는 학문적 영역과 인간관계를 핵으로 돌아가는 철학의 본질에 접근한다.
이국종(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교수)
이 책을 읽고 나서 잊어버리기란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뉴욕타임즈>
맞는 말이다. 절대 잊을 수 없다.
프롤로그
옆에는 내과의사인 아내 루시가 있었다. (20)
부인도 의사였구나. 2015년 세상을 떠난 남편, 2017년 2년 만에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을 했구나. 물론 그 사람도 배우자를 잃은 남편이었고 서로 공감하며 메일을 주고받다가 맺어졌다고는 하지만. 혹자는 많이 사랑한 부부일수록 없는 허전함에 견디지 못하고 더 빨리 새사람을 만난다고 하더라. 신문기사를 먼저 봤더니 이런 안 좋은 점이 있다. 괜히 봤다.
의사 가운을 입었다고 권위적일 필요도 없고, 또 환자라고 고분고분할 필요도 없다. (22)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된다.
나는 상급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었고, 전국 규모의 권위 있는 상도 받았으며, 여러 일류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기도 했다. (23)
10년의 수련기간을 지나 이제 좀 쉬운 길로 접어드나 하는 시점이었을 텐데…….
그런데 몇 주 뒤 가슴에 심한 통증이 여러 차례 느껴졌다. (24)
이 정도의 자각 증상이 있는데 왜 몇 주씩이나 그냥 두었는지 모르겠다. 몇 가지 검사를 했다면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6개월 정도는 병의 진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였을까.
나는 요통에 대해서 해부학적, 생리학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환자들은 제각각의 고통을 제각각의 단어로 표현하며 호소한다. 하지만 나는 그 고통이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했다. (30)
모든 통증, 고통은 객관적이지 않다. 지극히 주관적이다. 10이라는 강도를 1로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의 고통을 10처럼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
그날 아침, 여러 의사 친척 중 한 명인 삼촌이 대학 진학을 앞둔 내게 어떤 직업을 선택할 생각이냐고 물었을 때, 그 질문은 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39)
아~ 의사 집안이었구나.
아버지는 부성애도 농축해서 발휘할 수 있는 거라고 나름의 타협점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런 결과는 짧고 강렬한, 진심어린 애정의 폭발이었다. 다른 아버지들은 어떻게 자식들을 대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만약 이것이 의사가 치러야 하는 대가라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41)
아버지 역시 의사였군. 의사 집안에 의사 아버지. 1부 시작 부분에 결코 의사가 되지 않으리라고 했던 이유를 알겠다.
문간에 똬리를 튼 방울뱀을 죽이면 그 짝과 새끼들이 그렌델의 어머니처럼 복수하려고 찾아와 영원히 둥지를 튼다는 지역 속설이 있었기에, 나와 지반은 뱀을 치우기로 마음먹고 제비뽑기를 했다. (44)
지역 속설이란 어느 곳에나 있다. 뱀이 많은 지역이라 이런 속설이 있었나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인도 남부에서 뉴욕으로 그야말로 세계를 가로지르는 사랑의 도주를 했다. (45)
조언을 구하기 위해 어머니는 대서양 연안의 부촌에 사는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일부는 동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갑작스럽게 교육의 불모지로 떨어진 칼라니티 집안 아이들과 자기 아이들이 더는 경쟁할 필요가 없음을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46)
뭘 이렇게까지 경쟁이라고 여길까.
빈약한 학교 제도가 자식들의 앞날을 가로막을까 봐 걱정한 어머니는 어딘가에서 입시용 독서 목록을 구해왔다. (47)
대단한 어머니다. 그걸 구한 것보다 읽혔다는 점에서 더욱.
《멋진 신세계》를 읽으면서 나는 도덕 철학의 기초를 쌓았고, 그 책을 대학 입학 논술 주제로 삼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48)
멋진 신세계라는 책이 어떤 책인지 궁금하다.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 읽혔다고 했는데 정말 도움이 되었고 무엇보다 삶에서 도움이 되었다는 점에서 어머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킹맨의 학교 제도를 바꾸는 일에 발 벗고 나섰고, 실제로 바꾸어놓았다. (49)
집안에서만 노력한 것이 아니고 지역에까지 노력을 기울였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다.
나는 세상 물정에 밝고 대학에서만 배울 수 있는 비밀들(그녀는 심리학 전공이었다)을 아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50)
뇌 역시 하나의 생체 기관인 만큼 물리학 법칙의 대상이 되는 게 당연하다. 문학은 인간의 의미를 다채로운 이야기로 전하며, 뇌는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기관이다. (51)
여자 친구의 영향으로 의사가 된 걸 수도 있겠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편이었다. (52)
인생의 무의미와 고독, 그리고 인간의 상호 유대감에 대한 절박한 추구를 이야기하는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52)
황무지가 이런 시였나? 중2 처음 선물 받은 시집, 내가 고른 시집이었다. 시집에 대해 몰라서 뭘 골라야 하는지 모랐고 왜 이 시집을 골랐는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4월은 잔인한 달’을 보면서도 왜 4월이 잔인한 달인지 궁금했다. 여하튼 나의 첫 시집이다. 다시 찾아 읽어보고 싶다.
나는 문학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비추어줄 뿐만 아니라, 도덕적 반성에 도움이 되는 소재를 가장 풍부하게 제공한다고 믿었다. (53)
반성하지 않는 삶이 살 가치가 없다면, 제대로 살지 않은 삶은 뒤돌아볼 가치가 있을까? (53)
나는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지 알기 위해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유기체들이 세상사에서 의미를 찾는 데 뇌가 하는 역할을 알기 위해 신경과학을 공부하면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연구소에서 일했다. (57)
어느 분야를 공부하든 인문학은 기본이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는 가족이 자주 방문하며 매일 오는 건 물론이거니와 하루에 두 번 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다 하루 걸러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으로 방문 횟수가 줄고, 시간이 더 지나면 환자의 생일과 성탄절에만 찾아온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대부분의 가족이 가능한 한 먼 곳으로 이사해버린다. (59)
남일 같지 않다. 시아버님이 요양병원에 계신 요즘 앞으로 닥칠 모습이다. 이 책에선 아이들이지만 한국은 부모인 경우가 많다.
나는 부모들이 불쌍한 아이를 내팽개치는 상황에 경악했고, 한 아이는 그런 처지인데도 내게 미소를 지어주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60)
나중에 가서야 이 견학이 뇌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이해로 나를 이끌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61)
문학 연구의 주된 관심사가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반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대다수의 영문학 박사들이 과학을 대할 때 “불을 접하는 유인원처럼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었다. (63)
문학과 과학 너무도 먼 것 같긴 하다. 12기 연구원 책 목록 중에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라는 책이 있다. 올해 이 책은 개인적으로 읽어보려 한다.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이 교차하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63)
“책은 치우고 의학을 공부하라.” 갑자기 모든 게 분명해졌다. (64)
휘트먼도 의사만이 진정으로 ‘생리적. 영적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64)
어떤 점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는지 궁금하다.
몇몇 교수가 내게 인문학부를 영영 떠나기 전에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 학위를 따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65)
이제 직접적인 경험이 필요했다. 진지한 생물학적 철학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학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66)
의대생의 통과 의례인 시체 해부는 지극히 신성한 연역을 침범하는 작업이기도 해서, 혐오감, 흥분, 욕지기, 좌절감, 경외감 등 무수한 감정을 자아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단조로운 수업 과정의 하나가 된다. (66)
그럴 것 같다. 해보진 않았지만 인간을 단순한 해부용으로만 취급한다는 것에서 오는 감정들이니까.
해부실의 상황은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금기를 깨는데, 해부 도중 포름알데히드가 식욕을 강하게 자극해 부리또가 간절히 먹고 싶어지기도 한다. (67)
이건 또 의외다. 식욕이 없어질 것 같은데.
그들은 우리에게 시체의 얼굴 한번 잘 보고 천을 덮어두면 작업이 한결 쉬울 거라고 조언했다.(68)
얼굴을 천으로 덮어놓고 이름도 모른 채 해부 실습을 했지만, 그래도 시신에게서 인간성이 갑자기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맡은 시체의 뒤를 절개하여 열었다가 채 소화되지 않은 모르핀 알약 두 정을 발견한 적이 있다. (70)
우선, 지금의 의대생들은 19세기처럼 스스로 시체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70)
시체를 의대생이 직접 준비해야했던 시기도 있었구나. 참 의사하기 어렵다. 시신 기증에 싸인을 했다고 하더라도 유족이 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은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에 시신 기증한다고 했지만 오촌 아저씨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어쩌다 한 번씩 반성의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마음속으로 시체들에게 사과했다. 죄의식을 느껴서가 아니라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72)
그녀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치명적인 부정맥을 정확히 짚어냈다. 갑작스럽게 뭉클해진 루시는 울기 시작했다. (75)
데이터, 수치들에서 병명을 찾아내는 것이 울정도가 되는구나.
아이의 어깨가 쉽게 나올 수 있게 머리를 신중하게 당겨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것을 직접 실행하는 것은 다르다. (87)
바로 어제 병원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삶과 죽음은 그저 추상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 둘 모두를 바로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90)
너무 가까이에서 빈번하게 보면 둔감해지지 않을까 싶은데, 아닐 수도 있을 것 같고…….
의과 대학원 4학년이 되자 많은 동기들이 방사선과나 피부과 같은 덜 고된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하기 시작했다. (92)
한국도 그래서 수술이 많은 외과를 기피한다고 하더라.
실제로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연봉, 근무 환경, 근무 시간을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원하는 생활방식에 중점을 두고 선택하는 건 직업이지, 소명이 아니다. (93)
의사도 그렇지만 어느 직업보다 교직은 직업이 아닌 소명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더욱.
“서로를 위해 자기 자리를 잘 지켜줘야겠지만 필요할 때는 꼭 충분히 쉬어야 합니다. 이런 큰 병을 만나면 가족은 하나로 똘똘 뭉치거나 분열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죠.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서로를 위해 각자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해요.” (94)
재작년 여름 친정아버지가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우리 가족도 하나로 잘 뭉쳤다. 각자 가능한 요일에 병원을 들렸고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시아버님 병원생활을 모든 가족이 필요이상으로 매달리는 걸 보고 난 남편에게 말했다. 난 나의 일을 할 거라고, 하루 이틀이 아닌데 벌써 모두 매달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봐서 마이너스라고.
예상되는 결과와 가능성, 지금 결정해야 하는 것들, 고려해야 하지만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는 사항, 아직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문제들을 설명했다. (94)
당사자들은 모르기도 하고 객관화시킬 수 없다. 그러기에 전문가의 이런 제시가 중요하다. 나의 책도 이런 역할을 할 거다.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95)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삶이 만족스러울까. 가족뿐 아니라 환자 자신도. 환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환자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건강할 때 이런 이야기도 해야 한다.
그때부터 나는 환자를 서류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서류를 환자처럼 대하기로 결심했다. (101)
어떤 환자를 구할 수 있고 구할 수 없는지, 또 구해서는 안 되는지 제대로 판단하려면 손에 넣기 어려운 예지력이 필요하다. (104)
구해서는 안 되는 환자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어렵겠다. 보호자와 의논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하는 부분일거다.
감정적인 정리를 아직 하지 못한 가족이 환자를 찾아오는 발길은 점점 뜸해지고 환자는 결국 치명적인 욕창이나 폐렴에 걸리고 만다. (105)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였다. (105)
나는 결정적 순간에 환자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그저 그 순간에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많은 고통을 목격했고, 더 나쁘게도 그런 고통에 익숙해졌다. (106)
내가 예상했던 대로다. 어쩌면 인간에게 준 신의 배려일 수 있다. 안 그랬다면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응급실에는 나를 대신해줄 레지던트가 있었기에, 나는 내가 구할 수 없었던 환자 대신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구하러 외상외과 집중치료실로 유령처럼 슬그머니 다시 들어갔다. (108)
이 정도까지 되는구나.
레지던트로서 내가 꿈꾸었던 가장 높은 이상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누구나 결국에는 죽는다), 환자나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112)
심각한 뇌 손상으로 인한 독특한 고통은 때로는 환자보다 가족에게 더 큰 아픔을 준다. (112)
편안한 죽음을 원할까, 아니면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액체가 들어가고 나오는 여러 주머니들과 끈을 매달고 연명하는 삶을 원할까. (113)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안락사에 대해 난 찬성하는 쪽이다. 내가 그런 상태라면 난 살기 원하지 않을 것 같다. 내 의지를 가지고 살 수 없는데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가족에게 짐과 고통일 뿐이다.
“곧 올 겁니다. 하지만 음식이 칠면조 샌드위치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건 미리 알아두세요.” (114)
이런 의사를 보지 못했다. 환자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아는 의사라는 게 느껴진다. 신뢰하지 않을 수 없겠다.
만약 내가 수술 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과 예상되는 합병증을 무심하게 떠들어댄다면 그녀는 수술을 거절할 것이 뻔했다. (115)
친정아버지가 입원하시고 많은 검사를 했다. 검사 전에 보호자 동의서를 받으며 설명을 들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해. 하지만 난 한 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선 하는 것이고 그러면 그 외의 부정적인 생각은 미리 한다고 달라지지 않으니 하지 않는다. 친정엄마와 내가 확실히 다른 부분이다. 내가 그동안 운이 좋았는지 대부분 결과가 좋았다.
나는 그녀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보았다. (116)
심인성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는 자기 자신을 때리는 일을 피하려는 의지 정도는 가지고 있다. 심인성 혼수상태인 경우 치료법은 환자가 알아듣고 깨어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안심시켜주는 말을 해주는 것이다. (117)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게 누구 소관인지를 두고 종양학 전문의들이 서로 옥신각신하는 일은 빈번하다. 나도 똑같은 짓을 몇 번이나 했던가. (118)
그녀가 지난주까지 살아왔던 삶과 앞으로 살게 될 삶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을 것이었다. (119)
같은 직장에서 같은 시기에 같이 일한 분 중 뇌종양 수술을 하신 분이 있다. 한쪽 감각(청각, 미각 등)이 둔해지는 자각 증상이 있어서 병원을 찾았다. 두통이 심할 때 진통제를 습관적으로 먹었다고 했다. 병원에선 10년 정도 진행된 종양이라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적 상황도 안 좋아서 힘든 과정을 겪었다. 정말 그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셨다.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힘겨워보였다. 수술 전과 같을 수 없는 게 당연할 텐데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 내가 그런데 당사자는 오죽할까. 내색을 원체 안하는 분이라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여전히 힘들 거다.
공격적인 최악의 뇌암이었다. (120)
친정아버지가 췌장암이었다. 그 전엔 암이면 다 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의사 표현으로도 ‘순한암’이라고 했다. 염증이었던 것이 오래되면서 암이 되었는데 그래서 악성이 아니란다. 악성이 아니면 옆의 조직들을 침투하지 않고 그 자체만 혹으로 된 것이라 그 부분을 도려내면 되는 거다. 하지만 악성은 혈액이나 옆의 조직을 침투해 전이를 한다고 한다.
커다란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 한 번에 그릇을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120)
마지막으로 나는 방금 내가 한 말을 전부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시 한 번 모든 사항을 짚고 넘어갈 거라고 말했다. (121)
이런 말을 들으면 참 안심이 되겠다.
정확한 것도 중요하지만, 희망의 여지는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 (121)
이 환자는 6개월 만에 사망할 것인가, 아니면 60개월 만에 사망할 것인가? 필요 이상으로 정확성을 기하려고 하는 건 무책임한 짓이다. (122)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친척 중에 자궁암 말기라 3개월도 안 남았다고 어떤 수술이나 치료도 할 수 없다고 퇴원한 분이 있다. 그 말을 듣고 그 의사가 맘에 안 들었다. 어떻게 개월수를 말할 수 있는지, 혹여 그렇더라도 그걸 입 밖에 내서 하다니 싶었다. 그 친척분 치료가 되지는 않았지만 3개월은 훨씬 넘었다.
그들은 기도에서부터 재산, 약초, 줄기세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에 기댄다. 내 눈에는 그런 강인함이 절망에 맞서기 위한 불안정하고 비현실적인 낙관주의처럼 보인다. (122)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수술에 성공하려는 헌신적인 노력에는 큰 대가가 따랐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실패는 참기 힘든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124)
그러게.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들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난 주말 같이 여행간 분이 그랬다. 참 순탄한 삶을 산 것 같다고. 그래서 이상한 사람도 겪어보지 않았던 거라고. 그러고 보니 난 큰 고난 없이 살아왔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명망 높은 길은 신경외과의 겸 신경과학자가 되는 것이다. (125)
나는 과학이 어느 분야 못지않게 정치적이고 경쟁이 치열하고 공격적이며 쉬운 길을 찾으려는 유혹으로 가득한 학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127)
“폴, 내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 같아?”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도덕적으로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죽음에 직면하면 이런 의문이 드는 모양이었다. (128)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129)
그러게. 나도 간호사나 의사가 얼마큼 아프다고 할 때 아파보고 하는 소린가 싶다. 상담도 그렇다. 내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말을 많이 한다. ‘얼마나 힘드세요. 안타깝네요. 힘드시죠.’ 이런 말들을 하지만 내담자들이 느끼는 심정을 알 수 없다.
레지던트 기간에는 하루는 길지만 한 해는 짧다는 말이 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일과는 보통 새벽 6시에 시작해서 수술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니까 수술실에서 얼마나 손이 빠른가에 따라 근무 시간이 결정되는 것이다. (130)
하이데거의 말처럼 지루함이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는 것이라면, 수술은 그와 정반대이다. 고도로 집중하다 보니 시곗바늘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두 시간이 마치 일 분처럼 느껴진다. (132)
실패하면 괴로웠고, 기술적인 탁월함이 곧 도덕적 요건이라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133)
우리는 전극을 뇌에서 뺐다가 기존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2밀리미터 떨어진 곳에 다시 삽입했다. 떨림은 사라졌다. 다행스럽게도 환자의 상태가 좋아졌다. (134)
파킨스병의 떨림을 뇌의 시상밑핵에 전극을 넣어서 전류를 흘려보내서 없앴다는 거다. 2밀리의 위치 차이가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거, 인간의 감정이 뇌의 전기 자극에 의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거다.
피질 중에서 가장 침범해선 안 되는 곳은 언어를 관장하는 부분이다. 보통 좌뇌에 있는데, 베르니케 영역과 브로카 영역이라 불린다. 전자는 언어의 이해를, 후자는 언어의 표현을 담당한다. (136)
사고로 피질을 다친 사람이 모든 인지능력은 정상이었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그런데 그 사람 결국 직장 생활도 못했고 이혼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했단다. 인간은 모든 행동이 동기가 감정이기 때문이다.
종양이 그의 언어 회로를 차단하는 바람에 그의 말은 숫자들을 나열하는 것뿐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나름의 운율 체계를 가지고 발음했고, 웃고, 노려보고, 한숨을 쉬는 등 감정도 표현할 수 있었다. (137)
중요한 것은, 환자가 깨어서 말을 하는 상태로 수술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138)
환자에게 수술을 못 한다고 말하는 게 우리의 책무일 때도 있다. (138)
하긴 수술을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환자나 보호자는 낙담을 하게 된다. 친정아버지도 처음엔 수술해도 예후가 좋지 않다고 별로 권하지 않는 것처럼 말했었다. 예후가 좋지 않다면 굳이 수술을 할 필요 있을까하는 의견과 그럼에도 해야 하지 않냐 는 의견이 동시에 나왔다.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니 당연한 반응이다. 이럴 때 의사의 결정이 중요하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그런 책무를 감당하려면 철두철미한 책임감과 함께, 죄책감과 비난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141)
제프와 나는 몇 년 동안 죽음에 능동적으로 관여하고, 마치 천사와 씨름한 야곱처럼 죽음과 씨름하는 훈련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의미와 대면하려 했다. 우리는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을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멍에를 졌다. 우리 환자의 삶과 정체성은 우리 손에 달렸을지 몰라도, 늘 승리하는 건 죽음이다. (142)
슬프다. 언제나 죽음이 승리한다는 건.
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
루시는 날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재혼하라고, 그녀가 혼자 남겨진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147)
나는 사람들이 삶의 과도기를 잘 넘기도록 도와주는 목자의 자격을 반납하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이 되었다. 내 병은 삶을 변화시킨 게 아니라 산산조각 내버렸다. (148)
나는 정말 많은 걸 계획했고, 그 계획이 곧 성사될 참이었다. 내 몸은 쇠약해졌고, 내가 꿈꿨던 미래와 나 자신의 정체성은 붕괴되었으며, 내 환자들이 대면했던 실존적 문제를 나 역시 마주하게 되었다. (148)
내가 이런 상황이라도 똑같이 힘들었을 거다. 올해 쉰이 되었다. 지금 나이에 폐암이란 진단이 나왔어도 그럴 텐데 30대는 오죽할까.
한 주의 대부분을 병상에 누워 암 치료를 받으면서 나는 눈에 띄게 허약해졌다. 내 몸과 거기에 속한 내 정체성은 급격하게 바뀌었다. 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도 자동화된 피질하 운동 시스템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하지 못하고 노력과 계획이 필요했다. (153)
이 책을 보기 전에 환자가 되는 것이 정체성이 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보다보니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알았다. 환자이기 전에 가정에서 사회에서 하던 역할이나 정체성은 모두 사라진다.
나 역시 그녀와 똑같은 방식으로 신경외과 업무를 처리했다. 항상 첫 번째 안부터 세 번째 안까지 준비해두는 것이다. (158)
“의사가 개인적으로 마음을 쓰는 환자들의 예후는 잘 못 본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서 말이야.” (160)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161)
여고시절 막연히 죽는다면 어떨까 상상했다. 슬퍼할 사람들을 떠올리며 괜히 슬펐다.
서른여섯 살에 폐암에 걸릴 확률은 0.0012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162)
구본형 선생님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럼 예순에 폐암에 걸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환자가 원하는 건 의사가 숨기는 과학 지식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실존적 진정성이다. 통계를 지나치게 파고드는 건 소금물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 (164)
“많은 사람들이 암 진단을 받으면 일을 아예 그만둬요. 아니면 정반대로 일에 몰두하거나요. 어느 쪽이든 괜찮아요.” (165)
에마가 자주 하는 말을 인용하자면, 내 가치를 찾는 건 내게 달린 문제였다. (166)
환자의 의지가 병을 이겨내는 것도, 나머지 삶의 모습도 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암을 알려주는 것이 환자에 따라 다르다. 자신이 암인 걸 알게 되도 어떻게든 이겨내려는 사람이 있지만 반대로 삶의 의욕이 꺾여 빠른 시간에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의 나는 당연히 알려주길 바란다. 막상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암 진단과 함께 부서져버린 현재와 미래, 미래를 아는 고통과 알지 못하는 고통,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어려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절실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암은 우리의 결혼 생활을 구원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167)
불치병을 진단받고 나서 나는 두 가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죽음을 의사와 환자 모두의 입장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168)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 (169)
의사는 병에 걸리는 느낌이 어떤지 추상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진짜 아는 것이 아니다. (170)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가 모든 병에 걸려볼 수는 없다.
의사는 모든 환자에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11년 동안 병원에 몸담으면서도 나는 고통의 구제적인 느낌을 전혀 알지 못했다. (170)
두 달 뒤에는 30분을 앉아 있어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다시 친구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171)
쇠약해진 몸으로 집에만 있으니 루시에게 남편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두려웠다. 나는 내 삶의 모든 문장에서 주어가 아닌 직접 목적어가 된 기분이었다. (171)
능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으로 무언가 해주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겠지. 주도적인 삶이 아닌 그 느낌 별로일 것 같다.
두 달이 지난 후에도 에마는 예후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했고, 내가 통계를 인용할 때마다 내 가치관에 집중하라며 퇴짜를 놓았다. (172)
루시와 나는 고통을 l하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 느꼈다. (173)
수년을 죽음과 함께 보낸 후 나는 편안한 죽음이 반드시 최고의 죽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74)
시험관에서 적어도 몇 개의 배아를 만든 뒤 그 중에서 가장 건강한 배아를 착상시켜야 했다. 나머지 배아는 죽게 된다. 새로운 삶을 위해 아이를 가지는 일에서조차 죽음은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175)
시험관 아기까지 아니지만 불임 때문에 병원에 가서 과배란을 했었다. 2개의 수정란이 생겼지만 하나는 없어질 거라 했었다. 건강한 수정란만 남은 거다. 지금의 아들이다.
동료 레지던트 빅토리아는 행운의 선물 꾸러미(연금 보조금, 일자리 제의, 의학 전문지 논문 게재)를 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나도 함께 누렸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선배들은 더는 내 것이 아닌 미래(젊은 의과학자 상 수상, 승진, 새집)을 살아가고 있었다. (177)
보장된 미래가 없어지고 남의 일처럼 듣고 있는 그 심정이 어떨까. 모임조차 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남의 슬픔에 같이 슬퍼하는 것보다 기쁨을 같이 하는 것이 더 어렵다.
의사 시절 나는 중병에 걸린 환자들이 마주친 문제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었고, 바로 이런 순간을 그들과 함께 깊이 파고들기를 원했었다. 그렇다면,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던 청년에게 불치병은 완벽한 선물이 아닌가? 죽음을 실제로 겪는 것보다 죽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178)
암 환자들의 회고록 등 죽음에 관한 글이라면 뭐든 읽었다. 죽음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정의하고 다시 전진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어휘를 찾고 싶었다. (179)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179)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180)
수술용 드릴을 다시 잡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했다. 도덕적인 의무에는 무게가 있고, 무게를 가진 것은 중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생사가 걸린 막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의무가 나를 다시 수술실로 끌어당겼다. 루시는 내 생각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었다. (182)
신경 외과의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렇게 마음먹었겠지.
병원에 도착하자 18주 만에 처음으로 익숙한 푸른색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183)
4개월 보름 만에 다시 수술을 했다. 이 정도면 좋은 예후 아닌가? 그런데 왜 죽었을까?
실제로 그랬다. 날이 갈수록 수술이 손에 익었다. 하지만 속도는 예저보다 약간 느렸다. (185)
내 두 손은 1밀리미터도 안 되는 혈관을 손상 없이 다루는 법을 다시 익혔고, 내 손가락은 예전에 알았던 기술들을 다시 발휘했다. 한 달 뒤 나는 수술을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 (186)
솔직히 말하자면 수술이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다. 한때 수술을 하면서 느꼈던 본능적인 즐거움은 사라지고, 메스꺼움, 통증, 피로감을 이기려는 강철 같은 집중력만 남았다. (187)
대단하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수술을 계속하다니…….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국가와 지역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이는 내가 이미 끝낸 일이었다. 그리고 둘째, 교수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189)
몸이 고통스러울수록 성취감은 더욱 커졌다. 그렇게 첫 주를 보낸 후 나는 40시간을 내리 잤다. (190)
병을 앓으면서 겪게 되는 종잡을 수 없는 건 가치관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이다. (192)
죽음은 다 한 번 있는 일이지만,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건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다. 나는 문득 내가 슬픔의 5단계(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를 이미 다 겪었지만 역순으로 거술러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192)
슬픔의 5단계가 보통 그렇다는 거지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건 아닐테니까.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암 진단을 받기 전의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암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했다. (196)
그때 다시 에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찾아내야 해요.’ (197)
저자는 책을 쓰기로 했나보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198)
그래서 본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운 건가.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시절, 나는 경험적 근거가 없다는 논리로 기독교 신앙을 공격했다. (200)
역설적이게도 과학방법론은 인간이 만든 산물이기에 영원불변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손쉽게 조작하기 위해, 현상을 다루기 쉬운 단위들로 축소하기 위해 과학 이론을 만든다. (201)
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가치(희생, 구원, 용서)로 돌아왔다. 저항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203)
원죄의 기본적인 메시지는 “늘 죄책감을 느끼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런 맥락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선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만, 항상 거기에 맞춰 살지는 못한다.” 결국 이것이 신약성경의 메시지이다. (203)
그럼 선하다는 것에 맞춰 살지 못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건가. 노력을 하면서 살기는 하되?
결국 우리 각자는 커다란 그림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204)
수술실로 복귀한 지 7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CT 촬영기에서 내려왔다.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고, 아버지가 되고, 내 미래가 현실이 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찍는 CT 촬영이었다. (205)
암을 완치한 것도 아닌데 수술실로 복귀해서 레지던트 생활을 마쳤다니...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치료를 하면서. 대단하다.
나는 나일론 실을 써서 피부를 꿰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외과의는 스테플러를 사용하지만 나는 나일론의 감염률이 더 낮다고 확신했고, 이 마지막 봉합을 내 방식대로 할 생각이었다. (210)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싶다면 신경외과의를 그만둘 수도 있죠. 하지만 몸이 아프다는 게 이유가 돼서는 안 돼요. 저번 주와 증세는 별 차이가 없어요.” (212)
담당의도 대단하다. 환자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보통은 다 그만두고 편하게 지내라고 할텐데. 과연 저자는 어떤 결정을 할까?
“우리가 치료 계획을 함께 짜는 것도 정말 좋아요. 당신은 의사라서 병에 관해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이건 당신 인생이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내게 의사 역할을 맡긴다면, 나는 그것 역시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215)
그러게. 나도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최대한 상대 기분이 상하지 않게 이야기하는 법을 알고 있네.
다음 날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주 피곤했고 온몸이 나른했다. 큰 즐거움이었던 식사는 이제 바닷물을 마시는 일처럼 되어버렸다. 갑자기 내 모든 기쁨에 소금이 뿌려졌다. (216)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옆에서 보는 사람은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뇌종양 수술을 하신 분도 두통이 오면 소리를 지를 정도로 아프다고 했다. 편두통으로 눈까지 아프면 생각을 하는 것도 무언가에 집중하기도 어렵던데 소리를 지를 정도라면 얼마나 큰 고통일까.
에마는 인사차 잠시 들러, 타세바 문제는 잘 처리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빨리 회복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한 주 동안 병원을 비울 것 같다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222)
담당의의 반응이 의외다. 이렇게 위중한 환자를 두고 일주일이나 병원을 비울 수도 있는 건가.
나중에 절반쯤 잠든 상태에서, 아버지와 루시가 각각의 의사들과 내 상태에 관해 의논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223)
환자도 의사, 보호자도 의사이니 의사들이 편하면서도 힘들었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에마는 출장 중에도 이메일로 의사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모양이었다. (224)
그럼 그렇지.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할 때까지 항암 치료는 어려웠다. (226)
항암치료뿐 아니라 모든 치료, 수술이 체력이 되지 않으면 어렵더라. 시아버님도 심장혈관에 관 삽입을 더 해야 하는데 체력 때문에 못하고 있다. 친정아버지는 순한 암이기도 했지만 체력이 되시니 회복도 좋았다. 평소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걸 두 아버님을 보며 알았다.
앞으로 루시와 내 딸의 삶에는 많은 것들이 부재할 것이다. 내가 아내와 딸 옆에 지금처럼만 존재할 수 있다 해도 나는 담담히 받아들이겠다. (229)
시간은 이제 나에게 양날의 검과도 같다. 지난번에 병세가 악화되어 심하게 축난 몸 상태는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암이 재발하게 될 테고, 그러다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다. 죽음은 예상보다 느리게 올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것보다는 분명 빠르게 닥쳐올 것이다. (230)
통증이 항상 있을 텐데 그럼 견디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나아진다는 희망도 없는데.
암은 무자비하게도 시간뿐만 아니라 기력까지 빼앗아버려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크게 줄었다. (231)
미래는 이제 인생의 목표를 향해 놓인 사다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는 현재가 되어버렸다. (233)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234)
에필로그 ; 루시 칼라니티
폴은 양털 이불을 몸에 두르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글을 썼다. 마지막 몇 달 동안 그는 이 책을 마무리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238)
나는 폴이 손도 대지 않은 점심과 저녁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238)
얼마 안 되는 기대 수명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신경계가 쇠약해진다는 건 폴에게 크나큰 재앙이었다. 삶의 의미와 사고 기능을 잃을 가능성 때문이었다. (239)
암이 전이 된 것이 아니고 뇌에 새로운 암이 생기는 경우는 30대에 폐암에 걸릴 확률보다 더 희박할 텐데.
폴은 그날 글을 쓰지 못했다. 이 책의 원고는 일부만 마친 상태였고, 폴은 책 한 권을 완성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 거기에 필요한 체력, 정신, 시간 모두 부족했다. (241)
이 책을 다 완성한 게 아니구나. 하지만 이 정도로도 훌륭하다.
약을 끊고 나면 불이 확 타오르듯 암이 급속도로 자랄 위험이 있었다. (241)
폴은 오후에 편안하게 조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아주 심각하게 아팠다. 그가 잠든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242)
혈액 검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폐암이 심해지고 몸이 더 쇠약해지면서 과도한 이산화탄소가 혈액에 누적되었다. (243)
폐암이라서 그런 걸까. 호흡 곤란 때문에 힘들겠구나.
폴은 대안을 검토하더니 결단을 내렸다. 죽음이 더 확실히 그리고 더 빠르게 찾아오겠지만, 삽관 대신 안락치료를 선택하겠다는 것이었다. (244)
이런 순간의 결정이 정말 중요하다. 저자는 의사이기에 뇌암으로 신경이 망가지면 생명연장만을 하는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런 상황이면 같은 결정을 내릴 거다. 친정아버지 입원해있을 때 옆 환자분 보호자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의사인 조카사위가 혹여 심폐소생이나 기타 소생치료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더란다. 보호자인 가족은 참 선택하기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그 아이는 폴을 숨 쉬게 해주는 바이팝 장치가 쉭쉭 소리를 내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케이디는 자기도 모르게 아빠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246)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가망이 없다면, 마스크를 벗고 케이디를 안고 싶어 해요.” (247)
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원고가 출판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폴은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247)
나도 이 글을 읽으며 눈물이 난다. 대단한 용기다.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22개월 전, 폴이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지금 이 병원 건물의 다른 층에 있는 침대에서 우리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8개월 전, 케이디가 태어난 다음 날 나는 내 병원 침대에서 폴과 껴안고 오랜만에 편안하고 긴 잠을 잤다. (248)
삶의 마지막 몇 해 동안 폴은 목적의식을 읽지 않고 또 움직이는 시곗바늘에 자극받으며 쉼 없이 글을 썼다. (251)
화학 요법 때문에 손가락 끝이 갈라져서 아플 때에도 솔기가 없고 가장자리가 은색으로 된 장갑을 끼고 노트북의 트랙패드와 키보드를 만졌다. (251)
“독자들은 잠깐 내 입장이 되어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처지가 되면 이런 기분이구나... 조만간 나도 저런 입장이 되겠지.’ 내 목표는 바로 그 정도라고 생각해. 죽음을 선정적으로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려는 것도 아니야.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 (252)
저자의 목표는 정확히 독자에게 전달됐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와 오랜 시간 씨름했고 이 책은 그 본질적인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253)
이 책을 읽고 나 역시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불치병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며, 감사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254)
폴은 자신의 강인함과 가족 및 공동체의 응원에 힘입어 암의 여러 단계에 우아한 자세로 맞았다. 그는 암을 극복하거나 물리치겠다고 허세를 부리거나 허황된 믿음에 휘둘리지 않고, 성실하게 대처했다. 그래서 미리 계획해둔 미래를 잃고 슬픈 와중에도 새로운 미래를 구축할 수 있었다. (257)
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257)
뭔가에 집중하는 아름다운 남자였던 투병 말기의 폴, 이 책을 쓴 폴, 병약하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았던 그 남자가 그립다. (258)
맞다. 병약하지만 나약하지 않은 사람이다. 병이란 것이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데 저자는 의연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다.
폴은 사후 그의 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결정을 맡겼다. 나는 우리가 좋은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259)
폴의 묘지는 투박하면서도 우아해서 평소 그의 성품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260)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 (261)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별은 부부애의 중단이 아니라, 신혼여행처럼 그 정상적인 과정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결혼 생활을 잘 영위하여 이 과정도 충실하게 헤쳐나가는 것이다.” (262)
부부애가 많았던 사람의 사별은 허전함에 오히려 빨리 다른 사람을 찾게 만든다고 하던데... 11기 장례식이 끝나고 동기 중 한 명이 부인이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해 슬퍼하면서도 빨리 재혼하는 것은 또 싫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추천의 글 ; 에이브러햄 버기즈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폴을 그의 사후에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265)
암 선고를 받은 폴과 함께 있자니 그의 운명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운명까지 실감이 났다. (266)
나는 만약 그가 마음만 먹었으면 쉽게 영문학 교수가 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그도 그 길을 염두에 둔 적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267)
문학에 대한 애정과 깊이가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 같다.
늘 어떤 형태로든 문학으로 되돌아가기를 꿈꾸었고, 언젠가는 책을 쓰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267)
폴은 이 책을 쓰는 사이에 시간을 주제로 <스탠퍼드메디슨>의 특집호에 짧고 인상적인 글을 기고했다. (269)
그는 어떤 주제로도 설득력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글이나 쓰지 않았다. (269)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권한다. 폴의 책 마지막 문단에 이르면 큰 소리로 읽어보라. 그러면 똑같은 긴 문장이지만 발로 박자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운율이 느껴질 것이다. (272)
이걸 확인해보려면 원문을 봐야겠네.
폴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두 달 뒤 이 책의 원고를 받고 나서야 나는 마침내 그를 알게 되었다. (273)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몰입해서 읽은 폴의 글은 정직하고 진실했다. (273)
감사의 글
폴이 가족에게 사후에 책이 출판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말 그대로 유언이었다), 내가 주저하지 않고 그러겠다고 약속할 수 있던 건 도리언과 앤디를 전부터 확고하게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75)
랜덤하우스의 편집장에 대한 신뢰다.
에밀리 라프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그녀는 슬픔에 빠져 있는 나를 기꺼이 만나서 에필로그를 잘 쓸 수 있게 조언해주고, 폴이 그랬던 것처럼, 작가란 무엇이고 작가는 왜 글을 쓰는지 가르쳐주었다. (276)
옮긴이의 말
암에 걸린 이후에 쓴 글이므로 아주 절박한 심정으로 평소 그가 느끼던 인생과 죽음과 도덕의 문제를 의학적인 측면에서 기술해 나가고 있다. (277)
칼라니티의 글을 읽으면서 특히 감동적인 부분은 비록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으나,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평소 하던 수련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는 장면이다. (278)
맞다. 나도 그 부분을 읽으며 대단하다 생각했다. 진통제를 먹어가며 수술을 하고 레지던트의 모든 업무를 했다는 것은 건강한 사람도 힘든 과정을 해낸 거다.
칼라니티는 산을 쌓아올리다가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완성하지 못했더라도 그것 역시 자신이 감당할 몫이라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280)
▣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목차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폐암이 걸리기 전과 걸린 후의 이야기로 묶여 있다. 1부에선 신경외과 의사를 선택하기까지 영향을 미쳤던 성장배경을, 2부에선 폐암을 알고 나서 이후의 삶을 다루고 있다. 에필로그는 부인이 루시가 저자가 죽고 난 후를 썼다.
추천의 글을 앞부분에 넣었으면 더 좋았겠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보완보다 아쉬운 점이라면 미완이 아닌 완성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저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긴 글을 모아서 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3. 이 책의 장점
삶과 죽음, 특히 죽음을 앞둔 환자의 정체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기 전까지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 의사로서 소명을 다하고자 노력한 모습들을 통해 의사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게 해준다.
건강할 때 아프거나 본인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경우 어떻게 하길 원하는지 미리 논의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 것인지 고민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의사로 환자가 된 경험을 글로 남긴 저자처럼 나도 경험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 책을 쓰겠다. 지금은 상담 사례와 나의 사례를 기반으로 한 학교폭력이지만 앞으론 다른 경험을 글로 쓸 것이다. 변경연 과정을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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