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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27일 12시 19분 등록
몽골을 생각하면 애잔하고 아득한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그렇게 낄낄거리며 깔깔대고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 만난 어느 영화감독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너무 기쁜 것은 슬픔과 맞닿고 너무 슬픈 것은 기쁜 것과 다르지 않다고. 그래서 자신은 늘 화려한 영상과 희극으로 영화를 만들지만 자신의 영화에는 웃음 속에 슬픔이 묻어 있노라고. 그것이 계획적이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늘 밝고 화려하며 희극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그러더군요.

그렇다고 그 감독을 빗대어 내 웃음이 슬픔을 가장한 가면 우울증이거나 그와 유사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웃고 싶을 때 마음껏 웃고 또한 울고 싶을 때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빤히 쳐다볼 때 갑작스레 울 수야 없겠지만 영화를 보거나 연극을 관람하다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지로 막지 않으며,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이 핑하니 돌 때에도 애써 감정을 숨기려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있는 그대로를 내려놓으며 살고 싶은가 봐요.

그래요, 몽골이야기 하나 하지요.
까마득히 아득하게 너른 대지, 푸르거나 듬성한 초원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몽골 뭉근머리트로 향해 가는 길은, 불모의 허허벌판을 덜컹이며 달리는 9인승의 봉고가 뿜어내는 자욱한 흙바람과, 길도 제대로 없이 이어지는 길, 그저 온통 대지의 광활함 그 자체일 뿐이었어요. 변변히 길도 닦이지 않은 채 온통 천지로 통하는 길, 그 막막한 대지에 이르러 우리는 길을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모습을 상상하며 해거름의 초원을 향해 덜컹이는 달구지를 탄 사람들 마냥 달리고 또 달려갔어요.

푸석하거나 파리한 초원엔 집도 한 채 제대로 보이지 않고, 얼마를 달리고 나서야 듬성듬성 양이나 소, 말 등의 가축이 겨우 보일 뿐, 더 없이 조용하고 아늑하며 무심한 자연 그대로의 하늘과 척박한 땅, 그리고 초원을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가 고작이었지요.

몇 시간을 달리며 우리 일행을 실은 세 대로 나뉜 봉고가 잠시 쉬었을 때, 우리는 골이 페인 길 위에서 그 아래로 흐르는 강줄기를 발견했고, 그 강 가까이로 다가갔지요. 헬렌강이라고 했던가요. 어느새 인가 강현 영훈이 강가로 내려갔고, 나도 드라이버 간수끄의 육중한 몸이 받쳐주는 손목을 버팀목 삼아 부여잡고, 극성스레 강이 흐르는 골이 패인 둔덕을 철퍼덕 한 마리 야생마처럼 뛰어 내려갔지요. 강물은 맑았고 널따란 강줄기가 얕게 흐르고 있었어요.

언뜻 손이나 씻으려고 무작정 강물에 손을 적시려는 순간, 드라이버 간수끄가 자기를 보라며 이 강이 얼마나 성스러운 강이며 몽골초원의 존재를 알리는 귀한 강인지를 설명해 주기라도 하듯이, 마치 성수를 찍어 이마에 대고 경의를 표하는 듯한 자세를 연출해 보였어요.
그의 표정은 진지했고 그의 모습은 경건했으며 그의 행동은 절제되어 있었어요. 나는 그가 이끄는 대로 그 강물에 손가락을 살짝 적시고는 이마에 성수를 끼얹듯이 강물을 찍고, 그런 연후에 그가 하는 대로 그 강물을 한움쿰 손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가 마셨어요. 드라이버 간수끄는 마치 모든 성례를 잘 따라했다는 듯이 만족해했고, 나 역시도 천해의 땅 몽골을 간수하여 지켜왔을 강물에 신성한 뜻을 가슴에 새기려 했지요. 우리는 그렇게 낯선 이방의 몽골 사람과 이국의 땅 몽골의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가에 이르러 우리 만남의 구도나 순례와도 같은 첫 의식을 짧게나마 진지하고 성스럽게 가졌어요.

드라이버 간수끄는 깔끔한 인상의 몽골인으로 현지 가이더 간조르그와 달리 우리말을 전혀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드라이버 간수끄와는 주로 눈치와 바디랭귀지로 의사소통을 취했고 가이더 간조르그와는 완벽에 가까운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가이더 간조르그는 5년간 북한에 가서 유학을 한 경험이 있는데다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에도 다녀간 적이 있어 우리말을 아주 잘했어요. 간수끄는 운전을 하느라 음악을 틀어주며 몽골에 입국한 우리를 무언의 대화와 몽골을 상징하는 노래들로서 낯선 이방인인 우리를 안내하여 아직 서먹한 낯을 익혀 가는가 하면, 간조르그는 능숙한 우리말 솜씨 때문에 애시부터 우리와 같은 여행객의 일원이기라도 한 듯이 충분한 착각을 일으키며, 낯설음을 일시에 극복하고 우리와 함께 어울리게 되었지요. 이들 대부분은 수도 울란바토르에 거주하여 살면서 이곳저곳을 다니며 몽골 현지가이드를 하는 것 같았어요. 박과장이라고 하는 몽골 재동(1기 연구원 꿈섭아빠를 닮았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진국 같은 형에다가 생긴 모양이나 말투도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도 울란바토르에 산다고 하더군요.

처음에 우린 몽골 땅에 도착하여 아직까지도 대부분 원시적이고 원초적 자연의 풍광을 그대로 간직한 몽골이란 나라에 신비감과 존경심을 어느 정도 가지며 감사한 마음으로 입국을 하였던 것이고, 또한 이러한 풍광을 찾아 몽골까지 온 이유가 있듯이 몽골나라의 구석구석의 면면들을 잘 살피고 느껴보리라 설렘 가득한 기대로 뿌듯했지요.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사흘이나 묵은 몽골의 뭉근머리트 지역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어 마치 어머니 품속 같은 느낌이 감도는 편안하고 다정한 곳이었어요.

나중에 우리는 그곳에 머물면서 그동안 얼마나 부질없이 삶의 무게에 짓눌리며 소위 문명이라 일컬어지는 기계적 메커니즘과 인공의 조립 속에서 헤매며 부자연스럽게 살아왔던가를 잠시 되돌아볼 기회를 가져보기도 했지요. 사람이 사는 데 정말 그 많은 인공과 인위적 기술과 복잡한 삶의 양식들이 필요했던 것인가를 새삼 돌아보게 되었고, 그것은 우리가 너무 많이 가짐으로 인해 오히려 덜어낼 줄 모르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세속적인 무리를 형성하여 살거나, 고작 이 정도의 집단으로나 머물 줄 밖에 모르는 어설프고 안쓰럽기 짝이 없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게까지 해서 피식 실소를 머금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어요.

그들이라고 왜 아니 꿈이 없겠어요. 그들이라고 우리와 무에 그리 차이가 있을까요. 그들은 사람에게서 생성되어 자연과 함께 태어나 성장하고, 자연의 품에 안겨 순응하며 단순하고 간결한 지혜와 유연한 삶을 터득해 나가는 자유로운 유목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럽다기보다 그것이 결코 무엇과 비교되어 뒤쳐지거나 하는 강박 따위가 아니라, 오히려 나름의 방법적 선택의 하나일 뿐이란 생각이 들기까지 하면서, 인생을 획일적이다 시피하게 살아가는 옹팍한 우리네 삶의 현실이 순간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지요.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길과 인적 또한 거의 보이지 않는, 작열하는 태양마저 뉘엿뉘엿 느린 걸음으로 지평선을 향해 산허리에 걸리고, 드문드문 초원을 누비는 느린 가축들의 움직임만이 고요한 적막을 깨우며, 아주 가끔 새들의 무리가 무한 창공의 푸른 하늘을 수놓아 날개 짓을 할뿐, 사막의 횡단과도 같은 길을 봉고는 덜컹이며 하염없이 달리고 또 달려가고 있었어요.

어느 이는 졸고 어느 이는 설레며 우린 같은 봉고차안의 일원으로 초원을 향해 달렸어요. 간혹 멀리 하얀 지붕의 둥글고 낮은 게르 가옥이 듬성하게 보이고, 몽골 하늘과 초원이 익숙해질 즈음 우리는 이국의 땅에 첫 키스 하듯 의기투합해서 새로운 우리의 만남과 이국의 몽골 땅의 정취를 흠뻑 느끼면서, 노래하고 손뼉 치며 흥을 돋우어 즐기기 시작했지요. 초원도 이런 우리 마음을 알아차려 반기기라도 하듯 그 평온하고 너른 품을 쭉 뻗어 앞가슴을 열어젖히며, 한껏 신나고 활기찬 모습으로 우리들과 기꺼운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았지요.

처음엔 참 낯설고도 오묘한 신비감이 들던 척박한 대지를 달리며 우리는 그렇게 자연과 사람과 만나서 한데 어우러져 갔어요. 전혀 예측하지 못해 기대하지 않았던 알 수 없는 많은 즐거움이 우리를 향해 두 팔 벌려 앙가슴으로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 하나하나를 마음으로 담아가며 더 한층 뭉클한 심장의 울림을 들어야 했지요. 그리고 마침내는 대자연과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어울려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적 취향에 우리도 동참하여 함께 젖어들어 갔어요. 그렇게 징기스칸의 나라 몽골, 몽골리안들과 함께 하는 우리가 되었던 거예요.

참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에요. 살면서 나름 적지 않은 여행을 한 것도 같은 데 이런 여행 참 신나고 재미나네요. 어떠세요? 여러분도 한 번 꿈꿔보시지 않으실래요? 우리 언제 한 번 다시 갈까요? 두둥실 하얀 구름떼가 초원의 양들처럼 노니는 무한창공의 청아한 하늘과 대초원이 광활히 펼쳐지며, 태고의 원시림과 원초적 삶이 고스란히 보존되고 흥겹게 남아있어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과 순박함이 잔잔히 깃든, 그러면서도 야생의 일상적 취향이 물씬 풍기는 그곳에 우리 변화경영연구소 사람들 또 사람들과 함께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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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
2007.08.27 11:56:34 *.114.56.245
헬렌강이 온전한 헬렌으로 남기를 바래봅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 아닌 관광으로 문명의 이기로 짓밟고 그곳에 온전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의 짓대가 달라지지 않기를 ----. 좋은 글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동생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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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08.27 13:16:32 *.231.50.64
언니야.. 언니에게 또 다른 빛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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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8.27 14:00:39 *.244.218.10
그러게... 다른 느낌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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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8.28 12:39:43 *.75.15.205
강물이 참 맑았어요. 저는 그 강줄기가 몽골을 지켜내는 젖줄기라고 생각하며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입맞춤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말이나 양들이 똥 싸고 목욕하며 목을 추기곤 하는 강물이지만 전혀 거리낌이 들지 않았어요. 헬렌강은 헬렌으로 오래 남을 것 같아요. 순결하고 맑게...

모모야, 또 다른? 무슨 빛?

호정아, 네가 많이 이뻐졌는데 더 이뻐지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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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08.28 16:53:29 *.179.222.162
그러게, 다른 느낌이 묻어나네. 도윤이 글이 합성된 듯한..ㅋ
누나, 이 글 몽골의 말처럼 한걸음에 내달려서 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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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2007.08.28 22:20:27 *.70.72.121
그 유명한 몽골의 후까시 도윤? 그 등짝이 멋있는 도윤? 오병칸이 죽자살자 밤새워도 절대 따라하지 못할 도윤 대사의 삶의 철학이 묻어나는 등짝이 합성됐다고라 ?

아냐... 오병칸의 등극을 열망하는 바람으로 썼지라. 그대 작은 딸래미 재아는 왜 그리 이쁜 겨? 오수끄로는 딸래미 기에 눌려 부왕 대접 못 받겠더구먼. 부지깽이님과 둘이서 딸 자랑 콘테스트 하시남?

한 처자는 글로 죽이고 한 소녀는 그 기똥찬 목소리로 변.경.연을 강타하니 말일세. 부러버 죽갔고만. 벌써부터 2세들의 당찬 등장이 시작되었네 그려. 참,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한 풍경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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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언
2007.09.01 02:46:02 *.128.229.198
써니누니임~~>ㅆ< 죄송합니다! 뒤늦게 읽었구먼요! 음, 음, 음,
긴말 필요없습니다. 저는 딱! 한마디만 할게요.ㅋㅋ




좋~~~~~~~~~~~~~~~~~~~~~~타!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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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2007.09.02 01:14:58 *.70.72.121
언이를 무어라 별칭 지어줘야 할까?

21세기 여신? 21세기 여래如來? 대처수상보다도 나은 것 같은데...
좋은 벗들 많이 만나고 여행 많이 하고 경험 많이 쌓고 자유롭고 활기차며 넓고 넓게 깊고 깊게 그리고 간결하고 냉철하며 유머스럽기를 계속 노력하자. 때가 되면 담담한 아름다움으로 의연할 수 있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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