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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4일 12시 18분 등록
2007.9.24 아침방송
o 오늘은 기압골의 영향을 받은 후 점차 벗어나겠으므로 한두차례 비가 온 후 낮에 개겠습니다. 낮 최고기온은 대전 24도, 청주 25도가 되겠습 다.
o 추석인 내일은 고기압의 영향으로 구름조금 끼겠으며, 보름달은 구름 사이로 보실 수 있겠습니다. 내일 아침 최저기온은 17도로 오늘과 비슷하겠고, 낮 최고기온은 27도로 오늘보다는 높겠습니다.
대전지역 현재 기온은 17도, 오늘 내린 강수량은 11mm입니다. 지금까지 대전지방기상청에서 날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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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에서 발표한 예보를 가지고 구성한 방송용 원고이다. 아마 내가 대전지방기상청에 지금도 근무하고 있다면 이렇게 구성했을 것이다. 오늘과 내일의 날씨. 7시 30분 쯤,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자동차 안에서 듣는 방송. 그래서, 지금은 비가 오는 데, 계속 비가 온다는 것인지 아닌지, 낮에는 얼마나 더운지, 그리고, 내일은 보름달을 볼 수 있는지.

기상청의 비오는 날 야근은 눈꼬 뜰새 없이 바쁘다. 특히 연휴가 시작되거나 날씨가 큰 관심거리가 되는 날인 연휴의 시작이거나, 대보름달을 보기 위해 맑은 날씨를 기대하는 추석이거나, 해 뜨는 것을 보기 위한 12월 31일 밤의 야근은 손과 발과 입이 모두 공중에서 날아다녀야 할 지경이다.
이런 날은 꼭 방송국에서 전화 오는 것이 빠지지 않는다. 바쁜 중에도 라디오 생방송과 연결되어 날씨를 20~30초 정도 방송해야 한다. 짧은 시간 동안 그날의 주요 이슈와 연결된 멘트가 휘리릭 하고 지나간다.

대부분 이렇게 급하게 방송을 하고 나면, 8시 아침 브리핑을 준비해야 하고, 근무 교대를 위해서 빠진 것 없이 꼼꼼히 챙겨야 하므로 지나간 방송에 대해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과는 다른 것을 만들어낸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매일의 짧막한, A4용지 1/2를 넘지 않는 분량의 원고들을 모았다. 그녀가 대전에서 근무하는 3년동안 모은 것이었다. 그 날짜가 지나면 다른 것으로 고치면 의미가 없는 것들이라서 그것들에 별다른 가공을 거치지 않은 생생한 방송원고 그대로를 날짜별로 추려서 묶었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서 자비로 책을 내었다. 그 책의 반응이 일반인들에게는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가까이에서 방송을 하는 교통방송에서 파견나와 있는 리포터들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다고 했다. 기상청으로 파견나와 있는 그녀들은 교통이 아닌 날씨를 방송해야 했으므로, 자신의 분야가 아닌 것을 때에 맞춰 쉽게 설명해줄 것이 필요했다. 특정 날씨에 맞는 멘트들이 필요했다. 그녀가 만든 책은 3년간의 사례들을 제공했다. 폭우가 쏟아진 날, 봄꽃이 핀 날, 꽃샘 추위, 몇일째 맑은 날이 계속되다 못해, 비를 기다리는 때, 처음으로 서리가 내린 날, 첫눈이 야박스럽게 내린 날, 날씨가 아주 추워졌을 때, 추석, 계룡산에 단풍이 든 날..... 매일 같은 시각대에 다른 것을 방송해야 하는 그녀들은 날씨와 관련된 것은 많은 소재를 주었고, 그 소재로부터 다양한 방송 멘트를 끄집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 대부분도 놀랐다. 일상의 업무가 책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 이전까지는 업무와 관련된 책은 날씨를 연구한 논문들이어야 한다는 틀을 깨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들 각자가 자신이 맡은 업무 분야에서 책이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선배의 책을 그렇게 자신의 세계에서 눈을 확장시키지 못하는 우리들의 틀을 깨준 첫번째 책으로 기억한다. 같은 업무에서 다른 것을 만들어낸 최초의 사람으로.

그 후에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어린이 기상교실에서 사용하는 과학실습용 키트를 만들어서 특허를 받아서 상용화시킨 직원의 사례였다. 그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다. 자신이 늘상 하던 어린이를 대상으로 기상청에서 하는 일을 설명하는 업무를 확장해서, 좀더 잘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다 나온 것이었다.

같은 것이 계속적으로 쌓이다 보면 거기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도약이 일어나기도 하나보다. 뉴튼에게 사과가 떨어진 것처럼, 늘 그것만 생각하다가 '아하!'하는 순간이 행운처럼 닥친다. 그러나 그것은 행운이 아니라 그 속에 푹 빠져서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바라던 것들이 다가오는 것이다.
IP *.46.17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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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09.24 18:40:12 *.6.5.241
갑자기 왜 한경희 스팀 청소기가 생각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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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애
2007.09.27 15:08:48 *.92.200.65
정화연구원님 추석을 잘 보내셨나요? 요즘에 보는 잡지중에 Top class에 보면 일상속에서 가치를 확장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어서 재미있게 보았는데.. 동료의 책 이야기 새롭게 다가옵니다.

제가 삼계탕 사드린다고 하고 나서 입덧하느라 정신없다가 이제 선선해지니 나아져 찾아뵙니다. 그간 잘 지내셨죠? 연구원 과정의 여정 반을 잘 달려 오셨으니 남은 과정도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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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9.28 09:33:32 *.132.71.8
인애님. 응원해 주시는 분이 여기에 있었네.^^
입덧이 나아졌다니 다행입니다.

아이를 낳는 것이 책을 쓰는 것만큼이나... 소중하고 귀한 것이라고 사부님께서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생명하나를 탄생시키는 수고로움과 기쁨을.
가을...실하고 예쁜 열매 많이 드시고, 복 많이 짓고 예쁜 아이 낳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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