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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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공적인 조직에서 퇴직하고 사적으로 선택해서 들어온 조직이 변화경영연구소이다.
할머니가 되어서 재미있게 여생을 살 일이지 왜 하필 글을 쓰는 곳인가
내게만 주어진 특별과제를 받고 나서 문득 생각해 보았다.
국민학교 ( 초등학교) 때 글쓰기 대회에 종종 나가서 상도 받은 기억이 있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자녀들에게도 편지를 종종 썼다. 학생들이 내게 편지를 보내면 꼭 답장을 해 주었다.
이렇다 할 취미가 없던 내가 그나마 좋아했던 것이 글쓰기인 것 같다.
왜 내가 글을 쓰려고 하는지 그 깊은 이유는 나이 들어 알게 되었다.
살다간 흔적을 자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이다.
조상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는가를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일 것이다
나의 뿌리이신 조부님이나 외조부님이 어떤 분들인지 나는 거의 모른다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배워보려고 퇴직 후에야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았다.
그러다 수필과 칼럼의 차이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변경연에 들어오게 되었다.
글은 어떻게 쓰는 것이고, 조직원들은 어떻게 어제보다 아름다와지려는 사람들을 도와주며 작가들은 어떻게 책을 만드는가
궁금 했다.
게다가 구 본형이라는 스승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제자들이 똘똘 뭉쳐 그 뜻을 잇는다고 하니 제자들의 마음이 무척 휼륭하게
생각되었다.
책을 낼 때 마다 다같이 모여서 축하해주고, 서로 격려하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즐거워하는 모습이 아름다왔다.
역시 젊은(?) 사람들은 재기발랄하다. 처음 참석해 본 변경연 전체 모임인 12기 장례식에서 유쾌하게 웃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변경연이란 조직의 역사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그저 글쓰기 훈련에 임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주어진 커리큘럼대로 읽으라면 읽고 쓰라면 쓰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변경연에 들어왔기 때문에 특별히 새로 알게 된 나의 모습이란 것은 사실 없다.
오래 살아서 그렇기 때문도 하거니와 사람은 변하는 것이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각 조직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이중苦를 겪고 있다.
정통 기독인들 사이에서는 내가 세상을 즐겨하는 사람으로 아직 믿음이 부족한사람으로 평가받는다는 인상을 종종 받는다.
변경연에서는 나에 대해 너무 기독교에 편향된 것이 아니냐, 틀에서 벗어나라, 조르바처럼 살아보는 것이 어떻냐, 특이하다
당신의 페르소나를 벗어보라, 이쪽에만 기울지 말고 이쪽으로 와 봐라 등의 말을 들었다.
그렇지만 친구들이나 여고동창 모임에서는 날 개그맨 취급을 하기도 한다.
남편의 많은 부부모임이나 동창 모임에서는 누구도 그렇듯이 인기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 라는 사람이 각자 모임의 성격에 따라 다른 태도를 갖고 대해서 그럴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각자가 가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평가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어쨋든 나는 글을 쓸 때 제일 나 다워진다는 것을 안다.. 글은 자기 마음을 쓰는 것이다.
젊은 날 이미 까불어 보았고, 되지도 않은 말을 가지고 사람들이나 친구들을 웃기며 살기도 했다.
이런 일을 떠올리면 낯이 뜨뜻하다.
변화라는 것이 다른 사람이나 자기답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듯이, 이미 자기 주체성을 확립하고 온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변화라는 것이 불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는 불행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잖아요 ^^
변화라는 말 대신 발전이라는 말로 대체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마침 7월 자문위원이셨던 요한선배님의 최근작 <여행하는 인간>에서 읽었던 좋은 구절이 있어 여기에 옮겨봅니다.
"어쨋든 나는 글을 쓸 때 제일 나 다워진다는 것을 안다.. 글은 자기 마음을 쓰는 것이다."
저는 생각이 정리되야 글이 써지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더군요. 글은 나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감출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글을 쓰냐에 따라서요.
웨버님은 글을 통해 본인의 생각을 피력하시고 있으시죠. 11기 수업때 교육팀에게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주장하는 글이 자칫 읽는 사람으로부터 강요라고 느낄 수 있어 글을 보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처음 글쓰는 사람들이 본인 글에 힘을 주다보니 생기는 일이라며 글에 힘을 빼라고 했어요. 당위로 접근하는 글도 마찬가지라고. 당연한 것이 어디 있으며 각자의 생각이 있을 뿐이겠죠.
웨버님의 그동안 칼럼이 애국, 도덕을 너무 거대하고 당위적인 것으로 여기시는 듯해서요.
시대정신이 이젠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어요. 기독교에서 '늘 께어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죠. 저는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다고 하셨던 것이 생각나서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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