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뿔!"
현수막을 보고 내 안에서 올라온 두 글자이다.
나는 출근길에 한국외국어대학교를 관통한다. 운동겸 지하철 두 정거장을 걷기 위함이다. 사회과학관 2층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축! 한국증권거래소 주최 파생상품 경시대회 수상!] 학교내 <가치투자동아리>에서 참가한 모양이다.
'가치투자 좋아하네.'
'가치투자'란 네글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고무줄 놀이를 하다 고무신 코에 걸려 넘어지듯 글에 걸려 넘어진다. 내 안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린다. 침잠해 있던 놈이 움직인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한 줄의 현수막에 괜시리 욕지거리가 올라온다. 대학마다 흔한 가치투자동아리 소식이다. 좋은 뜻을 담고 있는 이 단어가 의미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걸 트라우마라고 하는가 보다. 가끔 우리는 '왠지 모르게'라는 말을 한다. 이 말 안에는 조금만 찾아보면 이유들이 나타난다. 흔히 우연이라고 말해지는 것들은 아직 이해되지 않은 필연이기도 하다. '왠지 모르게'가 아니라 너무나 선명한 기억이다. 아물지 않은 상처, 가치투자란 나에게는 깊게 베인 상처이다.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아문다.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기고 말이다.
'가치투자'를 다시 생각해 본다
'가치투자'란 기업의 가치에 믿음을 둔 주식현물투자방법을 말한다. 기업의 가치를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순자산가치, 성장가치, 수익가치, 기타 무형의 가치 등등. 가치투자의 창시자라고 일컫는 '벤저민 그레이엄'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주식의 가격은 회사의 가치와 관계가 있다는 것과 그 가치는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과 회사가 가지고 있는 순자산가치에 따른다고 보았다. 이후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투자자들은 회사주가와 실제기업가치의 괴리율이 클수록 투자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들이 말하는 가치투자법은 100원짜리 물건을 50원에 사는 방법이다. 100원의 가치를 가진 물건이 50원에 시장에 나올 수 있는가? 가능하다. 주식시장은 비효율적이기도 하며 군중심리와 탐욕, 공포, 광기가 함께 작용하는 곳이니 말이다. 매일, 시시각각 주가가 변한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말해준다. 기업의 가치가 주식의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 만으로는 실시간으로 변하는 주가를 설명하기 어렵다.
시장에는 가치투자의 대가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을 따서 고유명사화하기도 한다. <이채원의 가치투자>, <워렌비핏의 가치투자>와 같은 식이다. 이 말은 나름대로의 가치를 설명하는 기준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도 한때 가치투자라는 허울로 투자한 주식이 있었다. 많은 이들을 선동하여 함께 했다. 선동이라는 말이 좀 과하다면 제안이라고 해두자. 지금은 이 물건이 50원에 시장에 있지만 일정기간이 지나면 몇 백원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회사는 투자2년 만에 분식회계를 이유로 감사보고서 의견거절, 거래정지, 상장폐지결정 후 정리매매. 그리고 청산이 되었다. 금년 9월22일이면 시장에서 사라진지 3년이다. 나름 기업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는 여러 가지 기준으로 해당기업을 보았다. 어쩌면 제2의 이채원, 워렌버핏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업의 가치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의 합을 내재가치라고 말한다. 오랜 기간을 놓고 보면 기업의 주가는 해당기업의 내재가치에 수렴해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기간은 얼마를 말하는 것이며 내재가치는 어떻게 측정하며, 측정한다면 어떤 정보를 기준으로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어렴풋하게나마 100원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대개의 기업은 법인의 형태를 띠고 있다. 법인이라 함은 자연인은 아니지만 법으로 만들어놓은 사람이란 의미이다. 기업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와 같은 느낌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고난을 극복하고 만선으로 귀항하는 배를 기업은 닮아있다. 기업이 살아가는 생리가 이와 같다는 생각이다. 기업이라고 하는 배는 어떻게 항해하는가, 선장은 누구인가.
결국 기업가치도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기업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간단한 것부터 어렵고 복잡한 방법에 이르기까지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아무리 다양한 툴을 가지고 측정한다고 해도 배(기업)의 선장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은 무용지물이 된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방법은 인간인 우리가 조작 가능하다. 살아서 움직이는 기업을 사고(思考)하는 인간이 움직인다. 한 인간의 사고의 영역을 타인은 범접하지 못한다. 자신만이 알 뿐이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CEO가 완벽하게 모든 이들을 우롱하고 있었다고 어떻게 알겠는가! 어린시절의 그를 아는 동네 어른들은 말한다. 그 아이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집 부모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증권거래소 로비에 모였던 피해투자자 집회에서 나온 어르신들의 말이다.
나의 가치투자는 실패로 돌아갔다. 회사의 오너가 대한민국에서 가라진지도 3년이 되었다. 그는 아직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사라진 그와 함께 가치투자를 향한 과신도 버려야 하는 건 아닐까?
2013년 9월 3일
-- 이길수(변화경영연구소 8기 연구원, 전 하나대투증권 지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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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란 재(財)에 관련된 테크(Technic)를 의미합니다. 재테크를 잘 한다는 이야기는 결국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주식투자를 함에 있어 숫자로 분석하는 다양한 지표들이 있습니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매출액비율(PSR), 주가현금흐름비율(PCR), 자기자본이익율(ROE) 등등. 이 지표들을 구하려면 초창기엔 직접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지만, 요즘은 어디서든 그저 눈으로 다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뿐 만이 아닙니다. 소위 저평가된 상품을 매수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들이 동원되고, 새로운 기술 또한 신제품처럼 출시됩니다. 숫자를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분석되는 수치들을 맹신합니다. 이 또한 재테크라고 확신하며 말이죠.
가치투자 또한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기업의 가치를 숫자로 분석한다 할지라도 기본 데이터들이 거짓이라면 모든 것은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상장폐지되는 회사들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악질(!)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분식회계, 즉 거짓 숫자놀음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겉은 멀쩡한 것처럼 꾸며놓고, 안으로는 몇몇 주주들이 다 빼돌리는 이러한 행위는 범죄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일이 터지기 전까지 그 회사의 투자가치가 너무 좋다는 데 있습니다. 숫자를 다 부풀려 놓았으니까요.
결국 테크닉이 아닌 사람입니다. 한 기업을 이끌고 있는 대표, 대주주가 어떠한 생각과 비전을 가지고 경영을 해 나가는 지, 그리고 거기에 어떠한 철학과 소신이 담겨져 있는 지를 알 수 있어야 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투명성 또한 담보되어야 하고요. 그래야 투자가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투자란, 숫자가 아닌 사람을 보고 하는 투자가 되어야 합니다.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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