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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2일 10시 40분 등록
새벽, 엄마의 대성통곡 소리에 잠에서 깼다. 놀라서 안방으로 뛰어간 나는 침대위에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는 엄마와 마주했다. 그 옆에서는 어쩔 줄 몰라 서있는 아빠의 멍한 모습이 보였다. 너무 아프다며 울고 있는 엄마 앞에서 동생과 나는 그냥 엄마 옆에 조용히 있어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엄마의 울음이 진정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몇 달 전부터 디스크로 고생중이다. 그저 가끔씩 아프다고만 말하던 엄마가, 이제는 온 몸이 아파서 몸도 제대로 가누기가 어려운 때가 잦아지고 있다.

다음날 일이 끝나자마자 집에 들어갔다. “엄마, 괜찮아?” 안방 문을 열고 큰 소리로 물었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제의 피로 때문인지 깊은 숨을 들이쉬며 잠들어 있었다. 엄마의 숨소리에서 어떤 힘이 느껴졌다. 나는 그 힘에 이끌려 엄마 가까이 다가갔다. 엄마 발 앞에 멈추어 섰다. 어둠 속에서 가느다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엄마의 손을 바라봤다. 이 손이 엄마에게 그렇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는 손이구나. 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엄마의 오른손을 잡았다. 딱딱했다. 완강한 뼈대를 따라 손가락 끝에 딱딱하게 굳은살이 박혀 있는 손.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엄마의 손에서 아픔의 긴장감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이젠 엄마의 역사가 가득 담긴 이 손은 그 전 만큼 삶의 역사를 쓸 수 없다. 손등으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갔다.

고개를 들어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용실을 가지 못해 흰머리가 그대로 들어난 머리카락, 그 아래로 짙은 눈썹과 가느다란 눈. 천천히 손을 들어 엄마의 흰 머리를 쓸어 보았다. 머릿결을 따라 눈 옆으로 깊게 자리 잡은 주름살과 콧날에서 입술로 쳐진 볼 선을 꼼꼼히 눈으로 만져보았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엄마의 볼에 볼을 갖다 대었다. 볼과 볼이 맞닿은 곳에서 나는 놀랍도록 깊은 평안의 감촉을 느낀다. 평화롭고 충만한 느낌을. 이렇게 내 볼에 엄마의 얼굴을 새겨 넣고 싶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간단히 집안 청소를 하고 책을 읽다 살짝 잠이 들었다.
“소라야, 일어나 밥 먹어야지.”
엄마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밖으로 나가보니 식탁위에 어느 때와 다르지 않게 밥을 차려 놓으셨다. 아픈 손으로 밥을 차렸을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에서 묵직한 답답함이 밀려왔다. 식탁 앞에 앉아 잘 차려진 반찬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몇 숟가락 밥을 입속으로 떠 넣었다.
“왜 그러고 있어? 어서 먹어.”
나는 들었던 숟가락을 그만 놓아버렸다. 밀어 넣는 밥알이 위장 속에서 한알 한알 곤두서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거의 한달 넘게 소화가 안 되어 약을 먹고 있는 나를 새삼 깨달았다. 가슴 속에 엄마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시들이 자라나고 있었구나.

나는 밥상을 정리하고 엄마에게 산책을 가자고 제안했다. 어쩌면 그 가시를 하나라도 덜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팔짱을 끼고, 엄마의 고통만큼 느려진 엄마의 걸음 속도를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이 걸음으로 병원을 오가고, 이 걸음으로 밥상을 차리시는 거였구나. 아직 소화되지 않은 밥알이 한알 한알 곤두선 나의 위장 속을 다시 찔러댔다.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보았다. 오후의 햇살을 받은 엄마의 얼굴에 주름이 드러난다. 어제의 통곡 때문인지 엄마의 눈이 아직 부어 있었다. 머쩍은 듯, 고맙게도 엄마가 먼저 말을 꺼내 주었다.

“소라야, 엄마가 어제 너무 속상해서 실컷 울었다. 이해하지?”
“그럼, 엄마..”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소라야, 몸이 이렇게 쓸모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사람이 참 소중해 지는 거 같다. 가끔은 옆에 있는 너희들도 보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고, 형제들도 보고 싶어. 돌아가신 엄마 아빠도 만나고 싶어. 이야기하고 떠들고 함께 밥 먹는 것이 참 소중했구나 싶다. 디스크에 걸리면 우울증에 걸린다던데.. 그럴까봐 정말 걱정이구나. 엄마, 그렇게 밉다 해도 아빠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문득 스치고 지나가던 엄마의 수많은 눈빛들이 떠올랐다. “소라야, 몇시에 들어오니? 주말인데 오늘도 나가니? 밥 먹을래? 슈퍼에 같이 갈까?..” 뭔가 애타게 기다리는 눈빛을 볼 때마다, 난 내 가슴에 가시가 돋아나는 줄도 모르고 내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 갔다.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지만, 언젠가 읽었던 생떽쥐 베리의 구절만이 맴도는 하루다. “육체가 쓰러지면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관계의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오직 관계만이 인간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엄마에게 단지 존재의 힘이 아니라, 움직이는 관계의 힘으로 곁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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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7.11.12 10:44:38 *.128.229.81
소라의 주위엔 삶이 보석처럼 모여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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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자
2007.11.16 17:22:56 *.167.208.253
그러게~
언니도 숨쉬고, 언니의 하루도 숨쉬고, 언니의 글도 숨쉬는구나.
다들 반짝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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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11.19 09:16:20 *.231.50.64
귀자야. 오랜만이다. 잘지내지?^^
가끔씩 찾아와 이리 응원해주니 고맙네..
삶의 보석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운 하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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