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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6일 09시 36분 등록
2년 전부터 대학원 동기들과 우연히 시작하게 된 책 읽기가 세종독서회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작년에는 주로 리더십을 주제로 삼국지의 리더십에서 로마,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리더십까지 두루 섭렵하는 기회를 가졌다. 리더십은 내용적인 면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나만의 영역으로 끌어와 실행에 옮기고 적용하는데 많은 격차가 있었다. 공무원이란 직업적인 환경도 그러했지만, 리더들이 살아가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동되는 각각의 리더십을 연결하기가 어려웠다. 추상적인 리더십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고 행동 밑에 들어있는 기반이 궁금하였다. 그들만의 철학을 알기 위한 돌파구가 바로 논어였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마지막으로 리더십을 끝내고 새로운 지도교수님을 모시고 동양의 고전 모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올해 지도교수님은 세종의 국가경영의 저자중 한분이신 청주대학교의 이지경 교수님이다.경주가 고향인 교수님은 화개 이언적 선생님의 15대 손으로 어릴 때 조부로부터 한문을 배웠다. 탁월한 한문 실력으로 조선의 정치사상, 유학자들의 삶, 그리고 중국 등 동양의 정치사상에 전문지식을 가지고 계시며 서예에도 조예가 깊으신 분이다. 한문과 정치학이 결함된 세계는 정말로 영역과 넘다드는 폭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지도교수님을 모시고 거창하게 시작된 논어 배우기는 제 1편 학이편을 마치기도 전에 나타났다. 논어집주가 절판이 되어 회원들이 어렵게 구한 중고책을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1장과 2장만 줄이 쳐져 있었고 열어본 손때가 묻어있었다. 3편 이후 뒷편으로 갈수록 거의 새 책이라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앞 부분에 때가 묻은 수학 정석책과 같은 것을 보고 회원끼리 뒤에서부터 보자는 농담도 주고 받았다.

계획상으로는 한 달에 논어 한편과 조선의 유학자 평전 한권을 읽기로 하였다. 첫 달에 선정인물은 정암 조광조 선생님이었다. 정암 선생의 책은 그런대로 읽을 수 있었지만 논어 한편을 읽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생소한 한문을 찾는 씨름을 하여야 했고, 찾은 한자를 억지로 짜 맞추는 해석이 그리 쉽지가 않았다. 중학교 때까지 한문을 배웠음에도 눈으로 어림잡아 때려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직접 뜻을 보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 참 더디게 진행이 되었다. 공자님 말씀의 해석과정에서 절반 이상의 회원들이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바쁜 일정과 배움이라는 두 가지 갈림길에서 대부분 배움보다는 현실로 돌아갔다.

피상적으로 듣는 공자님 말씀과 책에서 직접 만나야 하는 공자님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 커다란 방에 교수님을 모시고 덩그러니 두 세 사람이 앉아서 읽는 논어의 소리가 그리 정겹지는 않았다. 이 때 배운 것이 바로 덕불고 필유린(子曰 德不孤 必有隣)이라는 구절이었다. 德대신에 學으로 바꾸어 읽으면서 위안을 찾았다.

한 달 한 달을 힘겹게 지나갔다. 회원들이 조금 늘어서 배움은 외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자유롭게 해석은 되지 않지만 교수님의 적절한 설명으로 해석도 조금되고 한자도 눈에 익었다. 논어는 11편 선진편을 끝냈고, 12편 안연편을 배우게 된다. 논어와 더불어 시작한 조선조 유학자들의 평전도 정암 선생 이후로 양명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조일전쟁을 지휘하신 서해 유성룡 선생님, 조선중기 조선 학문의 대가를 이룬 퇴계 이황 선생님과 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님까지 읽었다. 이 달은 유학자 대신에 대선 정국에 따라 택리지를 읽고 있다. 논어에 밑바탕을 두고 혼탁한 시대에서 당신들만의 소명과 소임을 다했던 한분 한분의 숭고한 역사가 새롭게 다가왔다.

우리 시대에 고전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처럼 우리는 과거를 부정하는 이율배반적인 세상을 살고 있다. 시대를 살면서 화두로 삼을만한 무거움도 스스로 져 버리고 편리함만을 찾는 세대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고전을 읽은 것이 태산준령 앞에 호미를 들고 마주하는 격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직 호미질을 몇 번 하지 않았지만 좋은 비유이다. 고전강독에 대한 첫 번째 이유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미래화의 대화를 선취하는 것으로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면서 동시에 짐이라고 합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측면이라고 하였다. 두 번째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소명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동양의 지혜가 자본주의로 획일화 되어가는 시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의 단계로 가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선현들이 고전을 읽은 것은 성인의 말 속에서 誠과 德을 배워 자신을 닦기 위해서였을 터이다. 고전을 인용하면서 숨은 뜻을 이해하고 아는 것을 듣는 데 기쁨을 느끼는 것. 그것이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본다. 논어를 읽는 가장 큰 재미는 공자님의 표정이 떠오를 때이다. 한자로 써 있는 해석이 어려운 말이지만, 여러 번 같은 문장을 읽다보면 그 광경이 훤하게 떠오른다. 안회가 죽어서 슬퍼하는 모습, 인에 대한 설명을 제자마다 다르게 설명하는 것. 배움에 대한 뜨거운 열정 등이 가슴으로 다가오는 희열은 다른 책에서 읽은 감동보다 더 깊은 맛이 있다.

바로 여기에서 리더십에서 느꼈던 2%의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느낌이었다. 마음이 심란하고 어지러울 때, 세상과의 커다란 현실적인 차이를 느낄 때, 나의 꿈이 왜소해진다고 느낄 때, 까닭 없이 슬퍼지려 할 때 논어의 한 구절은 새로운 힘과 에너지를 주었다.
최근에 책상앞에 붙여놓고 혼자서 빙그레 웃는 구절이 있다.
안연이 스승인 공자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적어 놓은 글귀인? 지금의 내가 스스님들에게 느끼는 마음과 비슷하다.

夫子 循循然善誘人하사 博學以文하시고 約我以禮하시니라.

선생님께서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이끄시어 나를 문으로 넓혀주시고 나를 예로서 묶어 주셨느니라 (자공편 10-2)

마흔이 넘어서 운 좋게 세 분의 스승님이 생겼다. 한 분은 책을 읽는 방법과 글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분이고, 한분은 주역의 대가이시다. 나머지 한분은 고전과 만나게 해준 교수님이다. 공자님이 살았던 2천년저의 세상이나 지금이나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은 다르지 않다. 고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무한한 보고의 열쇠를 지어준 스승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논어의 깊은 맛을 알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렁뚱땅 한 번 읽고 그 경지를 배우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어쩌면 논어는 평생동안 옆에 두고 읽어야 될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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