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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6일 23시 18분 등록
물론 여러분들은 저에 대해서 대부분 얼마간 알고 계십니다. 글도 보았고 알음알음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또 같이 공부했고 놀기도 하면서 어울려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예측불허의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간혹 하더군요. 저는 아직 그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지, 뭐가 뭔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혼란스럽다는 것인지, 아직도 상대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해 이대로 머물러 떠있습니다. 맞아요. 뜬 것을 저자신이 느낄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보다 제가 좀 덜 느끼겠지요. 왜냐하면 저는 제 놀이에 빠져 있느라 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제게 무어라고 표현할 때 저는 첫째는 무슨 말을 할까 싶어 그냥 끝까지 들어보며 그 사람이 정확한 해석을 내려주기를 바라며 가만히 듣습니다. 그러나 표현은 거기까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거의 대부분 더 질문하지 않고 맙니다. 왜냐하면 묻는 것이 상대를 곤혹스럽게 할 수도 있고, 상대가 애써 에둘러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한 번 더 숙고해볼 요량으로 우선 접수부터 해두는 것이지요.

또한 사실은 반박할 여지를 찾지 못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솔직히 고백하건데 저는 저에게 말하는 예측불허의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을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위로하기를 가끔은 제법 괜찮을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정신 나간 사람 같기도 하고 뭐, 대강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게 접니다. 저도 이런 저 자신으로 인해 힘들 때가 아주 많아요. 그렇게 느껴지는 걸, 그렇게 생각되는 걸, 뭘 어쩌라는 겁니까하는 마음이 절로 듭니다.

‘진중해저라’ 하는 말을 들을 때면 솔직히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습니다. 아, 혹시 내가 구제불능이 아닐까? 이 나이에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지? 이런 말을 들어도 되는 걸까? 혹은 아주 극단적으로 여기가 아니면 뭐 살수가 없나? 모를 때도 잘 살아왔다지? 하는 반발심도 생기곤 합니다. 아니면 마는 거지. 여기서 못 어울린다고 내 인생이 죽을 쓸 것도 아니고. 언제 누가 내 살림보태준 것 있나? 어차피 내 인생 내가 사는 거 아냐? 별별 생각이 다 스쳐갈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어떻게? 연구원에 지원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내 이유를 말하면 아주 하찮거나 가소로울 일일지 모르겠으나 저는 솔직히 아무 생각 없이 지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정신나간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내 인생이 꼬이기 얼마 전까지는 참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할 만큼 아주 평안하고 밝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상처를 안고 모험을 하면서 두려움도 느꼈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아주 극도의 불안과 초조함도 경험했습니다. 그래요. 이쯤에서 좀 더 자세히 저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야 하겠네요.

저는 5살부터 저를 보아온 집안과 나이 만 서른에 갑자기 서른이 넘어간다는 나이에 밀려 급작스런 맛선 같은 형식을 빌어서 중매처럼 결혼에 이르렀습니다. 십대에 보고 안 본 사람을 만 서른에 다시 만나서는 보는 것이 결혼하는 것(봐서 싫지 않으면 혼인하는 걸로 양쪽 집안이 암암리에 약조를 하다시피 하여)이 되어 따로 교재를 하거나 만날 겨를도 별로 없이 신중하게 생각하기보다 막연하게, 그저 우리 식구들 같으려니 하고 결혼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그 나이까지 남자와 그다지 사귐을 갖지 않았습니다.

기피한 것은 아니고 지금이나 그때나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기 때문에 결혼도 별 문제가 없으리라고 여겼고, 누구와도 잘 맞출 수 있으리라 자신만만했으며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대학에서도 선후배와 잘 어울렸고 (우리 과는 남자가 많았음) 친구의 신랑들과도 친했기 때문에 남자들의 사고방식이 내가 처한 일상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결혼 이후 현실은 달랐습니다. 저로서는 불감당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적응하기 어려웠고 결국에는 버티지 못했습니다. 여러 불상사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우리는 합의하에 헤어지기로 하였으며, 아이들은 외아들이며 능력이 있는 아이아빠가 부양을 하는 선에서 대략 마무리를 지으며, 저는 5년간 3명의 아이를 남기고 결국 성이 다른 나만이 홀로 떨어져 나와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집안에서 저라는 존재만 없으면 되는 거로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죽는 일이었고, 그 길밖에는 살길이 없는 것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것이 아니라 죽기를 작정하고 이혼이라는 삶의 강을 건너며,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이혼녀로 사는 것이 죽는 일만 못하다는 것을 뼈에 각인하며, 한편으로는 치욕으로 느껴졌던 삶으로부터 더 이상 버틸 의욕 없이 나동그라져 나왔던 것입니다.

죽음을 선택하듯 이혼이란 것을 하고 다시금 삶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때부터 저는 한 가지 밖에는 더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다 덧없이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고 필요한 것은 내게 없었습니다. 현실의 내 상황과 처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중요한 것이었고, 오직 그것 한 가지만 생각하며 그것에만 매달려 신경 쓰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은 그것만이 나를 연명해 나갈 수 있는 것이었고 그것만이 나의 삶을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이었으며 그조차 해내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자립이었습니다.

유난히도 남달리 결벽증처럼 싫어하던 이혼이라는 딱지를 주홍글씨처럼 내 얼굴에 떡하니 부치고 내 한 몸 지탱하며 살아가는 일, 그것이 나의 현실이었습니다. 이력서 내기가 민망하고 두려워 좋은 곳, 가고 싶은 곳을 피해서 마치 숨어들기라도 하듯 어느 병원에 처박혀 일을 시작하며 10년을 살아왔음에도 아무것도 해결이 나있지 않은 내 인생 앞에서, 나는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이혼했으면 모든 것이 끝난 것 아니냐고 왜 그렇게 10년이나 그러고 사느냐고 아주 간단하고 쉽게 냉정히 말하지만, 나는 한 번도 이혼했다고 인정할 수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솔직히 10년 동안의 이혼이 아니라 10년 동안의 기다림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누가 지켜보기라도 하듯이 나는 내 생명의 24시간을 투명하게 감시하듯 살았습니다. 만 8년을 지내고나서 몰두할 일도 예전 같지 않고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 하나라도 정을 붙이거나 성취를 하며 살아야 하는데 나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초보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고 살려면 2배, 3배의 감당을 하며 일을 해야 했고, 그나마도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 노후가 보장이라도 되거나 다만 몇 년이라도 마음을 의지하고 계획적으로 느긋하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일선의 병원들은 그렇게 죄다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이 거의 80~90% 이상입니다.

저는 그렇게 일에 치여 몸이 부서져라 하며 살았습니다. 차라리 죽자. 일하다 죽자. 죽으면 어떠리. 이혼한 그날 이미 나는 죽었는데, 하루 더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지금 죽는 것이 무엇이 안타까우랴 하는 심정으로 몸을 혹사하다시피하며 마치 언제든지 죽어도 좋은 사람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몸이 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하기도 힘들어졌고 내가 관심을 두는 일은 내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어가서 무엇 하나에도 낙을 부칠 일은 없고, 오직 해야만 하는 일만이 까마득할 뿐이었습니다. 어느덧 저는 지쳤고 힘들었고 나자빠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 혼돈의 와중에 서성이다가 이곳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하여간 당장에 먹고 사는 일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내 인생에 대한 불안감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은 없으나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는 임용시험을 치르고는 재수를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할까를 고민 중에, 초아선생님을 만나 연구원에 지원해서 글쓰기를 해보라는 말씀을 듣고 용기 내어 도전한 끝에 연구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연구원은 저에게는 제 인생의 질곡만큼이나 각별한 과정입니다. 이혼 후 10년을 병원의 한쪽 구석에 처박히듯 묻혀서 일하고 공부하며 나를 혹사시키며 자학처럼 살아가는 가운데 늘 애타게 그리는 삶이 있었고, 제대로 살아봐야 한다는 강박 같은 서글픈 신념이 심중에는 남아있었던 것일 겁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속에서 빛처럼 희망처럼 줄을 잡은 것이 연구원이라는 끈이고 저는 이 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저에게도 제가 알아서 해야 할 이런 저런 역할이란 것들이 있었을 테고 좀 더 잘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저는 이 과정을 우리 모두 함께 수료하는 날까지 정말 같이 하고 싶어요. 책은 각자의 역량이더라도 수료과정은 처음 그 마음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의 바람을 흐느낌으로 두서없이 담아보았습니다.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마음이 지쳐서 더는 쓸 수가 없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IP *.70.7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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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1.17 21:01:35 *.72.153.12
언니는 다 울고 이제는 안 울줄 알았는데, 가끔 운다.

그냥 울도록 가만히 옆에 지켜서서 있어야 할지, 토닥여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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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11.17 22:02:42 *.145.231.210
그래서 우리는 참 많이 닮았다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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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11.18 11:32:28 *.159.180.168
아무생각없이 연구원 했다는것은 거짓말인것 같구려..누님
그냥 본능에 따라왔듯이 마음가는대로 가면 될거 아니유.
책의 두께만큼이나 앎이 넓고 깊어지면 좋으련만
사부님의 말처럼 공굴리기에 쉽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13명이 함께 공을 굴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의 꿈이 이루어진다는것을
그 꿈은 우리가 살아왔던 질곡의 삶과
어두웠던 부분을 모두 덮고도 남을만한 강력한 것임을...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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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동
2007.11.18 23:01:22 *.142.156.90
자신의 보호자는 결국 자기 자신. 보기 좋은 모습, 보기 흉한 모습 모두 끌어 안아줘야 할 당사자. 오로지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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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1.19 10:46:18 *.75.15.205
한강을 몇 번이나 범람시켯다고 생각하는 데도 아직도 눈물이 나네.
정화는 울지 말고 살으렴.

자로님, 우리 참 많이 닮았다는 말, 뜻은 이해 못하고 그저 고마워요.
나는 조금 비슷하게 느꼈을 뿐, 선배 아우님처럼 변.경.연을 사랑하는 마음 아직 너무 부족해서...

그대의 첫 책을 사인해 주면서 "3기들 많이 챙겨 주세요"하신 말 기억하고 있어요.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음으로 양으로 물질로 마음으로 늘 변.경.연을 생각하는 그 마음 그 모습 알아요. 고맙고 또 조금씩 배울게요.

영훈, 그대는 정말 소전이라는 호가 딱 어울리지, 든든한 아우님, 우리 맥주 한 잔 해야지? 넘 오래된 것 같아. 아직도 바쁘신가?

재동, 형제 같은 마음으로 신뢰감이 쌓이지. 우리 꿉섭아빠는.
요즘 열심히 글쓰며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 아주 좋아요. 재순양!


전혀 쓰려고 생각했던 글은 아니었어요. 누군가가 보고 한번쯤 자신들을 되돌아 보아주길 바랐던 것 같은데 글이 시작도 끝도 티미하네요.

저는 마음을 쓰면 체력이 달려서 용두사미가 되고는 해요. 쭈욱~ 뻗어버리거든요. 아직도 몸살이 진행 중이네요. 약은 먹고 있는데... 이따가 주사도 한 방 맞아야 할까봐요.

그리고 나는 낙엽이지만 아직 파란 잎들은 그들의 푸르름과 싱그러움을 만끽하는 가운데 계절/자연과 인생의 질서를 찾아가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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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11.19 21:50:56 *.120.66.135
연구원 생활도 다 각자의 길인걸.
언니의 맘이 따뜻하구나...

...칼럼 쓴다고 앉아서 다른 사람들 글만 들락날락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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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1.20 07:02:04 *.70.72.121
각자의 길.
맞네.
나는 왜 이런지 몰라. 걱정도 팔자. 에그~
호정의 웃음이 생각나는 아침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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