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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5일 09시 38분 등록
어떤 주정뱅이도 어떤 잘난 위인도 아무대서나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함부로 얕보지 말라.
내 삶은 그대들의 가벼운 입방아에 맥없이 짓밟히다 스르르 녹아버리고 말거나 그저 그렇게 부스스 나부끼다 멍하니 멈춰서 버리고 마는 연약한 겨울 흰 눈발이 아니며, 지난 가을 어느 구석에선가 아무렇게나 처박혀 찢겨지다 죽어간 낙엽이 아니다.

나에게는 전지전능한 신이 내게만 특별히 하사한 운명이라는 전리품이 있고, 나는 그것을 받자와 힘껏 살아내야 하느니. 사람들아, 그것이 네 운명이 아니고 네 희망이 아니라고 해서 하찮게 치부하지 말라. 함부로 떠들어 대지 말란 말이다. 더군다나 겁 없이 비난하지 말라. 제발 부탁이다. 나는 신이 아니고 그토록 넓은 아량을 타고나지 않았다. 조심해라. 너의 오만이 내가 가진 상처 때문이라고 의기양양 멋대로 덮어씌워버리지 말라.
내 가슴에 칼이 꽂히는 날, 너를 위해 단 한 자락의 마음도 내어 줄 수 없느니. 내게 야속하다고 하지 말고 시간이 너무 지체하기 전에 반드시 사과하고 넘어가라. 장난이 아님을 부디 명심하라.


냉방에 겨울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콧등에 한기가 몰아쳤고 등짝은 싸늘했다.
나는 불현듯 벌떡 일어나 큰 방을 향해 나갔다. 작은 방보다는 나았지만 빈자리는 역시 냉골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머물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저녁, 주인장이라는 털이 덥수룩한 목공의 사내는 우리들의 고개를 뻗쳐들게 하고서 말했다. “이 집에는 氣가 세계 넘쳐요. 그것이 너무 영험해서 어떤 이들은 나의 글을 집에 걸어놓을 수가 없다고도 해요. 선생님들, 오늘밤 이 집안의 기를 체험해 보세요.”

나는 냉골에 누워 그 방안의 기를 받기를 원했다. 더 이상 아무렇게나 다치지 않으리라. 내 아픔을 숨기지 않으리라. 나를 아무렇게나 방치하지 않으리라. 아무에게나 함부로 내 맡기지 않으리라. 누구든지 그들이 내게 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갚아 주리라. 오돌 오돌 떨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생각했다.


조용히 사라져갈 나의 밤길을 막은 것은 몽골의 개처럼 방문 앞을 지켜선 작은 몸짓이었다.
그것은 영문을 모르는 우정이었고 부스스 선잠을 깬 원초적 사랑이었다. 감사했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 눈부시게 아름답다. 뜨거운 눈물이 가슴속을 데웠다.
그를 재우기 위해 나도 불을 끄고 자는 척했다. 참을 수 있었다.


하루가 다시 밝았다. 딴엔 애써 하루를 기다려 참았다. 다시 밤이 되도록 아무 기별이 없었다. 이윽고 터트려야겠다는 신호가 눈 깜작 할 사이에 로케트를 발사시켰다. 타다다닥 불꽃이 일었다. 밤을 뒤집는 깨질 듯한 소리가 쨍그렁 울려 퍼졌다.


돌아와 맨 먼저 켠 것은 언제나처럼 홈피다. 이내 꺼버렸다.

잠을 청했다. 울음과 한숨 그리고 피곤함이 범벅이 되어 자다 깨다 말다 먹지도 씻지도 않고 며칠을 보냈다. 멍하고 띵하다.

이유가 없다. 나는 살아야 한다. 나는 나를 증명해야 한다. 내가 아무나 함부로 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내.야.만.한.다. 골이 쪼개진다. 눈을 감는다.


다시 아침이다. 현기증처럼 명치끝이 알싸하다. 엎드려 한참동안 가슴을 눌렀다.

때때로 조폭 같은 험상궂은 기둥서방 하나쯤 절실히 필요하다. 소리 없는 노래가 가사만 튀어나왔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인조인간 로버트 마징가아~Z
우리들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착한이 나타나면 모두모두 벌벌벌 떠네
무쇠팔 무쇠다리 로케트 주먹 목숨이 아깝거든 모두모두 비켜라
마징가 마징가 마징가아~Z
IP *.70.7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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