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802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껍질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고두현 시집『늦게 온 소포』,민음사, 200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04 | [리멤버 구사부] 오늘을 실천하라, 내일 죽을 것처럼 | 정야 | 2019.05.27 | 1619 |
103 | [시인은 말한다] 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 | 정야 | 2019.05.20 | 1838 |
102 | [리멤버 구사부] 우리가 진실로 찾는 것 | 정야 | 2019.05.20 | 1439 |
101 | [시인은 말한다] 봄밤 / 김수영 | 정야 | 2019.05.20 | 2258 |
100 | [리멤버 구사부] 부하가 상사에 미치는 영향 | 정야 | 2019.04.29 | 1642 |
99 | [시인은 말한다] 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 정야 | 2019.04.22 | 1674 |
98 | [리멤버 구사부] 죽음 앞에서 | 정야 | 2019.04.15 | 1620 |
97 | [시인은 말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랜터 윌슨 스미스 | 정야 | 2019.04.08 | 2489 |
96 | [리멤버 구사부] 인생은 불공평하다 | 정야 | 2019.04.01 | 1733 |
95 | [시인은 말한다] 상처적 체질 / 류근 | 정야 | 2019.03.25 | 1663 |
94 | [리멤버 구사부] 시처럼 살고 싶다 | 정야 | 2019.03.25 | 1439 |
93 | [시인은 말한다] 꿈꾸는 사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정야 | 2019.03.11 | 1624 |
92 | [리멤버 구사부] 도약, 그 시적 장면 | 정야 | 2019.03.04 | 1649 |
91 | [시인은 말한다]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 이근화 | 정야 | 2019.02.25 | 1848 |
90 | [리멤버 구사부] 흐름에 올라타라 | 정야 | 2019.02.25 | 1336 |
89 | [시인은 말한다] 벽 / 정호승 | 정야 | 2019.02.11 | 2247 |
88 | [리멤버 구사부] 어울리는 사랑 | 정야 | 2019.02.07 | 1663 |
» | [시인은 말한다]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 정야 | 2019.01.28 | 1802 |
86 | [리멤버 구사부] 사람의 스피릿 | 정야 | 2019.01.21 | 1322 |
85 | [시인은 말한다] 삶은 계란 / 백우선 | 정야 | 2019.01.21 | 16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