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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6일 20시 09분 등록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면서 과학자들이 즐겨했던 놀이 겸 연구를 어린이 창의력 개발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각 장에 나온 것들 중에 따라해 볼 수 있겠다 싶은 것들을 모아보니 8~10회 정도에 할 수 있을 정도는 나왔다. EQ라는 말이 한참 유행을 했을 때, 부모들은 아이들을 여러 가지 자극에 노출 시키기 위해 애를 썼었는데, 책에 나온 사례들은 창의력, 창조성, EQ라는 말을 붙이면 모두 그것과 관련있어 보이고 그럴 듯해 보였다.

이렇게 프로그램이란 것을 꾸며놓고 저자조사를 하는 중에 발견한 기사하나가 이런 나의 생각에 회의를 들게 한다. 2007년 10월 10일 중앙일보 기사 중에는 한국에 강연하러 온 루트번스타인 부부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여, e-mail 답신받은 내용을 요약하여 발표한 것이 있다. 그중에 교육에 관련 부분이 있는데, 이들 부부가 "자녀를 창조적 인물로 만들려면 지루하고 따분하게 만들라"고 한 이색적인 주문이 포함되어 있다. 아이가 많은 활동을 하게 되면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놀이 방법을 창안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줄어들기 때문에” 아이를 따분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아이를 따분하게 만들라니, 따분하게 만들기 보다는 뭔가를 이끄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과연 부모는 아이를 따분하게 만들 수 있을까?

기상청에 근무할 때 따분해 하는 아이를 많이 보았다.
방학이 끝날 무렵 직원이 다 퇴근하고 남아서 혼자서 근무하는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자주 받았다. 지나간 날씨를 한꺼번에 묻는 전화다. 밀린 일기를 써야하나 보다. 이런 전화는 꼭 아이가 하지 않고 엄마가 한다. 아이들 과제 때문에 엄마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빠른 시간내에 한달 분을 다 받아적으려면 엄마가 전화하는 쪽이 낫다. 전화 뿐 아니라, 견학도 오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난감했다. 혼자 근무하는 때면 안내를 제대로 해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사정을 안다. 그날 견학을 온 사람도 견학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밀린 숙제를 해야하니까, 그곳에서 시간을 많이 쓸 수 없는 것이다. 아이들도 바쁘다. 아니 좀더 솔직해지면 부모가 바쁘다. 부모는 견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다 들을 많큼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는 그냥 따라 다닌다. 흥미있는 것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도 아이가 아니라 부모쪽이다. 카메라는 엄마가 들고, 메모도 엄마가 한다. 때로는 카메라는 아빠가 들고, 엄마는 메모한다. 견학오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홍보용 자료도 부모가 챙긴다. 이쯤되면 나는 누구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지 안다. 아이 보다는 부모를 보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러면 부모가 아이를 이끈다. 아이는 부모가 이끄는 데로 쭉 돌아본다.

어쩌면 견학이라는 것 자체가 아이에겐 따분한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한다는 의무감에 하는 그 어떤 것.

이 책을 읽다가 '재미있겠다' 싶어 프로그램 짜 놓은 창의력 교실, 혹은 그림학교는 무엇일까. 그것 역시 역시 뭔가를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배우는 것에 지치고, 따분해 하는 벅찬 아이들의 어깨에 뭔가 하나 더 짐을 얻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것에 대한 해답도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책에서 언급한 것 같다. 《생각의 탄생》에서는 한 장을 따로 떼어서 ‘생각도구- 놀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장에서는 놀이를 통해서 연구를 계속해나가고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미생물을 가지고 놀다가 놀이의 규칙을 깨뜨려보면서 뭔가 새로은 것을 발견한 생물학자 플레밍, 자신이 하는 일이 연구보다는 얼마나 재미있느냐를 더 중시했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 서커스 놀이를 즐긴 모빌 조각가 콜더, 패턴 놀이를 즐긴 패턴의 대가 화가 모리츠 에셔. 이들의 놀이는 자신의 분야를 개척하겠다는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뭔가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놀이는 단지 자신에게 쾌락을 선사하는 것에만 목적을 두었다.

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은 단지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라 한다. 아이가 놀이에만 열중할 수 있도록, 창의력 학습의 장이 아닌 놀이의 장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하는 데 생각이 이른다.

스스로 만든 놀이터에서 놀아보자.
그럼 이제부터는 놀이의 유도자가 아니라 직접 노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프로그램으로 개발했으면 좋겠다 싶은 사례들을 가지고 놀아보자. 좋아하는 것들을 수집하고, 흥미가 있는 것들을 흉내내 보자. 그러다 마음 내키면 거기에 뭔가를 더해서 해도 좋다. 안을 들여다 보고 싶은 것을 뜯어보고, 작동원리가 궁금한 것들을 작동시키고 분해하고, 그리고 조립해 보자. 이것을 저것에다 가져다 붙이고, 저것을 이것에다 가져다 붙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상상했던 대로 되나 살펴보자. 미술품 사진에 낙서를 하자. 마음 속에 있는 장난꾸러기를 풀어놓아 놀게하자.

아이들에게 왜 그랬냐 물으면, ‘그냥’이라 답하는 것처럼.
IP *.72.1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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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2.27 05:47:48 *.72.153.12
원래는 이렇게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수습 안되는 결론에 이르러버렸습니다.
글감의 연결 시키다가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우회했는데, 달리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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