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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8일 04시 08분 등록
때때로 남자가 필요하다. 가끔씩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처럼 보채는 몸의 응얼거림 때문만이 아니라 좀 더 현실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먹고 살아야하는 생활이라는 것의 단상에서 긴요하게 써먹을 남자가 필요하다. 남자 덕에 기대어 살 생각이 추호도 없어도 남자는 필요하다. 남자가 없는 세상이라면 모를까 세상에 널브러져 있는데 쓸 수 없고 쓰지 못하고 살면 답답할 때가 있다. 없으면 궁해지는 법이여서가 아니라 좀 더 잘살아가려는 꿈이 있을 때 필요한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더 큰 욕심 안 부리고 필요를 줄이겠다는 각오가 서면 없어도 무방하다. 근사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완전한 삶을 위해 필요하다고 썰을 풀어대기도 하지만 그건 그들이 제정신일 때의 수작이고, 그 말의 이면에는 한편으로 보이지 않고 들키지 않는 마음속 한구석 어딘가에 한없는 자유로 일탈을 꿈꾸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으면 눈 하나 까딱 하지 않고 얼굴 표정도 조절할 수 있으니까. 가장 멋있는 포커페이스는 그러므로 무덤덤하거나 웃는 얼굴 일수도 있다. 얼마나 속기 쉬운가. 보라, 예수의 얼굴도 비참한 고통스러운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불상도 오만가지의 불안정한 자들의 얼굴 표정을 담은 것들이 있지 아니하던가. 왜 우리는 웃고만 살아야 하는가? 웃어야만 복이 오는가? 있는 그대로를 살면 안 되는가? 웃고 싶을 때 웃는 것, 설운 마음이 들 때 울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풀어 놓아야 한다. 만들고 조각하려 들지 않는 제각각의 형상들이 시샘과 양보 속에 자리를 나누어 가지는 것이 자연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메아리는 아닐까?

저 싫다면 자유로이 해 주마 하고 돌아서 혼자 살게 되면서 생활에 사내가 필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혼자 살아보겠다고 이를 악물었기 때문 엔지 그리 답답할 일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만들지 않았다. 제 새끼 셋씩이나 몸뚱아리 찢어가며 낳아 제 성씨 달아주고, 저 원할 때 이도령 맞이하는 춘향 같은 마음으로 오롯한 一片丹心 변한 적 없다마는 타고난 팔자가 더러운 것인지, 천하에 악연을 만난 것인지 합일치 못하고 돌아설 때의 사무침이 너무 커서인지, 모두가 도둑놈으로 보여서 세상 어느 놈도 믿지 않겠다는 서슬 퍼런 각오가 서려 그랬을까, 처음 몇 해는 답답함 없이 그런대로 잘 지나갔다.

왜, 그래도 처음엔 써먹을 일보다는 곁에 있어줄 사내가 더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혼자 지샐 밤이 두려워서 이혼을 망설이기도 했겠고, 기껏 몸 마음 다 바쳐서 자식새끼 낳아주고 어느 년 좋으라고 남의 아가리에 통째로 처넣기는 싫어서 고집을 부려보기도 했을 것이다. 뭘 잘했다고 도리어 몇 달씩 집구석을 외면할 때에도 시꺼먼 밤을 두 눈 말똥말똥 뜨고 속을 끓여가며 기다리면서 어느 년의 몸하고 붙어있을까 천불이 나서 미칠 듯 팔딱팔딱 뛰기도 했으리라.
그러한 여자의 심사를 미리 알아 그랬는지 그의 말마따나 계륵 같은 존재라서 아예 남 주기는 아까워 마치 IMF사태 때에 쓰러져가던 기업들처럼 부도는 났어도 법정관리에 들어가겠다고 한 적이 있다. 우습겠지만 그러니까 이혼이 부도라면 조강지처糟糠之妻가 조강지첩糟糠之妻이 되어 간간히 만나며 사는 것은 법정관리와도 같은 것이라는 해석이다. 웃기지 않은가. 나도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거절했다. 나이차가 나보다 8년 연상인 그는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시집이란 것을 가서 몸도 돌보지 않고 생기는 대로 애를 줄줄이 나재낀 나와는 달리 기업에서 잔뼈가 굵어진 사람답게 좀 더 전략적이고 현실적 제안을 해온 것이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가장 근사한 발의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싫고 단순하고 강직한 사상을 좋아하는 나는 그렇게 양다리를 걸쳐가며 요리조리 이득만 챙기려는 드는 듯한 제안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나란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의 말이나 태도처럼 남자가 필요하면 돈을 주고 살만한 배짱도 짓거리도 싫어 못할 위인이기는 하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은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방법을 추종할 수가 없는 것이고 아울러 그의 그런 제안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남자는 고플 수밖에. 생리 현상은 내 우울한 현실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딴에는 나를 생각해 준답시고 끌어낸 묘안이었다. 그 말은 누이와 어미를 속여서라도 나를 보호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쯤이야 잠재된 것이었다. 그러나 한 번 배알이 꼴린 나는 그런 제안조차도 가증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아니 절대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았다. 제 코가 석자인 중에도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눈 가리고 아옹하며 사는 것 자체가 싫으며, 그런 행동을 하게 되면 시어머니와 누이가 불쌍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하여 그를 믿고 공범이 되어서 감쪽같이 희희낙락거리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는 시간만 연장될 뿐 근본적으로 아무 것도 해결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고팠는가? 고팠다. 그것이 고작 성애에 국한한 것이었다면 내 발로 찾아서라도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하루 밤 그의 곁에서 그의 팔을 베고 자고 싶은 것이 절대 아니었다. 마치 화대를 챙겨 나오는 여인들처럼 다시 불러주기를 고대하며 저 가고 나는 나대로 가는 그 발걸음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서 감히 누구 안전이라고 수작을 부리는가? 해괴하고 망측한 망발처럼 들려서 가소롭게 코웃음 쳤다. “아니, 싫어.” 하고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입이 있으니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겠다. 그는 여자인 나를 생각했고 중년의 나를 걱정하여 법정관리를 하며 회생을 가늠해 두기도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없던 일로 하고 제대로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안 그런가? 도대체 뭐하자는 수작인가 말이다. 데리고는 잘 수 있어도 식구로 받아들일 수 없고 경제권을 내어줄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양육에 대해서도 아닌 줄을 알면서 삼수갑산三水甲山을 가시겠다?, 나 죽이고 너만 사시겠다? 라고 나는 해석했다. 그러다가 싫으면 말고? 말이지 하면서. 허구한 날 2만원, 3만원하는 모텔인지 지랄인지 끌고 가서 한 번씩 술기운에 안는 여자처럼 안아재끼면서 사시겠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매달려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아이들보고 싶다고 애원하길 바란다? 할 수만 있다면 그까짓 잘난 가운데 다리 싹둑 잘라 버리고 내 욕구도 꿰매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양가집 규수로 허물없이 자랐는데 내 성깔대로만 살 수 없어서 표시내지 못했다. 어쩌면 장차 닥쳐올 내 욕구를 알 수 없어서 망설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수천 번 생각했다. 그래도 이 땅에서 교육받고 자란 것과 내 자란 가정교육이 그리 틀린 것이 아니라면 내 이성적 판단이 옳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뇌까렸다. 내 인생이 중요한 만큼이나 네게도 네 인생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너를 보내리라. 남은 걱정을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안타까움과 불안감이 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후회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허나 그 방식대로도 도저히 살아갈 수 없겠다 하고 단호히 결정했다.

자고로 예로부터 열녀문烈女門이란 것을 왜 세웠던 것이겠나?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뇌가 있었기에 달랑 종이 상장 하나로 꼬시며 충성을 맹세하고 목숨 바쳐 일하도록 장려하는 우리 아버지의 공직생활처럼, 알량한 막대기 벌겋게 칠해서 열녀문 세워주며 한평생 수절하라 강요했던 것이 아니겠나. 지들은 못하고 하기 싫은 것을 강요하기 위해 별별 유치한 수작을 다 부리면서 근엄한 척 더러운 속임수의 지랄 발광을 떠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심지어 혼자 산다는 이유 때문에 寡婦라는 소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보았다. 나는 과부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과부는 남편이 죽은 여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과부라는 말에는 남편을 잡아먹은 여자라는 말이 숨어 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들어왔기 때문이고, 또한 그가 자기 상관이 과로로 죽었을 때 나를 그의 아내에게 인사시켜 주러가면서 저 여자 팔자가 세서 남편을 잡아먹은 것이라고 말을 했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헤어진 데에는 아마도 나와 그가 함께 계속해서 살면 내가 그를 잡아먹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사주팔자를 골백번도 더 보았을 그 집안이다. 그리고 그 골백번에 문제가 있다. 변화에는 변할 것과 변하지 않을 것이 있지만 골백번 변화를 추구하는 전혀 손해 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변화를 하려는 것이 문제가 된다. 하나만 믿고 따르지 않기 때문에 귀가 얇고, 그래서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 가는 곳곳의 제각각 예사로운 지껄임마저 다 받아들이기도 한다. 도대체 그렇게 바쳐대는 돈은 다 어디서 난다는 말인가. 첫째 누이 일찍이 바람이나 머리 깎고 중이 되어 떡 하니 절간을 차려놓고 천연덕스럽게 시주 돈을 챙기면서 어머니하며 천리만리 꼭두새벽부터 전화하여 생각해낸 묘안이라는 것이 고작 그것이던가. 어찌하여 그곳의 부처는 그리도 다른가. 천년만년 오래 저 혼자 지들 식구끼리만 잘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5년의 결혼 생활과 10년 동안의 이별 그리고 1년간의 연구원 생활을 거쳤지만 나는 아직 내 삶의 물음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나의 결론을 상큼하게 얻어 갖지 못했다. 너무 무거워서 배를 띄우듯 띄워 보내려고 한다. 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36에 멈춘 꽃다운 내 청춘의 살결은 축 늘어졌고 검은 나의 머릿결은 하얗고 바스스하게 물들어 갔다. 내 인생에서 더 이상 하릴없이 맥 놓고 그리워할 수 없다는 조급함이 그와 함께 잘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초조할 때처럼 다시 밀어 닥친다.

집에 들어오지 않던 그를 기다리며 이혼을 생각해 보던 그때 TV의 모 방송에서 연말에 어느 독거노인들을 취재한 것을 보았다. 삶이 찢어지게 가난한 그들이었다. 취재하는 사람이 물었다. 생활 형편과 자식에 대한 그리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세요? 솔직히 말해서 생활이라고 말했다. 자식에 대한 그리움은 살아 있는 한 함께 살고 안 살고를 떠나서 언제까지나 품고 가는 그리움 이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당장에 생활이라는 것이 주는 고통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리움도 밥을 먹어야 이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나. 배가 어느 정도는 차야 보고픈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겠나. 생명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나. 지탱할 힘이 있을 때 자식에 대한 그리움도 피어나는 것이리라. 하물며 그까짓 가볍게 날아간 남녀상열지사야.

나는 그를 떠나왔지만 내 살던 동안의 조강지처를 버릴 수 없다. 그까짓 돈 몇 푼을 그리도 꾀어 차려고 나를 조강지첩으로나 삼으려던 내 모진 인연에 대해서는 연을 싹둑 잘라버린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사무친 원한으로.

그렇다면 언제 가장 고프다는 것인가? 고프지 않다. 그렇게 견딜 수 없을 만큼 살 수 없는 것이 내 경우에는 없었다. 내 경우에는 사내들이 짐승 같은 모습으로 으르렁대며 욕설로 억지를 부리며 덤벼들 때 늘 불감당이다. 검도라도 배워서 함부로 까부는 인간들에게는 썩어빠진 대갈통을 초전박살 내면서 살고 싶다. 가장 억울한 경우는 만만하게 보여 도와주고도 욕을 먹게 되는 경우이다. 정작 싸가지가 없는 것은 상대인데 옴팍 뒤집어 쓸 때, 그러고도 너무나 뻔뻔스러울 때는 두 번 다시 처다 보기 싫다. 한마디로 영 밥맛이다. 인간사에서 사랑의 가장 정직한 모습은 주고받는 것이다. 양과 질을 그대로 받을 수야 없겠지만 그래서 나는 의리와 신뢰를 가장 존중한다. 엉큼한 사람들도 나는 싫어한다. 나는 분명하고 경우가 밝은 사람이 좋다.

우리 가족 간의 집안 사정으로 내가 관리해야 하는 세입자 가운데 이사도 가기 싫고 사전에 충분한 기간을 두고 미리 약속한 금액을 인상시켜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시세의 70% 밖에는 받지 않은 금액인데도 뗑깡을 부리며 막무가내로 나오는 인간 말쫑의 행동을 하였다. 이럴 때는 정말 마징가 Z 같은 무쇠팔 무쇠다리의 기둥서방이 절실히 필요하다. 밤이고 낮이고 시도 때도 없이 저 필요해서 불러내고 전화질 해대며 제 생각만 하면서 아무 일도 못하게 하는 인간 중에도 결국에는 언제 보았냐는 식으로 말하고 전혀 근거도 없는 소문을 만들어 퍼트리거나 제 발뺌만을 일삼으며 중상모략을 할 때에는 마징가 Z 세 개쯤 동원해서 아작을 내버리고 싶다. 두 경우 다 제 할 일 못한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남의 허물만 보이는 경우이다. 허물이 있으면 억울하지도 않다. 만들고 조작하니 그게 바로 문제다.
그저 혼자 사는 이혼녀라는 나에게 붙여진 딱지가 간단히 우스워 보이는 것일 뿐인 것이다.
한마디로 별 우스운 그지깽깽이 같은 인간 말쫑들이 똥보다 더러운 폼을 잡고 지랄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내가 누구인가?
그처럼 깽깽대며 말하는 사람한테 찾아 가서 이러고저러고 그동안의 수모를 전달했다. 사태를 파악한 그가 간단히 전화를 집어 들었다. 상대방이 똥보다 더러운 구린내를 살살 피우며 거들먹거리니 이편 깽깽이가 말했다. “선상님, 내 말 똑바로 들으시오. 경고합니다. 내가 아무개 누구인데 한번 만 더 깽깽대면 그냥 놔두지 않겠습니다.” 하고 목소리를 깔고 나긋나긋하게 단 몇 마디로 족쳤다. 그러니 저쪽 깽깽이가 바로 내게 다시 냉큼 전화가 왔다. 실수를 인정하고 당장에 준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내 친구와 내가 느긋하게 다시 나갔다. 전날에 저와 똑같은 그지깽깽이를 데리고 와서 여자 둘이 하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홀라당 뒤집어서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게 하던 무법천지의 그 그지깽깽이가 혼자서 눈깔을 살살 굴려가며 나타나 다시 정중하게 인사하며 사과를 요청했다. 생각 같아서는 제발 당장 나가주었으면 좋겠다만 인생이 불쌍하다 하고 참을 수밖에. 그지깽깽이들에게는 그지깽깽이를 붙여줘야 정신을 차리고 제 할 일을 하더라. 남의 집을 제 집으로 알고 뗑깡을 부리는 것도 문제지만, 남의 시간을 제 시간으로 알고 염체도 없이 흔전만전 써재끼고 제 기분 언짢다고 함부로 뗑깡을 부리는 그지깽깽이도 마찬가지라서 참으로 놀라웠다. 앞으로 그런 그지깽깽이가 한 번만 더 나타나면 이번에도 그지깽깽이를 붙여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지깽깽이에게는 그지깽깽이가 정신 차리게 하는 가장 직방의 명약이더라.

그러나 이럴 때 진짜 진짜 억울하다. 아직은 부모형제에게 힘 빌리지 않고 해결해 왔다. 혼자 사는 것도 보기에 딱하고 마음 아픈 데 그런 걱정까지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서 이지만 속으로 앓을 때의 그 치욕과 설움은 아무도 모른다. 이빨이 납작해지도록 갈리는 것이다.
그리고 미리 사전에 한 풀 꺾여 그만큼 배려하였으면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지들 처신 똑바로 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정말 이런 무법천지들과 상종하게 될 때 가장 인간의 비애를 느낀다. 그런 인간들이 판검사가 되면 뭘 하고 병원장이 되면 무얼 하나. 제 양심을 헌신짝처럼 버리고서 겉으로만 반지르르 하다고 어느 세상이 그리 쉽게 속아줄 것인가. 그러나 내가 혼자로서 그런 양심을 함부로 팔아 처먹는 잡스런 일당들에게 걸려든다는 것이 나는 참으로 가슴 아프다.

나도 모르고 어떻게 전개 될 지 알 수 없었던 활활 타오를 것 같은 젊은 청춘의 몸뚱이라는 것이 별것 아니었다. 육체란 것은 정신의 지배를 받는다. 마치 정신이 육체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둘러대는 사람들을 보면 우습다. 나는 그것이 인간이 지닌 성의 성적 조건이라는 것에 아직 공감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렇게 주장하는 그들이 지어낸 마술이다. 도망가기 좋은. 생물학 관련 혹은 정신분석 관련한 전문가들 중에 소위 앞장서서 말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도 나는 믿지 못하겠다. 마치 남자를 다 알고 그렇게 살아 본양 하는 데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 전문가를 지칭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사기를 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들이 달고 있는 브랜드가 그들을 편히 먹고 말하고 살 수 있도록 지지해 주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절대로 모두가 그들 말처럼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러한 면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이방인이요 부적응자일지도 모르겠다.

내 경우는 다만 억울하기는 해도 내가 동조한 일이니 참아야 했고 내 복이거니 체념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각자의 싱글로도 얼마든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체험해서 말할 수 있다. 물론 다 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지만 나는 그렇다. 남녀가 이루는 사랑만이 완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납득하지 못한다. 오히려 여성표를 겨냥한 발언쯤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기실 여자를 무지하게 좋아하거나. 그들의 표가 다수이고 지지 세력이 확고한지는 모르겠지만 다수의 주장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누구도 그 경계를 걸어보지 않고서 자신들의 과정만 옳다고 하는 것에 대해 어떨 때는 유치함에 짜증이 일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교육 받았고 지향해 왔고 그래서 더욱 오래 괴로움과 죄의식 속에 빠져있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은 나에게 ‘더 가라’라고 외친다. 아니 나의 의문은 아직도 해소 되지 않았고 그치지 않는다. 양 쪽의 경험을 부딪쳐 생활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행복한 것을 입증 받고 싶어 하거나, 마약에 빠진 것처럼 흠뻑 취해서 듣고 싶은 감정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에 삶은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 때문이다. 어떤 삶에도 사랑과 슬픔, 기쁨과 좌절, 행복과 상실 등이 조화롭지 못하면 결국에는 결핍이 아닌가? 마냥 웃는 것이 행복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나?

아무나 나를 과부로 지칭하게 만들고 아무나 나를 비웃게 만든 그런 식의 사랑과 결탁하고 싶지 않다. 아무렇게나 나를 그렇게 부르는 자들을 친하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혼자 사는 여자라고 해서 제 필요할 때 밤이고 낮이고 불러내서 도움 청하고 언제 그랬냐는 누구라도 불러만 주면 뛰어나올 거라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려대는 자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쪼아대고 진정으로 사과하기는커녕 여전히 제 잘났다고 지껄이는 자들과는 동무가 되지 않으련다. 뿌연 먼지를 알면서 집어넣어 비빔밥을 해먹을 수 없는 이유이다. 썩은 고기인 줄을 알면서 국을 끓여 맛있게 최선을 다해 끓인 양 스스로와 세상을 가벼이 하며 남을 대접할 수 없음이다.

이제 나는 나와 산다. 내가 원하는 서방과 내가 원하는 아내로 한 몸의 가장이며 조강지처가 되어 살아간다. 누구의 첩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남의 눈에 눈물내고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마음 편하지 않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고 현숙한 아내이며 멋진 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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