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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일 08시 04분 등록
벌써 수개월 동안 어디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사는 것인지 그의 아지트로 대변되며 떠돌던 부산의 희한한 곳에서 겨우 그를 만나 서울로 상경하여 시내의 한 호텔에 투숙한 후, 그는 주거를 옮긴 그들만이 아는 어머니와 누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증발이라도 하듯 새로 옮긴 집을 간간히 드나들며 나와 함께 머물렀다. 어디서 오는지 연락이 오거나 하면 함께 있다가도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고는 하며 외출 할 일이 있으면 나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물론 나는 꼼짝하지 않고 울산에서 처박혀 있을 때처럼 죽은 듯이 그 안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 낙이 없었고 누구에게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가 어디를 가는지 무슨 전화를 그리 속닥거리는지 알고 싶었지만 일부러 나가서 통화를 해대는 그에게 무슨 말을 캐묻고 들을 수가 있었겠나. 여전히 그가 하는 작태를 지켜보며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또한 무슨 작정을 하고 호텔로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가 그리로 데리고 갔고 있다가 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 이혼을 한다면서도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 지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으며 마치 사람 골려먹기로 작정이라도 한듯 이혼을 하자고 졸랐다 한숨을 쉬었다 하는 그의 이상심리와 교묘하고 잔인한 행동에 나는 분노하며 싸우다 말다 지치고 또 싸우다 말다 볶아 대기를 반복하며 씨름하고 있었다. 물론 호텔 안이니 크게 치고받고 싸우거나 던지거나 하는 일 없이 조용히 흐느끼거나 따지다 지치고 쓰러지면서 들러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날짐승이나 들짐승처럼 으르렁 거리며 지냈다. 그리고 아주 간간히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며 웃겨서 웃기도 하면서 말이다.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성정을 알기 때문에 그쪽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원래 화가 나면 말도 없이 어디를 훌쩍 떠나 집을 나가곤 하면서 자기들끼리만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도 해 주지 않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니 차라리 가만히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전화도 받기 싫으면 아예 코드를 빼버리고 사람이 있으면서도 정면으로 부딪혀 해결하지 않고 없다고 시치미를 떼고 마는 식이였으니까. 그래서 도대체 왜 무슨 심사로 이사를 갔는지 따지기보다 나 혼자 풀어야 하는 수수깨끼처럼 내 생활의 탐정가가 되어서 사지선다형 답안을 작성하여 이건지 저건지 물어보거나 그것조차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논술 문제를 풀듯 상상의 나래를 펴가며 소설을 엮어나갈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풀면 다행이고 그 마저도 오래 매달려 신경쓰다보면 지쳐서 나가떨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우리 친정에서는 절대로 그런 방식의 생활태도를 접한 적이 없거니와 상상도 해볼 수 없었다. 우리 생활습관은 곧이곧대로 여서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서 수습하고 해결을 하는 식이었지 일부러 피하거나 잡아떼는 식의 방법을 몹시도 거북해 한다. 필요하면 찾았다가 슬쩍 빠지고 마는 얌체 행위를 하거나 사람을 이용하려 드는 방식을 아주 격멸하리만치 싫어한다. 한 번 신세지면 갚고 상대가 도움 청하면 가능하면 해주고 불가능하면 못해주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식이지, 아쉬울 때면 찾았다가 돌려세우기를 하거나 하는 행위를 무척 가벼운 행동으로 여기며 생활에 왔던 것이라 도무지 이쪽의 시집 생활이 맞지 않았다. 시집은 매우 달랐다. 자초지종이라는 것은 전혀 없고 상명하달 식의 통보와 하달만이 있을 뿐이며 의견을 나누려고 질문을 했다가는 단박에 명령 불복종이라도 되는 듯이 오명과 낙인이 씌워지는 것이었다.

문제가 있거나 하면 가족이라고 모여서 이건 이거고 저건 저것이라고 이치를 따져가며 합당한 방법과 의견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무조건 거품 물고 쓰러지는 행위로서 밀어붙이는 것이다. 두고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어떻게 찍어 눌러서라도 당신들 하고 싶은 대로만 다 하며 살겠다는 심사가 아닌가. 그것이 고쳐지지 않는 중증의 지병과도 같은 것이란 걸 그때는 차마 몰랐다. 시어머니께서 늘 아들 아들하며 아들만 잘살면 그만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다 시피 하는 양반인지라 까다롭기는 해도 진실로 애틋하게 아끼며 염불하듯 살아가고 있었던 것인 줄 알았다. 결혼도 마치 몸만 오면 되는 것처럼 말씀하고 땡잡은 거라며 하도 자신 있어 하며 다 준비가 되었으니 저희들만 잘살면 된다고 해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설혹 반만 믿는다 해도 도저히 이렇게까지 전혀 딴판일 줄은 몰랐다. 또한 시어머니와 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결혼이라는 것을 해서 5년간 살 섞어 살았고 제 새끼를 셋이나 낳은 내게 끝까지 이사한 곳을 말해 주지 않고 철저하게 함구하기로 약속이나 짠 듯 알 필요 없다고 일관하고 있는 그를 도저히 옳은 정신의 사람으로 이해 할 수 없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차며 세상에 그런 경우가 어디 있는가. 사람이 인연되어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헤어지는 절차도 몹시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생을 그만큼 살았고 사회생활을 그만큼이나 하고 그만한 직위까지 거쳤다는 사람이 하는 짓거리라고는 유치하고 쪼잔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모녀의 치마폭에 싸여서 상식이고 뭐고 전혀 없이 그저 안하무인이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으로 마치 정신이 돈 사람처럼 처신을 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왜 사람이 순리로써 해결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잡아가며 주리를 틀려고 하는지. 제대로 차근차근 처신하지 못하고서 쌍놈의 집안처럼 무지막지하게 막 나가는가 말이다. 이런 행동들이 나는 무척이나 이기적인 사람들의 불한당 같은 사고와 행동으로 밖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이혼할 수 있고 헤어질 수 있다. 하지만 헤어진다고 해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막무가내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리라. 어디 인생이 그리 대수롭지 않게 간단한 일이던가. 답답함에 지금도 애가 탄다. 나는 말했다.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서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찾다가 못 찾고 죽게 되면 죽어서라도 기어이 찾고야 말겠다고. 아마도 내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무친 연기가 용의 입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과도 같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신경이 예민하고 아주 잠귀가 밝은 사람이다. 나는 하다못해 당시의 무전기 같은 모토로라에서 나온 그의 휴대폰도 열어 확인해 보지 못하고 살았다. 그토록 철저한 사람이었다. 사실 전화 거는 것 외에 그 사용법도 잘 몰랐다. 그는 자신의 물건에 대해 함부로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는 하였다. 그래도 자기 어머니는 아들의 지갑을 서슴없이 열고는 하더구먼. 무슨 놈의 비밀이 그리 많은 건지. 이건 마누라인지 수행비서인지 모르게 격을 두고 사는 것이었다.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그렇게 지존으로 지내야만 하는 것처럼 나를 닦달하고 철저하게 길들이려는 심사로 바빴다. 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덤비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당연히 그런가보다 의아해 하며 살아가고 있었으나 문제는 게다가 가족들까지 한시도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그저 아들의 일 아들이 지껄여대는 입만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도 남편을 존경하고 살고 싶었고 그 역시 존경을 받고 살고 싶었을 테지만 나는 그에 대해 털끝만큼의 숨김도 없이 무한정 오픈인 것에 비해 그리고 그 자신은 나에 대해서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아야 하면서 본인은 마치 사감 선생님이기라도 한 것처럼 지시하려고만 굴었던 것이다. 자기의 허용 범위는 근엄하게 지켜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더군다나 부부라면 우러나와서 행해지는 감정과 합일의 발로이지 억누르고 강요한다고 해서 품위가 유지되는 것이 절대 아닌 것이지 않은가. 자유롭고 싶으면 자유만큼의, 숨기고 싶으면 숨기고 싶은 만큼의 허용이 쌍방에 똑같이 주어져야 공평하고 숨을 쉬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겠나. 언제까지나 한사람은 명령하고 한사람은 전혀 의견이나 이의제기를 할 수 없이 오로지 “네”만 하고 살라고 하니 말이 되나. 멍멍 짖어대는 개도 말 못하는 듯한 들풀도 하찮은 걸레쪼가리도 심지어 바퀴벌레조차도 그렇게는 살지 않을 것이다.

상대를 짓눌러서 세우는 권위에는 그 반발의 힘이 더 거세어 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일단 참아야 한다는 자체가 언젠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들을 예견하는 것이 아니겠나. 나는 어울림을 바랬지만 그는 명령과 복종만을 원했다. 수평으로 동화될 수 없는 수직의 상하 명령체계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사회생활에서도 이런 사람들과는 친하지 못하다. 술을 한 잔 사도 값을 치르는 대신 조직의 보스인양 헤쳐모여를 명령하는 위인들이 가끔 있는데 그것이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존인 채 하는 꼴을 보이는 사람과는 편치 않고 아니꼬워서 눈뜨고 도통 못 봐주는 것이다. 그런 술이나 밥은 나눠먹지 않는 것이 내 삶의 방향이고 성격이다. 상대가 베푼 만큼 잊지 않고 갚으려고 하는 성격인데다가 나로서는 상대들에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강요하듯 요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다. 행사에 참여해도 남들이 다 준비해 놓으면 마치 높으신 분 행차인양 나타나 한껏 거들먹거리는 위인들에게는 정감이 가지 않는다. 하루 종일 입을 벌려 하는 이야기가 제 잘난 이야기에만 흥분하고 남에게는 탈과 험만 들어가며 지적을 해대기를 일삼는 취향들을 만나면 거부감이 인다. 자신들의 작은 공로는 위대하게 부풀리고 서슴없이 동조를 구하여 기쁨을 만끽하려 들면서 타인의 혁혁한 공로는 도마 위에 올려놓고 씹기를 주로 일삼는 위인들을 보면 눈을 끔벅거리며 비벼서 궁금증에 그 면상을 다시 쳐다보게 된다.

벌써 그와의 본격적인 실랑이가 6개월째였고 근본 대책은 세우지 않고 나만을 따르라고 협박하며 급기야 홧김에 잠시 나가는 것도 아니고 계획적으로 유기를 하다시피하며 아이들을 볼모로 잡듯 데리고 올라가 쥐도 새도 모르게 이사를 가서 잠적해버리고 그 빌미로 월급통장까지 몰수해 가고는 일체의 생활비를 끊어버리고 밖에서 출퇴근을 하며 나돌아 다니는 것이었다. 나는 집안일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 싸운 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공공연히 회사 안팎으로 먼저 떠벌리고 다니며 굿이다 뭐다를 해가며 본격적으로 방황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이 무언가에 미치면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정말이지 그를 두고 어찌 대한민국 중견 간부급 중년의 가장이라고 할 수 있었겠나. 어찌 그리도 사리분별 없이 막나갈 수가 있는가. 말을 들으라고 하면 듣기를 하나 제 고집대로만 움직이면서 똥 누러 갈 때와 똥 누고 나서의 입장을 확 바꿔버리니 어떻게 그러한 그를 믿고 의지하여 살 수가 있겠는가. 설움에 복받치고 기다림에 지치고 녹아나는 애간장에 나는 시름시름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게 죽어갈 뿐이었다. 내 삶은 앞으로 나가기는 고사하고 그렇게 발목을 잡히어 우두커니 맴돌며 혼란스러움에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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