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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3일 23시 50분 등록
어린 시절 주말이 되면 영화를 보기 위해 <주말의 명화>나 <토요명화>를 기대감 많은 눈동자로 TV 앞을 차지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과 달리 컴퓨터가 귀하던 시절 신문의 TV프로그램 편성표는 초등학교 학생에게 수업시간표만큼이나 소중한 스케줄이었다. 특히 ET와 Bach to the future와 같은 스필버그 영화들은 어린 소년의 마음을 참으로 행복하게 했으며, 상상의 세계로 떠날 수 있게 만들었다. 영화는 개인들의 보편화된 꿈을 신화적 상징 아래서 새롭게 재창조하고 있다. 이 재창조의 작업에 신화(神話)는 많은 모티브와 영감을 지속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영화산업을 움직이는 헐리우드의 영웅 영화들은 대부분 신화에서의 영웅 내러티브를 그대로 복제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웅영화들은 신화의 영웅구조, 분리-입문-귀환-소멸의 형태로 귀착되고 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던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신화적 측면에서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느꼈던 현란한 영상과 긴박한 장면들에 감동은 지금도 여전하다. 물론 여러 상징의 이미지들은 충분히 혼란스웠으며, 이해가 될 듯 말 듯한 애매한 내용전개에 꽤나 남감해 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어려움은 영화에 대한 오기를 불러일으켰고, 이 오기는 반복적인 영화시청을 가능케 했다.

익히 알려진대로 이 영화는 <기독교 신화>에 기반하고 있다. 이 글은 전체 영화에 대한 스토리 라인 보다는 주인공들이 차지하고 있는 상징의 의미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을 통해 이 영화가 다분히 기독교 신화를 새롭게 상징하는 영화임을 말하고 싶다. 영화에 대한 스토리가 궁금하신 분들은 꼭 영화 보시길 권한다.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까.

영화 속 주인공 네오(Neo)는 새로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Neos에서 파생한 접두어로, 신기원을 가져올 구원자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뭔가 새로운 세계 혹은 새로운 인간형의 원형이 될 존재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름이 바뀌는 것 역시 성서적이다. 지금도 카톨릭에서는 영세를 받으면 이름을 바꾸며, 그 이름을 '본명'이라 부른다.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앤더슨은 새로운 네오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또한 영화에서는 앤더슨이 네오가 되기 위해 자궁 속을 빠져 나오는 듯한 길을 통과해 양수처럼 끈적 거리는 액체를 뒤집어 쓰고 알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거듭나는 것이다. 매트릭스의 인간배양 인큐베이터에서 빠져나온 이후에야 네오는 '그'(Jesus)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영화에서 저항군의 지도자 역할을 담당한 모피어스. 모피어스(Morpheus)는 그리스 신화에서 꿈의 신으로, 어둠을 뜻하는 그리스어 Morphnos 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그는 시종일관 검은 옷을 입고 있다. 메시아 네오를 찾아내고 교육하며 그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다. 그는 세례 요한 혹은 모세의 모형으로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자기 확신 즉 믿음으로 네오 즉 메시아를 찾는다는 것이다.

네오의 연인이며, 여전사인 트리니티(Trinity). 그녀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뜻한다. 삼위일체는 성부(하나님), 성자(예수), 성신(성령)이 한 분이라는 '믿음'이 아니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교리적 변증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을 맞이한 메시아 네오를 사랑의 힘으로 '부활'시킨다. 기적을 부른 그녀의 입맞춤은 막달라 마리아를 연상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막달라 마리아는 청년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부었으며 입을 맞추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네오의 부활은 예수의 부활과 그 맥락을 함께 한다. 이 밖에도 예수의 제자 중 한명인 배반자 '유다'를 상징하는 사이퍼. 그는 저항군의 전사였으나 감각의 쾌락을 위해 기꺼이 동료를 배반하고 죽는다. 또한 예언자 오라클이라는 인물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주인공 네오가 가는 길에 대한 조력자(助力者)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밖에도 다른 등장인물들은 예수와 12제자를 상징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아주 멋진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Neo, sooner or later you're going to realize, just as I did, there's a difference between knowing the path and walking the path. 네오 너도 조만간 깨닫게 될거야. 단지 나도 그랬지만,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

이 영화에서 네오가 메시아가 되가는 과정은 아는 단계에서 믿는 단계로의 여정이다. 예를들어 초기에는 비밀요원들의 총알을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말씀(!)만으로 적들의 총알을 멈춰 세우는 기적(miracle)을 행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최종적인 단계에서는 자신이 완전한 메시아임을 믿는다. 이 영화에서 세상을 구원하는 키워드는 ‘믿음’이다. 단순히 논리적으로 인식하고 아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모든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이 영화는 단순하게 해석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성경에 문외한인 내 입장에서 단편적인 시각에서 영화를 바라보았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다분히 기독교 신화의 내러티브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신화(神話)들은 먼지 쌓인 종교적 경전과 고서(古書)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 현실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 숨쉬고 있다.

이 영화에서 신화적 교훈을 찾는다면, 자신의 삶에서 진정 영웅(英雄)은 바로 자신이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자신에 대한 완전한 믿음’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신화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이미 완전한 존재(存在)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변화의 갈림길에 서있고 변화를 간절히 꿈꾸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꿈꾸는 변화의 성공열쇠는 미래의 변화된 모습에 대한 자신에 대한 완벽한 믿음, 그것이 전부다.

“놀랄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4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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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4.14 09:55:47 *.122.143.151
거암,
메트릭스에 이런 심오한 뜻이..
영화로 볼 때도 좋았지만, 기독교 종교 교리에 맞추어 가며,
영화를 토막토막 분해를 해보니 더욱 쏙쏙 들어오네..

다만 한가지 의문이 가는건,
네오만이 영웅인가? 네오만이 메시아인가? 메트릭스, 그 공간은
네오라는 구세주에 의해서만이 구원될 수 있는 것인가?
어려워, 어려워... 알려줘... 말해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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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4.14 11:53:50 *.97.37.242
이런 이런, 혹시나... 했더니 거암이 같은 주제를 다루었네

나는 story 위주로 정리하느라 어제 인터넷으로 영화를 두번이나 보았는데, 거암은 한단계 뛰어 넘어 내가 2탄으로 정리했으면... 했던 내용을 주제로 삼았네요. 아뿔사!!

ㅎㅎㅎ, 하지만 좋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분석 내용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난 영화를 보면서 기독교 보다는 불교적 느낌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사에서도 그렇구 말이죠. 나중에 한번 토론 해 보죠.

암튼 다음번 2탄 정리할 때 거암의 컬럼도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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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희
2008.04.14 12:12:30 *.41.62.236

두 남성분의 칼럼소재가 같다니.
하기사 매트릭스안 의 표상이 문학시간에도, 영화시간에도 많이 다루어 지더군요. 중환씨의 논리적 분석에 매트릭스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집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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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4.14 13:29:17 *.117.68.202
"네오 너도 조만간 깨닫게 될거야. 단지 나도 그랬지만,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 "

야 이거 너무 멋진거 아냐..

그데 왜 난 그런 영화를 보면서 졸지..ㅋㅋ
메트릭스 보면서 졸았거던..ㅎㅎ

이런 말 나왔는줄 알았으면 쌍심지켜고 보는건데 말야..
ㅎㅎ
거암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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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정
2008.04.14 13:39:34 *.84.240.105
이 영화 못 봤는데,,, 두 분이 이렇게 같이 글감으로 사용하시니 꼭 봐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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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14 15:29:40 *.244.220.254
매트릭스에 대한 주인공들의 묘사는 다른 영화광들의 논평에서 무단(?) 도용해서 약간의 짜집기를 했답니다. 자수~
그런데 신화적 측면에서 이만큼 좋은 영화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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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4.14 17:55:31 *.97.37.242
거암, 짜깁기가 대수인가?
중요한건 자신의 생각과 말로 표현하는 것이지.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자료를 얻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또 그렇게 따지면 짜깁기 안하고 순수하게 자신의 생각과 말만 가지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기나 하겠는가? (실은 나도 가끔 짜깁기를 한다네...ㅎㅎㅎ)

짜깁기를 하더라도 많이 생각하고, 자기적으로 만든 상태에서의 짜깁기라면, 자수하고 말고 할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네.

여하튼 그만한 일에 '자수해서 광명 찾자'는 생각을 한 거암을 보니, 우리 4기들의 앞날이 밝아오는 듯한 느낌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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