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62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9년 4월 22일 01시 50분 등록




도화 아래 잠들다


                                       김선우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 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

 


시집『도화 아래 잠들다』,김선우 저, 창작과비평사, 2003

 복숭아꽃.jpg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4 [리멤버 구사부] 오늘을 실천하라, 내일 죽을 것처럼 정야 2019.05.27 1582
103 [시인은 말한다] 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 정야 2019.05.20 1779
102 [리멤버 구사부] 우리가 진실로 찾는 것 정야 2019.05.20 1404
101 [시인은 말한다] 봄밤 / 김수영 file 정야 2019.05.20 2213
100 [리멤버 구사부] 부하가 상사에 미치는 영향 file 정야 2019.04.29 1599
» [시인은 말한다] 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file 정야 2019.04.22 1628
98 [리멤버 구사부] 죽음 앞에서 file 정야 2019.04.15 1570
97 [시인은 말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랜터 윌슨 스미스 file 정야 2019.04.08 2435
96 [리멤버 구사부] 인생은 불공평하다 file 정야 2019.04.01 1693
95 [시인은 말한다] 상처적 체질 / 류근 file 정야 2019.03.25 1609
94 [리멤버 구사부] 시처럼 살고 싶다 file 정야 2019.03.25 1400
93 [시인은 말한다] 꿈꾸는 사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file 정야 2019.03.11 1584
92 [리멤버 구사부] 도약, 그 시적 장면 file 정야 2019.03.04 1609
91 [시인은 말한다]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 이근화 file 정야 2019.02.25 1795
90 [리멤버 구사부] 흐름에 올라타라 file 정야 2019.02.25 1297
89 [시인은 말한다] 벽 / 정호승 file 정야 2019.02.11 2205
88 [리멤버 구사부] 어울리는 사랑 file 정야 2019.02.07 1615
87 [시인은 말한다]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file 정야 2019.01.28 1756
86 [리멤버 구사부] 사람의 스피릿 file 정야 2019.01.21 1277
85 [시인은 말한다] 삶은 계란 / 백우선 file 정야 2019.01.21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