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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4일 04시 36분 등록
2003년 6월 22일로 기억된다. 이날을 날짜까지 기억할 수 있는 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이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정확히 이틀 후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뭐가 그리 급하셨는지......

불길한 예감이란 것이 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내 잇몸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나왔다. 오전 내내 그러더니 점심을 먹고 난 후에도 잇몸의 피는 그치지 않았다. 오후 늦게 몸에 진동이 전해왔다. 전화가 왔다. 아버지께 온 전화였다.
“엄마 빨리 오라고 해라. 몸이 좀 이상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아버지 음성이다. 그때 내가 집에 가봤더라도 아버지가 그렇게 빨리 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도 늘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투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음날 새벽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이상하시다. 빨리 와봐야겠다.”
아~~ 그때서야 믿기 싫은 불길한 예감의 정체가 눈앞에 다가섰다. 나는 속으로 안되는데 라고 삭히며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16층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마저 나를 답답하게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식탁 의자에 앉아계셨다. 나를 보는 순간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속으로 왜 이제 왔느냐며 서운해 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버지는 너무 탈진해 계셨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밤새 설사를 하셨다고 했다. 병원에 가자며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려 했을 때 아버지는 필요없다시는 눈치로 나를 뿌리치려 하셨다. 하지만 그 뿌리침에는 아무런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그 카랑카랑 호통 치시던 모습이 하루 만에 어디 가셨단 말인가? 나는 아버지를 내 차에 태우고 안산고대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119구급차를 불러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부축을 받지 않으시려 하셨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혼자 힘으로 그렇게 애쓰시며 응급실로 걸어 들어가셨다. 차에서 내려 응급실 문까지는 불과 10미터도 되지 않았다.

아버지를 응급실 침대로 모셨다. 여러 명의 의사들이 왔다. 상황을 물어보며 몇 가지 검사를 했다. 순간 의사와 간호사들의 행동이 이상했다. 이분들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졌다. 그리고 더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아버지 주위를 두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건 처음 듣는 용어였다. 쉽게 설명해달라고 의사선생님에게 부탁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금 환자분의 혈중 산성화 정도가 너무 심각합니다. 정상인보다 500배 정도 더 악화된 상태입니다. 의식이 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좀 힘겨워하시기는 하셨지만 나와 함께 걸어들어 오셨는데. 뭘 잘못 본 것이 틀림없다며 나는 애써 왜면 했다.

순식간에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 담당의사의 이야기는 나를 너무나 당황스럽게 했다. 의사선생님은 아버지의 의식을 돌려놓으려는 듯 계속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자꾸 뭘 드셨냐며 따지듯 물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으셨다. 아니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셨다. 그때까지 조금의 의식이 남아계셨었다. 그리고 바로 투석에 들어갔다. 그것이 조금이나마 삶의 가능성을 연장해 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1993년 군복무 시절의 일이다. 나는 포병대대에 배치를 받아 군생활을 했다. 자대에 배치를 받은지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로 기억된다. 하루는 포대장님이 직접 직무실 청소를 지시하셨다. 포대장님 직무실은 서무계나 교육계가 하는 것인데 이례적인 일이었다. 바닥을 청소 하고 책상을 닦으려는데 편지 한통이 보였다. 무심결에 지나치려는 순간 낯익은 이름 석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이름은 내 아버지 함자였다. 나는 그 편지를 열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마운 포대장님. 내게 아버지의 편지를 보여 주려고 일부러 청소를 시키셨던 것이다. 편지 내용은 못난 자식을 돌봐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과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한점을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한참을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정을 느끼던 순간이다.

정비병 주특기를 부여받고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 나에게 정비병으로 갈 기회는 희박해 보였다. 선임병들이 넌 포반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는데 며칠 후 대대본부 정비병으로 발령받았다. 그 이유를 그제사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에 포대장님께서 내게 많은 배려를 해주신 덕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주 나는 조셉 켐밸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란 책을 읽었다. 책 내용에 ‘아버지와의 화해’라는 소제목을 보면서 문득 군복무 시절 내 아버지의 일이 생각났다.

나에게 영웅은 아버지다. 정말이지 아버지는 여러 얼굴을 하고 계셨었다. 잔정이 유난히 많으셨던 아버지는 누나가 겨울 따뜻하게 보내시라고 사드린 오리털 점퍼를 새벽 신문돌리는 아이에게 선뜻 벗어주었다. 누나와 어머니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하셨지만 난 그런 아버지가 좋았다. 밤새 순찰도는 경찰 아저씨들에게 고생 많다며 일부러 박카스 한박스를 사들고 파출소로 들어가시던 아버지셨다. 고향에서 함께 지내시던 아저씨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가 두 손 꼭 잡고 눈물을 흘리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동안 아버지의 좋지 않았던 기억을 잊을 수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제가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 사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마지막 떠나보내던 그 순간 아버지의 눈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저에 영웅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 적적하시죠..
어머니와 막내 현성이 이야기 좀더 해드릴 께요.

열흘 전이었어요. 2008년 4월 3일 이었어요. 어머니 주민등록이 서울 누나내로 되어있었어요. 셋째 누나가 어머니 명의로 조그만 집을 샀었나 봐요. 그 기간이 한참 되서 주민등록을 저희 집으로 옮기려고 어머니와 회사에서 가까운 동사무소엘 갔었어요. 어머니 인감도장이 어디 갔는지 찾을 수 없어 새로 인감을 만드는 것 까지 하려고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주소지 관할 동사무소로 가야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어쩔 수 없다며 막 나오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시며 뭘 자꾸 보시는 거였어요. 그러시고는 “아이고 이쁘기도 해라” 하시며 눈을 못 때시지 뭐예요. 그건 다름 아닌 동사무소 안에 활짝 핀 진달래꽃이였어요. 그렇게 환하게 웃으시는 어머니를 뵌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 기억나세요. 아버지가 이맘때면 산에서 꺽어오시는거... 그거 진달래꽃이었잖아요. 참 볼품없게도 뚝 부러트려 오셔가지고는 소주병에 진달래 꽃을 꽂아 놓으셨잖아요. 아마도 엄마가 그때 그 진달래꽃이 생각나셨나 봐요.

어제 아버지 손자 명기, 재민이와 아버지가 참 아껴주셨던 며느리와 함께 꽃을 사러 화원에 갔었어요. 그날 엄마의 환한 모습을 뵈면서 활짝 핀 분홍빛 꽃이 핀 화분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아내와 어떤 꽃이 좋을까 한참을 골랐어요. 아내는 뭘로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어요. 다 이쁘다면서 저에게 골라보라고 했어요. 그 순간 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아버지가 고르시면 어떤 꽃을 고르실까. 바로 고를 수 있었어요. 아버지가 좋아하는 꽃이 있었거든요. 그 꽃은 머리 쪽이 활짝 피었고, 아래는 아직 덜 피었어요. 조금 지나면 환하게 피어날 것 같더라 구요. 그 꽃을 보고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전 그렇게 좋아하시는 모습 처음 봤어요. 엄마도 그 꽃에서 아버지를 보셨나 봐요.

아버지 막내 현성이 걱정 아직도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어요. 하사관을 제대하고 식당 차린다며 어머니 속께나 썩혔드랬어요. 벌써 3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그 후 여기저기 식당일을 배운다며 많이도 돌아다녔어요. 현성이가 역마살이 우라지게 꼈었나 봐요. 들어가는 식당마다 2개월을 못 있고는 다른 곳으로 옮겨 다녔어요. 제가 막내 고자질 하는 것 같아 형으로써 좀 그렇긴 하지만 아버지 앞이니 이실직고해야 할 것 같아서요. 3년 전에 식당 차린다고 했을 때 제가 못하게 말렸거든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좀더 배운 다음에 생각하자고 했었는데 그때 많이 서운했었나 봐요.

아버지 막내가 내일이면 아주 작은 실내 포장마차의 사장이 되요. 녀석 지금 많이 들떠있어요. 아버지가 남겨주시고 가신 돈을 막내에게 투자했어요. 아버지 자주 들러주세요. 막내가 잘 할 수 있도록 힘도 실어주실꺼죠. 아버지 종종 연락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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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14 09:02:11 *.244.220.254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어머니 이상으로 가슴 저미게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아버지께 천진난만한 조셉 캠벨의 느낌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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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희
2008.04.14 12:01:04 *.41.62.236

왜 아침 부터 아버지 생각나게 하고 그래요. ㅠㅠㅠ
아버지를 기억하는 그 마음이 참 이쁩니다. 홍스. ^!~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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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4.14 12:38:30 *.248.75.5
나이들어 제 새끼 길러봐야 부모 마음 안다는 거..
이 글 보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아버지를 자신의의 영웅으로 보는 홍스 마음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대 아이들이 그대를 또 그렇게 기억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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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4.14 13:08:12 *.117.68.202
저는 뭔 일을 할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토해내야 신열이 내려요.
왠지는 잘 모르겠어요. 평생 아버지와 대화라는 것을 해보지 못했어요. 제가 그래서 그렇게 낯을 가리는지 모르겠어요. 변경연에서 만큼은 낯가림이 없었으면해서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지켜주실 것 같아서요..^)^

거암 고마우이..^^ 거암 아버님은 정말 캠벨 선생님의 느낌이 나실것 같다.

지희님..ㅎㅎ 미안해요..

소은 빨간모자님..ㅋ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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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4.14 15:42:14 *.122.143.151
홍쑤야~ 슬프다... 그리고 내가 참 불효자식이다.. 못난 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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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최현
2008.04.14 16:02:50 *.97.37.242
나도 중학교 다닐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홍스 맘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러길래 "있을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하는 옛부터 전하는 명문(?)이 있잖아요.

나는 지금 살아계신 어머니에게 잘하려고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항상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사는게 인생인지 몰라도...

그런데 그 명문(?)을 누가 말했지? 혹시 캠벨인가? 요샌 뭔 생각하면 항상 캠벨이 따라다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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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4.14 18:56:05 *.117.68.202
재우성.. 앞으론 재미난 이야기로 깔아드리리다..ㅋㅋ
괜히 분위기 잡아서 미안혀유..ㅎㅎ

큰성.. 앞으론 말 놔주세요..ㅎㅎ
제가 젊은 형님으로 깍뜻이 모시겠습니다.ㅋㅋ
넵.. 저도 어머니께 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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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8.04.14 19:31:24 *.128.229.72

홍스, 길게 써라. 짧다.
아버지도 추억이 긴 것을 좋아하신다.
물론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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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4.14 20:30:02 *.117.68.202
넵 사부님..
오늘 중으로 다시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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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4.15 10:09:17 *.97.37.242
홍스, 글쓰기가 잽싸구먼..

난 직장에서도 후배 직원들에게 쉽게 말을 놓지 않는 성격이라네.
나이들어서, 같은 인격체로 만나서 말을 놓는다는게 왠지 조심스러워서 말이지. 말을 놓지 않는다는건 서로 존중한다는 좋은 의미가 있지.
왜 옛날 어른들은 부부지간에도 존대를 했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말을 놓지 않으면 서로 간에 거리가 좁혀지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는것 같아. 그래서 사람에 따라 선별적으로 말을 놓기도 하고 올리기도 하는데, 일단 말을 놓기까지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타입이라네

그런데 우리 연구원 사람들은 좀 특별하다고 생각하네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이 아니거든..

그런면에서, 홍스의 뜻을 받들어, 앞으로 말을 놓겠네.

홍스야, 이렇게 부르니 좋구나.
그리구 젊은 형님으로 모신다는 말, 참 듣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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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4.15 12:16:10 *.117.68.202
정산 큰형님 감사합니다.
저도 직장이나 어딜가나 말을 쉽게 놓지 않는 성격이예요.
그렇게 하라고 해도 잘 안되더라구요. 제가 더 불편해서 그런가봐요.

지난번 꿈벗 16기에 다녀왔어요. 그때 이틀째 저보다 3살 아래인 친구가 나이순으로 그냥 말 편하게 하자고 제안을 하더라구요.
시간이 지나고 관계가 편하게 되어야 서로 허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우린 순식간에 10년지기처럼 그렇게 가까워졌어요. 저에겐 이제것 경험하지 못했던 그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꿈벗 16기는 서로 서로에 대해 벽 하나정도는 무너뜨린 것 같더라구요.

큰형님 저는 이곳에서 만큼은 그동안 관계에 파격을 주려해요.
될수 있으면 더욱더 친해질 수 있도록 해보려구요.
그동안 저와는 다른 또다른 나를 만들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큰형님께서 저를 동생으로 맞아주시니 영광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형님..^)^

그리고 이글을 올릴까 어떨까 고민을 했습니다.
모든걸 내던지기로 했습니다.
내속에 있던것이든 그냥 문득 생각나는 것이든 그것을 그냥 글로 막 풀어내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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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4.15 17:32:19 *.97.37.242
영웅의 모험을 시작하는 자세를 갖추었구나, 홍스

우린 켐벨에게서 이런 좋은 문구를 배웠지,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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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용
2008.04.16 13:15:50 *.234.78.45
현웅이형...따뜻하고 애틋한 글 잘 읽었어요..
처음 수정하기 전 글도 간결해서 좋았지만 지금 새로 쓴 글도
참 좋네요..역시 글은 길고 봐야되요..그쵸?

파격적인 형의 모습..몽치스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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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환
2008.04.16 20:47:57 *.34.17.31
가슴이 짠~합니다.

마음이 따뜻한 남자. 홍스형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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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8.04.18 00:46:14 *.100.105.93
홍스야.. 여기서 너의 자랑스런 아버님 이야기를 듣게 되는구나.. 모두들 그런 마음들인거 같은데 나 역시 우리 부모님 생각에 잠시 마음이 울컥해졌단다. 어디에서건 듬직하고 사랑받는 홍스여서 참 좋구나. 너하고 조금 더 많은 접속을 하고 싶구나. 속초가서 이바구 많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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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4.18 13:11:43 *.117.68.202
범용아 고마워..^^ 몽치스에서 이미 난 파격이다..ㅋㅋ
너도 그렇듯이말야..ㅎㅎ

지환아~~ 고마워. 너에 마음이 더 따뜻할꺼야. 우리 함 달궈보자..ㅋㅋ

기찬성... 잘지내지. 속초에서 봐. 보고싶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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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4.19 14:01:35 *.36.210.11
냉큼 길어지는 그대를 보며

넓어져라 하면 넓어질 것이고

깊어져라 하면 깊어질 것이다.

온 마음으로 열려 다가가는 것 그것이 그대 성취의 첫 번째가 아닐까 한다.

힘에 부쳐도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가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한다.

꽃처럼 활짝 피는 그날까지 쉼 없이 가라. 모아모아 가라. 처음 마음 잃지 말고 약속지켜 살피며 가라. 이루고 또 이루며 나누고 돕기 멈추지 말라. 그 속에 가장 아름다울 사람은 그대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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