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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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워크에 숨겨진 ‘여유’
문 워크를 혼자 마스터했다. 걸음을 역행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중심을 잃고 몇 번을 자빠지면서도 즐겁게 따라 해본다. 잗다란 유행보다 40여 년 전 음악과 율동에 마음을 빼앗기는 내가, 비로소 먹어대는 나이를 부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모양이다. 춤에 매료되는 건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아이들의 놀림을 받으며 방구석에 구부러지면서도 연습을 해대는 건 또 뭔가 싶다. 덕분에 빌리 진 (Billie Jean) 가사와 노래의 유래를 알게 된 건 덤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참 아까운 뮤지션이다. 느닷없이 그 춤에 꽂혀 밤새 연습했다. 멋진 춤이다.
문 워크를 배운 다음 시도 때도 없이, 어디서나 문 워크를 구사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보이지 않게 소심한 문 워크로 후퇴한다든지, 회사 복도에서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흐릿한 벽면 반사들 통해 모션 중에 뒷다리가 자연스럽게 밀리는지를 확인한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낭패를 보게 되는데 베트남 현지 직원에게 두어 번 걸린 적이 있다. 땅을 파고 숨고 싶은 중에도 덜 부끄럽기 위해선 천연덕스럽게 물어야 한다. “보기에 스무스한가?” 그들은 손뼉을 치며 뒤로 넘어간다.
그러다 어느 날, 이 춤에 서식하는 철학적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내 나름의 개똥철학이지만, 이 춤 문 워크, 앞으로 가듯 뒤로 간다는 역설적인 몸짓은 물리학적 재해석을 요구하는데 법칙 너머의 인간을 갈구하는 의지가 아로새겨진 춤. 또는 앞으로 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들을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음 해석에 마음이 간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순 없지만 붙잡을 수도 없는,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개되는 삶에 지쳐갈 때는 한 번쯤 뒤로 걸어보라는 위로의 춤사위가 아니겠는가. 왔던 길을 톺아가며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한 필사적인 전진과도 같은 것, Great depression의 무용학적 해석이라 여긴다. 걸어온 길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삶, 앞으로만 나아가야 하는 삶은 얼마나 숨 막히는가. 2,500년 전 장자의 친구였던 양주는 말한다. 온전한 삶이 첫째이고 부족한 삶이 둘째며, 죽음이 그다음이고 압박받는 삶이 제일 못하다. 삶의 끝, 마지막 순간까지 숨 가쁘게 살긴 싫다. 그렇게 보면 문 워크는 인간에게 ‘여유’의 가치를 역설하는 것 같다.
오토바이 위에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길게 누워 한낮, 뜨거운 햇빛에도 아랑곳없이 자는 저 쌔옴 (Xe om, 영업용 오토바이) 아저씨의 수도승과 같은 여유를 나는 언제나 배우겠는가. 길가 목욕탕 의자에 앉아 더치 커피보다 늦게 떨어지는 베트남 드립법으로 한잔을 가득 채울 때까지 얘기를 나누는 그들의 여유로운 점심을 언제쯤 따라 할 수 있을까. 내가 감히 할 수 없는 여유를 곁에 두고 보는 일은 즐겁다. “참 지저분한 꿈을 꾸었군” 세계의 종말에 유피테르가 몸을 옆으로 돌리고 하품을 하며 말했다는 저 말이 실은 발레리 (Paul Ambroise Valéry, 시인)가 지어낸 여유였다. 유피테르가 신에게 말한다. “어쨌든 자네는 벼락을 만들지 못했단 말일세.” 발레리의 뜬금포에 혹여 유피테르가 문 워크를 춘다면, 신으로부터 의문의 1승을 거두는 그 장면을 상상하곤 실없이 웃는다. 여유로움을 옆에 두고도 도대체가 여유롭지 못한 ‘나’라는 인간에게 경고를 주고 싶은데 문 워크를 배워 기특하여 이번 만은 넘어가기로 한다. 어깨가 굳어지고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면 문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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