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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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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9일 10시 58분 등록
[영웅이 되고 싶은가?]

2003년 여름 어느 일요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농협대학 야구장.

8대7. 1점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
7회말 야쿠르트팀의 마지막 공격(사회인 야구는 7회가 마지막 이닝이다).
2아웃 상황에 주자는 2, 3루.

나의 타석이었다. 안타 한 방이면 동점 내지 역전 끝내기까지 가능한 상황. 푹푹 찌는 듯한 태양의 열기 속에 상대팀 투수나 나나 벌겋게 얼굴이 상기되어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양팀 분위기 또한 달아 오를데로 달아 올라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상대 투수는 많이 지친 듯 가뿐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평소보다 배트를 다소 짧게 잡았다. 그리고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큰 것 필요없다. 단타 하나면 된다. 최소한 동점까지만 만들어도 된다. 정확하게 맞추기만 하면 된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초구 스트라이크. 초구는 일부러 치지 않고 기다려보았다. ‘폭투가 나오고 주자가 홈인하여 동점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얄팍한 생각까지 들었다.
2구 볼. 다행이다.
3구 앗! 내가 좋아하는 코스다. 자신있게 휘둘렀다. 이런 된장!!! 빗맞았다.. 그리고 아~ 다행이다. 3루쪽 파울이다. 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4구는? 넉넉하게(?) 빠지는 볼이다. 투수도 단단히 긴장한 모양이다.
5구 앗~!! 바깥쪽 스트라이크다~!! 쳐야한다~!! 엉거주춤 배트가 나가고 간신히 건드려 파울을 만들었다. 캠벨형님과 듀란트할아버지(윌 듀란트는 실제로 야구를 좋아했다고 한다..)가 하늘에서 돕고 있나보다... ^^
6구 높은 볼.

자, 이제 2스트라이크 3볼, 풀카운트다. 이제 공 한 개면 모든 상황이 결정된다. 상대팀도 우리팀도 응원 소리가 더욱 시끄러워진다. 도저히 조용할래야 조용할 수 없는 상황까지 오고야 말았다. 마운드에서 투수가 숨을 고르며 땀을 닦고 있다. 나도 타석을 벗어나 헬맷을 벗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손에도 땀이 나 있다. 장갑을 다시 끼고 배트를 힘껏 움켜 잡았다.


영웅이 될 것인가... 패배자가 될 것인가...


드디어 7구째. 아~ 투수의 실투닷~!! 그것도 가운데닷~!! 내가 젤로 맛있어 하는 코스닷~!! 가볍게 받아치기만 하면....


그런데.... 직구가 아니라 가운데로 오다 바깥쪽으로 떨어지며 빠져나가는 슬라이더성 변화구였다. 나의 배트는 허무하게도 허공만을 가르고 말았다. 순간 나의 입에선 짧은 한숨이 새어 나갔다.


‘게임 종료’


그렇게 경기는 끝이 났다. 그날 경기에서 상대 투수는 영웅이었고, 나는 한마디 변명도 필요없는 패배자였다. 영웅과 패배자는 ‘딱 한번 허공을 가르는 0.5초의 스윙’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하/ 지/ 만
우리의 인생에서도 과연 그럴까. 영웅과 패배자를 이렇듯 흑백의 관점에서만 보아야 하는 것일까. 한쪽이 영웅이 되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패배자가 되고 마는 그런 시각이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일까.

야구는 축소된 인생이며, 인생은 곧 드라마와 같다. 우리는 인생이란 이름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명 한명의 배우들이며, 수많은 배우들의 협연에 의해 이 드라마는 만들어지고 또한 유지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호흡하고 같이 가지 않으면 안되는 필연의 관계로 묶인 쌍방 조력자들인 것이다.

이 드라마에 조연은 없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자, 영웅인 것이다. 각자의 맡은 바 역할이 있으며 그 역할을 잘해낼 때 우리 인생의 드라마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한차원 더 높은 고품격 드라마로 변화되는 것이다. 영웅, 패배자의 단세포 미생물(짚신벌레, 유글레나, 아메바, 나팔벌레, 종벌레 등) 시각을 버리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바쁜 가운데에서도 주위를 둘러보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때, 조력자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할 때 우리는 곧 자신의 자리에서 영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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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5.19 13:32:30 *.244.220.254
맞아요~ 승/패적 사고는 짚신벌레, 아메바와 같은 시각이겠죠.
7회말 투아웃의 긴장된 상황이 필름처럼 지나갑니다.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느꼈던 '감동'이 되살아납니다. 야구도, 글도 다재다능하세요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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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5.19 14:46:34 *.84.240.105
상황이 그려지는 게...이 글 드라마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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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9 18:38:56 *.123.204.215
조연은 없다!... 그렇지 사람은 모두 항상 주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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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5.20 11:34:09 *.97.37.242
하/ 지/ 만
모두가 영웅이 되는 가정, 사회, 국가나 세계가 만들어지면...
그땐 우리 모두를 우린 영웅이라고 부를까? ........................ 아닐껄?

정체성이나 주인의식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감상주의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란 생각.

여하튼, 승패는 병가지상사. 작은 실패를 슬기롭게 극복해서 진정한 영웅으로 커나가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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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5.20 12:17:08 *.51.218.186
스포츠 관심없는 나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현장감,
코믹만 잘쓰는 게 아니군,
와 다들 일취월장 글들이 좋아요.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타, 잘 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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