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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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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0일 19시 24분 등록
궁하면 통한다

큰일이다. 책이 다 떨어졌다. 나이지리아로 출장 오면서 4권이면 족할 줄 알았는데 급기야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출장 짐을 꾸리면서 하워드 가드너의 『열정과 기질』을 가지고 갈까 말까를 고민했었다. 꽤 두꺼운 책이었다. 다른 짐도 있었고, 한 달 안으로는 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나는 과감히 『열정과 기질』을 뺐다. 대신 좀 얇은 책으로 한권 더 넣었다.

이상하게도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고야 만다. 이곳에서의 일도 쉽게 풀릴 줄 알았는데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역시 방심은 금물이다. 문제의 기계는 20미터 길이의 빔을 타고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잘 되지 않아 내가 이곳 나이지리아까지 오게 된 것이다. 와서 문제를 파악해 보니 쉽게 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엔 의도하던 대로 기계가 움직였다. 그러데 문제가 생겼다. 20미터 중 마지막 2미터를 못가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 구간에서 꼼짝을 못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크레인의 위치도 바닥에서 10미터 쯤 위에 있기 때문에 정지된 채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을 다시 움직이는 구간으로 옮기는 일 자체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참 곤란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더 큰 걱정꺼리가 생겼다. 다름 아닌 연구원 과제로 제출할 책이 다 떨어진 것이다. 기계가 정상상태로 전 구간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이곳에서 탈출할 길이 묘연해 진다. 설상가상으로 옵쇼어에서 나갈 헬리콥터를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는 카운터 펀치까지 아주 제대로 얻어맞았다. 아무리 계산해 봐도 5월 24일은 족히 넘어갈 것 같다. 산 넘어 산이었다. 역시 꼬일 때는 확실히 꼬인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나는 움직이지 않는 크레인을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오고 가면서 각도를 달리하며 계속 쳐다봤다. 다시 정상 구간으로 옮기기도 어려운 위치여서 움직여보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바라만 본다고 뭔 수가 생기겠는가? 그래도 계속 봤다.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없다. 그렇게 이틀을 보냈다. 하루가 천금인데 이틀을 아무런 소득 없이 보냈다.

이틀이 지나고 김과장께 말을 건냈다. “일단 움직이지 않는 놈을 좀 꺼냅시다.”
우린 눈빛이 통했다. 김과장은 풀바디 하네스(높은 곳에서 작업할 때 사용하는 추락 방지 안전띠)를 착용하고 빔으로 올라갔다. 사실 이런 작업은 이곳에서는 허가된 사람만 할 수 있다. 일명 스파이더맨들의 전용 작업이다. 그러니 이렇게 작업한다고 이곳 관리자에게 이야기하면 못하게 할 것은 불보 듯 뻔한 일이었다. 걸리면 일이고 뭐고 우린 FPSO에서 추방당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김과장은 5초도 안되는 사이에 10미터 빔 위를 걸어서 크레인의 점검대까지 도달했다. 나는 가슴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어떻게 꼼짝도 하지 않는 놈을 움직이는 구간으로 옮기길 것이냐 하는 것이다.

화물차에 짐을 쌓고 그것을 묶는데 쓰는 물건이 있다. 정확한 명칭은 잘 모르겠지만 고무로 만든 밧줄 말고 그 후에 적은 힘으로도 아주 세게 잡아당길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 있다. 요즘에는 대부분 이것을 쓴다. 뭔가를 고정 시키는 데는 아주 좋다. 난 그것을 생각했다. 그것을 서포트 빔에 걸고 당기면 억지로라도 크레인을 움직이지 않는 구간에서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문제의 물건을 찾았다. 반갑게도 우리가 납품한 물건에 함께 섞여있는 것이 있었다. 과연 이 정도의 힘으로 이 큰 크레인이 움직일 수 있을까?

일이 되려는지 그 물건은 의뢰로 쉽게 위로 전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과장은 걸고 당겼다. 크레인을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계속 당겼다. ‘우직우직’ 소리를 내며 크레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말 십 년 감수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꺼내는 것이 아니고 그 구간을 문제없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우리 기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한데 이곳의 빔을 다시 설치하라고 하는 것도 참 못할 짓이다. 1미터 정도 크기의 빔 무게만 족히 500kg은 넘을 정도의 큰 빔이 양쪽으로 25미터 씩 놓여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10미터 높이의 공중에 매달려 있다.

이 문제는 끝내 일부 구간의 서포트(빔을 고정해 놓은 파이프)를 잘라내고 휜 부분을 바로 펴는 작업을 시도해보기로 이곳 담장자와 협의하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오늘 그곳을 작업하기 위해 족장(작업대)를 쌓고 있다. 빔 설치 공사를 누가했는지 좀 원망스럽다. 설치하고 측정을 해봤으면 되었을 것을 말이다.

문제는 다시 책이다. 다음주 책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워드 가드너의 『열정과 기질』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가지고 오는 건데 하며 후회했다.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생각나는 것을 어찌 막을 도리가 없다.

이곳 숙소에는 큰 회의실도 하나 있다. 그곳에는 만화가게를 연상시킬 정도의 만화책도 꽤 많다. 만화책 볼 여유가 없어서 거기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이었을까........ 어느 샌가 난 만화책이 꽂혀있는 책장을 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곳에 『열정과 기질』은 없겠지만 그래도 연구원 커리큘럼에 있는 책이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만화책과 무협지 속에 그런 책이 있을 리 있겠는가?

참 희한한 일이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뭔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엘빈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 정말 충격이다. 8월 과제에 올라있는 엘빈 토플러의 책이 있었다. 책의 발행 년도를 보니 1986년 이다. 누렇게 바랜 책장이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는 듯 했다. 그때부터 여기 있었단 말인가? 이건 혹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착각이 일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1000권 가까이 되는 만화책과 무협지 속에 엘빈 토플러의 책이 들어 있을 줄이야....... 뭔가가 잘될 조짐인가. 정말 궁하면 통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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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5.20 19:37:00 *.117.4.35
지난 3일 동안 이곳 인터넷이 불통상태었습니다.
가뜩이나 느린 인터넷이 아예 접속조차 되질않아 속된 말로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과제 내야하는데 하필 그날부터 인터넷이 끊기다니.. 이곳 관계자에게 뭔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왈~~ 통신회사를 바꾸고 있는 중이어서 몇일동안 인터넷 접속이 안될꺼라는 청천벽력같은 소릴 듣고 난 망연자실했습니다..ㅠㅠ 아니 왜 하필이면 이럴때 통신회사를 바꾸려는지...
이거 제출 하려고 남덜 자 자는 오밤중에 회의실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그리고 우린 시간이 생명인데 이를 어쩌나...

어쩔수 없이 난 사부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곳 국제전화 상태는 거의 환상적입니다. 전화를 하려면 따로 조용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해야하는 곳에 전화기가 있습니다. 그것도 인터넷 보다 더 자주 끊기는 상황이니 저는 이곳에 도착하고 전화하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던 터였습니다. 다행히도 신호음이 갔고..... 사부님이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이 이후는 이미 어떤 상황이신지 아실겁니다..ㅋㅋ
제가 "사부님" 하니까 주변에서 저를 보는 눈이 상당히 수상해 졌습니다. '뭐~~~ 사부님' 하며 처다보는 것을 아니느낄수 없었습니다..ㅋㅋ

암튼 다시 인터넷이 접속되어 다행입니다. 과제를 올릴수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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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5.20 21:01:34 *.122.143.151

'그럼 그렇지'란 말이 절로 나온다.
울 우직한 홍스가 숙제를 안하다니 말이 되는가.
더군다나 책이 없다고 그 먼 나이쟈에서 사부님께 국제전화를
다 때리는 판이니...
하여간 넌 '징한' 넘이다..
이렇게 징한 너를 동생으로 삼은 나는 앞이 캄캄해진다..
이 '징한'넘을 델꾸 얼케 1년을 보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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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0 21:10:46 *.212.227.252
에구 독한 넘.
내가 옛날에 다 해봤는데 개근상 영양가 없더라구~~~
그래도 남들은 그게 제일 큰 상이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홍스가 제일 큰 상을 받을 모양이다

얼룩말 안잡아와도 돼.
진짜 잡아올까봐 무서버... 우리 집 작거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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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0 23:14:18 *.41.62.236
홍스가 모르는게 있는 소식 한가지 알려 줄께.
졸업때 가장 멋진 제자를 뽑아서 상을 주신대.
우리 다 그 말쌈 듣고 군침 흘렸는데 포기해야겠다.

그 선물은




사부님께 여쭤봐. 아프다하지 않으시고 말씀 해 주실거야.
우린 다 알고 있으니. .

빨랑 날아와라.
얼굴도 잊어 버리고, 목소리도 잊어 버리고,
보름달만 생각난다. ㅋㅋㅋ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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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5.20 23:33:32 *.72.227.114
오라버니 글이 안 올라오니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더라구요.
워낙에 실망을 안 시키시던 분이 글을 안 올리니 왠일인가 싶어서
이메일이라도 해볼까 하던 참이었어요..
소식 들을 수 있고 칼럼 읽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입니다..

어찌나 대단하신지~그 열정 때문에 책장에 있던 무협지랑 만화책 몇권이 모두 합쳐져서 '변신'하기로 한 거 아닐까요? 진짜 징그럽네..그걸 찾아내다니..

근데 귀국은 언제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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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8.05.21 07:51:08 *.218.202.52
현웅이형,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형 글을 읽고
왠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은 저만일까요?
형에게는 정말 열정이 곧 기질이군요.

건강하게 돌아오시면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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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5.21 08:35:18 *.244.220.254
보고싶네요~
따뜻한 사람을~

부끄럽습니다.
형님의 열정을 보면서~

건강하게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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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5.21 08:43:40 *.51.218.186
홍스가 저에게도 국제전화를 했습니다.
어지간히 몸이 달았던 모양입니다.
책 한 권이 바로 그런 연유로 홍스의 손으로 오게 되었군요.
궁하면 통하는 게 아니라 현정 말대로
그대의 간절함이 우주의 기운을 그대로 쏠리게 한 거라고 믿습니다.
하는 일이 잘 풀려서
빨리 귀국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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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5.21 10:05:51 *.97.37.242
과제가 올라오지 않길래 일이 잘 안풀리는 건가? 걱정했는데,
인터넷 문제였다니 다행이구나.

네 글을 읽으니 몇 년전에 즐겨보던 "신화창조"란 TV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산업현장에서, 불가능한 환경을 불굴의 투지로 극복해가는 성공신화 이야기.
홍스는 두가지 신화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구나.
일터에서의 신화와 연구원으로서의 신화.
열심히 하는 모습 참 보기 좋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현웅의 귀환.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영웅의 귀환. 비슷하네... ㅎㅎ
기다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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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5.23 02:15:00 *.117.4.35
정산형님 감사합니다. 어쨌든 귀환하겠습니다..ㅎㅎ
소은조교님 덕분입니다..^^
거암 나도 보고잡다..^)^
옹박선배 정말 고마우이..
현정을 실망시킬순 없지.... 쌩유~~
앤님 빨랑 날아가겠스~~
창형을 위해 한놈 잡아두었는데 풀어줘야겠수다..ㅋㅋ
재우성 아직 둬달밖에 안지났수... 기대하슈.ㅎㅎ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시고 기원해주신 덕분에 일은 점점 마무리 되어가고있습니다. 문제의 구간 수정을 오늘 마무리 지었습니다. 측정 결과 만족하게 수정되었습니다. 몇 일 지나 시운전하면 됩니다. 문제 없을 겁니다. 아마도 다음주에는 이곳을 뜰수 있겠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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