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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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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7일 05시 08분 등록
나에 첫 해외 출장기

어쩌면 나는 회사에서 선택받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회사에서 해외에 가장 많이 나가본 직원이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가 영어로 대화가 거의 불가능 한 것은 다른 직원과 매한가지인데 나는 그래도 꽤 여러 번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이번 글은 회사 입사 후 첫 해외 출장길의 모습이다.

내가 처음으로 해외 출장을 떠난 곳은 미국이다. 네쉬빌이라는 엘비스 프레스리의 고향이기도 한 곳을 2002년에 다녀왔었다. 그 당시 미국을 가게 된 계기는 막 개발을 마친 우리 제품을 미국에서 조립을 해서 팔아보겠다는 미국의 한 젊은 사업가 덕분이었다. 50대 분량의 부품을 콘테이녀에 먼저 실어 보낸 후 그 부품이 네쉬빌에 도착할 때쯤으로 일정을 잡아 사장님과 해외영업 담당 실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는 엔지니어 자격으로 그곳 사람들에게 기계에 대한 설명과 조립방법과 테스트 방법을 설명해 줘야하는 역할을 맞았다. 신혼여행으로 태국 푸켓을 다녀온 이후 처음 가보는 타국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이 넘는 비행을 한 후 달라스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역락없는 촌놈이었다. 여권심사를 하는 곳을 통과하는 것도 나에겐 큰일이었다. 무엇을 물어보는지 잘 모르는데다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럴 때 마다 함께 간 한실장님이 대신 이야기를 해줬다.

그때 처음으로 영어의 필요성을 느꼈다. 나중에 몇 번의 해외 출장을 더 다녀본 후 안 사실이지만 여권심사하는 곳에서 물어보는 것은 별것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뭐하는 사람이고 어디로 가는지만 정확히 알면 별탈없이 그곳을 지날 수 있었다. 달라스 공항에 내린 우리는 지하로 내려가 공항을 한바퀴 도는 전동차를 기다렸다. 공항만 운행하는 전동차였다. 공항이 얼마나 크길래 이런 전동차까지 있을까 싶었다. 개 버릇 남 못준다더니 내 눈에는 온통 그런 것만 보였다. 건설현장의 크레인이라든가 전동차 내부 장식의 재질이 무엇일까? 등등 이때는 사물의 재질에 대해 많이 궁금했었다. 뭐든 보면 만져보면서 그 촉감을 손끝으로 느껴보곤 했다. 도금을 한 것인지 버핑(구두 광내는 기계의 원리)을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재질을 또 입힌 것인지 등등 어쨌든 나에겐 이런 것들이 먼저 들어왔다.

네쉬빌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달라스와는 분위기가 참 많이 달랐다. 엘비스의 고장답게 공항에서도 엘비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실장님이 전화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젊은 사업가가 나타났다. 그는 인상 좋고 건장한 흑인 남성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이도 나보다 어렸다. 지금 아쉬운 것은 그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 다는 것이다. 그냥 밥이라고 부르자. 밥은 우리를 호텔로 안내했다. 그 호텔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 지내본 다른 어떤 호텔보다도 경치도 좋고 조용한 호텔이었다. 일로 다니는 해외 출장길이 다 그런 것 인지는 모르지만 다음날 일정에 사장님과 한실장님은 빨리 잠자리에 드셨다. 나도 다음날 할 일을 메모하다가 그냥 잤다. 그렇게 첫 해외 출장길의 밤을 보냈다.

그 이후로 네쉬빌에서의 기억은 일보다 밥이 안내해준 째즈를 직접 들을 수 있는 호프집이었다. 일은 별로 진전이 없었다. 밥은 기계를 조립해서 팔 수 있는 모든 것이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기계를 조립한다고 하는 곳을 가봤는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창고를 비워놓은 듯 너무나 깨끗했다. 기계를 조립하기 위한 그 어떤 시설도 그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순간 사장님의 심기가 많이 불편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우리를 데리고 다닌 여러 공장 역시 우리 기계와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였다. 시골의 마을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몇몇 공장을 방문했었는데 그곳 분위기는 우리나라 공장과는 많이 달랐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일에 대한 진척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날 밤 밥은 우리를 그 째즈바로 안내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때 드럼펫 연주자가 목발을 짚고 연주하던 모습이다. 아마도 발을 다쳐서 깁스를 하고 나온 모양인데 그가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사실 그들의 연주 실력은 내 귀로는 잘 가늠할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장르여서 그런지 별다른 감흥은 받지 못했다. 나에겐 시끄러운 음악이었다.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받은 것으로 만족해야했고 밥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나왔다. 연주가 훌륭했다고 이야기했더니 밥이 연주자중 한명과 인사를 시켜줬다. 자기 친구란다. 그 친구의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이래서 사진을 찍어야놔야 하나보다.

우린 일정을 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3박을 하기로 한 네쉬빌 일정을 2박으로 줄이고 전시회가 있는 디트로이트로 가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디트로이트는 공업도시답게 매연과 꽉꽉 들어찬 높은 빌딩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나라 코엑스 전시장 말고 다른 전시장은 구경해 본 적이 없던 터였다. 디트로이트라는 세계적인 공업도시여서 전시회도 꽤 볼만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전시회는 그 규모나 제품의 종류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카다로그에서 본 제품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운반하역 시스템을 볼 때 나는 우리 기술의 초보단계를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색다른 점은 그곳 전시회 부스를 지키는 사람들 중 장년층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시회 모습과 가장 큰 차이였다. 우리나라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도우미를 동원하는 곳도 우리나라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그와 정 반대되는 상황을 보았다. 점점 고령화 되어가는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보게 될 현상일 듯싶다.

디트로이트에서 사장님과 한실장님은 케나다로 떠나셨고 나는 귀국을 위해 LA행 비행기를 탔다. 디트로이트는 서부고 LA는 동부여서 그 비행시간만도 꽤 된다. 나는 그때 미국인란 나라가 크긴 크구나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행을 하는 내내 날씨가 맑았다. 비행기에서 미국이라는 땅을 내려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 느낌은 꽤 컸고 오래갔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다 본 로키 산맥은 굉장했다. 잠시 졸고 나니 LA 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나온 해외출장길 지금도 그렇지만 내 영어 실력은 엉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디트로이트부터 혼자 귀국해야 했다. LA 공항에 내렸을 때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어는 대한항공이 어디 있냐는 말 뿐이었다. “Korean Air Line Please" 처음 말을 건 흑인 여성은 자기도 잘 모른다고 했고 두 번째 사람은 저쪽으로 쭉 가리고 가르쳐 줬다. 나는 얼마나 가면 되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내 말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그녀가 가르쳐 준대로 그냥 쭉 갔다. 한참을 걸었는데 대한항공 부스는 보이질 않았다. 혹시나 싶어 다른 사람에게 다시 또 물었다. 그는 다른 건물에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공항 건물이 또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내렸던 곳은 국내선이었고, 국제선이 따로 있었을 것인데 나는 그때 그런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비행기를 타본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구분되어 있는지 생각도 못했다.

멀리 또 다른 건물이 보였다. 아마도 저 건물을 이야기하나 싶어서 또 무작정 그리로 발길을 옮겼다. 건물에 도착했다. 아까 자나온 건물과는 다르게 동양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얼굴색이 비슷하다는 것만으로도 좀 위안이 되었다. 긴장이 풀리면 생각지 않는 다른 생리적 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인지 순간 배가 고파왔다. 비행기 시간을 확인 해 보니 8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나는 공항을 여기 저기 구경해 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대한항공 티켓팅 하는 곳을 정점으로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끝내 한국식당은 찾지 못했다. 분명 있었을 텐데 한국식당을 못 찾았다.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지나쳐 온 일본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일본 식당에서 종업원이 나에게 영어로 뭐라 뭐라 물어보는데 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하니 그 종업원의 얼굴색이 좀 일그러졌는데 나는 그때의 그 종업원 얼굴은 기억에 없다. 하지만 그의 입모습은 기억한다. 그때 내 기분은 굉장히 떨떨음 했다. 분면 그는 나를 무시하는 태도였다. 그 후 나는 절대로 일본인이 하는 식당에는 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내나라 말도 아닌 남의 나라 말을 잘 못한다는 것에 처음으로 기분 상했던 추억이다. 나는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얼마를 더 기다리다 이제 출발한다고 한국에 전화를 해볼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전화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공중전화기를 들고 수신자 부담 전화를 하려했는데 어찌해야 할지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순간 옆에 있던 학생처럼 보이는 동양인 친구가 나에게 전화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참 답답해 보였나 보다. 그는 순서를 손짓으로 나에게 설명해 주었고 나는 그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는 중국인 아니면 대만인이었던 것 같다. 그에겐 별것 아니겠지만 나에겐 참 고마운 일이었다. 전화 통화 몇 시간 후 나는 인천공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에 영어실력은 그때보다 조금은 나아졌지만 해외에 나오면 많이 불편할 정도다. 살아오면서 별로 후회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영어만큼은 참 아쉽다.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공부를 한다는 생각보다. 앞으로 좀더 넓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알고도 행하지 못함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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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07 13:58:15 *.36.210.11
이 이가 4월에 속초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두 달 전의 그 홍스가 맞단 말인가? 여보슈, 나이지리아 검둥이 신이 내린 양반아. 나를 알아 보시겠소? 나는 그대가 아주 생경하다오. 과연 변.경.연 연구원이로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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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6.09 09:29:59 *.84.242.254
나이지리아에서 못 빠져 나오시더니 그간의 출장들이 모두 기억이 나시나 보군요..오라버니..모텔에 있으시면 잠이나 많이 자 두세요..
그럴땐 좀 쉬라고 생긴일이겠거니 하면서 편히 쉬시는게 상책이에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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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6.09 12:52:25 *.244.220.254
외모의 컨트리틱한(?) 느낌과는 다르게 여행 많이 다니셨네요......
저도 내쉬빌은 함~ 갔다왔는데.....조용한 시골마을이죠.........
형님 빨리 얼굴 뵈었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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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6.09 13:51:29 *.248.75.18
홍스는 시작하면 글이 일사천리로 흐르는군요.
우리 4기 나중에 만나면 영어 프리 토킹 30분씩 할까요?ㅋㅋㅋ

얼굴을 너무 오래 못봐서 기억이 안날라고해요.
Come back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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