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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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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30일 06시 38분 등록
2008년 6월 30일로서 1년 7개월 동안의 엔지니어 통·번역 담당자로서의 인천공항 생활을 마무리 하게 된다. 내 생애 두 번째 회사 생활이었으며, 첫 번째 회사였던 마케팅 리서치 회사에서의 일의 속도보다 더 느린 속도의 일을 택하는 것을 목적으로 선택했던 직업이었기에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다운 쉬프트(down-shift) 족의 경험이었다. 파란만장 했던 내 직업의 현장에서, 이 두 번째 직업에서 얻은 경험에 대한 기록으로서 이 글을 남겨두고 싶었다.

엔지니어 통·번역 담당자라는 직업은 우연히 내게 왔었다. 나의 첫 회사 생활은 DVD플레이어를 4배속으로 돌려보는 듯한 속도였는데, 그 생활을 2년 5개월쯤 했을 때는 내 스스로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일을 그만두고 3개월간 배낭 여행을 다녀온 후, 같은 업종에서 일하자는 제안이 다시 들어왔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4배속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 달 통역, 번역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중학교 입시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을 때였다. 몇 달 지나자 나는 그 일이 그리 신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세상 말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졌고 다시 다양한 사람들과 접하고 싶어졌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사회 생활이라는 것을 해 보고 싶었었다.

그 때 내 간절함이 어딘가에 전해졌던 것이었나 보다. 일전에 한 달 정도 통역으로 일한 적이 있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인천 공항 공사의 2단계 건설을 맡고 있는 건설 회사에서 엔지니어 통·번역 담당자를 찾고 있는데 생각이 있으면 지원을 해 보라는 것이었다.

전화로 연락을 받은 나는 무의식 중에 ‘나에게 온 기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지원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면접을 보고, 2주 후 정식으로 고용이 되었다.

내가 담당하는 업무는 인천 공항의 2단계 건설 현장에 투입된 외국인 엔지니어들의 통역과 번역을 하는 일이었다. 통역 업무는 그들이 한국인 담당자들과 진행하는 회의 석상에서의 통역이 대부분이었고, 번역은 그들이 제출하는 보고서를 번역하는 업무였다.

1.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체험하다

멋모르고 용감하게 시작한 이 곳에서의 삶은 내게 많은 새로운 경험을 남겨 주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새로운 경험은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이었다. 이미 나는 마케팅 리서처 시
절 다양한 산업과 다양한 국적의 회사들을 경험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소위 말하는 문과 사람들이 행하는 직업들이었다. 이 곳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양한 엔지니어의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내가 맡은 업무가 공항을 건설하는 현장에 투입된 특수한 분야의 외국인 엔지니어들의 통역과 번역을 해주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들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아마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었더라면 나는 평생 그런 직업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도 모르고 살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세상에 의사, 변호사, 공무원, 회사원 등의 몇 가지의 직업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온 내게 공항과 관련된 특수한 엔지니어 들에 대한 경험은 상당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그러리라 생각된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위해 간단히 그들의 업무를 여기에 소개해 본다.

수하물 처리 시설 엔지니어- 영어로 하면 baggage handling system이라고 하는 수하물 처리 시설 담당자. 이들은 쉽게 말하자면 승객들이 공항에서 수하물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시스템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들이다. 항공기를 이용할 때, 승객들은 티켓팅을 하면서 승객들은 수하물을 항공기내의 화물칸에 싣게 된다. 그 때 접수된 수하물은 승객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수 차례의 검색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나서 검색이 완료가 되면, 해당 항공기에 이 수하물이 실리게 된다. 그리고 비행이 끝나서 또 다른 공항에 도착을 하게 되면 이 수하물은 다시 수하물 분류 과정을 거쳐서 개개인의 승객들의 손에 돌아가게 된다. 이 때 승객들의 수하물들은 접수, 선적, 분류 등의 과정을 위해 매우 정교한 기계 설비를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을 운영하는 모든 기계들의 설계와 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것이 이들이다.

공항 내 승객 운송 시설 담당 엔지니어 – 영어로 하면 Intra airport transit system 이라고 하는 시설 담당자. 이들은 2개 이상의 탑승동 간에 승객들을 이동시키는 교통 시설 즉, 셔틑 버스나 셔틀 전차의 시스템의 설계와 설비를 담당한다.

항공 등화 담당 엔지니어 – 영어로 하면 airfield lighting system 이라고 하는 시설의 담당자.이들은 항공기가 야간에 이,착륙을 할 때 조종사의 안전 운항을 위해 조명을 조절하는 역할을담당한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히 조명을 조절하는 것이지만, 조명의 빛, 색채, 배열 등이 항공기의 안전 운항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주위 밝기, 시정, 운고 등의 상황 등이 고려가 되어야 한다.

공역 담당자. 쉽게 말하자면 이들은 하늘에 지도를 그리는 사람들이다. 항공기들이 비행 중에충돌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들은 경계가 없는 하늘에 경계를만들어 준다. 이 과정에서 공군과 협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특수한 분야의 엔지니어들은 그들이 지니는 특수성과 전문성 때문에 일생 동안 각 국의 공항들을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굉장히 전문적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인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롭고 신기한 사실을 접하면서 나는 안타까운 우리 나라의 현실도 함께 알게 되었다. 내 판단에 의하면 이런 전문적인 직업인들은 우리나라의 토양에서는 자라기가 매우 힘들다. 일단 장래의 직업을 선택하는 청소년기에 이런 다양한 직업의 세계가 있다는 정보를 제공해 줄 능력이 사회적으로 부족한 것 같다. 그리고 설사 이러한 정보에 대해 접했다 할지라도 꿈을 가진 청소년들이 주위의 지지를 받으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는 교육을 받기가 또한 힘들다. 그이유는 청소년들을 획일화시키는 교육적인 문화와 풍토 때문이기도 하고 전문적인 교육 기관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다.

내 판단에 의하면, 위의 몇 가지 이유들 때문에 우리나라 공항에서는 한국인 전문 엔지니어들을 구할 수가 없었고 외국에서 비싼 대가를 치루고 데려 올 수 밖에 없었다.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체험하면서 동시에 나는 먼 미래를 내다보며 직업을 선정할 수 없는 우리 나라의 교육 환경이 아쉬웠다.

[2]편에서 계속
IP *.72.22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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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6.30 06:39:13 *.72.227.114
글이 길어져서 후속으로 계속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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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6.30 15:09:52 *.244.220.254
아~ 드라마든, 칼럼이든 후속편은 사람을 열받게 해~
그나저나 현정낭자 이제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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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6.30 18:57:31 *.117.68.202
절대동감....
그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대만에서 통역 대동하고 회의하던 모습이 갑자기 생각나내.. 개버릇 남 못준다더니 엔지니어라는 말에 갑자기 흥분모드가 되었다...
현정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군..
내일 위로겸 축하주라도 한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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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1 02:22:41 *.41.62.236

현정의 경험담을 몽땅 소설화 하면 흥미로울듯,
기간 중 임무 완수를 축하하고, 그대의 간절함이
또 가슴 뛰는 일을 불러 오리라 같이 믿어 보며.
낼 건배, 아니 오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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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7.01 10:50:00 *.97.37.242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데, 현정낭자는 전혀 어려움을 않 느끼는 것 같군. 백수들이 보면 질투하겠는 걸?... 여하튼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는 건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더 없이 좋은 자양분이 될 것 같군. 앞으로도 좋은 경험 많이 쌓아가길 바라네. 그 경험을 우리에게 조금씩 나눠 주기도 하고 말이지... 물론 공짜로 말이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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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1 12:22:13 *.64.21.2
현정은 씩씩하니까 잘해낼거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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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7.01 13:29:46 *.72.227.114
여러분...
지난 주부터 마무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칼럼 완성 못했으니 조금 양해해 주세요..이 주 안으로 마무리 지어 올려 볼께요..죄송..꾸벅..

그리고 여러분들의 응원이 힘이 됩니다..감사..백만번..

정산 오라버니..
오해십니다..
사실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직장 구하기랍니다. 오죽하면,'현정의 파란만장 직장사'한 편 쓸 정도랍니다. 면접과 시험 봐서 떨어진 것은 아마 수십 번도 더 될 것입니다...

그 경험 술 한 잔만 사 주시면 언제든지 다 나누어 드립니다...
대신 오라버니의 '끈기' 좀 전수 시켜 주십시오..

아 참..저를 절망시켰던 직장 구하기에 대해서..요즘은 태도를 아예 바꾸었습니다. 아예 오만하게 "까짓것 안 뽑아주면 내가 하나 만든다.."로 ...발상을 아예 바꾸어 버린거죠..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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