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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7일 22시 29분 등록

야근을 끝내고 달리는 차는 신경질적이다. 몸의 피로와 마음의 피로가 겹쳐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깊이 잠들었어야 할 새벽의 거리는 의외로 분주하다. 그 분주함 속에는 이제야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이 있고 벌써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시간에 다른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뒤엉켜 새벽은 낮 못지않게 부산스럽다. 이제야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은 피곤함에 급하게 차를 달리고, 벌써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바쁜 마음에 빠르게 차를 내몬다. 두 마음을 싣고 있는 새벽거리의 차들은 그래서 서로 으르렁거린다.
빨간불이 켜진 신호등 앞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연다. 새벽바람이 시원하다. 쫓기던 몸과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 집에 들어서면 아내와 아이는 잠들어 있으리라. 새벽에 문을 열고 나가서 다시 새벽에 문을 열고 들어와 얼굴을 들이미는 나는 그들에게 지아비이고 아비이다. 차는 지아비이자 아비를 싣고 신호등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옆에 서있는 차의 창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확 솟아오르는 라이터의 불꽃이 담배에 불을 옮겨 놓는다. 라이터 불빛과 가로등에 흘낏 드러난 남자의 얼굴은 초췌하다. 이제야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불을 옮겨 담은 담배는 순간 붉게 타들어 간다. 남자가 담배를 힘껏 빨아들였으리라. 열린 창문으로 연기가 훅 뿜어져 나온다. 연기 속에는 하루의 피로가 알알이 담겨 새벽바람과 함께 흩어진다.
그는 지금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있다. 이제 늦은 일과는 끝나고 이 길을 달려 집에 도착하면 휴식이 있는 것이다. 그가 물고 있는 담배의 맛이 충분히 상상이 된다. 그도 집에 들어가면 아내와 아이가 있을 터이고 그도 지아비이고 아비일 것이다.

그리고 보면 지금 길거리위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이들과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은 대부분 아비일 것이다. 그들은 지금 아비의 이름으로 새벽을 맞는다. 아비의 이름으로 맞는 새벽은 많은 함의가 있다. 아비가 맞는 새벽은 자식들이 일출을 즐기며 맞이하는 젊고 뜨거운 새벽처럼 즐겁고 기껍지 않다. 아비의 새벽은 몸의 노동이 되었든 마음의 노동이 되었든 노동의 새벽이기 때문이다.
옛날 어느 때인가 나의 아비도 이렇게 새벽을 맞았을 것이다. 그의 새벽은 삽을 어깨에 메고 논이나 밭으로 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자식의 면회를 위해 먼 길을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한 길이었고, 이런저런 일로 속을 태우는 자식을 떠올리는 새벽이었을 것이다.
그 새벽을 이제는 내가 아비가 되어 맞는다. 내가 어릴 적 새벽을 맞던 나의 아비는 세상에 없고, 세상에 남은 나는 아비가 되어 그때의 아비처럼 새벽을 맞는다. 그에게는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내가 있었고, 나에게는 예전의 내 아비처럼 나를 아버지라 부르는 아이가 있다.
세상에 없는, 그래서 새벽에 찾아온 아비는 급하게 담배를 찾아 물게 했다. 자식 못되게 하는 부모는 없다더니 이번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피우지 않으려 노력하는 담배를 피우게 만드니 말이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옆 차는 퉁겨지듯이 박차고 나갔다. 마음이 급한 것이겠지. 때처럼 덮여있을 일상사의 피곤함을 시원하게 씻어내고 몸을 누이고 싶을 것이다. 아비로서의 일을 잠시나마 벗어던지고 작은 평화를 누리고 싶을 것이다. 혹 그의 주머니에는 쑤셔 넣은 아니면 곱게 접어 넣은 얼마의 야근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돈으로 아이에게 줄 과자라도 사려고 새벽의 가게를 들를지도 모른다. 한사람의 아비이고 아비들은 그러하니까.
내 주머니에는 야근비가 없다. 그래서 나는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 야근비는 며칠 뒤에 나올 것이다. 통장으로 들어가지 않는, 현금으로 직접 받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돈이다. 야근을 하면 오만 원을 받는다. 오만 원이라는 돈은 애매하다. 밥벌이의 명분을 부여하자면 큰 의미가 없는 돈이고, 노동의 대가로 따지면 값이 싸다. 한잔 술값으로 써버리면 하룻밤의 노동이 허망하고, 무언가를 하려 하면 액수가 적어 돈이란 게 허망해진다. 야근비 오만 원은 그런 돈이다.
가끔씩 주어지는 오만 원을 받아들고 집으로 바로 퇴근하는 날은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살까, 아내가 지난번부터 사고 싶어 했던 등산바지를 사줄까. 많지도 않은 돈에 아비는 그리고 지아비는 생각이 많다. 그러다가는 풀썩 웃어버린다. 돈 오만 원에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다.
필요할 때면 카드를 꺼내들면서 야근비 오만 원에 생각이 더 많은 것은 손에 주어진 현금이 주는 힘이다. 노동의 대가로 받아 쥐는 돈의 현실감이 다른 느낌을 준다. 그 돈을 쥐고 집으로 향하는 순간 아비의 마음은 새삼 푸근해진다. ‘이 돈으로…’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예전에 어머니가 장에 나가 채소를 팔아 올 때도 그랬으리라. 어머니 손에 들려있던 고등어 한 마리, 임연수 한 마리에는 야근비를 받은 내 마음과 같은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었으리라.

2~3년 전인가 아버지학교라는 곳을 다녔다. 아버지로서의 사명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아내가 잠깐 말을 꺼냈을 때 즉시 등록을 하겠다고 했다. 평생을 아버지로 살터인데, 내가 죽어도 아이에게는 아버지로 남을 터인데 아버지에 관하여 배우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시험을 한번 봐도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평생 짊어지고 갈 아버지에 대하여 배우는 것은 당연했다. 5주 동안 토요일마다 다섯 시간씩 교육을 받았다.
그곳에서 수없이 많은 아비를 만났다. 그곳에서 수없이 많은 형태의 아비를 만났다. 그들은 나의 아비이기도 했고 다른 사람의 아비이기도 했고 우리 모두의 아비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자식간에 그렇게 많은 사연이 있고 그렇게 많은 은원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설은 너무 가볍고 싱겁기까지 했다. 현실은 항상 허구를 넘었다. 허구를 만들어내는 상상력은 항상 한계가 있었고 현실은 상상을 가볍게 뛰어 넘었다.
이제 세상에 없거나 집에 있는 자신의 아비를 다시 만난 사람들은 그 아비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맥없이 눈물을 찔끔거렸다. 누군가는 소리 내어 울었고 누군가는 소리 죽여 울었고 누군가는 그들과 함께 울었다. 이제 누군가의 아비가 된 그들은 그제야 자신의 아비를 돌아보았다. 기억 속에 생활 속에 묻혀있던 아비들은 이제 아비가 된 자식들과 가슴으로 만났다.
많은 아비를 만나고 아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다. 고 3때 돌아가신 뒤 거의 생각해보지 않았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당신의 삶을 생각해보았다. 개인으로서의 삶, 아비로서의 삶, 자식과 아버지로서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살아계실 적에 못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이후부터였을까. 삶이 나를 속이고, 삶이 나를 지치게 할 때는 가끔 혼잣말을 한다. ‘아버지는 이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 그 때 들려오는 것은 아버지의 대답이 아니라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짊어졌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질문은 같은 아비로써 아버지를 떠올리는 질문이고 아이를 돌아보는 질문이 된다.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 질문은 메아리조차 없이 허공 속으로 사라지지만 그때마다 내가 아비임을 깨닫고는 한다. 늦게나마 아비가 되어 가는가보다. 그 애틋하고 씁쓰레한 아비의 마음을 이제야 가슴에 담는 모양이다.

신호등은 빨간불이고 주위에 차들은 하나도 없다. 그냥 가버릴까… 빨리 가서 자야 하는데…
‘아버지는 이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 오늘도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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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7.27 23:51:04 *.36.210.11
그리움에 울었나보다 사내는.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 다가 가 버린 사람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
님은 먼 곳에 영원히 먼 곳에 망설이 다가 님은 먼곳에 / 2008. 7.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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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8.07.28 08:12:46 *.160.33.149

창아, 어둡구나. 새벽에 사라지기 시작하는 어둠 속에 서 있는 듯하구나. 서서히 등장하는 빛 속으로 들어가 보아라. 마주쳐 교차하는 곳에서 새 물결로 옮겨타면 피곤할까 ? 그럴꺼야. 그러나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그래야한다. 나는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는 말을 들으면 늘 가슴이 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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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7.28 11:14:59 *.244.220.254

"삶이 나를 속이고, 삶이 나를 지치게 할 때는 가끔 혼잣말을 한다. ‘아버지는 이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 그 때 들려오는 것은 아버지의 대답이 아니라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오늘 형님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가슴을 적시네요.....
신해철의 '아버지와 나'라는 음악이 계속 맴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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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7.28 11:43:21 *.117.68.202
형님..... 그분이 오시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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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8 12:11:01 *.64.21.2
사부님
밤이기도 하고 새벽이기도 합니다.
주머니에는 알량한 야근비라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사부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오늘도 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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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7.29 10:18:37 *.247.80.52
창이 또 사람 울리네.

우리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변화의 시점에 생각나는 이들은 가족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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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처럼 가라
2008.07.29 10:19:03 *.36.210.11
사내의 글에는 애상이 깃든다. 그러면서도 항상 훈훈하게 감돌아 나온다. 자신의 마음과 글 속으로 찾아 들어가다보면 그 만의 훌륭한 작품으로 다른 이들에게도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리란 생각 자꾸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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