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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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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8일 10시 54분 등록
멘토

최근 나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변화의 한가운데서 여러 방향을 바라보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 중이다. 고민은 꽤 길게 이어졌다. 작년 이맘 때 부터 일 년을 넘기고 있다. 이번 주는 나에게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2000년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지 9년이 나났다. 처음 4년차까지는 정신없이 일에 미쳤다. 내 생활의 전부가 회사 일을 우선으로 선택되었다. 가족도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시기다. 나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내 나이 서른넷 그러니까 2004년이 되면서 이런 생활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은 내가 멘토를 만나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2004년 가을 인터넷 커뮤니티 모임에서 초청한 어느 분의 강연을 들었다. 나는 그 강연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성실과 유능, 선택과 집중, 고령화 사회에 대한 준비 이런 내용이 강연의 주된 관심사였다. 내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고령화 사회에 대한 단상이었다. 과연 내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물음이 강연 내용에서 튀어나왔다. 일반적인 직장생활에서 정년이 될 나이 60이 넘으면 그 다음 어떤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에 나는 답할 수 없었다.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 기간 동안 나는 3분의 스승을 만났다. 한분은 현 회사의 기술고문으로 계시는 니시야마 고문님이다. 그리고 두 분은 자기개발과 변화경영 분야에서 그분들 이름 석 자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인 나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졌던 분들이다. 내가 그 분들의 실명을 이야기 하지 않는 이유는 혹시라도 그 분 들게 폐를 끼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번 지면에서는 이제 며칠 후면 해어지게 될 니시야마 고문님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싶다. 고문님과 함께한 지난 4년 중 몇 장면을 글로나마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다.

고문님이 회사에 기술고문으로 오시게 된 사연은 우연한 일이었다. 그 전까지 고문님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일본에 우리 회사 제품에 관심이 있는 회사가 있었는데 그 회사에서 고문님을 대동하고 우리나라 회사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 회사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때 우리 회사는 일본회사의 마음에 들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심지어 어떤 부분이 얼마나 부족한지 객관적으로 지적해 줄 사람도 없었던 시기다.

일본 사람 2명이 회사로 방문했을 때 우린 무척 당황스러웠다.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회사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 2명중 한분의 한국어 실력은 우리를 경악케 했다. 도저히 외국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아마 명함을 주고받지 않았고, 서로의 국적을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다면 그분은 분명 한국인이었다.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첫날 그분들이 일정을 마치고 다른 회사로 간 후 사장님은 나에게 그 한국사람 같은 일본 분을 한 번 더 만날 수 있도록 할 테니 무엇을 물어볼지 준비하고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지금 기억에 이틀 후 그분을 다시 봤다. 나이는 이미 환갑을 넘기신 분이지만 대화중에 느껴지는 그분께는 묘한 매력까지 느껴졌다. 그 당시 고문님은 우리 회사의 생산설비에 대해 조언을 해주셨다. 그중 가장 강조한 부분은 자사제품의 성능과 내구성을 측정할 수 있는 테스트 설비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하시고는 독일 업체의 예를 설명해 주셨다.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면서 그 장치를 구상했는데 전체적인 틀만 떠오를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날 고문님과 이야기를 마친 후 사장님께 몇 번은 더 뵈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보름 후 고문님은 우리 회사의 상근직 기술고문님으로 초청되셨다.

고문님을 일주일에 4번은 뵐 수 있게 된 것이다. 회사 입사 후 4년 동안 나는 기술적인 내용에 대한 물음을 회사 내에서 혼자 처리하다시피 했었다. 입사 후 일 년도 안 되서 기술파트의 선임직원 2명이 퇴사 했다. 사실 그 인원이 전부였고 나는 그 자리에 신입사원으로 홀로 있게 되었다. 이후 경력사원의 충원은 없었다. 몇 명 지나갔을 뿐이다. 많이 답답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일면식도 없는 분들께 자문을 구해야 했다. 내가 작성한 기술자료를 평가해 주는 공공기관의 검사관한테 쪽팔림과 수치를 당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실이었다. 이런 생활은 3년 동안 지속됐다. 약간의 이골도 났고 일의 요령도 터득하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내가 뭘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 또한 혼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에게 구세주와 같은 분이 나타나신 것이다.

고문님께서는 사장님과 일본 출장을 가실 때 꼭 나를 끼워주셨다. 처음 일본에 가게 된 계기도 고문님께서 내가 꼭 같이 가야한다고 사장님을 설득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2004년 가을 고문님과의 첫 해외 출장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일본 니가타현에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부릴 때 고문님께서는 나와 한방을 쓰게끔 프론트 직원에게 이야기 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본에서 남자 둘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은 꽤나 드문 일이다. 상식적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성연애자로 취급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짐을 풀고 저녁을 가볍게 먹었다. 사장님은 피곤하시 다며 먼저 방으로 가셨다. 고문님은 방으로 가시다 내 손을 잡고 호텔 밖으로 나가셨다. 택시를 탔다. 고문님은 택시를 타시면 기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신다. 4년 동안 쭉 지켜봤었는데 일본어로 하시는 것이어서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내리실 때 까지 택시기사에게 뭔가를 꼭 물어보시는 것이 있는데 그중 가장 싸고 맛있는 집에 대해 알아보신다. 그 지역의 볼만한 곳도 물어보신다. 그 대화가 흥미롭다는 것은 두 분의 대화에 연신 웃음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택시는 꽤 번화한 거리에 고문님과 나를 내려놓았다. 고문님은 일본 선술집에서 술을 사주셨고, 그것도 분에 차지 않으셨는지 라면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나는 그때 먹은 라면은 정말 죽여줬다. 그 후 그런 라면을 먹어볼 수 없었다. 아마도 고문님과의 추억이 함께 버무려져서 그런가보다.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 도쿄에서 하루를 더 묵었다. 고문님은 사장님보고 한잔 사라시며 꽤 높은 빌딩의 스카이라운지로 갔다. 그때 나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치욕을 맛봤다. 일에 관한한 잘한다는 이야기만 들어온 터라 나는 정말 내가 일을 잘하는 줄 알았다. 경험도 미천한 내가 큰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그로 인해 회사에 많은 이익도 남겨주게 되는 주역이라고 스스로 자화자찬을 한 때였다. 그런데 그날 내 환상은 깡그리 무너졌다. 정종 몇 잔을 드시더니 고문님은 사장님과 내게 그동안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 해주셨다. 그 정도는 꽤나 과격해서 사장님께서 나중에 말리시기 까지 했다. 내가 들은 나에 대한 평은 이랬다.

“이건 계발이 아닌 개발이다. 이런 계발이 어디 있느냐. 차라리 멍멍 짖는 개가 계발해도 이것보다 잘하겠다.”
한잔 더 들이키시더니
“열심히 일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다. 그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잘하느냐다. 내 여지 것 돌아본 회사 중에 이렇게 형편없는 회사는 보다보다 처음 본다. 여지 것 뭘 어떻게 했길래 개발부라는 곳이 이지경이냐? 넌 뭐하는 녀석이냐.......”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고문님은 항상 나를 추켜 세워주셨다. 일본 사람들이 회사를 방문하면 꼭 인사를 시켜주면서 항상 “이 사람한테 잘 보여라.” 라는 농담을 일본사람들한테 하셨다. 팀원들과 있을 때도 모든 의사결정은 나를 통해 하게 하셨다. 회사에 중요한 문제를 처리할 때에도 고문님은 나를 전면에 내세워 주셨다. 이랬던 고문님께서 나에게 욕까지 해대시며 핏대를 세우셨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냥 듣고만 있었다. 다 맞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쓰지만 정말 달았다. 난 그때까지 회사에 들어와 누구에게도 야단이란 것을 맞아본 적이 없었다. 꽤나 자신만만했고, 거만하기 까지 했던 것 같다. 회사가 나 때문에 크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안하무인이었다. 그 후에도 고문님은 나와 단 둘이 있는 술자리에서는 당신의 솔직한 심정을 나를 위해 이야기 해주셨다.

솔직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면서 고문님과 더 친해졌다. 고문님은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주셨다.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나에 문제점에 대해 몇 번 고문님께 여쭤봤다. 고문님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겸손해라. 특히 부하 직원들한테 겸손해라. 사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회사에 노하우라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없으면 노하우도 없다.”
“팀원들이 너를 따르게 하려면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니가 하기 싫은 일을 부하 직원들에게 시키지 마라. 니가 하고 나서 시켜라. 그것이 위임이다.”
“너는 니가 일을 참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버려라. 내가 보기엔 아직 멀었다.”

그동안 고문님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고문님께 회사를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다. 고문님보다 먼저 회사를 나가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 고문님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고문님이 일본 모 그룹사의 대표이사로 계실 때 그룹 회장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사람이 자리를 옮기거나 무슨 결정을 할 때는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주제파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문님이 그 회사를 그만두셨을 때 그룹 회장은 일 년 동안 고문님의 자리를 남겨두셨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그가 없을 때 그를 욕보이게 하지 말라며 있을 때 보다 더 말끔히 하라고 특별히 지시하셨고, 월급도 퇴직 후 일 년 동안 더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을 듣고만 있었다.

“홍차장 지금 떠나면 너는 비겁한 사람이다. 주변을 살펴라.......”

이 대화가 있고난 2주 후 나는 고문님께 마지막으로 말씀드렸다.
“고문님 떠나야 겠습니다. 고문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문님은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너에게 해줄 이야기를 다 해줬으니 결정은 니가 하는 것이다. 너에 결정이 정히 그렇다면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 그렇더라도 처자식을 어렵게 하지 마라.”

이제 3일 후면 고문님과 나와의 이곳에서 인연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 고문님과의 인연을 계속 가져가고 싶다.

내가 정말 닮고 싶은 원로의 모습을 보여주신 니시야마 고문님을 생각하며.......
고맙습니다. 니시야마 고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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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7.28 11:04:13 *.244.220.254
좋은 멘토를 세 분이나 모시고 계시다니..........부럽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말없는 조력자가 되실거라 믿습니다.

* 추신 : 사회짭밥은 나보다 짧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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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7.28 11:22:57 *.117.68.202
중환아.... 정규직을 이야기하는 거다.
실질적인 짭밥은 1989년 부터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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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7.28 11:25:12 *.244.220.254
글쿠나~ 그런거였구나~
찌그러져 있겠습니다. 괜히 엉~깔려다, 그냥 밟히네요...깨갱!!!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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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8 12:30:41 *.64.21.2
일단 둘다 머리부터 박아라.
토요일부터 잠자느라 놔뒀더니 야들이 난리가 아니네...
좌로 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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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07.28 13:08:05 *.122.143.151
모든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있다.
홍스도 스스로의 옳음에 따라 자신의 발걸음을 옮긴 것이고..

인연이 닿으면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는 법,
하지만 다시 만난 날 스스로 비겁해지면 안된다.

자신있게, 소신있게 그리고 무엇보다 떳떳하게.
지금을 즐기고, 이겨내면 인연은 다시 연결될 수 있다.
최선을 다하자, 죽을 듯 덤벼보자. 까짓 죽기 밖에 더하겠나...
그리고 환한 웃음으로 그 인연을 다시 만끽해보자.
행복한 가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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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7.28 15:18:07 *.36.210.11
의문: 하나, 무엇이 지금 떠나면 비겁한 사람이라는 것인지?

둘, 그렇더라도 처자식을 어렵게 하지 말라는 의미는?


써니: 하나, 무엇을 위한 말인지 의문스럽다. 당신의 소임을 위해?

둘, 처자식을 위한 것이 월급봉투를 아끼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아는 대한민국 성깔 있는(?) 아줌마들은 유사시 대신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 그러나 단지 죽을 시늉만 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할 뿐이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쫌스럽지 않게 살 수 있으리. 쩨쩨한 건 홍스가 아니다. 가슴을 쫙~펴라!


한 번 더 부를까? ㅎㅎㅎ

늦기 전에 늦기 전에 빨리 돌아와 주오 내 마음 모두 그대 생각 넘칠 때 내 마음 모두 그대에게 드리리 그대가 늦어지면 내 마음도 다시는 찾을 수 없어요 늦기 전에 늦기 전에

아우야, 사무침이 가장 좋은 때는 아닐까? 여건이 되고 났을 때 그 식은 열정으로 무엇을 세울 수 있을지가 항상 의문이곤 하더라.

가끔씩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좋은 제자는 스승을 빛내는 제자라고 하셨는데 이런 갈림 길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서 자신의 고지를 점령한 제자들을 일컬으심이 아닐까 하고는 생각이 되곤 해. 그걸 뛰어넘으라는 말씀인 것 같아. 쉽지 않아서 나도 쩔쩔 맨다만 그대는 나와 다르지. 가슴 쫙 펴고 오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대와의 악수를 기꺼이 원하게 만들어 보세.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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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7.28 17:00:35 *.117.68.202
창형님~~~ 계속 구르고 있씀다... 우로굴러 언제 해주실건지..^^
재우형 고마워요. 비겁해지지 않겠습니다.

써니누나. 의문 하나에 답변 :
전 이 대목의 고문님 말씀을 이해합니다. 제가 회사에 임원이 되고 사장이 되려 했기 때문입니다. 고문님도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셨습니다. 그런 제가 고문님 보다 먼저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회사 동료들과 팀원들을 뒤로하구요. 어찌되었든 지금의 현실에서 저는 어떤 이에게는 비겁한 사람입니다.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제 동료들과 후배들은 저를 비겁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용기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꼭 잘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제가 갈 길은 이제 저 혼자만의 길이 아닙니다. 그들은 저를 이해해 줬고 마음이라도 편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주고 있습니다.

두번째 답변 :
고문님은 대한민국 아줌마를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ㅎㅎ
아마도 저에 대한 애정과 걱정 때문이셨을 겁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제 강을 건넜으니 새로운 세상을 향해 뛰어야겠습니다.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너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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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8.08.03 10:56:42 *.160.33.149
절실했기 때문에 떠나왔다면 잘한 일이다.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것이니 두려움이 없을 리 없다. 새로운 길에 생각과 시간을 모두 모아라. 그러면 처자식을 고생시키지 않을 것이다.

내가 겪어 본 바로는 누구든 3가지를 가지면 어느 일에서든 성공 할 수 있다.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택하는 것이다. 그래야 평생 갈 수 있고 일이 기쁨이 된다. 또 하나는 그 일에 오래 집중하는 것이다. 땀을 흘린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또 하나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기는 하지만 운이 따라야 한다. 언젠가는 그것이 너에게 올 것이다. 운도 따지고 보면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어찌할 수 없는 하늘의 뜻이다. 이것은 주어지면 감사히 받는 것이고 주어지지 않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다만 언젠가 한 번은 주어질 것이라고 믿어라. 또 하나는 여전히 우리의 영역 안에 머무는 운이다.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누군가 도와 주는 것을 행운이라고 한다면 그 운은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네가 애쓴 탓이다. 누군가 너를 유능하고 애쓰고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 준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겸손하라는 것이고, 좋은 사람에게 정성을 쏟으라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좋은 행운으로 너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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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8.04 19:54:19 *.41.103.229
사부님 고맙습니다.

오늘 처음 건달이 된 기분을 조금 느꼈습니다.
아침을 아이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아들녀석이 아빠도 방학했냐며 의아해 하더라구요...ㅎㅎ

저에겐 여지것 행운이 많이 따라다녔습니다.
이상하리 마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습니다.
제게 꼭 필요할 시기에 나타나서는 여러가지를 일러주셨습니다.
지금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분도 계시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습니다.

이제것 보다 더욱더 정성을 쏟겠습니다.
저에게 그리고 제가 만나는 모든분들께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일 아침은 일찍부터 도서관에서 아침을 보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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