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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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나를 위한 산의 처방
누구나 자존감이 떨어질 때가 온다. 스스로 초라한 경우를 맛본다. 동료와 언성을 높이고 싸우고 난 뒤, 상대방의 높은 스펙Specification에 기가 눌린 뒤, 상사로부터 말도 안 되는 유아적인 질책을 받고 난 뒤,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그런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당신은 잘못이 없다. 이럴 땐 산을 올라 지구 밖으로 잠시 다녀오라.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거리를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상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너를 초라하게 만들어 주겠어.” 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는 괴물이다.
글을 옆길로 잠시 빼면, Spec.이란 것이 물건의 사양을 말하는 것인데 인간이 물건이 되어 스펙을 두고 판단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게 됐다. 물건과 상품과 인간의 층위가 다르지 않고 값 매겨지는 원리와 취급되는 양상이 다르지 않게 된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과 생각까지 현금계산으로 환원되는데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얼마만큼의 이익이 되는가를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굴리게 된다. 말 한마디, 만나는 사람, 내가 보는 영화조차도 철저하게 내 미래 이익의 관점에서 선택하거나 거부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인간적인 만남이나 교감이 불가능해지는 국면에 이르고 마는데 결국 나 스스로도 자신으로부터 값 매겨지는 내재적 자기사물화 형태로 전개되는 것 같다.
개인적인 교환가치가 높을수록 상품화된 인간으로서 현금성은 높아지고 안락한 생활이 가능하게 되겠지만 그것은 마치 거세된 야생과 같은 것. 야만의 시대는 오래 전 지나갔지만, 황폐화된 인간은 여기저기에 득실거린다. 모든 사람이 돈과 부를 좇는데 혈안이 된 사회는 아무리 가져도 자신보다 많이 가진 자가 생겨나기 때문에 거의 모두가 부에 관한한 상실감에 빠져 있다. 이 상실의 시대에 ‘초라한 나’는 필연적이니 앞서 ‘당신은 잘못 없다’고 말한 이유이자, 알리바이다.
글을 다시 길로 돌려놓으면,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세상에 쫄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산으로 가야한다. 산으로 가서, 커다란 지구 짐승의 등짝을 걷자. 거대한 화강암 피부를 한 산을 오를 때 시선은 천천히 높아진다. 바라보는 시야를 멈추지 말고 이어가면 산은 무한히 확장하는 우주로 우리를 데려 간다. 지구를 Bird view로 본다. 우리 옆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먼지 덩어리에 불과한 지구, 둥둥 떠다니는 육지에서 일어나는 70억 ‘화학적 찌꺼기’들의 사사로운 일중에 하나 일뿐이다. 이 시선으로 보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연이 된다. ‘우주의 관점에서 지구는 단지 하나의 특수한 사례’고 지구 관점에서 나는 동일한 인간류의 상이한 형태일 뿐이다. 거대한 산악지괴가 융기하며 스스로 두터운 층을 파괴하고 두께 1,000미터의 외피를 들어 올리거나 찢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다시 여기, 지금의 나로 돌아온다. 조금 여유로워진 것 같다. 이 방법은 아무리 잘난 인간도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는 평균성에 기대어 남들과 그리고 주변과의 불필요한 비교를 단절하는 연습이다. 자, 이제 됐다. 상상하라. 무엇을 하더라도 이룰 수 있다는 자기가능성에 대한 최면을 이때 걸어보는 것이다. 언젠가 스승이 말했듯 우리는 북극성에 닿을 수 없다. 그러나 북극성은 나침반의 끝을 떨리게 한다. 닿을 수 없지만 내 삶을 떨리게 만드는 삶에 북극성 하나를 상정하는 일은 지루한 삶을 중단시킨다. 계획은 사무적이고 목표는 가깝고 목적은 전략적이다. 내 마음 속 가벼운 꿈 하나, 주위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흘려 듣거나 웃음거리로 여기는 첨단 하나를 간직한 나는 월납 백만 원짜리 보험보다 든든하다.
비록 우리는 땅을 기어 다니는 수평의 삶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하겠지만 수직의 첨단을 향하는 작은 꿈 하나는 아무도 말릴 수 없다. 평범한 사람이 어느 날 어느 순간 거북목을 꼿꼿이 그리고 천천히 척추도 세워 첨단을 바라본다. 오래된 서류가방을 스스로 던지고 피켈로 바꾸어 잡는다. 잘 차려진 밥상 대신에 거친 코펠 밥을 나누어 먹고, 죽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 넣은 단출한 배낭을 둘러매고 바람이 부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든다. 갈기 같은 머리가 휘날린다. 첨단에 이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비로소 삶은 우리를 떨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