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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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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11일 06시 47분 등록
[바람처럼]

아이들의 시력이 많이 떨어져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병원 안과를 다녀왔다. 결론적으로 두 아이 모두 안경을 쓰란다. 아니면 각막보정기구인 드림렌즈를 하란다. 2가지 방법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단다....

병원 안 과도한 에어콘의 시원함과는 달리 거리의 날씨는 사우나 안을 방불케 했다. 만약 그늘에 있지 않고 햇빛을 머리와 가슴으로 맞은 채 10분 이상만 거리에 있다보면 더위를 배터지게 먹고, 큰 대자로 누워 버릴 듯 하였다. 하늘 위 쏟아붓는 태양열과 거리에서 화답하여 발생한 복사열이, 절묘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사람들의 기운을 깡그리 다 빼앗아 가고 있었다. 말복(末伏)은 어제였건만 여름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듯 싶다. 지금과 같은 여름의 위세로 보아서는, 말복 다음 절기로 보름 후쯤 종복(終伏)을 새로이 추가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집으로 들어와도 더위는 맹렬하였다. 앞, 뒤 베란다 창문을 다 열어 놓아도 아주 가끔씩만 불어주는 바람은 야속다 못해 얄밉기까지 하였다. 과제를 위해 아직 반도 읽지 못한 책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지만, 그야말로 까만 것은 글자요, 하얀 것은 백지다. 까만 것과 하얀 것은 서로 연결되고 통합되어 회색빛 물체로 변형되고, 그 형체가 점점 모호해진다. 그와 함께 그 주위도 점점 옅은 회색빛에서 짙은 회색빛으로 조금씩 조금씩 어두워간다.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떠진다. 이런, 벌써 졸고 있는 중이다. 페이지를 보니 1페이지도 넘기지 못한 채 그 주위에서 뱅뱅 돌고 있다. 앨빈 토플러 선생님의 목소리가 오래되어 늘어난 테이프 마냥 늘어진 채 계속하여 반복되며 들리는 듯 하다. 잔.소.리.처럼. 웃통을 다 벗어제끼고 발은 찬물에 담가 놓은 채로 책을 읽어 보려 하지만, 그의 힘찬 주장도 졸린 자장가 마냥 끊임없이 눈꺼풀을 내리도록 만든다.

계속되는 전투에 힘이 빠져갈 무렵, 갑자기 바깥에 비가 한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마구 빗발이 강해지며 제법 강한 소나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하늘은 하얗건만 빗방을은 강하다. 그야말로 지나가는 비의 전형이다. 5분 정도 뿌렸나. 그리고 조용해진다. 다 지나갔다 보다. 그리고 다시 태양빛이 강해진다. 바닥에 뿌려진 빗물이 열기에 의해 데워져 습기는 한층 더 강해지니, 그야말로 후덥지근한 날씨가 되었다. 대단하다. 찜질방을 가지 않고도 이런 사우나를 즐길 수 있다니. 오우, 노~다... 이젠 별수없다. 선풍기라도 끌어 안아야 하겠다. 하지만 그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가고, 오늘도 별 수 없이 밤을 세워야 하나보다. 밤을 세우고 내일이 편해질 수 있다면 좋을텐데 지금까지의 진척상황으로 봐선 내일도 만만치 않은 하루가 전개될 듯 싶다.

아내가 방으로 들어오더니 베란다 앞에서 책을 읽으란다. 무슨 소린가? 밖을 내다보았더니 날씨는 그대로인데 갑자기 강해진 바람이 바깥 나무들의 귀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적인 돌풍까지 몰아쳐 집안으로 내쳐 들어오니 뜨거웠던 열기에 헉헉대던 몸이 단박에 시원해진다. 오우, 예~다... 베란다 앞에 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책을 폈다. 시원한 바람이 뜨거워진 이마를 거쳐 목덜미, 가슴과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까지 핥고 지나가니 그야말로 답답함이 뻥 뚤리는 듯 하다. 그 시원함을 느껴가며 책을 읽다보니 갑자기 바깥이 어두워진다. 바람은 더욱 강해지고,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다. 변덕스런 기상변화지만 이렇듯 갑자기 찾아온 시원한 바람은 무척이나 고마운 존재이다. 시원상쾌함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에 가속이 붙는다. 그 가속도와 바람이 연결되니 그야말로 오우~ 쌩유다.

갑자기 바람의 여러가지 뜻이 떠오른다. 이번 주는 어떤 주제로 칼럼을 써야할 까 고민 중이었는데, 시원한 바람처럼 시원한 칼럼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바람으로 시작해서 바람으로 끝나는 칼럼을 한번 써보고 싶어진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럼 시작하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는 바람은 말 그대로 순 우리말 '바람'이다. 한자로는 '風(풍)', 영어로는 'wind'라고 표현한다. 바람은 과학적으로 단순히 '지표면에 대한 상대적 공기의 움직임'을 의미하며, 이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사람들이 피부로 느낀 후 단어로 표현한 것이 바로 '바람'이다. 이 바람은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옛부터 다르게 불러오곤 했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 이런 문제 한번씩은 풀어본 기억이 날 것이다. 동쪽에서 불어오면 <샛바람>, 서쪽에서 불어오면 달려라~! <하늬바람> 또는 <갈바람>, 남쪽에서 불어오는 것은 <마파람>, 북쪽에서 오면 <높바람> 또는 <된바람>이라 불리웠다. 자, 그럼 여기에서 막간 퀴즈 하나!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대해선 뭐라고 불렀을까? 어려운가? 그럼 힌트 하나. 말 조합 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맞추기 쉬운 문제~!! 정답은 칼럼 마지막에. 상품은 '참 잘했어요~!!' 말 한마디. ㅋㅋ

바람의 종류는 너무 많아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재미있는 것 몇 가지만 소개한다.

이른 봄에 살 속으로 파고드는 차갑고 으스스한 바람 ☞ 소소리바람
초가을 생량머리(가을이 되어 서늘해질 무렵)에 선들선들 부는 바람 ☞ 건들바람
가을에 으스스하고 쓸쓸하게 부는 바람 ☞ 소슬바람
산에서 내리 부는 바람 ☞ 재넘이바람
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일명 꽁지바람 ☞ 꽁무니바람
솔가지를 가볍게 흔들며 불어오는 바람 ☞ 솔바람
좁은 골목으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 황소바람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 ☞ 명지바람
맵고 세차게 부는 바람 ☞ 고추바람
가마를 타고 쐬는 바람 ☞ 가맛바람
궁둥이를 흔들며 일으키는 바람. 일명 치맛바람 ☞ 궁둥잇바람
비오기 앞서 일정한 방향도 없이 마구 부는 바람 ☞ 미친바람
쓸데없이 부는 바람 ☞ 헛바람

오무라진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멜로디를 담은 바람 ☞ 휘파람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바람 ☞ 꼭연락바람
대한민국 이박사가 제일 좋아하는 바람 ☞ 신바람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영화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람은 세기의 정도에 따라 모두 12가지 등급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참고 삼아 알아보자.

고요 < 실바람 < 남실바람 < 산들바람 < 건들바람 < 흔들바람 < 된바람 < 센바람 < 큰바람 < 큰센바람 < 노대바람 < 왕바람 < 싹쓸바람



이쯤되니 시원한가? 아닌가? 더 더운가? 흠... 나의 경우 바람을 맞으며 칼럼을 쓰니 시원하고, 바람 덕분에 바람을 주제로 칼럼을 다 써가니 더욱 시원해지는데... ㅋㅋ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왜 여름이 이렇게 더울까. 작년과 비교하니 답이 나온다. 작년 이맘때쯤 동해안 바닷가로 여름휴가를 다녀왔었다. 시원한 바닷물에 몸을 담근채 파도와 더불어, 가족과 더불어 더위를 잠시 놓았었다.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머릿 속을 비우고 돌아왔었다. 가족과 함께 떠오르는 일출을 맞으며 후반기를 더욱 열심히 하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논스톱이다. 조금은 지쳤나보다. 조금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나 보다. 이제 다음주면 휴가다. 회사도 휴가고, 연구원도 휴가다. 재충전이 필요한 시기다. 비워야 할 시기다. 쓰레기는 버리고, 그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무엇으로 채워야 즐겁고 행복하고 재미있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처럼 시원, 상쾌, 유쾌해질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시기다. 잘 비우고, 잘 채워 다시 돌아오자. 솔바람에서 고추바람으로.


<퀴즈정답>
높새바람(北東風)..
맞추셨나요? 참 잘했어요~!! 짝짝짝...!! ^^;

IP *.178.3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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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8.11 09:17:53 *.36.210.157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 ->명지 바람이 일상과 더불어 항상 불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채우려 하지 말고, 그냥 좀 푹~ 신나게 쉬고 돌아오는 것이 많이 담아오는 것은 아닐까?

지치고 많이 힘들어 지는 시기이지. 연수를 다녀오면 훨씬 좋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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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8.11 14:50:37 *.244.220.254
이 형님이 '바람'이 나실라나~ 왜 자꾸 바람 타령이세요.
불혹의 나이, 바람같은 로맨스를 꿈꾸는 것은 아니신지? ㅎㅎㅎ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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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1 22:23:08 *.123.204.118
불혹은 로맨스 꿈꾸면 안되남.
거암, 섭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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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8.12 07:27:55 *.244.220.254
꿈꾸고, 행동하셔도 됩니다. 단, 걸리지 마세요~ ㅎㅎㅎ
재우형님, 창형님같이 순수한 영혼들이 더 위험스럽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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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양
2008.08.12 10:12:55 *.122.143.151
이런...
창형님!! 거암!!
남의 시원한 바람방에 들어와서, 웬 불륜, 로맨스 타령이람..
그냥 바람을 바람 그 자체로 봐주셨으면 좋겠는디 말여..
그리고, 이건 곁다리로 하는 말인디..
나는 내가 생각해도 순수한 영혼이 맞는디,
창형님은 쪼끔 아닌거 아녀? 순도에서 쬐께 떨어지는거 아닌감?
글케 생각들 안 드시는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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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8.12 10:58:35 *.127.99.61
나도 바람 칼럼을 쓰길래, 자연 현상 바람에서, 또 다른 perspective 로 본 바람으로 주제를 이동할 거란 기대를 가지고 읽었는데 끝까지 아니네.
바람의 여러 면을 다 통찰하지 못한(혹은 안한) 그런 칼럼이라, 쩝!
다음에 바람 2편을 써봐,
살랑대는 가을 바람이 불면 말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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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양
2008.08.12 21:38:56 *.228.146.136

진지 모드글,,
조아조아요. 뉴질랜드 바람에 실려가지 말고 잘 갔다 오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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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바람양
2008.08.13 08:59:27 *.122.143.151
조교님!!
조교님이 기대했던 바람은 거암과 창형님이 말하는
로맨스와 불륜의 경계점?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걷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뭐 이런거?ㅋ ...

여러 면을 다 통찰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고요,
날도 더운데, 더 더울 거 같아서 경계를 넘어가려던 걸
중간에 끊었어요.

그리고 차칸양인데... 이미지도 생각해야지요.. 글쵸? ㅋㅋ

그리고 앤님!! 찌릿~!!
아무리 댓글이라도 남의 아뒤 도용하지 맙세다~!!
요즘 쬐께 트럼프가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진지를 드시고 있었는데,
新質島(신질도=뉴질랜드) 바람쐬고 오면
겡끼가 좃또 오겡끼 되어서리, 다시 무한질주모드로 변신할겝니다~!!
기대하십셔~!!

"나에게 '밥'이란 단어는 있어도 '진지'란 없다"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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