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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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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30일 05시 43분 등록
이상한 반 아이들

어느 날 우리 학교에 이상한이란 참 웃긴 이름을 가진 선생님이 부임해 왔다. 선생님은 기존 선생님들과 여러 면에서 많이 달랐다. 우리들과 농담도 잘했고, 그 상대가 누구든 이야기 들어주는데 선수다. 보통 선생님들이 아이들 혼내는 것이 주특기라면 이상한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의 기를 살리는데 특별한 노하우를 갖고 계셨다. 무엇보다 별 생각 없이 지루하기만 한 학교생활에 싫증 난 아이들에게 이상한 선생님은 학교생활의 다른 모습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우리 반 급훈은 ‘대범’ 이었다. 이상한 선생님과 함께한 고등학교 3학년의 1년이 없었다면 나의 학창시절은 지루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반 아이들 모두는 이상한 선생님 덕분에 스스로 대범해 질 수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살려주셨다. 심지어 우리 반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던 나홀로 조차 선생님과 한 학기를 지내면서 반 아이들 모두가 홀로가 어떤 아이인지 알게 되었다. 그 친구 별명은 두리다. ‘나두리’ 훗날 ‘둘리’로 둔갑했다.

중학교 때부터 싸움에 이골 난 차재규도 시간은 좀 걸렸지만 이상한 선생님 영향을 받아서 인지 졸업할 무렵 재규의 변화에 모두들 기뻐했고 그 사실은 훗날 학교의 전설이 되었다.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별명을 대놓고 부르지 못하는 아이였다. 아무도 재규의 별명인 ‘재규어’를 그 애가 들을 수 있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싸움을 하지 않았지만 고등학생으로 꽤 큰 조직의 중간 보스급 정도 된다는 소문에 누구도 재규를 ‘재규어’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반 아이들은 재규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다. 재규의 존재가 학교에 소문난 이후 누구도 우리 반에 들어와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는 약한 친구에게 관대했다. 그러나 알량한 힘으로 반 아이를 괴롭히는 애들한테는 두려운 존재였다. 재규의 이런 모습은 이상한 선생님의 영향이 꽤 컸다.

인열이는 예술가적 기질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 아이다. 뒷주머니엔 항상 얇은 시집이 반쯤 보이게 들어있었다. 그 아이 별명은 ‘아트최’다. 자기 스스로 지어 유포했다. 그림을 좋아했고 책을 좋아했다. 기계제도가 전공인 우리 반에서 제도와는 가장 거리가 먼 아이였다. 인열이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했다. 이상한 선생님도 아트최를 인정해주었다.

인열이 머릿속은 온통 시와 그래픽디자인뿐이었다. 그 이외의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우리 반 아이치고 인열이가 눈을 감고 읊조리는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를 들어보지 못한 친구는 없었다. 이상한 선생님은 그런 인열이를 대단한 아이라며 우리에게 “아트최는 멋진 그래픽 디자이너가 될 꺼야.”라며 치켜 세워주셨다.

홍일이는 우리 과에 수석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수석에 대한 건 알 수 없는 사실이다. 1학년 1학기 첫 시험부터 내리 3번의 시험에서 항상 일등을 해서 수석일 꺼라 생각했다. 홍일이는 중학교 때도 공부를 잘했다. 강남에 있는 학교를 나왔는데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빨리 돈을 벌겠다고 공고를 선택했다고 했다. 학교 졸업 후 홍일이는 상급학료로 진학했다. 아마 1학년 때부터 누가 도움을 좀 주었더라면 홍일이는 충분히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상한 선생님도 짧은 시간에 대학 입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주실 수 없으셨는지 최선을 다해보라는 격려의 말씀과 적성에 맞는 전공 선택에 대한 조언을 해주셨다고 훗날 홍일이 한테 들었다.

승진이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아이였다. 어느 날인가 교실에 새우젓 냄새가 진동한 적이 있었는데 그 발원지가 승진이 옷이었다. 새벽에 수산시장에 나가 새우젓 까데기(트럭에 실린 새우젓 통을 내리는 일)를 하고 온 것이다. 한 학기 내내 우리는 새우젓과 멸치젓 냄새를 맡아가며 수업을 받아야 했다. 승진이는 기타를 잘 쳤다. 아버지가 밤무대에서 기타를 치셨을 정도로 수준급의 연주실력이신데 아버지에게 사사 받았다고 했다. 승진이는 처음엔 통키타를 주로 쳤었는데 나중엔 전기기타와 클레식 기타까지 다양하게 즐겼다. 그런데 노래는 영 시원치 않았다.

승진이는 자기 스스로 중학교 때 좀 놀았다고 했다. 불광동에서 지 이름을 대면 알꺼라면서 혹시 불광동 놀러와 삥 뜯기면 자기 이름을 대라고 했는데 길가다 삥 뜯겼다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니가 그 불광동 휘발유냐.”라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중학교 때 문제아였던 승진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남다른 다짐을 했던 것으로 보였다. 1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영어를 100점을 맞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그 거짓말 같은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놀라게 만든 건 영어 선생님의 반응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승진이에게 물었다.
“어떻게 공부했는데 하나도 틀리지 않았냐.”
승진이가 조금은 신이 난 표정으로 이야기 했다.
“책을 다 외워버렸는데요.”
그러자 선생님은 야릇한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책 외워서 100점 맞는 건 실력이 아냐. 운이 좋았군.......”
그 뒤로 승진이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영어 선생님에게 큰 상처를 입은 승진이를 이상한 선생님도 1년 동안 어떻게 하지 못했다.
IP *.41.10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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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8.30 12:34:12 *.41.103.229
책을 어떻게 쓸까 고민중 제 고등학교 시절을 극화해 보기로 했습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맞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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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8.30 16:45:59 *.36.210.59
ㅎㅎ 그래? 극화라... 재미나는 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상하며 어제 잘 차려 입은 그대의 정장과 또 그대의 안주인의 정갈한 모습과 마치 홍스가 선생님으로 어느 학교에 부임한 듯한 느낌도 들고, 바로 전에 올렸던 칼럼에서처럼 뉴질랜드 연수 중 번지점프대에서의 결연한 모습으로 돌아가 실행에 옮겨가는 단호함까지 모두 예사롭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오네. 벗들의 이런 모습들을 대할 때면 풀려져 있던 내 자신의 나사도 살살 조이게 되어서 무엇보다 좋아.

지난 번 칼럼에서 느낀바도 있지만 어제 그대의 안주인을 보니 더욱 애정과 관심이 가더라. 홍스야, 자네 입버릇과 언제나 마음 놓고 털어놓는 자랑처럼 자네 안 사람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야. 결코 쉽지 않은 결정과 배려인 것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느껴질 거야. 이렇게 빨리 또 한 편의 글이 덜컹 올라오니까 읽기도 전에 그대의 작심이 전달되는 느낌이 들고는 하니까. 자네의 움직임이 나태함에 빠져 뒹구는 벗에게도 동기를 불러일으키며 울림을 전해주네. 글은 글 이상의 무엇인 것이 과연 맞는 갑다.

아우야. 지금의 그대의 모습을 글이 완성되어 책으로 이어질 때까지 잘 이어줘. 한 권의 생의 첫 책을 완성하기 위해 제일의 목표가 작가인 것이 정말 짜릿한 전율로 남아 귓가를 쟁쟁거린단다. 이판 사판 공사판으로 뛰더들던 뉴질랜드에서의 그 날 그 점프대에서의 다짐처럼, 그리고 그 환한 외침과 각오들처럼 단단히 승리의 또렷한 힘으로 똘똘 뭉쳐나가길 격려하며 바랄께. 꼬옥 꼭. 필승! 대한민국 변.경.연 천하의 위대한 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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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언
2008.08.31 13:33:23 *.160.33.149

어어, 난 별명이 재규어면 불러줘도 좋을것같은데. 크크

재미있어요! 다음 편은 언제 나오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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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9.01 17:51:23 *.97.37.242
쉽고 편안하게 읽히네, 흥미와 긴장감을 유발하기도 하고.
내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다양한 특징의 학생들이 이상한 선생님과 벌이는 좌충우돌 학습기.
기대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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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9.02 14:01:10 *.247.80.52
저는 학교 이야기가 좋아요. 왠지 학교가 좋아요.
제가 학교 다니면서 엄청 행복했다거나, 아주 특별한 뭔가가 있었다거거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학교가 좋아요.

현장이 팍팍 느껴지는 이야기가 좋은데요 홍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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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2 23:52:21 *.160.33.149

재미있게 읽었던 얄개전 생각이 나는구나.  
후편이 기대되는구나.  더 빨리 써라.  일주일에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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