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256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오래 말하는 사이
신달자
너와 나의 깊은 왕래를 말로 해왔다
오래 말 주고받았지만
아직 목마르고
오늘도 우리의 말은 지붕을 지나 바다를 지나
바람 속을 오가며 진행 중이다
종일 말 주고 준 만큼 더 말을 받는다
말과 말이 섞여 비가 되고 바람이 되고
때때로 계절 없이 눈 내리기도 한다
말로 살림을 차린 우리
말로 고층 집을 지은 우리
말로 예닐곱 아이를 낳은 우리
그럼에도 우리 사이 왠지 너무 가볍고 헐렁하다
가슴에선 가끔 무너지는 소리 들린다
말할수록 간절한 것들
뭉쳐 돌이 되어 서로 부딪친다
돌밭 넓다
살은 달아나고 뼈는 우두둑 일어서는
우리들의 고단한 대화
허방을 꽉 메우는 진정한 말의
비밀 번호를 우리는 서로 모른다
진정이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은폐의 늪 그 위에
침묵의 연꽃 개화를 볼 수 있을까
단 한 마디만 피게 할 수 있을까
단 한마디의 독을 마시고
나란히 누울 수 있을까
신달자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 믿음사, 2004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44 | [리멤버 구사부] 나는 트리맨(treeman)이다 | 정야 | 2022.02.28 | 2543 |
243 | [시인은 말한다] 세상 쪽으로 한 뼘 더 / 이은규 | 정야 | 2022.02.03 | 2369 |
242 | [리멤버 구사부] 내 삶의 아름다운 10대 풍광 | 정야 | 2022.01.24 | 2338 |
241 | [시인은 말한다] 길 / 신경림 | 정야 | 2022.01.17 | 2300 |
240 | [리멤버 구사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 정야 | 2022.01.10 | 2370 |
239 | [시인은 말한다] 빗방울 하나가 5 / 강은교 | 정야 | 2022.01.03 | 2623 |
238 | [리멤버 구사부] 실재와 가상 | 정야 | 2021.12.31 | 2502 |
237 | [시인은 말한다] 어떤 나이에 대한 걱정 / 이병률 | 정야 | 2021.12.20 | 2629 |
236 | [리멤버 구사부] 나를 마케팅하는 법 | 정야 | 2021.12.13 | 2631 |
235 | [시인은 말한다]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 / 이은규 | 정야 | 2021.12.13 | 2653 |
234 | [리멤버 구사부] 나보다 더한 그리움으로 | 정야 | 2021.12.13 | 2243 |
233 | [시인은 말한다]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 다니카와 슌타로 | 정야 | 2021.11.22 | 3237 |
232 | [리멤버 구사부] 삶에 대한 자각 | 정야 | 2021.11.15 | 2516 |
» | [시인은 말한다] 오래 말하는 사이 / 신달자 | 정야 | 2021.11.15 | 2568 |
230 | [리멤버 구사부] 삶의 긍정, 그것은 이렇다 | 정야 | 2021.11.01 | 2454 |
229 | [시인은 말한다]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 정야 | 2021.10.25 | 2544 |
228 | [리멤버 구사부] 이해관계 없는 호기심 | 정야 | 2021.10.18 | 2420 |
227 | [시인은 말한다] 깨달음의 깨달음 / 박재화 | 정야 | 2021.10.11 | 2524 |
226 | [리멤버 구사부]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 정야 | 2021.10.11 | 2512 |
225 | [시인은 말한다] 제도 / 김승희 | 정야 | 2021.09.27 | 25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