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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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지
어떤 주제였든 글에서 제 삶을 떠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삶을 철학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같잖은 생각을 붙잡은 탓이지만, 철학하기
위해 삶이 필요한 게 아니라, 사는 데 필요한 것이 철학이라는 쓸데없는 고집은 여전합니다. 그렇지요, 지금에서야 말씀입니다만 마음편지의 시작이었던 라오스에서
나를 두렵게 만든 건 어이없게도 흙 바닥이었습니다. 사람은 단순합니다.
이 길은 왜 잘 닦여진 아스팔트가 아니고 정돈된 보도블럭이 아닌가, 더럽게 흙이 묻은 신발을
보며 새로운 환경에 대한 도전이고 뭐고, 순간 겁이 났었던 그 기억이 제겐 가장 강렬한 기억이었습니다. 그때 그 구체적인 현실 앞에서 고귀한 철학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흙바닥의 경험은 스스로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권리나 권력을 버리고 떠나온 자들은 보호받을 길 없는 삶의 몰락을 선택한 자들인데, 아무런 백그라운드가 없는 그냥 온전한 사람, ‘저스트 맨’으로서 내던져진 삶을 살면서 ‘다 사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마음편지 3년을 끌어온 서사의 힘도 아마 여기서 나온 게 아닐까 합니다.
라오스 이야기에서 시작된 글은 베트남을 잠시 거쳐 회사인간과 월급쟁이
이야기로 이어졌었습니다. 이후 산을 주제로 했던 글은 최근, 그러니까
종국에는 마르크스와 삶에 대한 어설프고 주관적인 잡문에 이르러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다행이다 싶습니다. 조금 더 나아갔다면 중언부언하는 맥락 없는 글로 제 바닥을 드러냈을 겁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 겨우 잡스러운 글이 방향을 찾아 간다 싶은 생각이 드는 중에 펜을 놓게 되니 갈 곳 잃은 글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지금 제가 있는 곳이 해외이고, 해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을 떠나올 때부터 내 것의 일부를 내려놓지 않았다면 올 수 없었던 곳일 테지요. 태어난
김에 산다고 했던가요, 이왕 내려놓은 김에 삶의 우선 순위를 스스로 바꾸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조금 바꿨습니다. 우선 나에게 회사와 일은 한국에 있었을 땐 첫
번째 순위에서 서너 번째로 밀렸습니다. 일터에서 최고가 되려는 노력을 중단했습니다.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건 더는 내 삶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각성 때문이지요.
성과에 대한 성취감, 승진의 짜릿함, 인정받는
자의 포근한 소속감 같은 것들은 이제 좋아 보이지도, 근사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일은 내 가족의 안정적인 생활을 지탱하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직장에서 해야 하는 최선의 노력을 제 삶을 사는 데 쏟았습니다. 책 읽고, 글 쓰고, 배우고, 여행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과 돈을 썼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음편지의 역할은 컸습니다. 의도치 않게 내 삶의 중요한 순간에 번뜩 기어나왔던 동남아 생활은 마음편지와
버무려져 삶의 커다란 오아시스가 됐습니다. 졸필의 세 권의 책은 모두 한국을 떠나 이곳에서 쓰여졌으니
개인적으로는 조셉 캠벨의 우드스턱 못지않은 Great depression이자, 다산의 유배지 강진 다산초당에서의 과골삼천踝骨三穿에 감히 빗대 봅니다. 내 결정으로 내 삶을 움직일 수 있는지, 시킨 일만 하는 세월에 묻고 싶었던 것인데 사실, 수도없이 질문하다
보니 답 속에 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이 질문은 2012년
구본형이라는 사나이를 만나면서 제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지금도 삶의 곡절을 비켜갈 때마다 스승님 생각이 납니다. 한때 동시대를
살았던 동지로, 기가 막히게 잘 살았던 인생의 선배로, 훌륭한
예지와 근사한 품격을 갖춘 인격적 스승으로 그를 불러냅니다.
마음편지 독자 여러분,
사는 동안 특별하고자 노력했으나 특별하진 않았고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로 저는 살고 있습니다. 이뤄냈다 라고도 할 수 없는 작고 변변찮은 성취들은 삶의
곳곳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합니다. 밥과 꿈 사이, 굴종과
해방, 억압과 자유 사이를 늘 떠돌고 그것들의 중간 어디쯤에 편안한 자리, 사납지 않은 곳,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지점에 거처를 두고 삶이
거칠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삽니다. 아직 늙발은 아니지만, 나잇살
먹어 돌아보니 지나간 삶은 움켜쥔 손의 바람처럼 빠져나가고 없습니다. 아마 남은 삶도 그러할 테지요. 청승과 주책과 비열한 노회함과 수전노의 쪼잔함이 얽혀 스스로 실망한 나날이 뻔하게 보입니다.
사는 동안 약간의 몸부림을 치겠지만 내 과거와
삶의 고비마다 보여왔던 배포로 미루어보건데, 삶을 통째로 바꿔버리는 일은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마침내 아무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뾰로퉁한 얼굴로 정지될 테지요.
후회라는 것을 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사는 것이라면,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또 늘 당당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붙잡는 월급쟁이 정체성 앞에서 저는 여전히 엎어집니다. 그나마
마음편지라는 손잡이를 잡으며 넘어지지 않고 위태롭게나마 버틸 수 있었다는 사실에 독자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대부분 나 자신이었을 수 있었던 나를 만나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른 채 죽는 것이지요. 회사에서의 직책, 가족
안에서의 역할, 사회적인 관계, 돈벌이, 생계 같은 제약이 내가 될 수 있었을 나를 온 힘으로 막습니다. 이것은
삶이 삶을 스스로 배신하는 것일 텐데, 이런 것들이 죄다 소거된 ‘나’를 언젠가 만나보고 싶은 것이 저의 조그만 소망입니다. 그럴러면 질식당하고, 힘들고, 소진되고, 파괴되는데도
그것을 헌신이라 말하지 않는 것, 아프고, 어렵고, 재미없는데도 그것을 소명이라 말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요. 그렇게
나아가보겠습니다. 편지를 쓰며 화자와 독자를 따로 염두에 두지만, 제가
썼던 마음 편지글은 사실은 스스로 다짐하고 협박하며 독려했던 저의 독백이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부끄러운 제 독백을 호응해 주시고
답장 주시면서 매주 아름다운 수요일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물론 먼 나라에서 응원해 주신 독자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꼭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연구소 홈페이지에 늘 댓글로 공감해 주신 백산 선배님, 최우성 선배님께도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음편지 독자 여러분, 지난 3년간 저의 못난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테나를 우주로 세워 독자분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Hang in
there!
"태어난 김에 산다."
하하하...너무 멋진 말이네요..
산을 오르는 이라 그런가요?
문장 하나, 허투루 쓰이는 일 없이
땅을 꾹꾹 밟듯, 마음에 새겨지네요.
얼마 전 6기들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좋은 시간들이었죠. 특히 박상현 연구원이 가져온
Writer's Tear 라는 위스키를 마시며
시간에 관한 노래도 한곡 만들었지요.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다음 노래는 재용씨 글과 문장에서 가사를 훔쳐오겠습니다.
늦어도 2022년에는 완성될 것 같으니....
한국에 오게 되면 한잔 합시다...
3년의 긴 여행..힘들었겠지만, 가슴벅찬
잊을 수 없는 여행이었을 겁니다.
좋은 술 한병 꺼내어 지나간 삶을 음미하시길.
애썼습니다.
화이팅 하세요. ~~^^
계속 재용님의 글을 접할 수 없다니, 무척 아쉽습니다.
한 번도 아주 높은 산을 올라보지 못했지만 재용님의 글을 읽으며 늘 가슴이 뛰고, 많은 배움이 있었네요 !
저도 자연과 운명의 거대한 힘 앞에서 아무리 노력하고 몸부림을 해도 허약하고 왜소하기만 하던 나의 존재를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에게 굳건한 믿음과 용기로 전쟁같은 도전에 대해 자신있게 말했던 것은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랑하는 것이 꿈이든, 실용적인 목표든, 가족이든 말입니다. 그것들은 승패와 옳고 그름과는 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역의 마지막 괘가 화수미제(火水未濟 : 여우가 강을 다 건너 꼬리를 적신다 )인 것은 하나의 끝은 완성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의 시작이 되며 그 시작은 끝낸 것들과 앞으로 다가 오는 것들을 오늘 속에서 어떻게 정리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인생도 올 해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일순했습니다. 보태어 아홉수에 삼재 시작되었다가 끝 나는 해 날삼재입니다. ^^ 전 꿈보다 해몽입니다 재앙이라기보다는 주의하고 성숙해지라는 경고로 생각합니다. 삶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재용님도 새해 멋진 꿈과 해몽을 기원합니다.
'마지막 편지'를 쓰고 난 뒤, 선배님께 특별히 감사함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글, 못난 글 가리지 않고 늘 댓글로 호응해 주신 백산 선배님, 고맙습니다.
편지를 다 쓰고 나니 매주 마감에 맞추느라 진땀흘린 날들이 촤라락 지나갔더랬습니다.
출장가던 길 비행기 안에서 편지 쓰던 일, 업무와 전화가 빗발치던 중에 될 때로 되라며 꿋꿋하게 편지 쓰던 날, 화요일 밤늦게 편지를 보내고 마당에 나가 맡았던 밤냄새, 편지에 덧붙여질 백산 선배님 댓글의 기대...Special thanks to '에킴백산'~~~ 선배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