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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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월부터 화요일마다 편지를 부치게 된 종종입니다.
첫 편지인만큼 간단히 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저를 닮지 않아 무척 시크하고 어여쁜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저를 닮아 무척이나 귀여운 아들들(어찌나 귀여운지 아직도 큰 귀효미, 작은 귀효미라 부르는데, 까치집 같은 머리에 수염까지 덥수룩한 모습으로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고 있는 두 아들놈들을 보고 있으면 저것들이 사람인가 동굴곰인가 싶고, 참 환장하게 귀엽습니다…ㅜㅠ)과 함께 살고 있는 엄마 겸 집사 겸 직장인입니다. 제 나이는 절대 밝힐 수 없지만, 남들은 이 나이 되면 무려 하늘의 뜻을 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업어 키운 아들내미들은 물론 모시고 사는 냥님들 속마음조차 깜깜한 답답이인지라 나이와 상관없이 쭉~ 대단히 신선하고 낮은 정신연령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여튼 마음편지의 유구한 전통에 한 발을 들여놓게 된 이 역사적인 날, 편지를 써보자고 앉아 있으니 구본형 선생님의 칼럼이 실린 첫 마음편지를 받아본 기억이 떠오르네요. 저는 당시 십n년차 직장인이었는데, The Boss라는 책을 내고 강연을 하시던 자리에서 그 분을 처음 뵈었더랬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저는 자기개발서 류의 책들은 돈 주고 사서 읽어본 적이 없는데다 끝이 명령어로 마무리되는 글들, 가령 성공하려면 새벽에 일어나라, TV를 없애라 등등 뭔가 자꾸 하라 말라 하는 그런 문장들을 극혐했던지라 강연자에 대해서 전혀 몰랐고 오로지 지인의 초청이라 간 자리였어요. 그런데 하필 20여 년 직장생활 중 Top3급 빌런으로 기억되는 분을 상사로 만나 고군분투하던 중이라, 상사의 마음을 얻는 법에 대한 그 책을 (해라 말라가 난무하는 문장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다 읽었거든요.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노답이었던 상사와의 관계 설정에 그 강연과 책이 후일 진짜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쓸 만한 자기개발서도 있다는 것을 결국 인정하게 되었지요.
마음편지는 그때 구선생님과 명함을 주고 받으면서 처음 만났습니다. 회사일과 육아, 살림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듯 위태롭고 정신없는 생활에 치여 지내던 제게 매일 도착하는 마음편지는 적잖은 위안이었고 그 필진들을 배출해냈다는 변화경영연구소는 신선들의 세상 같았습니다. 자기 일을 하면서 저렇게 함께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있구나,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도 쓸 수 있구나... 뭐 저런 도인(?)들이 다 있나 싶었죠.
이후 다시 십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연인지 필연인지 회사를 그만두면서 변화경영연구원 과정에 도전했고, 덕분에 제 이름으로 쓴 책 한 권을 내서 뭐든 인생의 전환을 이룰 줄 알았다가 다시 회사로 컴백, 직장생활과 살림살이를 병행하며 여전히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 마음편지를 이제 딱 10년이 지나 제 손으로 쓰게 된 지금, 변화를 연구한다는 연구원 출신답게 저는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인생은 뭐가 좀 변한 걸까요? 10년 전 제가 우러러보던 그들과 같이 '도'를 알게 된걸까요? 겉보기에 제 삶은 달라진 바가 없습니다. 이력서에 새로운 회사와 직함과 저작물이 추가되었을 뿐, 직장인+여성+엄마라는 제 삶의 기본 요건은 바뀐 게 없어요. 지금쯤이면 저 3종 셋트에서 딱 한 가지,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은 벗겨내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변화경영연구원에서 보내는 마음편지는 필연적으로 변화의 코드를 다룹니다. 장사를 통해서, 경제적 자유를 위해, 명상과 요가를 하며, 습관의 힘을 빌어, 독서모임을 통해, 글쓰기로 자신을 단련하며 등등, 각각 참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플랫폼이니까요.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 뿐'이라 말한 누군가가 있었지요? 저는 아직 이렇게 나를 변화시켰어, 라고 말할 수 있는 키워드는 찾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늘의 뜻을 알아야 되는데 백살이 되어도 모를 것 같은 제 현실을 보며 오히려 거꾸로 질문하게 됩니다. 삶의 조건이 아무리 흔들려도 나를 나이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고요. 그 질문에는 답할 수 있는 게 저는 딱 하나 떠올라요. 그것은 바로 바로, '탐닉'입니다. 좀 더 쉽게 요즘 말로 하자면 '덕질.'
그렇습니다. TV 중독, 추리와 호러, SF 매니아이면서, 개별 맞춤 큐레이션이 가능한 만화도매상을 알고 지내며, '쇼미더머니'를 필두로 모든 음악오디션 프로그램을 섭렵하고 요즘 아이돌이 어느 오디션 출신인지, 결선 무대에서 어떤 곡으로 어떤 퍼포먼스를 했는지 줄줄 읊을 수 있는 저는 타고난 오덕, 전천후 덕후입니다. 특히 작고 쓸모없고 하찮고 재미나고 이상한 것들을 탐닉합니다. 평생에 걸친 얕고 넓고 간헐적인 덕질의 최종진화물이 반백살의 워킹맘이라는 게 좀 많이 안 어울리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게 저예요. 규칙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멀고 저질 체력에다 게으른 성정에도 불구하고 큰 탈없이 나와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도망가고픈 모든 순간에 나를 붙잡아준 덕질의 은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견디기 힘든 의무와 현실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일깨워준 작고 소중한 덕질의 힘에 의지해 잘 살았거든요. 그러므로 독자분들은 이제 인생이라는 은하수를 건너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마지막 돛대 같은 존재로서 '덕질'을 부추기는 편지를 화요일마다 만나게 되실 겁니다.
그러니까 수십년 간 밥하고 애 낳고 아이들과 남편 뒷치닥거리하며 전세집 몇 번 옮기고 나니 세월 가버린 당신, 직장에서 눈치 없고 힘도 없는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낀둥이 팀장에서 간신히 임원 타이틀이라도 달아볼까 싶으니, ‘명퇴’가 다가온 당신, 소는 누가 키울거냐며 육아에 살림에 회사일까지 정신없이 살다보니 덜컥 찾아온 마흔의 사춘기에 울고 싶은 당신까지. 수많은 나의 친구와 선후배들을 위한 편지를 부쳐볼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당신들은 이제 덕질을 시작할 때야’를 알리는 계몽주의 에세이, 고단한 당신을 덕질, 아니 보다 품격있는 ‘덕행’의 세계로 인도할 편지를 써 볼 생각입니다. 십대의 덕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우아하고 고매하고 무엇보다도 돈이 있는, (이 나이 되도록 개털이라고요? 아 뭐 그래도 용돈으로 연명하는 학생 때보다는 낫지 않아요? 낫길 바랍니다. …ㅎㅎ ㅜㅠ) 여튼 결론적으로 성인인 당신은 이토록 재미난 오타쿠의 세계에 처음부터 아주 품격있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답니다. 제목을 생각해 보자면, ‘일상에서 소소하게 실현가능한 넓고 얕은 실전 덕질 가이드 – 혼돈의 세상에서 갱년기의 존엄을 지키는 덕질의 효용에 대한 고찰과 체험 수기…라고나 할까요? ^^;
그럼, 무한덕질의 우주로 GoGo! 한 주 뒤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