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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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근무 중에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양평에 사시는 아버지의
절친이 몇 달 전에 관음죽 분갈이했던 화분을 들고 지금 저희 집으로 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근처에
올 일이 있으시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들르기에는 또 화분이 짐이 되어서 지하철을 타고 여기까지 오셨다고
했습니다. 한낮이라 집에는 아무도 없고, 퇴근시간까지는 아직
한참 남아서 죄송한 마음이 가득이었습니다.
퇴근하고 허겁지겁 집에 와보니, 대문 앞에 커다란 장바구니가 있고, 그 안에 손가락처럼 갈라진 잎이 여섯 개 나있는 작은 관음죽이 들어있었습니다.
일곱 번째 잎이 새로 나오려고 꼿꼿하게 서있었습니다. 흙 표면에는 반짝거리는 색색깔 조약돌과
조개가 얹어져 있었습니다. 흙을 손으로 만져보니 축축해서 다음 주부터 물을 주면 될 것 같았습니다.
관음죽은 아빠가 좋아하는 나무였습니다. 손을 많이 타지도 않고, 그늘에서도 잘 자라고 운치가 있는 나무였기 때문입니다. 최근 호텔이나
인기 요릿집에서 식물로 인테리어를 하는 것을 많이 봤는데, 멋진 관음죽이 빠지지 않고 있어서 괜히 흐뭇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관음죽은 친구분이 예전에 이사를 했을 때 아버지에게서 선물 받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관음죽이 잘 자라서 너무 커지는 바람에 좀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냥 또 버리기에는 마음이 흡족하지 않아
저에게 선물을 하시기로 결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집에 식물을 들이니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해서 식물을 좀 들이고 싶다가도, ‘연쇄살식마’라고
불릴 정도로 식물을 잘 죽이는 저를 알기에 스스로는 사지 않습니다. 이런 처지니 화분 선물은 저에게는
참 부담스러운 선물입니다. 그래도 살림을 꾸려가다 보면 화분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결혼 선물로 회사에서 받았던 고무나무와 몇 년 전 생일에 친구가 준 작은 야자나무가 아직 숨은 붙어
있습니다. 이 관음죽이 세 번째 생존 식물이 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사회의 기브
앤 테이크 계산법에 익숙해진 저에게, 긴 시간 지하철을 타고 화분을 가져다주는 수고로움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순수한 나의 기쁨으로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내 시간을 몇 시간씩 쓸 수 있는 일이 저에게도 생기면
좋겠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그렇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친구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식물이 생기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가지도 커지고 이파리도 늘어나는데 화분을 언제쯤 바꿔줘야 할지, 가지치기나 이파리를 제거할 필요는 없는지 걱정이 많은데,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한정적인 것 같고 누구에게 가져가서 보일 수도 없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도
아빠는 식물을 키우는 것은 물이나 햇볕이 아니라 ‘정성’이라는
말을 자주 일러주셨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집에 온 꼬마 관음죽이 잘 자라서 클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을
써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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