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2주만에 편지를 보내게 된 점,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 발리에 와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호치민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느라 마음편지를 놓쳤고 어제는 허리를 다쳐 며칠 누워있는 바람에 놓쳤습니다. 하지만 2주 연속 마음편지를 쉴 수는 없어 하루 늦었지만 편지를 보냅니다.

발리 온지 이제 8일차가 됐고, 앞으로 3주 더 있을 예정입니다. 코로나 이후 처음 온 해외여행입니다. 2년 7개월만에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저는 여행마다 화두를 정하는데요, 이번 여행의 화두는 'Discovery 발견' 와 'Relaxation 휴식/멍때리기' 입니다. 계획을 세우는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 하루하루를 발견하며 살아볼 작정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멍때리기를 ‘닉센 Niksen’(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라고 하는데, 멍때리기를 어릴 때부터 훈련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훈련하는지 문득 궁금해지는군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쉴 때조차 뭔가를 해야하는 강박이 깔려있는 한국에서는 매우 어렵죠. 죄책감, 불안함을 가지지 않고 휴식하는게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뇌가 가장 활발하고 자유롭게 있을 때가 멍때리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기왕 제대로 멍때리려고  대표적 휴양지 발리를 찾았습니다. 이곳 생활을 궁금해하실 것 같아 간단히 느낀 소회를 좀 적어보려 합니다.

발리는 지난 3월부터 도착비자를 재개해 관광객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많은 규제가 풀려서 거의 코로나 이전과 같은 수준인 상태라 상대적으로 편하게 올수 있었습니다. 아직 예년에 비하면 50% 정도 밖에 회복이 안되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거리에 나서면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갑니다. 아무래도 호주인들이 가장 많습니다. 비행기로 3시간 밖에 안 걸리는데다, 호주에 비하면 물가가 많이 싸서 부담이 없기 때문이죠.

발리 사람들은 자신들을 Indonesian이라고 하지 않고, Balinese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로 치면 한국사람이 아니라 제주도사람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만큼 발리는 인도네시아와 여러모로 다른 특성이 있어요.  가장 다른 건 종교. 인도네시아는 70% 이상이 무슬림으로 구성된 국가인데, 발리는 다수가 힌두교를 믿습니다. 그래서 발리를 돌아다니면 인도에 온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생김도 인도인의 느낌이 약간 있는데다 종교가 힌두교이다보니 거리 곳곳에서 보이는 사원이나 종교의식에도 인도의 냄새가 좀 납니다. 그야말로 '인도 + 네시아'의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인도의 느낌도 있고, 폴리네시아 같은 섬느낌도 나고, 아무튼 '인도네시아라'는 이름을 참 잘 지었습니다. 

발리는 제주도의 3배쯤 되는 큰 섬입니다. 그러다보니 걸어서 돌아다니기엔 무리가 있죠. 발바닥에 불이 날 수 있습니다. 실은 제가 며칠전 허리를 다친 것도 너무 많이 걸은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루 3만보를 걷다보니 허리에 피로가 쌓인데다, 아침스트레칭을 하다 그만 허리 근육과 인대가 좀 파열된 것 같습니다. 덕분에 하루 밤낮을 지옥을 오가는 극심한 통증을 맛봤죠. 결국 참다못해 호텔로 의사를 불러 치료를 하고 약을 투여받고서야 조금 나아져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부상투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내보니 발리는 딱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적합합니다.

1) 돈 싸짊어지고 와서 멋진 리조트에서 '휴양'하는 사람들

2)서핑, 스노쿨링, 섬투어등 '해양스포츠'를 하는 사람들.

사실 그 외에는 딱히 매력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정도로 싼 곳은 다른 동남아를 가도 널렸고, 이만큼 맛있는 곳도 베트남, 태국 등 충분히 많습니다. 무릇 여행이라면 현지인과 섞이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여긴 현지인과 외국인이 철저히 구분됩니다. 게다가 외국인=돈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바가지 씌우는 게 일상입니다. 무엇보다 발리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건 극심한 호객행위입니다.  호객행위와 사기는 휴양지라면 어느 정도 있지만 여기는 좀 유별납니다. 이집트 이후로 이렇게 심한 호객행위와 사기를 치는 곳은 발리가 처음입니다. 여기 온지 8일차인데 아직도 호객행위에 아주 질립니다. 발리의 매력은 정말 찾기 힘든데, 아, 하나 있긴 합니다. 발리의 선셋.

발리 선셋은 ‘오렌지 스카이’로 유명합니다. 해 질 녘이 되면 하늘이 온통 오렌지빛으로 물듭니다. 하늘만이 아니라 바다도 같이 오렌지빛으로 물듭니다. 장관이죠. 석양으로 유명한 코타키나 발루가 온갖 다채로운 색색으로 화려하게 노을이 진다면, 이곳 발리는 오렌지 빛의 단색으로 조금 단촐하게 저녁노을이 집니다. 화려하진않아도, 눈앞에 보이는 세계가 온통 오렌지빛으로 서서히 물드는 걸 보는 건 정말 장관입니다. 대략 30~40분이 걸리는데, 아주 말을 잃게 하는 풍광입니다. 매일 봐도 질리지가 않아요. 이 말도 안되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이러 좋은 걸 내가 봐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좋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정말 불가지不可知의 영역입니다.

덕분에 발리에 머무는 지난 8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선셋을 보러갔습니다. 심지어 허리를 다쳤을 때도, 허리를 부여잡고 기어가다시피해서 봤습니다. (그 결과 통증이 더 심해졌습니다만..) 이곳의 해지는 시간은 6시 30분 정도로 일년 내내 일정합니다. 가장 장관은 6시 15분 쯤,  이때 하늘과 바다가 온통 오렌지빛으로 물들며 수평선 전체가 오렌지로 물드는 광경을 불 수 있어요. 이걸 보려면 최소 6시부터는 스탠바이해야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사진을 통해 만나봅시다. (<=클릭하면 연결됩니다)

6시 15분이 가장 장관이고, 6시 30분 이후로는 캄캄해집니다. 발리는 우리나라처럼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두워지는 게 아니라 해가 일단 지면 바로 캄캄해지는 게 특징입니다.  발리 해변가에는 비치클럽이 쭉 늘어서 있습니다. 비치클럽은 식사와 음료를 먹으며 놀 수 있는 곳입니다. 입장료를 4~6만원씩 내야하는 곳도 있고, 그냥 앉아서 맥주와 안주를 시켜서 먹으며 바다를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비치클럽이 라이브음악을 연주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석양을 감상하며 맥주 한잔 하는 것도 꽤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오늘 드디어 우붓으로 들어갑니다. 발리는 섬, 해변, 내륙으로 지역이 구분되는데요, 대표적인 해변구역이 ‘꾸타, 스미냑, 짱구’ 등이라면, 우붓은 대표적 내륙지역입니다. 요가와 힐링의 성지로 꼽힙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가 저와 궁합이 더 맞을 것 같은데 어떨지 궁금합니다. 뭐, 가봐야 알겠죠.

그럼 저는 다음주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Terima kasih (뜨리마 까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