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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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쓰고 싶을 때
나는 가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소설 속에 숨으면 부끄러운 일을 미화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그저 마음이 흐르는 대로 문화와 문명의 관계
를 넘어 강물처럼 쓸 수 있을 텐데요. 나의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쓸
수 있으니까요. 문명과 문화로부터, 그 의도된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겠지요. 그게 소설의 장점입니다. 《일상의 황홀》
나도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주제를 중년의 사랑으로 잡았다. 모
든 중년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책을
써보고 싶었다. 중년의 사랑이 모두 불륜인가, 불륜이 아닌 로맨스
는 없는 것인가 고민했다. 그런 고민 끝에 쓴 책이 《춤추는 별》이
다. 제목은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인간은 자신 속에서 혼돈을 간
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니체 책에서 따왔다.
책을 쓰기 전에 사부께 물었다.
“사부님, 제가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습니다.”
사부는 한참 생각한 뒤에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좋지. 남자 주인공을 재미있는 캐릭터로 만들어봐.”
“네, 알겠습니다.”
6개월 후 책이 나왔다.
이 책에 대해 독자들은 아주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화끈한 장면이
없다면서 불만을 표시하는 독자가 더 많았다. 사랑은 육체와 정신,
이 둘이 갖추어졌을 때 아름답다. 둘 중 하나가 빠진 사랑은 불구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내도 나중에는 나를
의심했다. 사부의 말대로 남자 주인공을 재미있는 캐릭터로 하다
보니 나를 닮은 사람으로 만든 것 같았다. 모든 소설은 자신의 이야
기를 쓰는 것이지만 자신이 아닌 것처럼 써야 되는데 내공이 약한
나는 누가 봐도 남자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여곡
절은 있었지만 소설 쓰는 법에 대해 많은 공부가 되었다.
그러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다가 잿빛으로 끝
나는 것이 중년의 사랑이다.
● 자신의 언어로 써라
아침에 일어나 책을 쓰기 시작한 지 8년이 되었다. 책을 쓰는 일은 내가
가장 잘 배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재능이 있겠
지만, 이 방법이 내 스타일이다. 나는 내가 읽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들의 지식은 나라는 특별한 여과기를 거쳐 새로운 표현
법을 얻게 된다. 그대로 인용될 때도 있지만, 글의 흐름을 얻기 위해 따옴표로 들어
올려지기도 한다. 어떤 것들은 그들이 표현하기 이전에 이미 나의 표현이기 때문
에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것들은 독립적 사유가 되어 내 책 속에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나,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글을 쓰는 것이 톱질이라면 책을 읽는 것은 톱날을 가는 것이다.
나는 톱날을 가는 시간이 톱질하는 시간보다 두 배나 많다. 톱날은
매일 갈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무뎌진다.
글을 쓰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음식은 영양도 있어
야 되지만 맛이 있어야 되고 보기도 좋아야 한다. 어떤 것은 매콤하
면서 톡 쏘는 맛이 있어야 한다. 먹고 나면 다음에 또 먹고 싶은 마
음이 있어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재미가 있
어야 한다. 또 잘 읽혀야 하고 다음에 다시 보기 위해 줄 칠 곳도 있
어야 한다.
글을 쓸 때 “자신의 언어로 써라”는 사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건
빵 속의 별사탕처럼 유머코드를 숨겨놓는다. 어렵고 복잡한 개념
을 쉽게 표현할 수 있을 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