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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2일 09시 38분 등록
월요일 아침 물을 양동이로 퍼붓는 듯 한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장마의 패턴이 바뀐 듯 하더군요. 아침 한때 퍼붓듯이 비가 내리다가, 오후가 되면 뜨거운 햇살이 작렬하고, 저녁이 되면 끈적끈적한 열대야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네요. 비 오는데 차 막힐까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습니다. 장마 패션 -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집을 나섰죠. 마침 비가 개여서, 조그만 우산 하나 가방에 넣어서 나왔습니다. 와이프가 소리치더군요.

"장우산 가지고 가!"
"아냐, 괜찮아~ 버스, 지하철 타는데 걸리적거려서~"

마느님 말씀을 따랐어야 했는데 후회하는 것은 채 몇 분 걸리지 않았습니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채 10분도 되지 않는 길, 갑자기 엄청난 비가 쏟아졌습니다. 조그만 우산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설상가상 우산에 구멍이 났는지 머리쪽으로 물이 줄줄 흐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바람까지 거세게 불더군요. 버스에 올라탄 제 몰골은 그냥 수영장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버스에 탔죠. 차라리 서 있는게 나은데, 광역버스라 서 있을수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빈 좌석에 앉았습니다. 다시 한번 장우산을 가지고 올걸 하는 후회와 함께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승객들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더군요. 마침 제가 버스를 타러 가는 그 몇 분동안만 폭우가 쏟아진거라 먼저 버스를 타고 있던 적지 않은 승객들의 상태는 뽀송뽀송했습니다. 혼자 물을 질질 흘리며 썩은 표정을 하고 한숨을 쉬고 있었죠.

바로 옆 좌석에 앉아있던 아저씨를 힐끗 쳐다보았는데, 표정이 좋지 않더군요. 혹시 나 때문인가 해서 피해를 안 주려고 몸을 최대한 통로쪽으로 붙이다가 아저씨 신발이 물에 푹 절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지 끝부분과 신발만 수영장에 다녀오신 모양새더라구요. 운동화 비에 젖은 상태로 버스 타고 있으면 기분이 진짜 별로죠. 나중에 냄새나는 것도 그렇고요. 저야 옷이 다 젖었지만, 샌들을 신고 있던 발 쪽은 별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고 있었거든요. 순간 갑자기 푹 젖은 운동화보다는 속옷까지 푹 젖은 반바지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도긴개긴이죠. 옆 자리 아저씨는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저를 보며, 쟤보다는 자기가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두 아저씨는 동질감을 느끼며 옆 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월요일 새로운 한 주의 출근길을 시작했더라나 뭐 그렇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니 금요일날 밤에도 저는 비에 온 몸이 푹 절어있었습니다. 지인과 만나 회포를 풀고 밤 늦게 귀가하는데 그 때도 폭우가 쏟아지더라구요. 그런데 그때는 우산도 없었습니다. 에라 그냥 시원하게 비를 맞자 하고 온 몸을 그냥 비에 내맡겼습니다. 시원하더군요. 술기운도 가시고, 콧노래까지 나오더라구요. 월요일 아침 출근길보다 훨씬 더 젖었지만 기분은 완전히 정 반대였던 거죠.

누군가 그랬죠.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모두 비극이라구요. 하지만 멀리서 보면 비극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희극인 경우도, 그런 사람도 적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금요일밤  비를 홀딱 맞으며 걸어가고 있는 저를 멀리서 누군가가 보았다면 그건 분명 비극처럼 보였을 겁니다.

장마기간 비극 없이 모두 무탈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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