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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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지에서 부정편향 얘기를 했는데, 오늘은 확증 편향이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편향'이라는 말 자체의 어감이 그다지 좋지 않죠. 네, 확증 편향은 좋지 않습니다. 선입관이고 편견입니다. 하지만 외부적으로 씌워진 안경, 그동안 쓰고 살아온 안경 때문에 보이는 세상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쉽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어 왔던 사람은 앞으로도 사람을 믿을 것이고, 머리가 검은 동물은 믿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계속 그렇게 살아갈겁니다. 기실 우리 주위의 꽤 많은 조직구성체들의 원칙과 주류담론들이 확증편향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생각들을 일종의 불가역적인 교리이고 신념이라고 말합니다.
일부 종교의 중심교리는 인간이 원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자본주의의 핵심교리는 인간의 동기는 이기심이라는 겁니다. 계몽주의의 뼈대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그냥 멋대로 내버려두면 저질스러워진다는 거고요. 신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신의 존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워렌 버핏이 말하길 사람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은 기존의 견해들이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라고 했는데, 이건 워렌 버핏 할아버지가 확증편향에 대해 쓴소리 한겁니다.
회사든 조직이든 시간이 지나다보면 기존 직원들이 나가고 새로운 직원이 들어옵니다.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아무래도 분위기가 좀 쇄신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직원이라고 그들에게 너무 새로운 것을 바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새로운 방식이라고 항상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신규 직원에게는 회사의 많은 것들이 생소합니다. 이질적인 것들이 눈에 잘 띄죠. 기존 조직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그 문제점이라고 하는 것들은 기존 직원들이 신규 직원일때도 눈에 바로 띄었던 문제들이 태반이죠. 그리고 지금 역시도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일 수 있고요. 결과적으로 기존 직원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조직의 문제는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알고 있으나 어쩔 수 없이 묵혀 놓은 것들이 태반입니다. 얼핏 문제로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최선의 상태인 것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뜯어보면 별반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고, 대장에 공생하는 몇 마리 기생충같은 존재들입니다.
새로운 직원들이 기존 직원들이 할 수 없는 새롭고 참신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도 있기에 경영진은 새로운 직원들에게 어느 정도 기대를 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무턱대고 새로운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개선해야 할 것들을 찾아보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이건 마치 미용사에게 머리를 잘라야 할지 아니면 자르지 말고 길어야 할지 물어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미용사에게는 머리를 잘라야 할 지 물어보지 말고, 어떻게 머리를 잘라야 할지 물어봐야죠. 새로운 직원들에게도 문제를 찾아보라고 하지 말고, 기존 직원들과 함께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개선하면 될지 연구해 보라고 해야 합니다. 기존 직원들도 회사에 동화되어 확증편향의 안경을 쓰고 있을 수 있겠지만, 새로운 직원들 역시 기존에 쓰고 있던 확증편향의 안경을 아직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기생충 몇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기존에 있던 것들을 레거시(legacy)라고 합니다. 소프트웨어세계에서 레거시는 다소 헌 것 취급을 받습니다. 소프트웨어 자체가 인류 역사상 가장 발전속도가 빠른 분야 중 하나니까 어느정도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레거시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레거시 역시 뉴페이스였던 시절이 있었으며, 존속하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은 철저한 내부검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AI(인공지능)개발이 이 바닥에서도 이미 대세인데요. 요즘 딥페이크니 뭐니 해서 사회적으로도 참 이슈가 많습니다. AI는 데이터를 필요로 합니다. 엄청난 데이터를 가지고 딥러닝이란 것을 해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죠. 편향된 정보로 학습된 인공지능 역시 확증편향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환각hallucination이라고 말하는데요. 결국 인공지능이 잘못된 정보를 사실인것처럼 그럴 듯 하게 제공하는 오류가 발생하게 되는 거죠. 다양한 사고와 다양한 관점이 필요합니다.
맥락이 좀 다를 수는 있겠으나, 여담으로...오래전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 시절일 때의 이야기 하나 해드리고 마칠까 합니다. 쥐가 많아져서 골머리를 앓던 프랑스의 식민지 사령부에서 한 가지 법령을 제정했습니다. 죽은 쥐를 한 마리 잡아서 넘길 때마다 그 대가로 돈을 준다는 것이였죠. 저희도 1970년대 쥐꼬리를 국민학교에 제출하던 시절이 있었죠. 베트남 식민지 사령부에서는 쥐들을 퇴치할 수 있는 묘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법이 통과된 다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사람들이 쥐를 사육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드디어 가을이군요. 날씨가 참 좋습니다. 좋은 계절 좋은 시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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