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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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진정한 자신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놓치고 말 것이다. 한 어린 아이가 당신을 향해 미소 짓는다. 미소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고 한다. 하지만 당신이 진정으로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나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생각하거나 이런 저런 골치 아픈 일들에 정신을 쏟고 있다면 말이다. 그러면 당신을 향해 미소 짓는 아이는 진정으로 그곳에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한평생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쯤에서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에게 과연 평화로움을 즐길만한 능력이 있을까? 평화로울 때, 우리는 이를 만끽할 수 있을까? 혹시 지루해 하지는 않을까? 나에게, 평화와 행복과 기쁨과 삶은 하나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신성한 실재에서 비롯된 평화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내면에서, 주변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평화로움을 만끾하지 못하면서, 어찌 평화로움을 구할 수 있겠는가?
치통을 앓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치통을 느끼지 않는 때가 더없이 멋진 순간임을. 그것이 바로 평화임을. 치통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하지만 정작 치통을 느끼지 않을 때, 그다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응시해야 한다. 치통을 앓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것이 이미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탁닛한 스님이 쓴 글에서 일부 퍼온 건데요. 일전에 말씀드렸던 쇼펜하우어의 소극적 행복론과도 어느 정도 부합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단지 치통이 없다는 사실만 지각하면 되는 거죠. <불행 피하기 기술>에서 저자 롤프 도밸리는 이와 같이 이미 가지고 있는 행복을 의식하는 기법을 '마음의 뺄셈"이라고 지칭했습니다. 이것은 심리학자들이 인정하는 일종의 트릭인데 감정이입을 통해 이미 행복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언뜻 감사와도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 다른데요. 감사는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이고, 마음의 뺄셈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없는 것처럼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 생각이 될 수도 있는데, 둘 다 의도적인 마음가짐이지만 마음의 뺄셈이 더 극적인 연출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롤프 도벨리는 또다른 차이점이 있다고 말하는데요. 감사는 익숙해지면 그것조차 무뎌지는 결과를 낳게 되고, 감사의 대상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뺄셈은 결코 익숙해지지도 않고, 감사의 대상도 필요 없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이 방법의 효과성은 입증되어 왔으며(스토아학파), 현대의 심리학자들 역시 여러 연구를 통해 마음의 뺄셈이 단순히 인생의 아름다운 것들을 그려보는 방법보다 행복감을 훨씬 더 의미 있게 상승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손실에 훨씬 더 민감합니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는 것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잃을 때 더 큰 상실감에 사로잡히게 되죠. 그리고 상상으로도 그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의식적으로 마음의 뺄셈을 한번 해보라고 하네요. 사람에 따라, 그리고 뺄셈의 대상에 따라 그 효과의 크기와 지속시간은 다르겠습니다만, 어느 정도 효과는 있지 않을까 싶군요. 우리네 마음에는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 필요한 듯 하네요. 풍족한 이 시대... 마음의 결핍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에 있습니다.
그럼 남은 한 주도 힘내시고, 덧셈 뺄셈도 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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