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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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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30일 16시 53분 등록

중국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의 임금이 당시 최고의 명의였던 편작에게 물었다.

"그대 삼형제 가운데 누가 제일 잘 병을 치료하는가?

"큰 형님의 의술이 가장 훌륭하고 다음은 둘째 형님이며 저의 의술이 가장 비천합니다."

임금이 그 이유를 묻자 편작이 대답했다.

"큰 형님은 상대방이 아픔을 느끼기 전에 얼굴빛을 보고 그에게 장차 병이 있을 것임을 압니다. 그리하여 그가 병이 생기기도 전에 원인을 제거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상대는 아파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치료를 받게 되고 따라서 큰 형이 자기의 고통을 제거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큰 형이 명의로 소문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형님은 상대방의 병세가 미미한 상태에서 병의 근원을 알아내서 치료를 해줍니다. 그러므로 둘째 형님의 환자들도 둘째 형이 자신의 큰 병을 낫게 해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병이 커지고 환자가 고통속에 신음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병을 알아 봅니다. 환자의 병이 심하므로 그의 맥을 짚어야 했으며 진기한 약을 먹이고 살을 도려내는 수술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의 그러한 행위를 보고서야 비로소 제가 자신의 병을 고쳐주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제가 명의로 소문이 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전설의 명의 편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편작은 진정으로 훌륭한 의사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편작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 역시 편작의 형들과 같은 의사들이 더 훌륭한 의사임을 알고 있죠. 하지만 정작 편작의 형제들에게 치료받았던 환자들은 누가 진짜 명의인지 몰랐습니다.

현실세계의 우리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벌어지는 현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언성 히어로(Unsung Hero, 보이지 않는 영웅)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지만 그들의 노력과 헌신은 칭송 받기는커녕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번 글은 제가 기존에 책에 썼던 내용을 가져왔는데요. 허울 좋은 말과 처세로 득세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우스운 것은 정작 본인들조차도 그런 행위들을 처세가 아닌 노력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이번 편지는 졸저 <개발자 오디세이아>에 썼던 내용을 일부 발췌해서 옮기는 것으로 마칠까 합니다.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지구와 세계를 구하는 영웅들은 대개 외톨이들이다. 재난을 예감하고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악의 근원에 온 몸으로 맞서는 주인공의 활약을 알아주는 것은 오로지 관객뿐이다. 역경을 우연히 함께 하게된 동료들과 로맨스에 빠진 상대역만이(대체로 미모의 여성주인공) 뼈빠지게 고생한 주인공의 노력을 알 뿐이다.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블랙스완>의 작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그의 또 다른 저서 <안티프레질>에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서 영웅이 된 역사적 인물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블랙스완'이란 역사상 이제껏 발생하지 않았던 - 발생하는 경우 극도의 혼란을 초래하는 - 사건을 말한다. 블랙 스완 세계에서 진정한 영웅은 재앙을 예방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실제 재앙은 지금까지도 발생한 적이 없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도 않으며, 재앙을 막아봤자 아무런 보상도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세계에서 재앙은 보통 쇼스탑퍼(Show Stopper)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이것은 심각한 소프트웨어 문제(Critical Bug)보다 더 긴급한 문제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모든 프로세스는 정지된다. 이 문제를 얼마나 빨리 해결하느냐에 프로젝트의 사활이 걸려 있기에 모든 부서의 눈이 한곳으로 집중된다. 문제를 유발한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한 개발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훌륭한 개발자인지 아닌지 여부가 개발기간 동안 이슈화된 문제들을 얼마나 잘 해결해 나가느냐에 그 초점이 맞추어진다. 여기에 속칭 마우스(Mouth) 개발자들은 한술 더 뜬다. 별것도 아닌 문제들을 이슈화시키며 요란법석을 떤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버그를 자기가 고치는데도 무슨 대단한 성과라도 올리는 것 마냥 호들갑을 떤다. 고 신영복 선생의 말을 빌리면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수염을 그슬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 인심인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티탄의 신으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이유로 바위산에 매달려 독수리에게 간을 파먹히는 벌을 받는다. 인간에게 있어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가져다 줌으로써 문명을 시작하게 만들어준 영웅인 셈이다. 고통을 받게 되지만, 인간들에게 칭송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이 세계의 수많은 언성히어로들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은 에피메테우스다. 에피메테우스는 형과는 반대로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 준 티탄의 신이다. 판도라의 남편이기도 한 에피메테우스는 그 유명한 판도라의 상자를 개봉함으로써 인류에게 온갖 나쁜 것들을 제공하게 된 장본인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생각하는 자'를 의미하고, 에피메테우스는 '나중에 생각하는 자'를 의미한다. 먼저 버그와 이슈를 예방하고 선해결하는 프로메테우스 개발자들 대신 사후에 떠들석하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에피메테우스 개발자들에게 공로가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우리는 다시 훌륭한 관리자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훌륭한 관리자가 없더라도 누군가는 누가 훌륭한 개발자인지 알고 있으며,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 모두가 알게 된다. 최소한 함께 개발을 진행한 프로젝트 팀원들은 정녕 누가 훌륭한 개발자인지 알고 있다. 정상적인 상사와 관리자라면 마우스 개발자와 진짜 개발자를 구분할 수 있듯이,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 자체를 만들지 않은 성과보다 문제를 해결한 성과를 높이 쳐주는 것은 안타깝지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잠깐의 현실에 좌절하기에는 개발자의 삶은 충분히 길다. '소리없이 강한 언성 히어로들은 언젠가는 그 진가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인 링컨이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사람을 얼마동안 속일 수는 있고,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혹시나 허울좋은 치장으로 눈가림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면,  속상해 하시지 마시길.. 진가는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  인생 깁니다.  남은 한주 화이팅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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