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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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었을까? 절박한 심정으로 변화를 꿈꾸며 모인 우리 연구원들의 해외 연수가 발칸으로 정해진 것 말이다.
여행이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나를 풀어 놓는 거? 낯선 곳을 돌아보며, 낯선 이들을 만나는 것? 빡빡한 일정과 업무에 시달려야 하는 출장이 아닌, 정해진 코스를 돌며 강매에 시달려야 하는 관광이 아닌, 대략적인 커다란 개요만 잡고 떠나는 상처받은 땅, 발칸으로의 여행. 어쩌면 그래서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삶의 연장선상일 수 밖에 없음을 암시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첫째 날: 수수한 자그레브
프랑크프르트를 경유해서 도착한 자그레브 공항. 아무 감흥이 일지 않았다. 전혀 이국적이지도 않았고,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았던 자그레브 공항은 뭐랄까. 수수한 중소도시의 여인네 같았다고나 할까. 공항을 빠져 나와 호텔까지 가는 길에서 만난 자그레브는 나의 첫 인상을 고착화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불 꺼진 도시. 드문드문 인적없는 약간은 황량함마저 감도는 도시에서 나는 문득 이십 여 년 전 시드니에서 받았던 인상을 떠올렸다. “마치 시간이 되돌려진 것 같잖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버스가 호텔에 도착했다.
장기 비행과 출발 전날까지 마쳐야 했던 이런 저런 일들로 많이 피곤해서 그야말로 배정받은 내 방으로 뛰어들어가려는 찰나, 난 너무도 황당해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돌리는 열쇠라니!’ 게다가, 안으로 들어가서, 안에서 다시 한 번 열쇠를 돌려서 잠가야만 했다. 세상에… 대한민국 땅에선 엄청난 기계치에 속하는 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디지털 문명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크로아티아에서의 첫 날은 시작되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이번 여행이 그리 만만하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
여행 팁 하나! – 한국에서 사가는 국제전화 폰 카드는 크로아티아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한국과 연락을 취해야 한다면, 비싸더라도 반드시 핸드폰 로밍을 해가야 한다.
둘째 날: 잊지 못할 원초적 숭어,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자그레브 광장의 장터에서 잠시 자유 시간을 가진 뒤 우리가 향한 곳은 플리트비체 국립 공원이었다. 그 곳은 숭어가 유명한 곳인 만큼 공원 트래킹에 앞서 점심으로 숭어 요리가 준비되었다는 말을 버스 안에서 들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신경했다.
드디어 숭어 수프가 내 앞에 놓인 순간, 하마터면 나는 욕지기를 할 뻔 했다 (다행이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여서 아침을 그리 많이 먹지 않았었다). 전혀 조미되지 않고, 전혀 걸러지지 않은 생선 비린내가 주범이었다. 원래도 생선 요리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부지불식간에 허를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른 내 앞에 놓인 수프를 다시 돌려주고 먼 산을 바라보는데, 메인 코스가 나왔다. 이번엔 약간의 경계심이 들었는데…
내 앞에 놓인 숭어 요리를 본 순간 나는 ‘어휴~ 정말 못 말리겠네’하는 심정이 들었다. 숭어를 구운 요리였는데, 그야말로 머리부터 꼬랑지까지 적나라하게 구운 요리였다. 아니, 요리라고 명하기에는 너무도 원시적인 형태, 마치 석기시대에 바위 위에 생선을 구운 듯한 광경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어째서 그런 요리를 내오면서 레몬 한 조각이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식욕은 벌써 저만치 달아났다. 하지만 어쩌랴. 플리트비체 공원 3시간 트래킹이 기다리고 있음에 억지로 포크를 들어 감자를 찍어 입에 넣었다.
‘우웩~’ 세상에 감자 요리에까지 배반을 당하다니!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짰.다! 너무도 짰다. 돈을 내지 않고서는 단 한 컵의 물도 그냥 주지 않는 호텔에서 일부러 짜게 만들었다는 농담이 테이블을 돌 즈음 내 눈에 신기한 장면 하나가 포착되었다. 그 곳 현지인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감자와 샐러드에 소금을 쉴 새 없이 뿌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원래가 음식을 엄청 짜게 먹는 것이었고, 이것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여행 내내 발견할 수 있었던 장면 중의 하나였다. 누구 말처럼, 우리네 음식도 워낙 짠 편이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 조미를 섞어서 하기 때문에 다만 느낄 수 없을 뿐이라는 말이 맞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식문화만큼은 한국이 정말 발달되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던 여행이라 말할 수 있다.
다음은 또 다시 우리 조상님들의 말씀이 떠오르는 순간이 이어졌다: 금강산도 식후경. 하하, 옛 어른들의 말씀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배가 고파서 엉망이 된 기분을 끌어안고 천하 절경이라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오르고 또 올랐다. 오르는 길에 느낀 건, 현지인들이 참 많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대개 들려오는 언어들이 나로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동유럽 언어였으니,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아니면 적어도 이웃 근접 국가 사람들인 것 같았다. 영어는 물론이고 독일어나 프랑스어도 그다지 들리지 않았으니,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음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야말로 서로가 서로를 신기한 듯 구경하며 호수보다는 사람을 쳐다보며 가까스로 정상까지 올랐다.
아무래도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고픈 배를 움켜쥐고 틈틈히 쳐다 본 그들은 뭐랄까… 어딘가 경직되어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워낙 동유럽 사람들의 생김생김이 부드럽게 생긴 것과는 거리가 멀게 각이 져서 더욱 그러한 인상을 풍겼겠지만, 거기에 약간은 긴장된 표정이 겹쳐져서인지 손쉽게 다가가기는 좀 어려울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거기에다 또 한가지. 이것 역시 여행 내내 지속된 일로서,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쉽지 않은데, 심지어 3급 이상 호텔 프론트 데스크 직원들조차 영어가 유창하지 않다.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그 어느 쪽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다는 점, 세계적인 브랜드가 아직까지는 많지 않다는 점 등등이 내가 발견한 2009년 발칸의 모습일 뿐이다. 그들은 그 시간대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수수함이 여행객인 내 관점에선 약간 불편함을 더해 줄 수는 있을지언정, 어딘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그들의 도도한 분위기 또한 나는 싫지 않았다. 어찌 보면, 친미에 너무나 익숙한 한반도의 기운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여행 팁 둘! – 현지 음식이 무지하게 짜다. 심지어 빵까지도 한국의 빵들보다는 약간 짠 맛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검은 보리빵은 촉촉한 것이 너무 맛있다. 거기에 달착한 잼을 발라 먹으면 현지 음식의 고통도 전부 사라진다~!
셋째 날- 커피에 울고, 웃은 자다르
현지 도착 3일째가 되면서 나는 슬슬 안정감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술을 못 마신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노래도 못 부른다. 이런 답답한 내가 유일하게 즐기는 기호식품이자 사랑하는 삶의 일부분이 있으니 다름아닌 커피이다. 그러나 한 동안 커피로 무지하게 고생한 뒤로는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아침에 모닝 커피 한잔. 그리고 점심 식사 후 한잔. 나로서는 엄청난 자기절제인만큼 그 두 잔은 하루의 행, 불행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해도 그다지 과장은 아니다.
그런데… 그 중요하고 중요한 커피 공급이 원할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으니! 입에 맞지 않는 현지 식사에 이은 또 하나의 난감함이 아닐 수 없었다. 아침에 호텔에서 주는 사약 같은 커피 외에는 일단 커피를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첫째, 둘째 날은 인상을 찌푸리면 반 잔만 마시고 나온 호텔 커피를 셋째 날은 두 잔이나 마시고 나왔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음을 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도착한 곳이 바로 자다르였다. 누군가 자다르는 이름이 약간 이슬람 분위기라고 말한 것과는 달리, 지금까지 갔던 그 어느 곳보다 서구화된 혹은 상업화된 지역이었다. 중심지에는 서구의 몰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는데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단층으로 구성되어 여전히 그들만의 여유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 곳에 가니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이런 저런 글로벌 브랜드가 보였다. 아드리아 해를 두고 이탈리아를 마주보고 있어서일까? 아이스크림은 거의 가 다 이탈리아의 젤라또 형식인 것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쇼핑 몰 광장에서 드디어 제대로 된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여기에도 어려움은 있었으니, 커피 메뉴가 전부 현지 언어로 되어 있어서 내가 식별할 수 있었던 것은 단 두 가지: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가 전부였다 (이것은 이후 여정 맨 끝날까지 이어졌다). 사실 현지 커피 맛을 보기 위해서는 에스프레소를 맛보고 싶었지만, 어딘가 엄숙한 그들 분위기상 너무도 진할 것 같기도 하고, 평상시도 에스프레소를 즐기지 않는 나였기에 허겁지겁 카푸치노를 시켜서 마셨는데… 아… 그 맛이란! 역시 사람은 공기의 소중함은 모르고 사는 것이 맞고,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가 가사는 한치의 틀림이 없음이다. 여행은 정말 실생활에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참으로 맞구나, 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들이 계속 펼쳐질 뿐이었다…
여행 팁 셋! – 현지에선 커피가 귀하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캔커피를 아무 곳에서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선 큰 일이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커피 믹스를 가져가도 별 도움이 안 된다. 반드시 물을 사야 하기 때문에. 주전자까지 들고 가서 호텔에서 끓여 먹으면 모를까.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 어쩌다 만나는 커피는 한국에서 흔히 마시는 커피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환상을 실어다 준다. 그러므로 여전히 커피는 사생결단으로 현지에서 공급하는 것이 그 자체로 낭만이 있다~!
커피에 얽힌 일화 한 가지- 자다르를 떠나 스플릿에 도착해서 바로 수페타르 섬으로 이동하는 페리에 승선했다. 그 배 안에서 누군가에 의해 내 손 안에 “네스카페” 커피 믹스가 쥐어졌다. 그 때의 그 감동, 그 황홀함은 이번 여행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순간 중의 하나이다.
여행이란 그런 것 같다. 일상의 삶에서는 눈물 나게 고맙지 않을 일들도 낯선 곳에서는 가슴 저미게 고맙기도 한 거. 그래서 우리가 일상에서의 작은 배려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 무심히 살고 있었구나,를 깨닫게 해 주는 거. 그런 것이 여행이 아닐까 싶다…
크로아티아에서 가져 온 커피 믹스 세 개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앞에 있다. 언젠가, 일상의 삶이 더 이상 감동스럽지 않을 때, 그 때 마다 하나씩 꺼내어 끓여 먹어야겠다. 마치 마법의 램프에서 3가지 소원을 들어주듯이, 내겐 일상의 행복을 깨달을 3번의 소중한 기회가 여행의 흔적으로 남았으니……
넷째 날- 크로아티아의 미래, 볼 비치
만약 크로아티아가 21세기 서구의 관점으로 그들과 같은 시간대에 뛰어 들기 원한다면 볼 비치에 그 해답이 있을 것 같다. 말인 즉, 크로아티아에는 아직 때묻지 않은 천해의 관광 자원이 숨겨져 있는데 볼 비치 역시 그 중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
볼 비치로 들어가는 페리를 타면서 알게 된 재미있는 점 하나는 그 곳 차들이 거의 다 작다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로치면 아반떼 수준의 유럽의 작은 차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브랜드만 봐서는 얼핏 현지에서 생산되는 차는 없는 것 같고, 대개가 유럽의 차들이 주종을 이루었고 간간히 한국 차도 눈에 띄었다.
참, 잠시 옆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자면, 역시 공항에서 만나는 LG는 반가웠다. 시드니에서도 LG나 삼성은 더 이상 2급이 아닌 부유층이 선호하는 최상층 제품인데, 역시 동유럽에서도 그 상세는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현대 사회는 국가와 민족을 하나의 브랜드가 대변하는 자본주의 사회임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지난 번 플리트비체 호수를 거닐면서도 생각한 것인데, 휴양지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신기하게 상점들이 늘어서 있지 않다. 과연 이러한 순수함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만큼 더더욱 서구의 상업주의가 휩쓸기 전에 다녀와 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공교롭게도 나는 연구원 칼럼 중에서 인사동에서 글로벌 프랜차이즈 숍들을 허용하지 말거나 허용하려면 프랑스처럼 디자인만이라도 우리 식으로 해야 한다는 칼럼을 맨 끝으로 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돌면서 내가 유일하게 발견할 수 있었던 글로벌 프랜차이즈는 다름 아닌 노란색이 너무도 친숙한 맥도널드였다. 사실 내가 간절히 찾을 수 있기를 희망했던 것은 스타벅스였는데 말이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는 스스로 어려움에 처해보면 알 수 있다. 크로아티아를 돌면서는 글로벌 체인숍에 대해 나름 진지하게 긍정적인 면을 생각했으니 말이다.
나의 개인적 편함과 불편함은 뒤로 하고 다시 이야기를 크로아티아의 해변가로 돌리자면, 그곳은 자연뿐만이 아니라 그 자연을 둘러싼 문화까지도 아직은 전혀 외부의 환경에 영향 받지 않는 순수함 그대로 세상을 향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곳이다. 아름다웠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그 어떤 놀이 공원보다 아름다웠고, 지금 생각하면 커피 한 잔 제때 마시지 못한 것이 무어 그리 대수라고 그 순간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나의 가벼움이 너무도 인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 곳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자연을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미래와 연결할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부디 그들의 미래만큼은 자연파괴라는 단어가 적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여행 팁 4! – 현지에서는 물을 전부 사 먹어야 한다. 물이 귀해서인지 어떤 건지 원인까지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단 한 컵의 물도 공짜가 없다. 심지어 호텔에서조차 아침 식사에 주스는 포함되어도 물은 포함되지 않는다. 음식은 짠데, 물은 절대적으로 사먹어야 하는 사실. 그러나 호텔에서 물을 사면 절대적으로 너무 비싸다. 그러므로 현지 시장이나 슈퍼를 발견할 때마다 반드시 물 하나씩은 사서 비축하는 센스를 발휘해야 한다~!
다섯 째 날- 중세로의 여행, 오파티야
수수한 자그레브가 근대로의 여행이었다면, 쉬베니크를 거쳐 도착한 오파티야는 마치 중세가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오파티야에 도착하기 전에 경유한 쉬베니크에서는 뭐랄까. 아주 친절하지도 않지만 순수하지도 않은 과도기에 있는 관광지라고나 할까? 뭐 그런 느낌이었다. 발칸 여행의 3대 고역을 꼽으라면 커피와 화장실 그리고 귀한 물과 짠 음식이 셋트를 이룰 것 같다. 커피와 음식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를 하였으니 화장실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 역시나 꼭꼭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쉬베니크의 쇼핑 센터에 뛰어 들어갔는데, 화장실이 없.었.다! 건물 안 구석구석을 다 뒤져보았지만 화장실은 도통 보이지를 않았다. 할 수 없어 가게 주인을 붙잡고 물어보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밖으로 나가보라는 것이 전부였다. 세상에~를 또 연발하는 순간이었다.
할 수 없어 근처 카페로 뛰어들어갔고, 내가 화장실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순간, 함께 간 동료들이 사용료 대신 음료수를 팔아주려고 주스랑 콜라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크로아티아에서는 절대 유로가 통용되지 않음 또한 명심, 또 명심할 일이다. “쿠나”라는 현지 화폐만이 통용되는데, 나처럼 산수와 수학 모두에 약한 사람은 두 번의 환전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혼자만의 배낭 여행이 아님이 천만다행이라 마음 속으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카페로 이야기를 다시 돌리면, 그 때 마침 우리 일행들의 쿠나가 2개의 음료수를 지불할만큼은 되지 않고, 유로 밖에 없었다. 크로아티아에서의 마지막 날이어서 더더욱 우리는 유로를 쿠나로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어쩔 수 없어서 우리는 쿠나가 모자라니 유로를 받아주던지 한 개를 취소해달라고 사정 이야기를 하였다.
그 순간이었다. 역시나 날카로운 인상의 웨이츄레스는 단호히 거절하면서 옆 사람과 알아 들을 수 없는 현지말로 뭐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 영어를 배울 때 수없이 겪던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동유럽에서 또 다시 ‘바보가 되는 느낌’과 맞딱뜨리는 순간이었다.
시드니에서의 오랜 외국 생활 끝에 언어에 대한 내가 내린 두 가지 결론은 첫째, 언어는 학문이 아니고 생활 습관일 뿐이며, 둘째, 언어에는 등급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인에게 과잉 친절을 베푸는 한국인들이 낯선 곳을 방문한 외국인 여행자들에게는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 짧은 순간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또 한가지, 이것이 그 어떤 문화적 차이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음료수 한 개를 절대 취소할 수 없다라는 점이었다. 자신이 주인이 아니어서 그랬겠지만, 어쨌든 약간의 성질을 부리던 그녀는 끝끝내 취소는 안 해주고 우리는 카페 주변 동료들에게까지 뛰어가서 1쿠나까지 열심히 그러모아 해결을 보아야만 했다. 정히 크로아티아가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개발할거라면 서비스 정신까지도 불러 들였으면 하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다섯 째날 주제가 오파티야인 것에 비해 쉬베니크에서 너무 많이 머물렀는데 사실 오파티야는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저녁 늦게 오파티야로 들어가면서 잠시 버스 안에서 감상한 오파티야는 그야말로 중세의 환상 그 자체였는데, 우리는 그날 밤 연구원 수업을 밤늦도록 해야 했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을 했으니, 환상의 중세도시를 겨우 버스 안에서 스치듯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유독 오파티야가 몽환적 기억으로 다가온다. 잡힐 듯 말 듯, 버스 차창 밖으로 저녁 어스름할 때 스쳐 지나갔던 그 곳. 현실인지 환상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기에 더욱 또렷이 각인되는 아이러니는 삶의 또 다른 단면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 가고 싶은 곳, 오파티야. 사랑은 늘 아련함이 남아야 하는 것 같다……
여행 팁 다섯! – 크로아티아에서는 절대 유로가 통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반드시 어느 정도는 환전을 해가는 것이 좋다. 현지 환전율이 한국에서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호텔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의 화장실 사용이 용이하지 않다. 화장실을 볼 때마다 미리미리 사용해두면 좋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여섯 째 날 아침-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다
내가 콘텍트 렌즈를 착용한 지는 벌써 십 년이 훌쩍 넘는다. 다들 이제쯤이면 라식 수술을 할 일이지 왜 아직까지 그 고생을 할 정도인데, 난 솔직히 수술이 너무 무섭다. 정말 한 순간 의사의 실수로 내가 실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과대의심증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렌즈와 함께 산 세월이 길어서일까. 어지간해서는 이제는 렌즈를 잃어버린다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상용 렌즈를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늘 대비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이 정말 맞다.
여행 둘째 날인가 셋째 날 밤, 해변가에서 수업을 하는데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인해 눈이 많이 빡빡했다. 그 전날 수업 내내, 건조함으로 고생했었든지라 이번에는 식염수를 미리 챙겼고 눈이 아플 때마다 신나게 몇 방울씩을 떨어뜨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갑자기 눈 앞이 안 보이기 시작한 것이. ‘어라? 이상하네? 왜 이러지? 마치 렌즈가 빠진 것 같잖아?’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렌즈가 빠졌을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지난 몇 년간 정말 단 한번도 없었기에…..
왼쪽 눈을 가리고 오른쪽으로 보면 너무도 선명한 밤바다의 불빛이 반대로 오른쪽을 가리고 왼쪽으로 보면 뿌연 가스등처럼 보인다. 시력이 마이너스 4.0인 나는 렌즈를 빼면 모든 형상이 다 희미하게 뿌연데, 바로 그런 현상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아뿔사! 렌즈가 빠졌구나!’ 급기야는 상황 파악이 되었지만, 아직 동료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뛰어봐야 벼룩이라고 이와 같은 상황이면 빠져도 옷 위에 떨어져 있어야 할 렌즈는 수업이 끝난 후 찾아볼 때는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뒤였다. 그 때부터 지난 며칠 간은 그야말로 애꾸눈 여행이 되었고, 그나마 한쪽 눈을 완전히 가릴 수도 없는 처지가 되다 보니 렌즈가 없는 방향으로는 접지를 위험이 있어 발도 먼저 떼놓지 못하는 조심스런 행보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내게 오파티야를 출발하기 직전 현주가 다가와 생명수 같은 말을 전해 주었다. “언니, 호텔 밑에 약국 있는데 거기 렌즈 있대요. 확인 했어요!” “현주야!” 그 순간 울컥했다면 오버일까? 만약 누군가 내게 오버라 할지라도 솔직히 상관없을 것 같다. 앞 전의 커피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일상의 작은 배려에 목말라 있으면서도 매일의 삶에서는 그것들의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간다. 왜 그럴까? 너무 바빠서? 너무 큰 것만을 기대해서?
사실 난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본의 아니게 입을 다물고 조용히 나의 행복이 무엇인지, 나의 꿈이 무엇인지 더 깊이 내게 물어 들어갔던 것 같다. 사랑하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지만 버스 안의 많은 시간들은 철저히 나만의 세계 속에도 빠져 있을 수 있었던 <따로또같이>와 같은 여행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슬로베니아로 출발하기 직전 나는 새로이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내 생일을 정확히 이틀 앞 둔, 의미 있는 한 순간이었다……
여행 팁 여섯! – 그 때 당시는 정신이 없어서 무조건 렌즈를 샀는데, 사고 나서 계산을 해보니까 한국에서보다 3배 이상 비싼 가격이었다! 한국보다 관세가 높은 나라가 있었다니, 충격이었다. 바보같은 이야기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렌즈를 착용하거나 안경을 끼는 사람은 반드시 비상용을 준비해야 한다. 여행지에서 선그라스보다 중요한 것이 렌즈요 안경이다. 만약에~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기에 말이다~!
여섯 째 날- 딴 세상으로. 슬로베이아의 협곡
기쁨도 잠시, 슬로베니아의 협곡을 지날 때는 ‘어이구~ 렌즈를 양쪽 다 뺄 걸~’할 정도로 산이 깊었다 (앞에서 이미 밝혔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 지 말이다. 하하).
바다가 아름다웠던 크로아티아와는 대조적으로 슬로베니아는 산맥의 나라 같았는데, 그 아름다움에 그저 “우와~”소리 밖에는 나오지가 않았다. 알프스와 닿아 있다는 일정에도 없는 산맥을 지나가 준 친절한 버스 기사 스탕코에게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참고로, 단체 여행을 가는 분들은 스탕코의 버스를 이용하시라 적극 권하고 싶다. 무언가를 바라고 베푸는 친절함이 아닌, 어딘가 무뚝뚝한 성격 사이사이로 베어 나오는 친절은 역사상 약간은 경직될 수 밖에 없는 그네들의 외적 이미지 안에 감춰진 따스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여행 내내 참으로 푸근한 기억으로 남는다).
8월이지만 눈의 흔적이 남겨진 정상에 버스를 세우고 그때까지 단 한번도 애용하지 않던 긴 팔 점퍼까지 꺼내 입고 버스 밖으로 나아갔다. 역시 추었다. 어제까지 오파티야의 따듯한 해변가는 어느 새 저멀리 꿈 속으로 사라진 듯 슬로베니아 협곡은 각이 선 남자처럼 매력적이었으나, 냉정하게 추었다. 재미있는 건 함께 남자들은 대개가 자전거 트래킹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험난한 협곡을 자전거로 건널 수는 없겠지만 산 밑의 캠핑 지역은 며칠 씩 묵으며 자전거로 둘러보면 좋을만큼 아름다웠다. 집들을 온통 꽃으로 치장한 것이 정말 사진으로만 보던 알프스의 흔적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드디어 산을 내려온 우리는 이번 여행 기간 동안 가장 야심차게 준비하던 “길거리 공연” 전야제를 해보기로 하였다.
이 희안한 공연의 기원을 더듬어보면 안성 수업 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겠다. 스승의 날을 맞아 마땅히 재롱(?)을 부리지 못했던 우리는 안성에서의 1박 2일 수업 때 스승님 앞에서 마음껏 재롱을 부리기로 마음먹고 준비를 했었는데, 낮 12시에 시작한 수업이 무려 꼬박 17시간 30분을 경과한 뒤 다음 날 새벽 5시 반에야 끝났다.
“해? 말어?” 다들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너희들 뭐 하고 싶은 거 있다면?”라고 예의 그 부드러운 저음으로 말씀하신다. 세상에 제자들을 위해 밤을 꼬박 새우시고도 아직 우리가 했던 말을 기억하시고 물어오시는 스승님…
신이 난 우리들은 투숙객이 깨서 돌 맞을 각오를 하고 스승님 앞에서 한판 걸판지게 재롱 부리기를 시작했는데, 우리의 유치한 모습에 투숙객들은 먼 발치에서 웃음을 던져주었다. 이후 우리는 선생님께 “너무나도 유치한 5기”로 찍힌 뒤, 이 유치한 공연을 국제적으로 확장해보자는 돈키호테식 결심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정말이지 우리가 진정 유치하거나 아니면 조금쯤은 어른의 무게를 벗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전쟁 기념관 앞에서 우리는 길 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흘낏흘낏 처다보면서 버스 안에서 준비한 노래를 한 곡씩 한 곡씩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이 공연을 위해 5기 조교의 경우는 그 무거운 기타까지 준비해갔으니 비록 돈키호테식 무모한 도전이기 하였지만 내심 우리 모두 진지했던 것이다.
그렇게 낯선 이국 땅 슬로베니아에서 시작한 우리의 거리의 공연은 다음 날 피크를 이루었으니……
일곱 째 날 아침 – 성스러운 환상의 호수 위에 떠다니다
일곱 째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쩐지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호텔 앞쪽에 펼쳐지는 호수에서 올라오는 신선한 정기때문이었다.
멀리서 바라만 봐도 깨끗하고 정갈한 그 느낌. 다가가 발을 담그기 보다는 오히려 먼 발치에서 그 느낌만을 아스라히 담고 싶을 정도로 신비로웠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호수 저 편에 있는 성당까지 갈 시간이 되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 온 직업이라면 자신의 직업이 지닌 성스러움에 자부심을 느끼는 뱃사공도 신기했지만, 그보단 성당에 도착하기까지의 아름다움 앞에 그야말로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우리들의 혼이 반쯤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은 다름아닌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조용한 호숫가. 온통 녹색의 나무들로 우거진 호숫가에 조용히 배 한 척이 미끄러지듯 흐르고 있다. 그리고 건너편 오래 된 성당에서 은은하고도 깊은 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마치 속세의 모든 것들을 거두어 가듯이. “뎅~~~ 뎅~~~” 종소리가 아름다운 건 그 여운 때문인 것 같다. 깊은 여운이 아름다운 호수가로 퍼지는 그 순간, 우리 모두는 무거웠던 자아를 내려 놓을 정도로 스스로를 잃어버렸던 것 같다.
일곱 째 날 – 여행의 피날레, 루블라냐 거리 공연
아침에 신비스러운 호수를 방문하여 성스러운 기를 받아서였을까, 그날 저녁 우리는 드디어 대망의 거리 공연에 나섰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우리는 그 낯선 땅에서 반응이 어떨지도 모르면서, 전문 공연가들도 아니면서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생각을 했던 걸까?
아마 자유를 열망하는 열정이 빚어낸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일탈이 아닌 자유. 방종이 아닌 자유. 타락과는 구분되는 그러나 하늘 높이 비상하는 짜릿한 느낌의 그 자유를 우리 모두 꿈꾸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광장 한 복판 동상 앞에 진을 치고 앉은 우리는 목소리와 마음을 모아 한 곡 한 곡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길가던 사람들이 우리 앞에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마 그들 눈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 동양인들의 얼굴이 먼저 보였을 것이고, 그 다음에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 노래들이 신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맨 끝으로 저 사람들 참 열심히들 부르네~ 뭐 그런 표정들로 우리를 쳐다 보는 눈빛이었다.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들어서였을까 우리들 중 가장 대범한 혹은 무모한 누군가가 사람들 앞으로 모자를 던졌다. 난 그 순간 설마 저 사람들이 돈을 던질까? 싶었다. 외국 사람들의 경우 사실 거리 공연이 익숙한 문화이기에 사실 자신들의 마음에만 들면 돈을 던지기도 하겠지만, 글쎄… 과연 우리의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 노래들을 듣고도 돈을 던질까 싶었다.
그 때였다. 어린 아이 하나가 아장아장 우리 앞으로 걸어와 모자에 돈을 집어 넣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해준 여자 아이였는데, 생긴 것도 정말 유럽 인형처럼 생긴 예쁜 아이였다.
그 아이를 보면서 나는 그 순간 ‘아… 역시 아이들은 마음의 벽을 두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랫말을 못 알아들어도, 낯선 동양인들이어도 그 아이에게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들의 즐거움이, 우리들의 열정이 그대로 고스란히 전달되어 아무 거리낌없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다가와준 슬로베니아 여자 아이. 그 예쁜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선하다…
아이가 첫 테이프를 끊고 나자 그 다음부터는 더욱 흥이 났다. 드디어 어른들도 한 두 사람 돈을 던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우리 옆에 와서 함께 박수를 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군중들은 우리를 찍고, 나는 군중들 사진을 찍는 그야말로 “맞짱 사진찍기”처럼 흥미로운 장면은 보너스 연출이라고나 할까.
뭉클했고 감격스러웠고 그 때의 여운이 지금도 아스라이 느껴진다. 아무 거리낌없는 통함, 전혀 거칠 것 없는 자유로움. 우린 공연을 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얻고 느끼고 있었다….
사실 이번 공연은 글쎄?라는 마음이 어느 정도는 있으면서 시간에 쫓겨 부랴부랴 준비해서 어설픈 점도 많았지만, 우리는 내친 김에 다음 기수인 6기 해외연수 때부터는 이국에서의 거리 공연을 전통으로 자리 잡아 가기로 결정했다. 앞으로는 적어도 태극기와 그 나라 국기 정도는 꼭 챙겨가기로 다짐하는 말들을 나누며 발칸에서의 마지막 밤은 깊어져 갔다……
여행 팁 일곱! – 현지인과 친해지고 싶다면 한국에서부터 작은 기념품 몇 가지는 챙겨가는 것이 좋다. 이번에도 그 여자 아이에게 한국의 부채모양 책갈피 같은 것을 준비했었더라면 참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여행의 진수는 아무래도 현지인과의 어울임에 있을 터, 그럴 때 주고 받을 수 있는 작은 정성을 마련해가면 만남이 더 의미 있을 것 같다~!
여덟째 날 -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다시 한국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무려 5시간이나 비행기를 기다려야 했던 우리 일행은 한 곳이라도 더 보고 싶은 열망에 공항 밖을 빠져 나가,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가는 전차에 올라 탔다.
여행을 인솔하는 연구원 선배의 배려로 시내 한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한식당에는 절대 가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물가가 가히 살인적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들어선 순간 확 달겨드는 상업주의적 분위기에 시내에서의 비싼 점심까지. 떠나온 지 불과 몇 시간밖에 되지 않는 발칸이 그새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점심을 먹고 각자 자유시간에 8일만에 처음으로 카푸치노가 아닌 라떼를 카페에서 마시고, 공항에서 스타벅스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다시 또 모카를 마시며 나는 생각에 잠겨 들었다. 불편한 것이 그리 참기 어려운 걸까? 익숙한 것이 반드시 옳고 좋은 걸까? 어디를 가나 그 나라를 보려 하지 않고 왜 내게 익숙한 것들을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걸까? 여행 내내 나를 따라다니던 몇 가지 생각 중의 하나가 끝까지 나를 물고 늘어졌다.
아마 이와 같은 질문들은 앞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여행을 다시 떠난다면 또 똑같이 반복해서 떠오를 생각이요, 어쩌면 한국 내에서도 한 번 쯤은 돌이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익숙한 일상에서 떨어져 나가 경험했던 여러 가지 일들. 불편함 가운데서 눈물 나게 고마웠던 순간들. 무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들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이번 여행은 아마 오래도록 가슴에 각인이 될 것 같다……
여행 팁 여덟! – 유럽에 가서 한국 식당을 가려면 주머니가 정말 두둑해야 한다. 그러므로 햇반 한 두 개하고 볶음 김치라도 준비해 가길 바란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먹더라도 황제의 밥상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마치며: 가장 가슴에 남는 순간은……
사람들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라고들 떠올릴까? 결혼식? 졸업식? 대개가 대학교에 합격하거나 회사에 붙거나 하는 어떤 특별한 이벤트를 기억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 여행 동안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아름다운 자연들? 정말 인간의 손이 거의 미치지 않은 자연은 정말 숨막히게 만드는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지는 않는 것 같다. 스플릿 시내 혹은 중세 도시 오파티야? 뭐 화려하거나 특이한 것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최고로 꼽을 수는 없다. 신비스런 종소리가 울려 퍼지던 보힌 호수?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기는 하지만, 가슴 뭉클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꼽는 이번 여행 최고의 순간은 다름 아닌 우리 일행 전부가 가져 간 햇반을 꺼내어 오손도손 나누어 먹던 그 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공원 벤치에 둘러 앉아 먹기만 했다면 글쎄, 몇 손가락 안에 꼽히기는 했을지언정 으뜸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정이 그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우선 이 모든 한국 음식 준비를 조교 혼자 준비했는데, 우리 모두 여행 전 과제 제출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걸 알고는 혼자 회사를 반차까지 내고서 준비를 했다. 동료로서, 다 같이 바쁜데 어찌 가슴 짠하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실 조교가 우리가 먹을 식량을 카트 가득 혼자서 끌고서 공항에 들어서는 모습을 볼 때 이미 ‘어휴. 우리 좀 너무 심했다…’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드러내놓고 고맙다, 애썼다, 라는 말조차 속 시원히 하지 못하는 우리네 문화는 참…
그런 그의 마음이 닿아서였을까? 여행 도중 식당 예약이 되어 있지 않아 대충 어디에선가 점심을 때워야 하는 순간이 왔는데, 세상에. 어느 카페 주인이 자신들의 음식을 팔아주지 않아도 되니 마음 놓고 한국 음식을 갖고 점심을 먹고 가라고 장소 제공을 해주었던 것이다! 자리세도 거절하면서 말이다!
물 한 모금, 화장실 한 번도 돈을 지불하지 못하고서는 갈 수 없었던 그 곳에서 정말 기대하지 못했던 따듯한 마음이었다. 한국과 크로아티아의 따듯한 두 마음이 연결되는 그 곳에서 나는 여행 후 처음으로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나뿐이랴. 라면 국물을 후후 불면 밥을 우걱우걱 씹는 우리 모두의 눈과 입은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여행이란, 그리고 삶이란, 따듯함을 나누며 살 때 바로 그 곳에 행복이 피어남을 배웠다.
상처 받은 땅, 발칸에서 각자의 인생 무게만큼의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 밖에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따스함 끝에 피어 오르는 행복을 느끼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여행을 통해 배운 일생 간직하고 싶은 깨달음이었다……
샘, 저 1등 2등, 이런 등수에 노이로제인거 아시잖아요 ㅎㅎㅎ
연구원이 좋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성적표가 없다는 점이에요! ㅋㅋㅋㅋㅋ
그냥 제 길 가고 있어요.
어딘가의 댓글에서도 말했듯이, 올 한해 새로 태어나기 위해 가능한 세상 모든 것과 단절했어요.
그래서 기쁘고, 그래서 쫌 마니 아프기도 해요... 히히...
1등이란 단어에 자동적으로 거부 반응이 심한 거 이해해주실거죵~ ?
알아요. 샘은 다들 여행의 여운 속에서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는데
먼별이 네가 가장 먼저 뛰쳐나왔구나~라는 말씀이시라는거요.
제가 아직 쫌 그래요...지송요...^^:::
먼별이표 커피! 그거 좋은데요~
음...샘하고 저하고 먼가 획기적인 커피 만들어볼까요? ㅎㅎㅎ
사실.. 수희향 언니~ 하는 거이 보다는.. 먼별 언니~ 가 더 어울리는 거 알아여? ^^
뭔가를 늘.. 꿈꾸고.. 어리광도 부리고.. 어린 아이의 모습이 보여서일까여..
뭐.. 언제 또.. 키메라 분장을 하고 나타나.. 작두걸? 로 등장할지도 모르는 거이지만여.. ㅋㅋㅋㅋㅋ
커피.. 여행전 칼럼에선 좀..비장함이 보이더니만..
여행 내내.. 여행을 다녀와서는 더욱.. 뭐뭐 브랜드의 소중함을 알겠다고 하지를 않나.. 참..
이거이도 언니야의 모습임?을.. 그~대로 받아들이시기를..ㅎㅎㅎ
여행.. 누구랑 함께 하느냐에 따라..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된다는 거..
우린.. 알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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