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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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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4일 11시 59분 등록

콘치타, 너의 죽음이 나의 일생이 되었구나. 평생을 그린 너의 초상화를 받아 주련.’

 지중해의 4월은 여전히 푸르구나. 하늘과 바다는 본래 하나였지. 태양의 신이 하늘을 향해 편애(偏愛)의 손수건을 날리기 전까지는. 묵직한 공기 덩어리 너머로 시신경을 자극하는 푸른빛의 비밀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마티스, 블루에 대한 자네의 짝사랑이 조금만 덜했더라도 마티스 블루란 명칭은 존재하지 않았을거야. 자네의 블루는 너무 순진무구해. 영원을 꿈꾸는 건 좋지만 목마른 입술을 채울 뜨거움이 없다는 건 참 심심한 일이지.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면 욕망이라는 재료를 살짝 첨가했을거야. 블루가 욕망의 빛을 띨 때 얼마나 섹시한지는 자네가 누구보다 잘 알거야. 분노의 황소라는 영화에서 힌트를 얻어 ‘Raging Blue‘라는 이름까지 만들어 놨지.

하여간 그림에 관한 한 나를 앞서간 인간을 보지 못했는데 자네는 좀 특별했어. 신은 기린과 코끼리와 고양이를 발명했고 나는 기린과 코끼리와 고양이의 이미지를 재구성했는데, 자네는 새파란 색종이를 대충 이리저리 오려낸 후 기린과 코끼리와 고양이가 춤춘다고 우겨댔으니 말야. 존재가 있기 전에 색이 있었다? 자네의 그런 투가 내겐 충격이었지. 외통수에 걸린 느낌이랄까. 나만큼이나 전통을 무시하는 태도는 미술계에 충격을 주었지. 명암과 데생은 물론 입체감, 공간적 깊이, 정교한 붓질 등 전통 미술이 추구한 미적 가치를 한 순간에 허무는 행위는 평론가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야만적이라는 비판을 받을만 했어. 얼굴에 초록색, 파란색을 덕지덕지(미안! 평론가들의 표현을 옮기다 보니) 바르는 건 뭐 하자는 시츄에이션이야-자네의 그림을 처음 접한 평론가들의 얼굴이 지금도 선하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감정을 묘사하기 위함이며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가 색채라는 자네의 생각에 나는 시쳇말로 뻑이 가고 말았네. 사람의 얼굴 또한 감정을 표현하는 도화지에 불과하다니. 그 충격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자네의 잔영이 좀 배어나온 걸 가지고 도둑 운운한 건 지금 생각해도 섭섭해. 자네도 내 그림을 흉내내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지. 그럼에도 점잖은 외모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혁명적 기운을 나는 사랑했네. 우리는 닮은 데가 있어.

사람들이 심심풀이 땅콩으로 자네와 나를 비교하기 좋아한다는 걸 알아. 그런데 교수 풍모의 자네에 비해 나는 상대적으로 악역을 맡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의 행로를 충실히 따라온 나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란 걸 이해는 하지만서두. 많은 여자를 사랑했다는 사실만으로 나를 牛頭人身의 괴물 미노타우루스에 비유하는 건 한국에서 하체 튼실만으로 마당쇠를 떠올리는 것처럼 유치한 발상이 아닌감. 나를 열정과 재능은 되지만 머리는 좀 떨어지는 예술가로 보는 시각은 공감하기 어렵네. 나는 이미 십대 초반에 조숙한 천재란 버려야 할 유산임을 깨달았어. 그 이후의 성공은 오로지 그림에 대한 남다른 집중과 고뇌에서 나온 성과물이지. 나의 스승이자 자네의 스승인 세잔 사부에게서 배운 게 바로 그거야. 내 앞에 있는 사물을 한눈 팔지 않고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 내 그림에 등장하는 미노타우루스는 바람처럼 방랑하고 변신하는 원시적인 에너지를 상징하는거야. 내 마음속의 소용돌이를 형상화하면 아마 그런 모습일테지. 올빼미도 내가 좋아하는 동물이지. 녀석의 이글거리는 눈을 보고 있자면 형용하기 어려운 열정에 사로잡힌 나를 보는 것 같단 말이야.

자네의 말 중에 정확성이 진실은 아니다는 명제는 심금을 울리는 말이었어. 화가라면 심상에 비친 장미를 그려야 하지. 매일 똑 같은 장미를 그리는 건 창조자의 자세가 아니야. 나 또한 신의 반열에서 모든 미술 장르에 도전하고자 했고 그렇게 했지. 내가 남긴 작품이 5만 점 정도라고 하는데 내겐 젊음을 사르며 맞바꾼 자식들이야. 어떤 이는 "남성 예술가는 효과적이고 우수한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 전적으로 여성의 힘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브레통이란 작자의 말로 내 에너지의 근원을 설명하는데......사실 나 그렇게 마초 아니거든. 차라리 아름다움을 쫓는 제우스로 나를 여겨줬으면 좋겠어.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화가의 잠자리채에 때로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걸려든 거지.

떠날 때가 왔나보군. 크레용을 쥔 손에 힘이 빠지고 있어. 화가로서 예술가로서 나의 일생은 성공적이었어. 한 점 후회 없는 삶이었지. 하지만 나의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구만. 내가 열렬히 사랑했고 사랑하는 여인들, 육신의 자식들에게 나는 좋은 가족은 아니었네. 결과적으로 그들의 생의 에너지가 나의 팔레트가 되었네. 화폭 안에서는 전지전능한 의 반열에 올랐지만, 관계에서는 침몰하는 배였을지 모르겠네.

마음이 아프구만. 하지만 돌이키고 싶지는 않네. 예술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네. 붓을 통해서 완벽을 추구할 뿐이지. 신이 예술가의 숙명을 연민으로 안아 주실 것으로 믿네. 생활인으로서 나에 대한 평가는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이네. 불 같은 생의 이면에 도사린 죽음이 늘 두려웠지만 이제는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네. 예술가는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이니까. 곧 봄새.

보이지 않는 화폭 너머로 늘 오라버니를 지켜보던 콘치타
이 생의 기억을 안고 이제 너에게로 간다

※ 이 글은 피카소가 생애 마지막 날, 먼저 간 동료이자 라이벌 마티스와 가상의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꾸며졌습니다.

IP *.236.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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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5.24 18:09:34 *.45.41.184
누군가와 경쟁하나요? 누군가를 사랑하나요? ^^
"정확성이 진실이 아니다."  = 정확하게 표현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로 해석하겠습니다.

파행인가 창조인가는 새로움을 시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죠
저로서는   질서가 내면에 존재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창조적 발상이나 삶이 되거나  파행적 광기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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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5.24 19:12:56 *.75.6.40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투사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렇다면 경쟁대상이 가치있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썼구요...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정확성이 진실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잉 아니라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상상이 가능한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고...

소설적 분위기에 대해서는 ... 저도 피카소가 쓴 걸로 생각하고 ... 썼다고 생각해 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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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5.24 18:46:10 *.236.3.241
처음에 물어보신 경쟁과 사랑에 대한 질문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정확성이 진실은 아니다"는 화가의 역할은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라
심상의 이미지를 충실히 표현하는 것이라는 마티스의 생각을 그저 표현한 것입니다.

컬럼을 소설적 분위기로 쓴 것은 나름 고민의 흔적으로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직
주제와 형식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이렇게 저렇게 실험을 거듭하는 중입니다 ^^

관심을 가지고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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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5.24 18:56:30 *.53.82.120
전 '피카소의 예술'이 제일 난해하게 느껴지던데..
완전 체화하신 느낌이네요.
피카소가 들어도 잠깐 '어! 내가 이런 글도 썼었나?' 하지 않을까요?

흥미진진해요.
역시 오빠는 문학이 어울려요.
그 흘러넘치는 감수성을 감당하기에 실용문은 너무 얇은 도화지인 듯한 느낌이 드는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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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5.25 11:42:32 *.236.3.241
요즘 컬럼 쓸 때 마음이 마음이 아닐 때가 종종 있는데,
이렇게 힘을 주니 참 기특하고 고맙구나ㅎㅎ

한편으로는 날카로운 눈으로 부족하다 싶은 부분도 지적해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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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5.24 23:51:37 *.36.210.2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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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5.25 11:38:44 *.236.3.241
누님, 평소 막강한 댓글 솜씨로 원작자를 주눅 들게 하던 써니 누님~~

어인 파격이심 ㅎㅎㅎ 모 아니면 도란 뜻?  아름다운 장미를 주시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냥 받으면 되는것이죠,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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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5 09:51:29 *.106.7.10
나도 묙 의견에 동의!
다양한 형식의 실험역시 오빠의 창조적 상상력의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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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5.25 11:36:08 *.236.3.241
좋게 봐 줘서 고맙다 ^^

처음부터 이렇게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궁한 대로
탈출구를 찾았다. 나도 뱅기타고 바람 좀 쐬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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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5.25 09:51:50 *.219.109.113
이런 글의 형식 참 마음에 든다.
때로는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글로 표현 할 수 있다는 것.
선의 말처럼 상현은 인상파 문학가야. goooooooooooo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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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5 16:33:09 *.106.7.10
ㅋㅋㅋㅋ
그 심정 몇 주전 제마음 ^^
뭐, 지금이라고 딱히 나아질건 없지만 ^^
뭐, 좀 끙끙대 보자구요,
언젠가 오라버니 글감이 팍! 터지겠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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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5.25 18:08:40 *.219.109.113

나 싸는 거 봤어? ㅋㅋ 누가 보면 같이 사는 줄 알겠다.

소리를 내며 힘을 주어 나오는 것은 변비라 할 수 없지. 암 그렇고말고.

그리고 상종가 치면 바닥을 칠 때도 있으니 난 항상 겸손하게 있어 자화자찬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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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5.25 11:32:55 *.236.3.241
웨버가 변비걸릴 때 그러는 것처럼 끙끙거리다 썼습니다ㅋㅋㅋ

요새 개 시리즈가 상종가를 치고, 다다음주까지 쓸 물량이 차고 넘친다는
웨버의 자화자찬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심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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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5.25 12:02:37 *.30.254.28
내가 가야금 배워서,
강가에  배 띄우고, 가야금 타며
술을 먹게 되는 날이 오면, 
그 풍광을 멋진 글로 묘사해 줄 가장 적당한 사람!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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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5.25 13:01:02 *.236.3.241
그럼 저는 시조를 지어서 읊어야 하는거죠 ㅎㅎㅎ

가야금 야그 자꾸 들으니까 진짜로 배 띄우고 가야금
타는 풍광에 동참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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