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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8일 09시 07분 등록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의 마음이 이러할까요.

두근거림, 긴장, 설레임, 초조, 기대...

나는 묵혀놓았던 빨간 옷을 다시금 꺼내 입었습니다.

언제였던가요. 우린 어느해 하나가 되었습니다. 함께 춤추고 함께 손잡았던 그때를 기억하며 오늘 다시한번 되새김질을 해볼려는 욕심을 내어 봅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췄습니다. 병사가 병기를 챙기듯이 머리띠, 식수, 간식, 막대풍선, 약간의 맥주, 우산.

 

19시.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뚝섬 한강 유원지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가수들의 공연, 이벤트 무대가 사람들의 흥을 돋우고 있습니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신문지를 깔고 이젠 결전의 태세로 돌입할 준비를 합니다.

22시. 경기 시작시간 1시간이 남았습니다. 이젠 함께 응원 연습으로 돌입합니다.

부부젤라를 불고, 손뼉을 치고, 막대풍선을 부딪치며, shouting을 외쳐봅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어느 군대가 이렇게 일사불란할까요.

울긋불긋 페이스페인팅 등 복장도 가지가지입니다.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비 장사의 손길이 더욱 바빠집니다. 한 벌에 2,000원. 허걱.

4시간여를 기다렸더니 벌써 한기가 찾아옵니다. 빗방울은 우비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갈등이 생깁니다. 편하게 집에서 TV를 시청할까. 이게 뭔고생이람.

하지만 나하나의 동참이 그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며 묵묵히 내리는 빗방울에 몸을 맡겨 봅니다.

여기 모인 모든이들의 마음도 그러하겠지요.

 

1987년 6월 항쟁 그때가 생각납니다.

대학교 새내기 1학년이 무얼 알았겠습니까마는 그때의 6월도 이처럼 뜨거웠지요.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서 닫혀있는 강의장을 뒤로하며 동지들은 아스팔트 위에서 연좌를 하며 짱돌을 던지며 외쳤습니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비가 무척이나 오는 어느날도 오늘처럼 우비를 뒤집어쓰며 우린 어깨동무를 하며 애국가를 불렀었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리고 우린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직선쟁취라는.

 

시간이 흐르고 장소가 다르고 가치관이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는건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겁니다. 하나가 모이고, 둘이 모이고 다수가 모여 작은 에너지가 흘러흘러 가면 커다란 강물처럼 큰에너지를 형성하게 됩니다.

4월 11일. 법수치 계곡에서 구본형 싸부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우리 각개인의 지류 하나하나가 모여 어성천을 이룬다”고.

 

23시. 드디어 우루과이전과의 축구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박주영 선수의 첫골이 안타깝게도 골문 포스트를 맞고 나오자 탄식의 함성이 흘러 나옵니다.

상대편의 첫골이 터지자 빨간옷의 12번째 전사들과 함께한 공간은 적막을 이룹니다.

응원 단장이 다시금 기를 불어넣습니다.

이청용 선수의 골이 터지자 우리의 기상은 한강을 넘어 동해를 거쳐 바다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열정, 우리의 패기, 우리의 하나됨, 우리의 기원은 하나가 되어 굽이 굽이 칩니다.

치우천황이 되살아 납니다. 대륙을 달리고 호령했던 기마민족의 잠재된 욕망이 멀리멀리 남아프리카 공화국 푸른 잔디밭의 전사들에게 전해집니다.

싸워라. 이겨라. 그리고 승리하여라.

 

후반전 심판의 휘슬이 울었습니다.

차두리가 북받치는 설움을 참지못해 울음을 터뜨립니다.

어렵게 경기에 나섰던 이동국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월드컵에서 생애 마지막 경기일수 있는 이영표, 박지성, 김남일은 아쉬운 표정을 짓습니다.

골기퍼 정성룡은 잔디밭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그런 그를 이윤재 선수가 끌어 안습니다.

수장 허정무 감독은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8강에 오르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들로 인해 행복했었습니다.

87년 6월이 그러했듯 우리는 함께 싸웠습니다. 함께 기뻐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그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봅니다.

그리고 이제는 또다른 희망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4년뒤 브라질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다시금 하나가 되기를. 다시금 서로의 따뜻한 손을 잡기를. 다시금 심장을 마주치기를.

그때를 위해 우리는 준비를 해나갑니다.

싸부님께서 올해 “노력한다는 것은 매일 한다는것”이라는 사자후(獅子吼)를 내려주신 것처럼, 우리는 또다른 그날을 위해 오늘 무사의 칼을 가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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