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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3일 11시 53분 등록

칼럼. 내 인생의 길찾기

현서에 대한 첫 기억은 ‘이런 답답한 녀석’이었다. 현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새학기가 시작되고 하루가 지난 날 아침 조회시간에 지각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우리반의 3분의 2정도의 아이들이 사탕을 받았다. 사탕을 받은 아이들은 당연히 그 자리에서 그것을 맛보기에 바빴고 나는 사탕껍질을 휴지통에 버려달라는 당부의 말을 하고 교실을 나섰다. 그날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교실앞을 지나가는데 현서가 내곁에 쑥스럽게 다가와서는 “선생님”하고 나를 부른다. 나는 새학기의 좋은 이미지를 위해서 활짝웃으며 한껏 친절하게 “왜 그러니?“라고 되물었다. 돌아온 현서의 대답은 ”이 사탕 지금 먹어도 되요?” 그말을 듣는데 이녀석 착하긴 한데 참 세상살기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뒤로 1년동안 함께 생활을 하는 내내 현서는 조용히 수업을 잘 듣는 아이에 속했다. 그런데 성적은 반에서 40명중에 30등 언저리를 맴돌았다. 현서의 꿈은 수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동물을 많이 좋아하는 현서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직업이다. 하지만 지금의 성적을 계속 유지한다면 힘든 일일 것이다. 어느날 현서가 교무실에 왔길래 이것저것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공부를 하기 싫으냐고 물었다. 현서는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려고 하면 어느새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며 집중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겉으로 부족한 것이 없는 현서에게 무엇이 문제일까 궁금했다. 사실 현서 부모님은 우리 학급에서도 학력이 매우 좋은 축에 속했다. 아버지가 한의사이고 어머니는 공인중개사이니 남매중 남자아이인 현서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현서는 그것에 전혀 부응을 하지 못하니 부모님도 답답할 노릇일 것이었다.

공부의 열망이 가득함에도 전혀 성적은 좋아지지 않은 채로 3학년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반이 아닌 현서를 가끔보면 내가 그애를 도와주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차에 학교에서 방과후학교로 모닝페이지반을 운영하게 되었고 그 1순위 대상자로 현서를 떠올렸다. 현서가 공부를 못하는 것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현서는 좋아하는 과목이 하나도 없었고 매사에 의욕이 없었다. 12주동안 모닝페이지를 쓰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뭔가 실마리가 보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현서에게 함께 할 것을 제안했다. 현서도 변화를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님 내가 제안한 것이라서 차마 거절을 못했던 걸까 어쨌거나 함께 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그리고 모닝페이지반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느끼며 글을 쓰는 과제를 꾸준히 하고 발표를 하는 현서를 보면서 현서가 왜 공부를 하고 싶어하면서도 집중할 수 없었는지가 어렴풋이 이해되었다.

현서는 무얼해도 항상 자신감이 없어 했다. 그것은 아마도 현서가 가정에서 1살 많은 누나가 뛰어난데 가족들은 누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이 하는 것은 대부분 무시한다고 여기는 것과 관련이 있어보였다. 다행인 것은 수업때 조용한 것과는 달리 모닝페이지반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풀어놓았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누나의 말이 법이 었다는 이야기, 병아리를 키우다가 죽었을 때 슬펐던 이야기, 지금 키우고 있는 토끼소녀들 2마리가 성장하는 이야기 등의 현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2주간의 모닝페이지반이 끝날 때 현서는 “예전엔 학교에 오는 것이 재미없고 싫었는데 모닝페이지반을 하면서 학교가 즐거워졌어요. 여전히 집에선 재미가 없지만요.”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말을 듣는데 얼마나 뛸 듯이 기쁘던지. 여전히 가족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자신의 가족에 대한 속마음을 겉으로 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믿었다.

현서는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다. 가끔 연락을 해오는데 여름방학때 자신이 학교 관현악부에 들었는데 거기에서 트럼펫을 연주한다고 여름방학때 예술의전당에서 있는 고등학생 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며 들떠서 말했다. 트럼펫을 연주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즐겁다고 이제야 하고 싶은 것을 찾은 것같다고 대학도 트럼펫을 배울 수 있는 음대를 갈 것이라고 했다. 현서가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이 재미있다고 말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도 덩달아 기뻐졌다. 문득 현서 부모님이 생각났다. 현서의 결정을 반가워하실까 궁금해졌다. 현서에게 ‘부모님이 네가 원하는 길을 찾아서 기뻐하시겠네. 뭐라고 하셔?’ 라고 물었다. 현서는 ‘ 부모님이 일단 시작한 것이니까 열심히 하라고 서울대 음대가서 교수하래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는데 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현서를 보면 보통의 어른들이 원하는 과목을 잘하는 능력만으로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낀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길이 있다. 자신에 어울리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학생들이 해야하는 공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은 현서가 자신이 걸어가고 싶은 길을 찾은 것에 박수를 보낸다. 현서가 택한 그 길이 현서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다만 그 길을 가는데 부모님의 기대가 장애물이 아닌 응원의 메시지로만 작용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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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8.23 14:57:19 *.42.252.67
다른 아이들보다 가슴이 움직이질 않는다.

너무나 일상에서 대하는 평범히 볼 수 있는 아이들의 전형이라고 생각이 들었나봐,

그래도 현서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니 그건 참으로 좋네.

우리 작은 아이는 아직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못 찾았어.

연주샘 우리 애도 상담 좀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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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8.24 09:23:15 *.203.200.146
시간이 가면서 자신의 길을 자연스럽게 찾게 되겠지만
그래도 그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더 많은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것같아요
아이들이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코치해주는 것이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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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08.23 23:48:27 *.212.98.176
선생님이면 방학이 무지 길거라 지레짐작을 하는데 8월 한달이 꿀꿀했겠구나.

그래도 혹시 아냐. 네가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더위와 싸워야 했던
이유가 진철이가 그리스를 떠나지 못한 이유처럼 오묘한 사연이 있을지 ㅎㅎㅎ

지난 한달간 너에게 있었던 소소한 사건사고들을 찬찬히 복기해 보는 건 어떨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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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8.24 09:34:00 *.203.200.146
어제 공식적인 개학을 했는데 새학기가 아니라 1학기의 연장인 느낌이 들어서 좀 당황했습죠~^^
이렇게 열심히 학교간 방학은 초등학교 이후로 없었던 것같아요. 고3때보다 더 많이 간듯 ㅋ
애들이 배움을 놓는 放學에 더 치열하게 공부하는 추세이듯
샘들도 빡시게 일해야 하는 게 추세인듯...주변에선 월급받는데 당연한 것이라 하겠지만요 ㅎㅎ

여행을 떠나지 못한 것에 오묘한 사연이 있다면
여행을 떠난 곳에서는 더욱 기막힌 사연들이 있었을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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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8.24 08:33:48 *.10.44.47
현서 .. 왠지 내동생 상현이를 만나게 해주고 싶어지네..
돌이켜보니 우리집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동생의 그늘, 어쩌면 내가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아직도 내 발목을 잡고 있기도 하고..

현서가 누나랑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정이 가족 모두에게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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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8.24 09:40:12 *.203.200.146
현서가 누나랑 이야기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려면 계기가 있어야 겠죠. 그 역할을 현서가 시작한 음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서는 누나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까 기를 못펴고 살아온 것같아요. 부모님은 누나가 성장하는 것을 보고 흡족해하다가 현서의 느린 성장이 답답했을 것같아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것이 현서에게 영향을 주고...현서는 가족들과 나는 다르다는 인식을 하게 된 거죠. 언젠가도 가족들은 모두 공부에 있어서 뛰어난데 자기만 그렇다고 푸념을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가족안에서 자기의 존재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이 학교생활에서 반영되어 항상 말없이 조용한 아이로 지내온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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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8.24 22:05:51 *.34.224.87
왠지,
음악이 현서에게 도움을 주었겠구나.
그런데, 아마 일시적인 도움일거야.
음악에는 치유의 힘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치유는
스스로 찾아야 하니까..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연주가 계속 경청해주면 좋을 것 같다..
아마, 나 같으면, 연주에게 감사의 트럼펫 연주를 해줄거 같아...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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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8.25 00:32:17 *.129.207.200
자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그 어린 것이 어떻게 알겠어. 서포트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가다가 자심감이 없어지고 그만두는것이지. 아들, 딸 둘을 기르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 둘 다 이쁜데, 잘난놈을 더 이뻐할지는. 

나도 현서와 비슷한 경험을 했고, 지금도 그렇지. 믿음 부족.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갖기가 점점 어려워져. 가치가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골인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아이 이야기기는 하지만,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가, 갑자기 음대에 가고 싶어하는 것도 좀 생각을 해보아야겠다. 부모의 서포트가 없기에, 자기 중심을 못잡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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