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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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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8일 11시 20분 등록

[칼럼] 백수, 자기부터 경영하라

전주의제21의 10년 발자취를 정리하겠다고 공언을 했는데... 막상 해놓고 나니, 이제는 더 이상 게으름을 피울 수 없게 되었다. ‘공언’의 목적이 다른 이들과의 약속도 있지만, 자신의 나태함에 대한 자신의 다짐이기도 했다. 특히 혼자만의 생활에서 절제되지 않은 자유가 어떻게 결론 나게 될지는 이미 충분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자, 어떻게 시작할까. 막 무엇인가를 쏟아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열정이라고 믿으면 안 되었다. 최소한의 체계가 없이 무작정 덤벼드는 것은 집을 어떻게 짓겠다는 계획도 없이 우선 맘 급한대로 삽질부터 해대는 격일테니. 아까운 시간과 열정을 그렇게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딱히 머리 속에 뒤죽박죽되어 뼈대를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최근에 읽고 있는 조직경영과 관련된 책들이 도움이 되었다. 목차를 꼼꼼히 보고, 구성과 집필메모 등 일단은 그렇게 기본을 잡아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 내가 다루는 내용은 GE의 사례나 무역협회의 사례와는 좀 다른 특수성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을 잘 살려내야만 나의 글이 차별화 될 뿐만 아니라 글을 읽게 될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텐데. 구체적인 사례와 읽을 대상이 누구인지가 필요해졌다. 그냥 일반적인 조직경영이론서가 아닌 현장 활동가의 경험이라는 점이 내가 쓸 책의 강점이 될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례는 전주의제21을 비롯한 지역의 구체적인 일이 소재가 되겠지만, 전국의 어느 의제기구 활동가들이 읽어도 ‘그래 이런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도 있었지’라는 공유가 되어야 할 일이니까.

쓸 내용들의 핵심적인 뼈대와 함께 전체의 구성을 생각해봤다. 각각의 꼭지 글도 인상적인 시작과 공감과정을 거쳐 짧고 분명한 결론으로 끌어내야 할 것임은 물론이겠지만 전체적인 구성 또한 하나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드라마를 쓰는 것도 아닌데. 체계부터 잡아놓고 시작할까? 아니면 써보면서 잡아갈까? 잘 판단이 안 섰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일단 대략의 얼개를 염두에 두고 초벌 스케치용 꼭지 글을 써봤다. A4 한 장 반에서 두장 정도의 분량으로 스무 꼭지가 나왔다. 다소 중복되는 내용이 있기도 하고, 매우 거칠었다. 마음이 손을 앞질러가고 있었다. 앞으로도 몇 차례의 수정과정을 거치겠지만, 일단 초벌용으로 전체적인 글의 구성과 배치, 문체의 스타일-통계자료를 활용해서 논리적으로 구성할 주제인지, 감동적인 사례를 살려서 감성적 공감을 끌어낼 주제인지, 처음 시작과 마무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심지어는 이런 고민들도 어떤 순서로 해야 할지조차 잘 잡히지 않았다. 백번 남의 책을 읽는 것보다 한 번 자신의 책을 쓰는 것이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기게 될지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한다. ‘괜한 일을 한다고 했나’ 싶다가도 ‘아니야, 쓰겠다고 공언을 한 것이 차라리 잘 됐어’

하루 네 시간씩을 규칙적으로 쓰기로 했다. 아직 시간까지 일정하지는 않지만, 가급적 오전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집중력도 떨어지고, 체력도 뒷받침이 안 될 때가 많았다. 오후 시간은 몸을 움직이는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산책을 가기도 하고, 요가를 하거나, 청소나 빨래 그리고 책장의 도서를 구분해서 정리해두는 것도 필요했다. 어차피 해야 되는 일이기도 했지만, 쓰면서 필요할 때 자료 찾느라고 해매다 보면 어느새 맥이 풀려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들은 다짐을 받았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기 어렵기 때문에 짧고 굵게 서로에게 필요한 시간들과 배려를 하기로 했다. 다행이다. 아직 여덟 살짜리 딸의 어린양이 고집스러울 때도 있지만, 책을 보는 시간, 글을 쓰는 시간동안 아이들도 스스로 자신의 시간들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하나의 적이 생겼다. 휴대전화였다. 아직 퇴직한 줄을 모르고 걸려오는 전화들도 있고, 실업자가 되었으니 구제차원에서 밥을 사겠다. 술을 사겠다. 커피가 필요하지는 않느냐는 말 그대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유혹들이 이어졌다. 한 달 정도는 그럴 것이라고 예상은 했고, 절대 싫지 않은 그들의 따뜻함이었지만 시간 관리에는 치명적이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생계대책은 있는 것인지’ ‘언제까지 쉴 것인지’ 그들에게는 처음 하는 질문이었지만, 이미 나는 연극대본을 암기하듯 준비된 답변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술까지 한 잔 하고 들어오게 되면, 책상까지 이르는 길은 벌써 아득해지고, 중간 중간 앉을 곳, 누울 곳의 유혹을 차마 떨치지 못하고 만다.

차라리 꺼놔 버릴까? 세상과의 소통, 인간적인 예의... 갈등이 일었지만,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다. 지금,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일. 그 일을 가장 잘 하기 위해서, 나는 냉정하고 단호한 판단의 기준을 가져야 하고, 나의 생활을 단순하게 만드는 일이 필요했다. 그것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책임이기도 했다. 세상과의 소통시간, 소통방식도 내가 정한다. 새로 이메일 계정을 마련하고, 미뤄왔던 블로그도 개설했다. 통화보다는 문자로, 약속은 사전에 미리 정하지 않으면 정중하게 사양하기로 했다. 진짜로 급한 일이면 어떻게든 세상이 나를 찾게 되어 있다. 지난 연구원 생활을 해왔던 시간들이 자신감을 주었다. 나는 이미 훈련되어 있었다. 휴대전화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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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08 20:25:38 *.5.17.225
휴대전화를 끌 수 있는 자유...
아침 4시간의 글을 쓸 수 있는 여유...
지금 오빠에게 가장 부러운 것!
이것을 얻기 위해 오빠가 했을 포기와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 펼쳐질 백수경영 리포트 기대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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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09.09 11:40:24 *.186.57.45
고마운 연주...
연구원에 접속할 수 있는 자유...
늦은 시간까지 댓글을 달 수 있는 여유...
지금 연주에게 가장 행복한 것!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연주가 했을 맘고생과 다짐들에 박수를 보내.^ ^
앞으로 전개될 쾌걸, 낭만 연주의 삶이 기대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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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9.09 19:46:14 *.131.127.50

다시 자발적 빈곤?으로  가는 이들이 많아지는군....
진철의 글은 늘 마음에 닿아서 
새로운 느낌으로  나의 머리에 되돌아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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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09.09 21:42:42 *.154.57.140
형, 저는 형의 댓글을 기다립니다.
형이 보셨을텐데.. 한 말씀 주실것도 같은데..ㅋㅋ
그게 힘이 됩니다. 아시죠? 댓글..훈장같은 거잖아요.
늘 맘 써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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