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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4일 22시 20분 등록

“선배, 잘지내시나요.”

“(생각하며) 누구시더라?”

“애정이 식었군. 나예요.”

갑자기 걸려온 전화의 멘트에 당황한 나는 누구의 목소리일까 헤아리던중 그제사 상대방 얼굴이 떠올려 졌다.

“오랫만이네요. 강사님이 어쩐일로. 근데 선배라는 호칭은...”

“생각해 보세요. 무슨 선배 일까요?”

 

내가 경험한 여성이라는 존재는 대체로 복잡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일반적인 남자들처럼 단순하게 직설적으로 질문을 하고 솔직한 감정표현을 하면 될일을 꼭 넝쿨처럼 비비 꼬면서 돌고 돌아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럴때면 나의 우매한 머리는 그 질문과 감정표현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고민을 하곤 한다.

 

어느날 아침 한 가정의 출근길 풍경.

“자기야, 나뭐 달라진 것 없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훏어 보았지만 남편은 변화된 무언가를 쉽게 캐치하지 못한다.

‘아침부터 뭐하는 짓이람. 그냥 이야기 하면 될일 가지고 꼭 이렇게 질문을 해대니.’

그래도 무언가 이야기를 하긴 해야할터 였다.

“머리 새로 했나 보구나.”

묵직한 남편의 대답에 아내는 속이 상하고 만다.

“3주전에 했는데.”

깨갱~ 그날 저녁은 만찬은 고사하고 제대로된 밥이라도 얻어 먹을수 있으면 용하다.

 

며칠이 지난 또다른 아침 출근길 풍경.

“자기야 오늘 무슨 날이게?”

남편은 환장한다. 무슨 날이긴? 내꼴을 보면 모르니. 어제 술마시고 늦게 일어나 지각 만큼은 면하기 위해 허겁지겁 급하게 출근하는 날이지. 거기다 실적 보고서 작성해 올리느라 고달픈 날이 될 것 같은데 아침부터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이람. 왜 꼭 아내는 바쁠 때 이런 질문을 해대는지 그냥 이야기 하면 되질 않나. 그러면서도 지난번 악몽의 되새김을 하지않기 위해 잔머리를 최대한 굴려 본다.

‘생일인가. 아니야. 지난번 챙겨 주었었는데. 그럼 결혼 기념일? 그건 아직 멀었잖아. 장모님 생신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에라 모르겠다.’

남편은 심호흡을 하고 회심의 한마디를 내뱉는다.

“우와. 계돈 타는 날이구나. 그렇지. 역시 나의 기억력은...”

맞장구를 쳐주길 원했지만 아내의 표정은 밝지 않다.

“자기랑 처음 만난 날이 오늘 이잖아.”

깨갱~ 그날 저녘은 어떻게 되었을까?

 

무슨 선배를 말하는 걸까? 이럴땐 어설픈 말보다 가만히 있는게 이제까지 한 여자랑 살아오면서 쌓아온 나의 노하우중 하나이다.

“이승호 강사님. 대학원에서 000과 전공 했죠.”

“네. 어떻게 아세요?”

“이번에 제가 그곳에 입학을 하게 되었어요.”

“아, 그래요. 축하 드립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건 카네기 리더십 코스 강사가 되기 위한 관문인 코치 수련시 수강생의 신분 으로써 였다. 톡톡 튀는 말솜씨가 한마디로 될성부른 나무처럼 보였던 터였다. 그래서 과정 수료후 수료증을 쥐어진 그녀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000님. 코치 도전 한번 해보시죠. 잘하실 것 같은데.”

 

두 번째 만남은 내가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카네기 예비 강사로써 임할 때 였다. 우연찮게 만난 그녀는 어엿한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반가워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하시는 일은?”

“저요. 카네기 연구소에 입사를 해서 잘 다니고 있어요.”

그랬다. 상담심리를 전공하고 있던 그녀는 바라던 강사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볼 때와는 다른 포스가 느껴졌다. 수강생과 코치로써의 만남이 이제는 위치가 뒤바뀌어진 듯 하였다. 그런 그녀와 드디어 강의를 함께할 기회가 생겼다. 12주의 A, B코스를 나누어 운영하게 된 것이다. 직장의 현업이 있으면서 강의를 하는 나와는 다르게 연구소에서의 다양한 커리큘럼 학습과, 필드에서의 풍부한 경험으로 무장이된 그녀는 역시 달랐다. 능숙한 언변, 수강생 관리, 깔끔한 마무리, 여유로움 등이 전문 직업 강사 못잖은 솜씨였다. 수강생의 위치에서 시작해 이렇게 성장한 그녀가 대견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작은 시샘이 솔솔 들기도 하였다. 동갑내기에서 연유한 질투심의 발로 탓일까.

 

남자들은 사십대로 접어들면 자신의 앞길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무리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서 상위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 세대는 남자가 집안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기 때문 이리라. 나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할까. 나도 회사를 나와 나의 꿈의 하나인 전문 강사로써의 길을 한번 걸어봐. 나이가 더들면 너무 늦지 않을까.”

그래서 실제로 먼저 선행의 길을 걸어가신 분과 상담을 한적이 있다.

“이승호씨. 부자세요?”

“네? 아닌데요.”

뜬금없는 질문이 나를 어리둥절 하게 하였다. 진로 상담을 받으러 왔는데 이게 무슨 이야기람.

“그럼, 금전적으로 어느정도 밀어줄 사람이 있나요.”

“아뇨.”

“저축해 놓은 돈은 얼마나 되지요.”

그러했다. 조직사회속의 직장을 나와 직업적인 강사로 뛰기 위해서도 사업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실탄이 필요한 것이었다. 최소한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정도 까지 투자라는 개념으로, 기간동안 수입이 없더라도 가정을 유지할 금전적인 여유가 있느냐는 것이 그분의 말씀 이었다. 나는 얼추 통장의 지출 항목을 계산해 보았다. 보험금, 대출 상환액과 이자액, 생활비, 관리비 등 월마다 고정적으로 나가야 하는 금전액에 갈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생각이 미치면 한번 독립을 해보야지 라는 생각은 항상 마음 뿐으로 남을 뿐이 된다.


직장인의 삶은 경주마(競走馬)의 상황과 같다. 경마에 출주하는 말들은 옆을 보지 못하고 앞만 보게끔 하는 눈 가리개를 한다. 옆을 보면 시선이 분산되어 경기에 집중을 못하고 흐름을 끊을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에 충실할수 있도록 경주마 처럼 앞만 바라보게 유도를 하고, 그 유인책으로 꼬박 꼬박 들어오는 월급의 시책 으로써 쌍코피 쏟아지며 달리게 한다. 크든 작든 제때 제날짜에 떨어지는 달콤한 월급의 유혹은 생각외로 무척 크다. 그런 소시민의 한사람인 나이기에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그녀가 더욱 대단해 보였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1년여 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계기는 카네기 리더십 강사들 정례 모임일 에서 였다. 말발이 장난이 아닌 강사들 모임답게 세션 분임 토의나 발표시 그동안 갈고 닦은 내공을 유감없이 저마다 발휘해 내는 사람들. 그녀도 마찬가지 였다. 한데 표정이 왠지 어두워 보인다.

“000 강사님. 어떻게 지내셨어요. 대학원 수업은 재미 있으세요.”

“(주저하는 말로) 저, 휴학중 이예요.”

무슨 소리람. 기억 하기로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 도움이 되는 분야로 여겨 도전을 하였던 걸로 알고 있는데. 많이 힘들었나 보다.

“이승호 강사님. 나중에 시간을 내어 주실래요.”

“어쩐일로?”

“코칭을 하시는 분이니 상담을 좀 받으려고요.”

“돈많이 버시고 잘나가시는 강사님이 저에게 무슨 코칭은?”

나의 이같은 말에 그녀는 정색을 한다.

“실제 그렇게 잘나가지 않아요. (머뭇 거리면서) 제가 이곳에 계속 다녀야 될지 회의가 들기도 하고요.“

“그러시다면 프리랜서로 뛰면 되잖아요.”

“에이, 제가 이 계통을 아는데 그것도 말이 쉽지. 세상에 얼마나 고수가 많은데 프리랜서로 뛰기엔 아직 자신감이...”

 

교육 관련 컨설팅 회사에 소속된 강사들은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업을 기본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자사의 상품을 일반 회사에 홍보를 하고 미팅 및 프리젠테이션을 통해서 계약을 체결하면, 전체 수입액중 일정 퍼센트의 커미션(commission)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쪽에 맛을 들인 사람들은 오히려 강의료 보다도 금전적인 수입이 많은 영업쪽에 더 치중을 하기도 한다. 여성 이지만 남성들 처럼 뒤끝이 없고 털털하며 인간관계가 좋아, 영업 실적에서나 조직에서도 인정받고 있는걸로 알았던 그녀도 남모르는 스트레스가 심했던 모양이다. 직장에서의 업무도 힘들고 비전도 보이지 않는단다. 그래서 한학기만에 대학원 휴학까지 하였던 걸까.

 

두 아이의 엄마.

강사로써의 커리어와 입지를 쌓아가는 직업 여성.

자신의 지속적 계발을 위해 학습의 내공을 쌓아가는 학생.

한 남자의 아내.

집안에서의 며느리.

 

남자로써의 나도 여러 역할에 부담이 없지 않지만, 그녀의 입장도 이처럼 만만치 많은 않은 모양이다. 이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최근에 전화 통화한 여자 동기의 얼굴이 함께 떠올려 졌다. 입사 동기로써 나보다는 나이가 두 살 어렸지만 공사 교육팀의 팀장으로 자리를 옮긴후, 높은 급여와 함께 승승장구 하고 있었던 그녀.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자리 한우물만 파고있는 나자신이 어쩌면 조금은 초라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랬던 그녀 근황을 가까운 지인에게서 의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차장님. 000 소식 들었어요?”

“아뇨. 당연히 잘있겠죠. 근데 왜요?”

“회사를 나왔데요.”

“아니 무슨일로?”

뜻밖의 소식 이었다. 빵빵하던 그녀가 왜?

그랬다. 속내는 모르겠으나 일종의 권고사직 형태를 당해 어쩔수 없이 퇴사하게 된 것 이었다.

 

“잘있었니. 어떻게 지내.”

“나야 잘지내지. 이차장 너는?”

아무 내색을 하지 않는다. 자존심 강한 그녀이기에 함께한 직장 동기 이지만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일부러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전화 목소리에서 묻어 나왔다. 오랜 교육 계통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고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 이었다, 한 아이의 엄마로써 마흔이 넘은 그녀가 문을 두드림에 답해주는 직장은 실제적으로 얼마나 될까. 오히려 현재 직책과 연봉을 많이 받고 있는 입장이 걸림돌이 될터였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땅에서의 사십대 여성 비전 찾기는 왠지 남의일 같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 느낌의 절절함이 더욱 나에게 다가오는 이유가.

서울 뿌연 밤하늘 아래 별빛 하나를 애써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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