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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3일 16시 43분 등록
천안함 1주기.JPG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의 해는 밝았다.

평소처럼 조국을 수호한다는 명분아래 맡은바 보직에 최선을 다하였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해군이기에 이 자긍심은 힘든 군대생활을 버텨 나가게 해준다.

기름을 치고, 빡센 훈련을 하고, 뒷정리를 하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샤워후 잠자리에 들 때면 기분이 좋다. 이제 제대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오늘은 어떤 꿈을 꿀까나.

지루하고 힘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제대하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쉴 틈도 없이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복학 준비도 하여야 하기에. 제대로 된 연애도 한번 해보아야 할 터인데.

왠지 오늘 밤은 뒤숭숭하다.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뭐야? 무슨 일이야.

커다란 충격이 왔다. 갑자기 공중에 뜨더니 나의 몸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경황이 없었지만 어떡하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된다. 뭐야. 머리에서 뭔가 끈끈한 액체가 흘러 내렸다. 피였다. 이런. 실제 상황이다. 사고가 난거야.

벽마다 빨간 등이 켜지고 사방에서 사이렌 소리가 요동을 치는 가운데 바닥에 물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어떡하지. 숨이 가빠진다. 아무 생각이 없다.

이럴 때 일수록 훈련한 대로 정신을 차려야 되는데 마음뿐 머릿속이 하얗게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옆에 있던 동기는 어디 있지. 왜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거야. 모두들 어딜 간 거야. 거기다 앞이 보이질 않는다. 어둡다. 스위치는 어디 있지. 비상구를 찾아야 되는데 평소의 훈련한 매뉴얼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마음뿐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다급해 지는 마음에 무작정 문을 주먹으로 쳐본다. 소리를 지른다. 살려줘. 나 여기 있어. 여기 있단 말이야. 문열어줘.

반응이 없다. 어떡하지. 어떡하냐고. 어쨌든 탈출을 해야 돼. 여기에서 어떡하든지 나가야 된단 말이야. 이러고 있으면 안 돼. 구명보트를 타야 돼.

내가 없으면 우리 엄니가 걱정할거야. 막내라서 나를 무던히 아껴주던 엄니.

다시 문을 두드리며 힘을 내어 소리를 질러본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설마……. 나만 남겨두고 간 것은 아니겠지. 아니야. 함께 하고자한 전우들인데 아마도 모두들 나와 같은 상황이 아닐까. 그럼 어떡하지. 아무 소용이 없는 걸까.

물이 계속 차올라 온다. 어떡하지.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고 있다. 오한이 일어나고 사지가 마냥 떨리고 춥다. 이대로 죽는 건가. 아니야, 움직여야 돼. 체온이 떨어질수록 움직여야 돼. 어디 잡을 데가 없을까. 나는 살아 돌아 가야돼. 이대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새파랗게 젊은 내 인생이 너무 아까워.

 

이봐. 나 여기 있어. 여기 있단 말이야. 몽키 스패너를 용케 찾아 벽을 더욱 세차게 두드려 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반응이 없다는 것이 나를 더욱 절망에 빠지게 한다. 이대로 죽는 건가.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니란 말이야.

온몸에 힘이 빠진다. 목소리를 낼 수가 없고 침이 넘어가질 않는다. 바닷물은 어느새 목까지 차올라 오고 있다. 숨을 데가 없다.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내가 꿈꾸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엄니. 내가 고등학교 때 이었었죠. 무척이나 속을 썩여 드렸었는데. 미안해요. 나 땜에 고생을 많이 하셔서.

대학교 입학할 때는 당신 일 인양 그렇게나 기뻐 하셨었죠.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직장 잡아 효도하려고 했었는데.

해군 입대시 내가 우겨 배를 타는 것에 대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하셨었는데 이제 현실이 되네요. 괜한 나의 고집으로 일이 이렇게 되었어요.

엄니. 그런데 이제 어떡하죠. 너무 춥고 어두워요. 나 혼자라는 것이 너무 무서워요. 모두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살려줘요. 나 이대로 죽을 수 없어요. 내 삶이 너무 억울하단 말이예요.

내가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데. 이대로 죽을 수 없어요.

살려줘. 살려달란 말이야. 문 열어 달란 말이야.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애써 잡고 있는 팔에도 힘이 빠진다. 어떻게 하나. 아니야. 분명히 나를 구조하러 올 거야. 반드시 올 거야.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엄니. 나 손을 놓고 싶어요.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버티는 게 너무 힘들어요. 혹시나 내가 잘못되면 어떡하죠. 지난주 안부 전화 드리지 못한 게 너무 죄송하네요. 숨을 더 이상 못 쉬겠어요.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나 살아야 되는데…….

나 진짜 죽는가 봐요…….

 

엄니 오늘도 찾아 오셨네.

봄이긴 하지만 바람이 아직 시원찮은데 오늘 또 왜 오셨어요.

무릎도 성치 않으신 분이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집에서 쉬시지 말이 예요.

고백 하자면 그날 너무 무섭고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내가 선택 되었지 라는 원망도 많이 했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보시는 바와 같이 나와 같이 함께한 전우들 덕에 육체가 없는 영혼이지만 재미나게 지내고 있어요.

짧은 생이나마 살아왔던 이야기도 나누고 묘지에 찾아온 나비랑 하늘과도 대화를 나누고요.

하지만 세상에 하고 싶은 게 많았었는데 솔직히 아쉽긴 하네요.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아요. 오늘은 그 사건이 있은 지 딱 1년이 된 날입니다. 평소답지 않게 많은 참배객들이 우리를 찾아오고 아까운 청춘이 시들었다고 모두들 슬퍼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이곳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잊히겠지요.

사람들은 우리들을 용사라는 호칭으로 애도하지만 사실 모르겠어요. 그만한 호칭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건지.

다만 우리들의 아픔과 이루지 못한 청춘의 당신 아들들이 무얼 하다가 죽어 갔는지는 그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들은 말 그대로 개죽음이니까요. 솔직한 심정으로 그나마 이렇게 현충원에 묻힌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찾는 이 없이 우리들만 이렇게 댕그렁히 잠들어 있으면 더욱 힘들 것 같아요.

우리가 왜 이 차디찬 바닥에 누워 있는지의 의미를 살아가면서 잠깐씩이라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엄니. 우리의 골이 깊은 상처의 치유를 위해 나팔수들이 서럽게 한 곡조를 뽑아내네요.

나는 이 구슬픈 곡만 들으면 괜히 눈물이 나요.

엄니도 생각나고 짝꿍도 생각나고 다투기만 했던 형님도 생각나고.

그래도 엄니가 가장 보고파요.

엄니가 얼마 전 TV에서 이런 말을 했다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사람은 살아야 된다는데 그 말이 제일 듣기 싫다고. 그 살아 있는 사람의 몸서리 쳐지는 고통을 아느냐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다죠.

미안해유. 그렇게 힘든가요. 이제는 걱정 말고 돌아가요. 나는 잘 있으니께.

그만 돌아가요. 괜히 엄니보다 먼저 죽어 세상을 떠난 내가 마음이 더아프니까.

 

오늘도 하늘은 여전히 푸릅니다. 그날도 그랬었는데.

엄니. 군함 위에서 까만 밤바다에 그림자 너울지는 하늘의 별들을 보는 기분을 아시나요.

시골도 아니고 바다 위에서 보는 별들은 육지와는 달리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줘요.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힘든 훈련을 버티게 한 힘이 되기도 하였고요. 바닷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그날의 잔치들이 그립네요.

하늘의 별들이 하나둘 안녕을 고할 때면 우리도 잠들었었죠. 당신의 품처럼 따뜻하고 넉넉 했었고요.

별과 함께한 이루지 못한 꿈들이 이제는 끝이 났지만 우리는 여기 또 다른 환경에서 잘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이곳도 이젠 견딜 만하니까요.

나 이제 가요. 엄니도 겁나게 가소. 돌아갈 길이 먼께.

그리고 지발 용사니 뭐니 라는 말 솔직히 겁나게 부담되니까 다음에는 그런 현수막좀 붙이지 말라고 그래요.

그냥 내 일하다 이렇게 됐을 뿐인데.

호들갑 떨지 말고 오랫동안 잊지 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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