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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7일 08시 13분 등록

나에게 다가왔다. 사십대 초반은 되어 보임 직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여자였다. 그녀는 울면서 자신의 입장에서 혹은 아들의 입장에서 하소연을 통해 가슴의 응어리짐을 털어 놓는다. 덕분에 나의 고인 물도 함께 녹아내린다.

 

대개가 그러하듯 그녀도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고 부러워할 만큼은 아니지만 달콤한 신혼 생활을 거쳐 귀한 외동아들을 얻었다. 외동이라 그런지 아들에 대한 관심은 지극 하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위해 무엇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하였다. 강남 8학군의 엄마는 아니었지만 공부에다 예능에다 외국 어학연수까지. 그리 넉넉하지는 않은 살림 이었지만 아들은 그녀가 내걸 수 있는 희망이요 상징이요 표상 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남편은 애한테 너무 과도한 관심이 아니냐는 핀잔을 주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당신은 세상 돌아가는걸 몰라요 하고 도리어 몰아세우기도 하였지만, 어쩌면 그녀의 기대치를 대신 살아 줄 수도 있는 아들 이었기에 더욱 올인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아들이 이제 소년티를 벗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자 더욱 늠름해 보였다. 그런데 그 늠름함은 외적으로만 나타내는 모양새였던 모양이다.

 

나는 아들. 나에게 엄마라는 단어를 한마디로 이야기 하라면 투자처라고 부를 수 있다. 무엇이건 척척 이다. 내가 무언가를 요구하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이루게 해준다. 어릴 적부터 항상 들어온 이야기는 내가 잘되어야지 엄마가 잘된다는 것이다. 지금 열심히 해놓아야 나중에 편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진리인줄 알았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내 마음이 이상하다. 모든 것이 귀찮고 혼자 있고 싶은데 엄마는 언제나 그랬었던 것처럼 항상 나에게 일순위로 신경을 쓴다. 어딜 가든지 나의 행선지를 알고 싶어 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심지어 사소한 비밀과 친구관계까지 당신이 컨트롤하기를 원하신다. 무엇이든 나를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고 하나에서 열까지 간섭을 한다. 나도 이젠 어른인데 나를 그냥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내가 엄마의 부속물인가. 이젠 귀찮다. 나 혼자 서도 할 수 있는 나이인데. 엄마는 눈치코치가 없다. 친구들도 너희 엄마는 이상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정말 싫다. 그런 엄마가.

 

나는 엄마. 중학교 2년 아들이 3학년이 되기 전에 영수 부문은 확실히 잡아 놓아야 되는데 맘이 놓이질 않는다.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아 점점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부담은 더되지만 남편에게 이야기해서 과외 선생을 하나더 붙여야겠다. 그런데 이제 머리가 커져서인지 내말을 듣지 않는다. 괘씸한 녀석.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크면 이런 엄마에 대해 오히려 감사해야할 녀석이…….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를 맞이하러 밤늦게 학원 앞에서 기다렸다. 내가 너무 극성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주위 엄마들도 그러하기에 이건 약과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몇 년 만 더 고생하면 된다.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 아들이 나왔다. 힘들었는지 얼굴이 핼쑥해 보인다. 안되겠다. 보약 한재라도 해주어야지. 공부는 뭐니 뭐니 해도 체력이니까.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본체만 체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요새 들어 더욱 민감해지고 나랑 이야기도 하질 않고 혼자 방으로 들어간다. 안되겠다. 오늘은 다잡고 대화를 좀 나누어야 되겠다. 가까이서 보니 아들의 얼굴은 더욱 우거지상이다. 시험성적이 좋지 않게 나왔나. 아니면 저녁이 시원찮았나. 늦은 밤이지만 좋아하는 간식이라도 해주어야 되겠다.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집어 던지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뭔가 일이 있는 거야. 분명히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들. 간식 먹어.”

내말에 아들은 반응이 없다. 떠먹여 주어야 하나. 사과 하나를 포크에 찍어 건네었으나 아들이 밀쳐내는 손길에 접시랑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황스럽다. 이런 일은 처음인데. 그리고 어디서 배운 버릇인지. 내가 이렇게 가르치지는 않았는데. 그런데 다음 이어지는 뜻밖의 말이 나를 더욱더 황당하게 하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왜 엄마는 나만 쳐다보고 다녀. 엄마는 자기 삶이 없어? 엄마의 쓸데없는 관심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알아. 친구들이 나만 보면 놀려. 항상 나만 졸졸 따라 다닌다고. 제발 밖에 나가 다른 엄마처럼 일을 하든지 아니면 쇼핑을 하던지 좀 돌아다녀. 그리고 이제는 나를 좀 그만 내버려둬. 숨이 막혀 미칠 것 같아.”

 

뭐야? 이게 뭐지.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나는 아들의 뒤통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항상 고분고분 하고 살갑게만 대하던 아들이 나에게 이런 행동을 보일 리가 없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니야. 뭔가 일이 있었던 거야. 내말에 순종만 하고 착하기만 하던 아이가 이럴 수가 없어. 친구를 잘못 사귀었나. 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한기가 찾아오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가슴을 쓸어내려 보지만 그 자리에 있다간 애를 잡든지 내가 죽든지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방문을 닫고 황급히 거실로 나왔다. 어떡하나. 어떡해야 하나. 진정이 되질 않는다. 남편은 오늘 회식이 있다고 늦게 온다고 하였는데 이일을 누구랑 상의해야 하나. 친구 말순 이에게 의논해 볼까. 아니야. 항상 나보다 잘난 척 하는 친구였기에 어쩌면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오히려 속으로는 잘되었다고 할지 몰라. 학창시절 공부 못하던 내가 자식새끼 하나는 잘 두었다고 시샘을 부리던 친구였기에 짐작이 가고도 남아. 그럼 어떡하지. 벌렁 거리는 가슴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내가 어떻게 저놈을 키웠는데. 내가 어떻게 저놈을 이날 이때까지 교육 시켰는데. 이럴 수는 없어.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지. 혼구녕을 내야하나. 아니, 민감할 때여서 그런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엄마에게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할 수 있나. 그냥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계는 벌써 새벽 3시를 향한다. 이 양반은 왜 들어오지 않는 거야. 도대체 밖에서 무슨짓을 하는 거야. 아빠가 그러니 애가 저모양이지. 그럴 때 초인종이 울린다. 남편이다. 슬리퍼를 신는 둥 마는 둥 현관으로 향했다. 짙은 술 냄새. 이양반이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들이 저모양인데.

“여보, 길동이가…….”

정신이 없다. 부축하여 소파에 뉘이자 남편은 그냥 잠에 곯아떨어진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그렇고 남편도 저지경이니.

 

나는 밤을 홀딱 새웠다. 내가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 보았다. 갑자기 서글퍼진다. 뒷바라지만 하고 지낸 내 삶이 후회가 된다. 내가 누구를 위해 이렇게 살았는데. 내편이 없는 것 같다. 남편도 미워지고 아들은 더더군다나 더 밉다. 흥. 그래 자기들끼리 살아보라지. 내가 없으면 얼마나 허전하고 불편한지 한번 살아보라고. 나도 이제 내 마음대로 살 거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거라고. 나도 내 친구 말순 이처럼 떵떵거리며 살 거라고. 그런데 어떡하나. 생각해보니 마땅히 안주 할 데가 없다.

 

나는 나. 상황에 대한 타인들 보다 예민함으로 내속의 얼룩지고 상처받은 것들이 감정의 깊은 골이 되어 까만색으로 곪아 있었다. 엄마는 나에 대해서 사랑과 관심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었겠지만 오로지 자식을 금전적으로 뒷바라지 해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갈구하고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 하는지 무엇을 염원하는지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를 헤아려 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칭찬을 받아 본적이 없다. 인정을 제대로 받아 본적이 없다. 남들처럼 신체접촉을 통한 엄마에 대한 사랑의 느낌과 함께하는 공유의 감정을 가져본 적도 드물다. 그래서인가. 타인과의 관계와 접촉이 아직도 무척이나 어색하고 서툴다. 이런 나를 봐주세요 라고 성장기에 소리치려는 순간이면 항상 누나가 등장 하곤 한다. 나와는 달리 현실에 대해 직설적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누나 앞에 엄마는 쓰러지고 통곡 하였다. 그럴 때 나는 방구석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내가 소리 지르고 싶은 이야기 이었지만 매번 그렇듯 타이밍을 놓쳤다. 그러다보니 십대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모든 것이 그렇듯 남들보다 훨씬 늦게 사춘기가 찾아오는 중, 암울하고 빛이 보이지 않았던 중고등학교의 생활을 거치고 힘들게 대학교에 입학 하였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세계가 따로 없었다. 내가 꿈꿔오던 자유가 펼쳐진 곳이었다.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이게 넓음의 세상이구나. 이게 속박에서 해방된 느낌이구나. 하지만 그것들이 주어짐에도 모든 게 나에겐 익숙하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다시 시작 하여야 했다. 같은 또래의 사람들만 보다가 동아리 생활 등 여러 단체를 거치니 나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질감 속에서 또 다른 나의 방황이 시작 되었다. 성격도 그렇고 사람 관계에서 어색한 것들 조직생활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모든 문제들이 파생 되었다. 이러다보니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기 보다는 엄마 책임 같아 보였다. 20대 이전의 삶을 돌아보니 모든 것들이 당신과 연관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없이 살았던 터라 자식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 하셨던 분. 하지만 아쉽게도 그 애정은 물질적인 것으로만 제한이 되어 있었다.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본인이 나서서 어떻게든지 충족시켜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성장하여서 보니 거기에 중요한 것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 있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폐아처럼 자랐기에 남들이 경험 했음직한 조직 안에서의 역할과 독립성 등이 너무나 뒤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화 및 사랑을 주고받는 감정의 느낌과 소통이 서툴렀었다. 그래서인가 나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나의 특이함에 놀라곤 한다. 사고의 편협성과 고집스러움이 남달랐기에 말이다. 나는 이 모든 화살을 엄마에게로 돌렸다.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밖으로만 내달렸다. 항상 막걸리를 끼고 살았다. 당신에 대한 저항감이 늦게야 분출이 된 것이다. 왜 나를 이렇게 키웠냐고, 덕분에 내가 조직생활 하면서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고, 나의 사고방식 때문에 사람 사귀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을 아느냐고 항변을 하였다. 당신은 나의 이런 행동에 못내 당황하였다. 애지중지 키워 놓아서 대학교까지 보내 놓았더니 너무나 바뀌어서 돌아온 나를 이해는커녕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물에서 사람을 건져 놓았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돌변한 나를 이상한 아이로만 쳐다보았다. 순종적이고 착하기만 했던 그런 아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나였기에 당신의 그림자에서 탈피하기를 정말로 죽을 둥 살 둥 노력 하였다. 지방에서 서울로의 엑서더스도 실현 되었다. 하지만 한 번씩 돌아오는 마눌 님의 피드백은 이제까지의 삶을 다시 도돌이표로 돌려놓고 만다.

“승호 씨는 어쩜 그렇게 어머니와 똑같아요? 행동 하는 거나 말하는 것도 그렇고.”

자식은 발가락까지 닮는다고 했던가. 나는 싫었다. 엄마의 자식이지만 그 자식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싫었다. 하지만 무던히 벗어날려는 노력을 스무 살 이후부터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신의 그늘 안에 있는 내가 안쓰럽고 답답하다. 새로운 삶을 창출하고 싶은데 언제나 당신의 영향력이 나를 엄습한다. 나의 행동, 언어, 가치관, 성격 하나 하나마다 당신의 살아온 삶과 DNA가 담겨있다. 벗어나고 싶은데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인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하지만 나는 항상 거부를 하였다. 왜? 그것이 싫었기에.

 

이제 엄마도 신체의 나이는 무시를 못하나 보다. 육체적인 노후화의 고통을 끊임없이 호소하면서 자식에게 항상 기대려고 하신다. 주름살과 함께 쓰디쓴 삶을 버텨 오신 끔직한 인생 팔자의 덧없음에 대해 한탄만 이어진다. 그런 당신을 바라보며 속으로는 애처로운 마음이 듬에도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나의 태도는 돌변을 한다. 마흔이 넘음에도 아직도 시근이 덜 들었는지 자주 언쟁이 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는 마눌 님은 또다시 한마디를 던진다. 어머니나 승호씨나 똑같다는 것이다. 똑같다. 그렇구나. 똑같다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하였구나. 자신이랑 닮은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가까워져야 함에도 왠지 모를 어색함을 경험했던 것들이 이런 것이었구나.

 

나는 아직도 철모르는 아이이다. 중학교 2년 그녀의 아들이 자신에게 쏟는 사랑의 넓음과 깊이를 이해 못하고, 그날 저녁 자신의 어머니께 속앓이의 표출 이라는 명목으로 대들었던 것처럼 그런 나의 행동은 아직도 지속이 된다. 그런데 나와 그녀의 아들은 알까. 내가 쏜 화살을 과녁판에서 힘들게 뽑아도 그 흔적은 그대로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흔적의 고통은 당사자를 뛰어넘어 자신에게도 고스란히 돌아오는 것이 인생의 반복되는 순환논리의 명제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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